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단편소설] 박문후 ‘까마귀 서점’ -박문후
까마귀 서점
길 대리가 책을 읽고 있다. 아침 안개 때문에 모든 사물이 흐릿하게 보인다. 전봇대에 앉은 까마귀가 서점 안을 들여다보며 누구와 대화라도 나누듯 계속 중얼거렸다. 나는 창가에 서서 눈으로 까마귀를 좇는다. 아마도 통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또 다른 친구쯤으로 생각하는가 싶어 재미있었다. 까마귀가 전봇대에서 내려와 그가 종이박스로 마련해준 먹이통에서 낱알을 쪼다가 통유리창 앞까지 다가오더니 부리로 유리를 두드린다. 까마귀를 따라다니던 나의 눈에 그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벽면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15도 정도 숙여진 상체가 흡사 막 내려앉아 날개를 접은 까마귀 같았다. 좀 전의 까마귀가 실내에 들어온 것인가 하고 나는 실없이 웃었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금붕어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그를 다시 한 번 힐긋 돌아봤다. 금붕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수초 속에 숨어있고, 다른 한 마리는 온몸으로 수초를 헤치고 있었다.
배달원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식사요, 하고 외친다. 배달원의 필요이상 높은 목소리에도 그는 꿈쩍을 하지 않는다. 배달원이 자장면 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사라진다. 그릇에 씌워진 비닐랩을 벗기며 길 대리를 불렀다. 그제야 그가 테이블로 다가온다. 나는 자장면을 비비며 그에게 물었다.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무슨 책을 읽었어요?”
“시집요.”
그가 짧게 대답을 하고 자장면을 비벼 묵묵히 입으로 가져간다. 속으로 시를 하며 놀랐다. 그날 이후 나는 시를 읽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수시로 훔쳐봤다.
길 대리와 얼굴을 마주보고 앉는 시간은 하루 중에 점심식사 시간이 전부이다. 그 외에 그와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때때로 학생용 참고서나 문제집 도매점에서 책 배송이 올 때였다. 그가 책 박스를 풀어 서가에 책을 꽂을 때, 나는 옆에서 그에게 책을 집어 올려줬다. 그는 서가에 책을 꽂으면서 꼭 수학아 네 자리다, 물리야 네 자리다, 하며 책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를 확인했다. 그래서 나도 책을 집어 올리면서 국어요, 영어요하고 장단을 맞췄다.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이 돌림노래를 부르듯 호흡이 맞았다. 하지만 그런 일도 없는 날은 하루의 대부분을 나는 카운터에서, 길 대리는 서가 쪽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지냈다.
고등학생들 한 무리가 들어왔다. 이름표의 색깔로 봤을 때 2학년 학생들이었다. 재잘대던 아이들 중의 한 명이 길 대리를 올려다보고 도플갱어야, 완전 똑 같아. 그 말을 들은 옆의 학생이 또 다른 아이를 쿡쿡 찌른다. 학생들의 눈길이 일제히 길 대리에게로 쏠린다. 길 대리는 서가에 붙어 서서 책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학생들이 책값을 계산하고 나가면서 재미있다는 듯 길 대리를 다시 돌아본다.
4월이 되자 꽃샘추위가 지나가고 벚나무의 꽃망울이 터진다. 붐비던 학생들의 발길도 뜸하다. 바람살이 한결 부드럽다. 조금 열어둔 출입문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걷어 올린 블라인드의 줄을 흔든다. 점심을 먹고 나니, 바람에 줄이 흔들리는 소리조차 성가실 정도로 한가롭다.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앉는다. 길 대리는 변함없이 벽면에 기대어 서서 시 읽기에 빠져있다.
졸음을 쫓을 겸 화분을 손질하기로 했다. 메인 도로 건너편에 있는 꽃집에서 부엽토와 모래흙을 사다가 분갈이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키우던 화분들이다. 서점을 이어받고 한쪽 구석에 가구처럼 놓여있던 화분들을 아버지의 집으로 실어다주기가 번거로워서 그대로 관리하고 있었다. 화분의 식물들이 대부분 말라죽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춘란분 세 개와 협죽도와 관음죽, 산세베리아, 그리고 다육이 종류 몇 개뿐이었다. 사람들이 귀찮아하면서도 꾸역꾸역 명절날을 챙기며 무언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해마다 봄이 되면 아버지가 하던 대로 분갈이를 해주는 것이 나의 몫이었다.
축축한 모래흙속에서 다슬기 한 마리를 발견했다. 껍데기가 암갈색을 띠는 것이 예쁘다. 버리기가 아까워 다슬기를 어항에 넣어두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나와 엇갈리며 고등학생 한명이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서점 안으로 걸음을 옮겨놓는 학생의 뒷모습이 벽면에 기대 서 있는 길 대리의 뒷모습과 많이 닮았다. 둘 다 왜소한 체형에 목이 유난히 길고, 어깨가 목 쪽으로 솟아올라있다. 양쪽 어깨와 목의 형상이 좀 더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뫼산자를 연상시킨다. 학생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길 대리가 읽고 있던 시집을 덮고 학생을 향해 마주 걸어 나온다. 나는 분갈이 하던 손을 멈추고 두 사람을 주시했다. 두 사람은 이목구비뿐만 아니라, 골격과 분위기까지 같은 금형에서 찍어낸 것 같다. 길 대리와 마주보고 선 학생이 쭈뼛거리며 말을 한다.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턱 근육의 움직임까지 닮았다.
고무장갑을 벗고 물뿌리개를 들고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싱크대로 다가가서 물을 받으며 귀를 기울였다. 주눅이 들어있는 학생의 말소리가 들렸다. 반 아이들이 서점에 저의 도플갱어가 산다고 놀려요. 궁금하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안 계셔 혹시 하는 마음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어요. 학생의 말을 듣고 있는 길 대리의 얼굴에 긴장감이 돈다. 목덜미까지 붉다. 그의 시선이 재빨리 학생의 이름표에 가서 멈춘다. 학생의 이름이 윤지우이다. 길 대리가 떨리는 음성으로 학생의 성이 윤 씨가 맞느냐고 거듭 확인하며 가슴이 맞닿을 정도로 바짝 다가선다. 윤지우가 겁먹은 표정으로 한발 물러서며 길 대리를 바라본다. 그때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가 들렸다. 지우가 길 대리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뛰어나간다. 통유리창을 통해 지우가 교문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길 대리가 뛰쳐나간다. 그가 교문을 통과하려는데 수위실 창구 문이 열리며 수위가 그를 불러 세운다. 수위에게 제지를 당한 그는 교사(校舍) 안쪽으로 사라지는 지우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섰다. 수위도 밖으로 나와 길 대리가 보고 있는 방향을 같이 바라본다. 텅 빈 운동장의 벤치에 누군가 빠뜨리고 간 프린트물을 바람이 공중으로 날린다. 수위가 고개를 돌려 길 대리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살핀다. 운동장에서 춤을 추던 바람이 길 대리의 덥수룩한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 놓는다. 길 대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오래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다. 수위가 그의 검은색 일색인 아래위 차림새를 한 번 더 훑어보고 수위실로 들어가 창구 문을 닫는다.
삽화=용정운
윤지우가 다녀간 후에도 그는 여전히 시를 읽고 있다. 어두운 벽면에 기대어 서서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내는 그의 굽은 등을 바라보며, 전봇대에 앉았던 까마귀가 훌쩍 날아가 버리듯 갑자기 내일이라도 출근을 하지 않겠다고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너무 빨리 그만 두면 큰일이다. 비록 서점의 규모가 작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해오던 것이다. 아버지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한 후, 서점 일에서 손을 떼고 나 혼자서 운영을 하게 되자 남자직원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길 대리가 출근을 하지 않는 사태가 생기면 새로 직원을 채용할 동안 아버지를 모셔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서점 운영에 다시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침에 그가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바닥 물청소를 하고 있었다. 먹이통에서 낱알을 쪼아 먹던 까마귀가 열어놓은 출입구로 머리를 들이민다. 그에 대해 섣불리 예단한 것이 미안해서 점심시간에 특식을 시켰다. 매일 먹는 중화반점의 짬뽕 자장면이 아니라 가정식한식당에 주문을 했다. 길 대리의 출근 시간이 빨라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서점은 남자 중·고등학교 담장 옆에 붙어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생들이 책을 사러 나오기 때문에 서점에서는 학생들 등교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을 하고, 점심시간도 1시간 빨랐다.
청국장찌개까지 포함해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점심상 앞에서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나는 식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기대와 달리 그는 나의 이런저런 물음에 간략하게 대답을 하며 무덤덤하게 숟가락질만 하였다. 그의 정체가 더한층 흥미롭다. 인스턴트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그의 앞에 놓아주며 물었다.
“길 대리님,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제 온 지우 학생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게요.”
그의 대답이 김빠진 맥주 같다. 참 재미없게 말한다. 청국장을 떠먹는 그를 바라봤다. 말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예 대화를 나눌 의사가 없어 보인다. 사람을 밀어내는 듯한 어조다. 더 깊게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벽이 느껴진다. 나는 그가 어떤 벽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대화를 외면한다는 것을 감지 할 수 있었다. 윤지우와 외모가 많이 닮긴 했지만, 궁금한 것을 뒤로 미루고 그와의 티타임까지 끝냈다. 나는 어항 속 금붕어들에게 먹이를 줬다. 모두 빨간색이다. 점심 식사 후 그는 새로 나온 홍보용 문제집을 챙겨 교사들에게 배포하려고 고등학교 교무실로 외근을 나갔다. 그가 읽던 시집의 표지를 확인했다. 김현승의 시집이다. 나는 서가에 나란히 꽂힌 김현승의 다른 시집을 빼서 자리로 들고 와서 읽었다.
외근을 하고 돌아오는 그의 품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안겨있었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 섞인 수면양말 한 짝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놀라서, 웬 고양이세요? 죽은 것 같은데.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품에 안고 있는 고양이만 쓰다듬는다. 그런 그의 손등에 상처가 나 있다. 무언가에 찢겼는지 핏방울이 맺혔다. 길 대리가 한참동안 몸을 문지르자 죽은 듯이 늘어져있던 고양이가 눈을 뜬다. 그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은박지 접시에 부어 고양이 앞에 갖다 댔다. 고양이가 우유를 보고도 일어서질 못한다. 그가 고양이의 머리를 우유가 담긴 접시위에 올려놓았다. 고양이가 냄새를 맡았는지 드러누운 채 목을 비틀어 혓바닥을 쭉 빼더니 허겁지겁 우유를 핥는다. 몇 번 더 부어준 우유를 다 먹은 고양이의 눈에 그제야 두려움의 빛이 돋아난다. 고양이가 머리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확인한 후, 그가 싱크대로 가서 손을 씻었다.
길 대리는 출퇴근을 할 때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다. 그가 시를 읽으면 고양이는 그의 어깨 경사도에 따라 비스듬히 배를 붙이고 누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졸았다. 재밌는 것은 서점에 문제집을 사러온 학생들이 고양이를 쓰다듬으려고 하면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손도 못 대게 하였다. 게다가 고양이가 잠시도 길 대리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가 외근을 나가면 돌아올 때까지 울어댔다. 길 대리님, 고양이를 집에 두고 오세요. 너무 시끄러워서. 내가 그에게 말을 한 다음날은 길 대리가 혼자서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 고양이와 함께 출근을 한 길 대리가, 얘가 분리불안증이 심해서. 다른 고양이들에게 위협을 당하지 않고 혼자서 살아갈 정도로 자라면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려보낼 거예요. 양해를 구하며 묻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였다. 사실, 그가 외근을 나가고 없으면 나는 출입문을 조금 열어놓았다. 은근히 사라져버리길 바라며 간식을 들고 고양이를 서점 밖으로 유인해보기도 했다.
매일 아침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책을 찾느라 판매대며 서가가 난장판이 됐다. 참다못한 나는 몇 번이나 그에게 주의를 줬다. 하지만 그는 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동을 멈춘 로봇처럼 통유리창 앞에 서서 교문 쪽만 지켜봤다. 윤지우가 다녀간 후, 길 대리는 등하교 시간에 서점 안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고양이가 구부정하게 서 있는 그의 허리에서 출발하여 어깨까지 오르락내리락하고, 길 대리와 고양이를 구경하는 학생들의 깔깔거림, 고양이의 무한 반복될 것 같은 울음소리. 그는 시끌벅적한 소음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고집부리는 아이 같았다. 아니 무엇에 홀린 사람 같다. 그의 뒤 꼭지에 후광처럼 간절함이 서리었다. 나는 그의 등 뒤로 몇 번이나 다가서다가 돌아섰다. 무엇 때문인지, 오히려 그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까봐 숨을 참으며 발끝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학생들의 등교시간이 끝나서야 길 대리가 판매대며 서가를 정리했다. 서가를 정리하느라 길 대리의 움직임이 커지면 고양이가 그의 몸에서 뛰어내린다. 고양이가 길 대리의 어깨 다음으로 좋아하는 곳이 어항이다.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 어항을 톡톡 친다. 금붕어가 고양이에게로 다가간다. 고양이와 금붕어가 어항 벽을 사이에 두고 입을 맞춘다. 교도소의 면회실에서 수감자와 면회자의 만남만큼이나 애틋한 모습이다. 고양이는 금붕어와 입맞춤을 하면서도 금붕어가 물위로 떠오르는 것을 노린다. 나는 고양이를 경계한다. 얼마 전에 물위로 머리를 내밀고 아가미를 벌름거리던 금붕어 한 마리를 먹어치워 새로 사다 넣었다. 서가를 정리하는 길 대리에게 지우와 많이 닮았다고 얘기해주려다 관뒀다. 그가 지우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섣불리 아는 척하기 조심스러웠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매일 함께 일을 하고, 함께 밥을 먹었지만 늘 검은 그림자와 함께 있는 기분이다.
서가 정리를 끝낸 그가 고양이에게 우유를 먹였다. 나는 컴퓨터 화면에 입출고 대장을 열어놓고 재고정리를 하고, 그는 그의 자리에 서서 시집을 읽는다. 고양이가 심심한지 야옹거리자 그가 외투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 입에 넣어준다. 점심으로 돼지국밥을 먹었다. 나른하게 오후가 지나가는듯했다. 나른함을 깨뜨리는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고등학교에서 문제집을 찾는 교사가 있었다. 길 대리가 교무실로 외근을 나갔다.
출판사에 문제집의 재고를 반품하고 새로운 문제집을 주문하고 있는데, 유선전화기가 울렸다. 학교 뒤쪽에 있는 파출소였다. 길 대리가 서점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묻는다. 송수화기를 목에 끼고 빠르게 숫자들을 입력하면서 나는 떨떠름하게 왜냐고 물었다. 길 대리가 근무를 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며, 지금 파출소로 방문해달라고 했다.
길 대리가 경찰관 앞에 앉아있었다. 내가 다가서자 경찰이 서류를 내밀며 읽어보고 사인을 하라고 한다. 내가 길 대리의 신분을 보증한다는 내용이다. 대충 읽고 사인을 하자 경찰이 그에게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외투의 겨드랑이 솔기가 터지고 흙먼지 투성이다. 눈살을 찌푸리고 아래위를 훑어봐도 그는 나의 시선을 모른척했다. 재고 반품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차에 길 대리 때문에 경찰서까지 불러왔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의 지저분한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출입문을 열고 앞서 나와 버렸다. 그가 서점 안으로 들어서자 고양이가 숨어서 울다가 그의 종아리에 달라붙는다. 그가 고양이를 들어 올려 이마에 뽀뽀를 한 후, 잠시 나갔다오겠다며 출입문을 열고 도로 나간다. 그를 뒤쫓아 가던 고양이가 문에 부딪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른다. 나는 저 시끄러운 것을 데리고 제발 나가 버려, 하고 그의 뒤통수에 대고 쏘아붙였다.
그가 새 외투를 입고 들어왔다. 나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힐긋 훑어보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때 천장과 서가 사이의 작은 틈새에 숨어서 울던 고양이가 그의 어깨위로 뛰어내렸다. 순간 그가 눈썹을 잔뜩 찡그린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그는 파출소 사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어깨에 태운 채 그의 자리로 가서 시집을 집어 든다.
고등학생들의 하교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길 대리가 통유리창 앞에 섰다.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어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데도 그가 어두워져가는 교문을 초병처럼 지켜본다. 날개를 접은 까마귀같이 어두운 벽면에 붙어 서 있던 길 대리가 갑자기 출입문을 향해 빠르게 걸어간다. 고양이가 뛰어가고, 나의 눈길이 그를 좇는다. 윤지우가 서점의 출입문을 향해 다가왔다. 두 사람이 출입문 앞에서 마주보고 멈춰 선다. 길 대리가 출입문을 자기 앞으로 당기고, 그 사이로 지우가 들어온다. 지우의 눈길이 오직 길 대리에게만 가서 꽂힌다. 지우를 맞이하는 길 대리의 표정은 의외로 첫날보다는 많이 차분하다. 나는 웃으며 지우에게 소파에 가서 앉으라하고 서점을 빠져나왔다. 서점을 나와 꽃집으로 향했다. 꽃집에서 다육이 화분을 구경하며 서점 쪽을 살폈다.
시간이 20분 정도 흐른 후, 서점으로 돌아왔을 때 길 대리와 지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함께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문제집 몇 권을 종이봉투에 담아 지우에게 내밀었다. 뚱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지우에게 나는 공부 열심히 해, 하며 웃었다. 지우가 소파에서 일어서며 시선을 길 대리에게서 떼지 않는다.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길 대리도 따라 일어난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점을 나섰다. 지우가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돌아온 길 대리가 말없이 블라인드를 내리고 퇴근준비를 한다. 나는 카운터를 정리하면서 그의 뒷모습을 흘끔거렸다.
길 대리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고 카톡 대화창에 숫자 1도 지워지지 않았다. 길 대리의 급여를 정산해서 입금하는 것으로 끝내버릴까 생각했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망설이는 동안 며칠이 지났다. 그에게 한 번 만나자고 다시 카톡 메시지를 보냈지만 역시 답이 없었다.
남자직원 채용안내문을 유리창에 붙이고 있는데, 한 남자가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벌써하며 그 남자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훑어봤다. 남자가 길 대리를 찾는다.
“며칠 전에 제가 중학생의 자전거를 훔치려고 하다가 길 씨와 몸싸움을 벌였어요. 그 학생의 신고로 우리 둘 다 파출소로 연행이 되었고, 파출소에서 풀려날 때 길 씨가 자전거 살 돈을 보내주겠다며 내 계좌번호를 물었어요. 처음에는 사기꾼인가 싶었죠. 별로 믿기지 않았지만, 통장을 통째로 넘기는 것도 아니고 해서, 여기 사장님을 보고 믿어보기로 했죠. 계좌번호를 알려줬더니, 깜짝 놀랐어요. 그날, 돈 오백만 원이 바로 입금이 됐어요.”
남자의 표정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길 대리가 일을 그만뒀어요.”
내 말에, 남자의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다.
“아, 그래요. 혹시라도 길 대리님과 연락이 닿으면 그 돈으로 중고 오토바이를 사서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게 됐다고. 감사의 말씀을 좀 전해주세요.”
남자가 돌아간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봇대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먹이통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오른다. 길 대리가 나오지 않으면서 먹이통이 비었다. 내가 낱알 봉지를 찾고 있는데, 지우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뛰어왔는지 숨을 고르며 서점 안을 둘러보는 그의 눈빛이 어두워진다. 나는 그에게 먼저 소파에 앉게 했다. 유리창에 붙여둔 채용안내문을 지우가 못 봤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었나하고 나 자신을 나무랐다. 나는 팩에 든 주스를 지우 앞에 가져다 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에게 주스를 마시라고 권하며 사실대로 말을 해줄까 아니면 거짓말로 둘러 될까 속으로 고민을 했다. 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씬 그만 두셨어요?”
지우의 물음에 나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다 거짓말로 둘러댔다.
“아니야. 외근 나갔어. 아마 그곳에서 바로 퇴근할거야. 아저씬 왜 찾니?”
잘 하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되물었다. 카톡 대화창에 여전히 숫자 1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까닭 없이 그가 밉다. 까마귀 같은 인간. 내가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지우가 일어나며 인사를 한다. 나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그에게 뜬금없는 말을 해버렸다.
“내일은 출근하실 거야. 내일 다시 올래. 아니면 전화번호를 주면 내가 전달해줄게.”
내가 내미는 포스트잇에 지우가 전화번호를 적는다. 그러고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만나고 싶어요, 라고 덧붙여 쓴다. 생각 때문인지, 지우의 눈이 붉게 충혈이 되어 보인다. 걸어 나가는 그를 불렀다. 지우가 출입문을 밀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는 손을 흔들면서 나의 말을 믿어도 된다는 듯 잇몸을 다 드러내고 웃었다.
지우를 보낸 후에 길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음성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겼다. 길 대리가 오지 않으면 주소지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말하고 끊었다. 그러고도 이틀이나 더 지난 후 길 대리를 만났다. 그의 답글도 늦게 달렸지만, 나 또한 길 대리를 선뜻 찾아가기가 망설여졌었다.
서점에서 세 블록 정도 떨어진 전통시장 안에 있는 돼지국밥전문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점심메뉴로 몇 번 주문을 해 먹었는데, 그가 맛있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서다. 저녁식사를 하고 근처의 소줏집으로 갔다. 그가 연거푸 소주잔을 비운다. 그의 표정을 살피며, 그가 스스로 터지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자리가 부담스럽다. 뭔가를 터트릴 것 같은 사람 앞에 앉아있다는 것에 멀미가 났다. 차라리 길 대리가 그냥 일어서자고 하길 바랐다. 내가 한잔을 마실 동안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술잔을 입에 갖다 대며 나는 그의 눈길을 피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지갑이 텅 비어있었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이 야식을 시켰다. 그는 1학년 후배에게 눈치가 보였고, 3학년 선배의 무시하는 듯한 태도도 싫었다. 벌레가 된 기분이 들어 기숙사 방을 나와서 운동장으로 갔다. 어두운 스탠드에 앉아 앞이 보이지 않는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각각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한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는 담배 두 개비를 연거푸 피우고 난 후, 어둠을 향해 침을 뱉고 기숙사 퇴사를 결심했다. 지하층이지만 숙소가 제공되는 PC방에서 남들이 꺼리는 밤 10시부터 새벽 4시 타임 일을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에도 그는 PC방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고졸인 그에게는 가장 좋은 일자리였다. 쉽게 떼돈을 벌수 있다는 말에 불법도박게임 사이트 운영에 가담했다가 교도소까지 갔다. 그가 교도소에 갇혀있는 동안 여자 친구가 임신을 한 상태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렸고. 출소를 한 후에야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그가 말을 해놓고 희미하게 웃는다. 가파른 산을 오른 듯 숨을 몰아쉬더니,
“제가 다닐 때는 사장님의 아버님이 서점 주인이었어요. 그때 본 문고판 시집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꽂혀있더군요. 고등학교 때 문예반이었거든요. 제가 지금 읽고 있는 문고판 시집이 그때 훔치다가 사장님께 들킨 책이에요. 읽기 위해서라기보다 충동적이었죠.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훔치고 깨부수고 망가뜨리고 싶었으니까요. 사장님이 시를 읽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며, 오히려 문제집을 주셨어요. 필요할 거라면서. 교사용으로 나오는 비매품이었지만 너무 고마웠죠. 아이들이 교사용 문제집을 본다고 부러워했거든요. 우쭐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문제집을 챙겨주셨어요. 나중에는 제 사정을 아시고 PC방 알바자리도 구해주시고, 고기 집에도 가끔씩 데려가 주셨고요. 그동안 먹고 사느라고 찾아뵙지는 못 했지만 항상 생각하며 살았어요. 저보고 까마귀 같다고 했죠. 그럴지도 몰라요. 김현승 시인님은 마른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같이, 라고 고상하게 썼지만.”
나도 모르게 상체를 그에게로 기울어 다가앉았다. 그가 상체를 뒤로 빼서 등받이에 붙이고 팔짱을 낀다. 나는 갑자기 할 말이 많아졌지만, 겨우 윤지우에 대해 물었다.
“길 대리님, 지우 학생에 대해 좀 생각해 봤어요?”
그가 새 병을 따 자기 잔에 스스로 따라서 마신다. 두 잔을 연거푸 마시더니 눈을 거슴츠레하게 뜨고, 딸꾹질과 믹싱이 된 이상한 소리를 낸다. 그의 딸꾹질이 멈추질 않는다. 한참동안 실랑이 끝에 딸꾹질이 멎자 길 대리는 다시 소주잔을 비우고 대답대신 흐흣하고 웃는다.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그날, 지우를 만난 이야기를 한다.
“요즘 아이들 참 똑똑하더라고요. DNA 검사부터 하자고 합디다. 자기도 궁금하대요.”
“DNA 검사는 하실 거예요?”
그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직원을 구하라고 한다. 그의 말투에서 확실하게 잡히는 것이 없었다. 정말 까마귀 같은 인간이다. 내가 물었다.
“여길 관두면, 다른 계획이 있어요?”
“티베트로 여행을 떠나려고요.”
“티베트요?”
“오체투지를 해보고 싶었어요.”
나는 소주를 단번에 쭉 들이켰다. 술의 홧홧함을 빌렸다.
“꼭, 오체투지여야 하나요. 다른 방식은 없나요. 우리에게는 우리의 방식이 있지 않을까요? 길 대리님이 지하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어요.”
입안에 맴돌던 말을 뱉어내고,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다가 눈시울을 붉히던 지우가 생각났다. 지우의 전화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길 대리에게 건넸다. 그가 한참동안 포스트잇을 들여다보더니 핸드폰 케이스에 넣는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가끔 혼자서 가는 와인 바를 찾아갔다. 세상에서 혼자만 고독하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던 사장이 두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바 테이블에 앉는 내 앞에 잔과 안주를 가져다 놓으며 웬일이냐고 묻는다. 길 대리의 이야기를 하려다 그만뒀다. 사장이 눈치 없이 계속 말을 걸어왔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말조차 꺼내기가 어려웠다. 제일 안쪽의 테이블에서 20대 남녀가 숨넘어가듯 깔깔거린다. 사장이 그들을 힐긋거리며 물이 한창 오를 때 죽을 만큼 사랑하라고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을 했다. 밤이 늦어서인지 손님이라곤 그들 남녀와 나뿐이다. 사장이 기분이라며 라틴댄스음악 차차차로 작은 와인 바를 꽉 채운다. 그러고는 피아노가 놓여있는 스테이지에서 혼자서 춤을 춘다. 푸념을 늘어놓을 상대라도 찾고 있었던 듯하다. 춤을 추는 사장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다. 리듬을 쫓아가지 못하는 다리가 리듬을 파괴해버린다. 차차차에 막춤으로.
청소를 끝낸 후, 까마귀 먹이통에 낱알을 한줌 부어줬다. 길 대리가 서 있던 자리에 서서 교문을 바라봤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거나 하지 않고 고의로 지나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서툴렀다. 항상 그쪽을 바라보던 길 대리의 검은 모습이 옆에 서 있는 것 같다.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서점의 출입문을 살폈다. 지우가 찾아올까봐 걱정이다. 길 대리가 아주 떠난 것을 알면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
며칠이 지난 후, 토요일 늦은 저녁에 윤지우가 서점에 들어왔다. 아래 위 옷차림이 모두 블랙이다. 지우를 바라보며 잠시 길 대리로 착각을 했다. 지우가 카운터 앞까지 다가오는 동안 나는 미안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봤다. 소파에 앉은 지우가 길 대리와 야구장에 갔다가 오는 길이라며 말을 했다.
“아저씨가 저에게 프로야구 보러가자고 전화를 하셨어요. 우린 둘 다 H선수 팬이에요. S구단의 T셔츠도 샀어요. 야구 보러갈 때 그 옷 입고 가기로 했거든요. ……아저씨가 곧 티베트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저도 데리고 가달라고 졸랐더니 그러자고 했어요.”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갑작스런 지우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의아했다.
“길 대리가? 신났겠구나. 티베트 여행은 무슨 말이니? 네 어머니가 허락하신대? 학교는 어떡하고?”
“어머니는…. 해외체험학습으로 갈 수 있어요.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해외로 나가요. 저도 가고 싶었거든요.”
더 뭐라고 말하기 전에 지우가 덧붙였다.
“어머니는 안 계셔요. 지금은 기숙사에서 생활하지만, 어릴 때 암자에서 자랐어요. 부처님오신날에 누가 암자에 남겨두고 떠났대요. 저를 키워주신 스님은 저를 다슬기라고 불렀어요. 제가 사는 암자 앞에 계곡이 있었는데 싱크대까지 다슬기가 올라오곤 했어요. 스님은 싱크대 수도꼭지에 붙어있는 다슬기를 보고 계곡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걸 보니까 저 놈은 성불할거라고 하시면서, 저보고도 다슬기처럼 산 밑에서 이곳까지 왔으니 너도 부처님과 인연이 있는 모양이야 하셨어요. 스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아저씨와 함께 한 번 오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없다는 지우의 말에 머릿속이 뒤엉켰다. 그의 목소리가 명랑하게 이어졌다.
어른이 되는 것은 나이하고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거침없는 말투로 진솔하게 자기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우의 모습이 나보다 어른스러워 보인다. “여름방학 때 티베트로 떠나기로 했어요. 그래서 주말에 등산을 다니며 고산기후 적응 훈련을 하기로 했고요.” 말을 하는 지우의 표정이 한껏 들떠 있다. 길 대리가 지우와 동행하기로 한 것이 이해가 안됐지만, 나는 지우를 와락 끌어안고 어깨를 두드렸다. 지우도 나에게 응석을 부리듯 안겨왔다. 신이 나있는 지우를 보며 나는 까마귀 두 마리가 새파란 티베트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침 안개가 자옥하다. 청명한 날씨를 예고하는 것 같다. 전봇대에 앉아있는 까마귀가 통유리창 안을 향해 계속 대화를 요청한다. 나는 까마귀를 쳐다보다가 길 대리가 서서 시집을 읽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면에 퍽 박혀있는 거뭇한 물체가 고개를 든다. 고양이를 어깨에 태우고 그가 서가에 기대어 서서 시집을 읽고 있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금붕어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그가 있던 자리를 다시 한 번 힐긋 돌아본다.
< 끝>
단편소설 당선소감 / 박문후
“관계맺음 재해석하는 소설 써가겠다”
내 작품의 대상은 관계맺음이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사이에 놓여있는 연결망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거기에는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필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연이라도 있어야 필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쓰기 작업에서 항상 염두에 두고 치열하게 고민한 것은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메타포로까지 넘어가기, 거기에서 좀 더 밀어 올려 사유의 단계까지 끌어올리기’였다. 물론 순조롭기보다 대부분 실패였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혹독할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서머셋 모음의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는 이런 말을 한다. “그래도 나는 그리지 않을 수 없소.” 다른 사람의 조소 속에서, 삼류화가로 그친다 해도 그리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고 하는 그의 말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은 불면의 밤이었다. 한밤중에 커피를 마시며 버텼다. 눈앞을 분간할 수 없던 짙은 어둠이 희붐하게 묽어져가는 창가에 서서 나름 시간을 붙잡았다는 만족감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나 자신에게 주는 감사였다.
먼저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불교신문과 심사위원님들께 거듭 감사를 드린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동리목월 문창대 이채형 선생님, 김이정 선생님과 문우님들, 소행성의 박상우 선생님과 문우님들, 작마의 엄창석 선생님과 문우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일상이라는 현재 속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맺음을 관찰하여, 굳어진 관습의 재현에만 머무르던 것에서 벗어나, 이를 재해석하는 소설 쓰기 작업으로 나아가겠다.
소설 심사평 / 한승원 소설가
“감수성과 짜임새, 분위기 만들기 탁월”
코로나 팬데믹에 갇혀 살고 닫혀 산 지 두 해가 지났다. 그 속에서도 응모작은 100여 편이나 되었는데, 거기에서 ‘검은 창살’, ‘까마귀 서점’, ‘하늘의 땅에 무엇이 있을까’, ‘달마석’, ‘탁상 곰파 가는 길’, ‘어머니의 고쟁이 속주머니’, ‘색의 우화’, ‘나비의 여자’, ‘바람이 그린 나무’ 등 9편을 뽑아 깊이 읽었다.
그 가운데서 기초공부가 덜 된 것, 작위적인 것, 삶의 무게가 덜한 것을 골라내고 최종적으로 가려낸 것이 ‘바람이 그린 나무’와 ‘까마귀 서점’이다. 세상은 혼탁해져 있다. 사람다운 사람 찾아보기가 극히 힘들다. 심사자의 눈은 ‘사람 없더니 거기 하나 있었구나’하고 발견하는 시각으로 모든 소설 들을 깊이 살펴 읽었다.
소설은 혼탁해진 세상 속에서 꽃을 건져내기이다. 세상에는 되바라진 ‘나도밤나무’도 많고 억지스러운 ‘너도밤나무’도 많다. 그들을 참된 밤나무로 알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더러운 시궁창 물속에 몸을 담그고 살면서 향기롭고 깨끗한 꽃을 피워낸 연꽃 같은 것이 소설이다.
세상을 보는 눈은 건강해야 하고, 인류를 구제하는 윤리의식이 투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 쓰기는 수도자의 구도의 길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차분한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조화와 숨은 그림처럼 주제를 감출 줄 아는 ‘까마귀 서점’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짜임새와 분위기 조성하기에 안정감이 있고, 감수성도 뛰어난다. 당선자에게 축하하고 건필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