물안개 속의 선자령
일시 / 2024년 10월 26일
코스 / 선자령주차장 - 구름코스 - 선자령주차장 - 제비동자꽃군락지
- 양떼목장소나무 - 삼거리 - 목장길사거리 - 선자령 - 새봉 - 전망대
- KT중계소 - 구름관측소 - 양떼식당(15.8Km)
" 당신의 눈으로 흰 배추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것이다.
낮에 뜬 반달을 볼것이다.
언젠가 빙하를 볼것이다.
각진 굴곡마다 푸르스름한 그늘이진 거대한 얼음을,
생명이이었던 적이 없어 더 신성한 생명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올려다 볼 것이다.
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겨울 해가 드는 창의 정적 속에서 볼 것이다.
비스듬히 전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 마실 것이다.(노벨문학수상작가 한강의 흰중에서)
1m가 넘는 폭설속에서 그 높던 이정표가 내 무릎 밑에서
알씬 대던 지난 겨울에 눈위를 걸었고,
녹음방초가 눈과 마음을 사로잡던 초봄에도 걸었던 그길에서
오늘은 유난히도 을씨년스럽게도 물을 잔득 먹음은
안개 구름속을 걷자니 벼란간 어제 읽었던 작가의
글귀가 안개로 뒤덮혀가는 제궁골 깊숙히 흐르는
맑고도 고운 물길에 숨죽여 흐르는 물결에 투영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음,
아무소리도 듣지 않았음,
그리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음,
해서 그런지 안개가 자욱하니 시야를 뒤 덮고 나니
마음은 부지런히 걸으려는데 걸음은 어깃장을 놓으려고 한다.
온갖 것들로 꽉 채워져 무성했던 숲은
단물을 쪽쪽 빨아 먹은 솜사탕 모양 헐렁해진 숲속엔 아쉬움만 남아 있고,
속이 얼마나 허했나 허겁지겁 배를 채우려는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안개속에서도 쉴새 없이 휭휭 밥숫갈질에 여념이 없다.
나는 이 헐렁하고 흐미한 이 길위에서
추억을 한겹풀씩 풀어 헤쳐본다.
그리곤 사주단지 묶으듯 그 추억들을 소중하게 묶어논다.
나무들은 자기들의 책무를 충실하게 한 나뭇잎들을
전부 땅바닥에 내동댕이를 치고는 스산한 겨울 바람을
맨몸으로 맞을 준비들을 하고,
내 스틱에는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고는 익어가면
조금씩 조금씩 떼어 먹듯이 낙엽이 꿰이면 툭툭 쳐내어
이별을 고하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선자령 정상에 서면
위용을 자랑하는 정상석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으려고
안개로 꽁꽁 문을 닫아 건 선자령에서 유독 불꽃 놀이 하듯이
계방산 쪽으로만 안개가 빗장을 열고,
양떼목장 초지에는 벌써 월동준비가 끝이나서
황량한 벌판에 유독 빨간 텐트가 안개속에 꿈틀대는
풍력발전기와 궁합을 맞추고,
꾸역꾸역 등로를 밀고 올라오는 젊은이들은
비박 장비로 무장을 하고,
나는 홀가분하게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는
다 떠난 능선 길에서 내가 지나온 뒤안길을 되돌아 본다.
첫댓글 가을날 짙은 안개로 시야가 가렸군요.
올해의 단풍산행은 좀처럼 쉽지 않은듯 해요.
티엔님 챙기시느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