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Kc8_JJu2Na0?si=qAcLK9eeuK-FnEjA
새롭게 정의되는 떡과 포도주 14:22~26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심 14:27~31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주시며 자신의 몸과 피라 하십니다. 식사 후 제자들과 감람산으로 가신 예수님은 그들이 모두 주님을 버릴 것이라 하십니다. 베드로가 자기만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일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그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 하십니다.
---------
새롭게 정의되는 떡과 포도주 14:22~26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유월절 식사에서 성만찬을 제정해 주십니다.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22절).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듯, 그분의 몸은 인류를 위해 찢기실 것입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이 흘리시는 ‘피’를 상징합니다(24절).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는데, 이는 ‘속죄의 피’요 죄 용서와 영생을 약속하는 ‘언약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유월절의 완전한 성취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하늘나라 잔치에서 새 포도주를 마시는 날이 오기까지 이 땅에서 포도주를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하시며 유월절 폐지를 선언하십니다(25절). 성만찬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고 예수님의 생명과 연합합니다(요 6:53).
● 더 깊은 묵상
유월절 식사에서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에 새롭게 부여하신 의미는 무엇인가요?
성만찬에 임할 때마다 내가 기억하고 기념할 것은 무엇인가요?
------------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심 14:27~31
십자가 죽음이 다가오자 예수님은 스가랴의 예언을 인용해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27절; 슥 13:7)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새롭게 하실 것도 예고하십니다(28절). 예수님은 자신만만한 베드로가 실패할 것을 아십니다.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0절)라는 말씀은 베드로에게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힘 있게’ 말합니다(31절). 베드로의 고백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백을 준행할 힘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허물은 주님을 버리거나 부인하지 않도록 겸손히 엎드려 은혜를 구해야 할 시점에,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베드로의 실패를 예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의 자리에서 실패하지 않도록 내가 겸손히 간구할 은혜는 무엇인가요?
한절묵상:마가복음 14장 27절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행하심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흩어진다'라는 말은 제자들이 주님 때문에 걸려 넘어진다는 뜻입니다. 로마 압제 아래 있는 민족을 해방시킬 존재로 믿었던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잡히실 때, 이를 본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리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목자이신 예수님을 치셨기 때문입니다(속 13:7). 하나님 뜻은 좋은 일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성령의 보장이 없는 모든 호언장담과 웅대한 비전은 비극적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 게리 매킨토시
오늘의 기도
저를 위해 살이 찢기고 피 흘리신 주님, 겸손히 제 연약함을 인정하고 제게 생명 주신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지켜 주소서. 십자가 고난 앞에서도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도의 자리로 가셨던 주님을 따르길 원합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이 연합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52 나의 죄를 씻기는)
-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떡과 잔으로 새 언약을 설명하시는 내용과 감람산으로 가셔서는 스승을 버리고 제자들이 도망갈 것을 예고하시는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힘주어 말하지만 주님은 그가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그리스도의 몸, 예수그리스도의 피, 부활 후 갈릴리의 약속, 베드로와 장담과 덩달아 맹세하는 제자들 등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유월절 식사에서 예수님이 빵과 잔을 들어 축복하고 분배하신 것으로, 이는 옛 언약은 폐해지고 새 언약이 체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짐승을 잡아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했던 구 언약은 폐기되고, 주님께서 친히 대속물이 되셔 하나님과의 새 언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친히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어 이루어 진 것으로써, 이젠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의 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행해지는 성만찬, 주의 만찬의 근거입니다.
유월절 식사와 예식이 끝났을 때에는 거의 자정이 다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과 11 제자들은 다락방을 떠나 기드론 계곡을 지나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 감람산에 도착합니다. 이미 가룟 유다는 없어진 뒤입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제자들이 스승을 버리고 도망 갈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것은 구약 성경 스가랴 13:7절의 말씀을 근거로 한 것으로, 목자를 없애면 양이 흩어진다는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결국 그 말씀도 예수님으로 인해 성취됩니다. 오직 마가복음의 저자만이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 세 번 부인한다고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직접적인 증언을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고에 펄쩍뛴 베드로가 호언장담한 대답으로, 얼마나 자신 있게 말했는지 다른 제자들도 덩달아 합세하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당시 베드로의 결단은 그렇게 멋져 보이고, 의지도 믿음직스러워 보이고, 그의 호기로운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시원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 중 가장 힘차게 외친 베드로가 스승을 부인하고 맙니다. 며칠도 안 갑니다. 바로 그날 밤입니다.
더구나 한 번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예언대로 3번입니다. 그 후 그것을 깨닫고 통곡합니다. 그리곤 한 일은? 낙향입니다.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면서 그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 고향을 떠날 때 걸었던 그 커다란 꿈! 그에게 돌아온 것은 쓰디쓴 좌절과 절망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 주님이 먼저 오신 것입니다. 감람산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주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전혀 기억도 못하고 단지 먹고 살려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뿐인데, 주님은 실패한 그를 잊지 않으시고 그리고 포기도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까요? 베드로를 보시듯이 주님이 우리도 그렇게 보실까요? 맞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보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를 의인으로 칭했으니 기어이 의인으로 보시고, 결단코 우리를 천국백성으로 빚어 갈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주님이 보는 우리가 우리입니다. 비록 베드로처럼 연약할지라도 현재 우리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시각을 미래로 두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에 그 손이 우리를 붙들 것입니다. 그 때 극복하지 못할 환경이 없을 것이고, 초월 못할 욕구가 없을 것입니다.
그 후 베드로는 옥에 갇혀 두 군인사이에서 자는 상황에 처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천사가 옆구리를 쳐 깨울 정도입니다. 그 다음날 사형장에 갈 예정이었는데 그렇게 숙면할 수 있었던 것은 주께서 그를 붙들어주었다는 증거입니다.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고 잊지 않았듯이 주님은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약할수록 더 주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고, 능력이 없으므로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설령 건강과 재물과 직장과 사람을 잃을지라도 주님만을 꼭 붙잡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보시고 베드로처럼 우리도 붙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찬 후에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말씀하시자,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예수님은 버릴 것이라고 말씀했으나, 제자들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 이렇게 서로 달랐을까요?
제자들은 마음의 다짐을 의지했고,
예수님은 성경의 기록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막14:27)
제자들의 다짐이 진지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진지한 다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다짐은 쓸데 없고 항상 먼 곳에 있습니다
"나는 지혜로워지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지혜로워지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그러나 지혜는 내게서 항상 먼 곳에 있었다"(전7:23/현대어)
그래서 모든 일은 사람의 다짐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록된 대로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정한 것을 이룰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은 마음에 정하시고 기록하신 것들을 이루실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사46:10~11)
그래서 사람의 모든 작정은 무효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히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시33:10~11)
이것이 우리에게는 안전하며 복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악한 사람들의 작정도 무효케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사8:10)
반면에 우리에게는 걸음도 작정하시고 엎어져도 일으키셔서 기쁘신 뜻대로 구원을 다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37:23~24)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할 것은 사람의 굳센 다짐이 아니라, 주의 기록하신 약속의 말씀뿐입니다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왕상8:56)
주님께서는 그 올리브산으로 가는 길에 누가 크냐고 다툼을 하는 제자들(눅 22:24~30)에게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요 13:34)을 주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슥 13:7)”라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배반을 예언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너머에 그들을 처음 부르셨던 갈릴리에서 다시 그들을 만나실 것을 또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같이 죽을지언정 결코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신 것(눅 22:32)과 닭이 두 번 울기 전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주님을 따르겠다고 늘 결단하면서도 세상의 파도와 유혹의 손길 앞에 쉬이 무너지는 신앙인으로 넘어지지 않는 않았는지 다시 돌아봅니다.
우리의 결심과 말로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보내심을 받은 곳에서 담대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월12일 청라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2-24절 유월절 만찬에서 새 언약을 체결하십니다(참조. 렘 31:31-33). 떡을 떼어 축복하시고 잔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는 유월절 식사 형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내 몸과 피’라는 새 양식으로 언약의 만찬을 새롭게 베푸십니다. 새 언약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이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새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주님의 상에 앉아 성찬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5,26절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을 마시기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만찬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의 잔을 들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수난이 시작될 장소인 감람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새 것을 주시려고 고난의 잔을 드셨던 주님의 사랑을 묵상해봅시다.
27,28,30절 제자들이 주님을 부인하고 흩어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책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을 처음 부르신 갈릴리로 먼저 가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의 연약함에 실망하지 않으시고, 부활의 몸을 보여주신 후에 그들을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도 실망스러운 일들을 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르치시며 우리 믿음이 장성할 때를 기다려주십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9,31절 제자들은 어떤 상황에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죽음의 자리까지 함께하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그들이 마실 잔과 세례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좌에 오르는 길에 닥칠 어떤 위협과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봤을 때,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승리를 위한 싸움에는 용감하게 나설 수 있지만, 제 생명을 내어주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짊어질 십자가는 내 능력과 자신감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할 때만 감당할 수 있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기도
제 자신에 대한 무모한 자신감을 내려놓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가난한 마음을 주소서.
➲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의 성취입니다(22~24절).
유월절 만찬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에 제자들에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몸도 쪼개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구속 행위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여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 대한 새 언약을 말씀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피를 흘리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떡과 잔을 받으며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래전에 약속 하셨던 것을 잊지 않고 성취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온전히 신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희생 제물의 피는 전부 쏟아져야 했는데, 이것은 완전한 희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려 함(10:4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희생과 헌신의 삶을 통해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고, 신뢰하므로 새 힘을 얻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축복입니다(25~26절).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면서 예수님은 한 가지를 선언하십니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25절)... 이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자신의 여정이 곧 끝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곧 모든 제자들과 함께 풍성한 만찬을 누릴 수 있는 나라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 것으로..’는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기 보단 질적으로 새로운 것 즉, 이전 것보다 더 나은 것,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꿈꾸고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 땅에서 행하던 성만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신랑을 맞이하는 혼인 잔치가 배풀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소망과 승리에 찬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리며 즐기는 것을 함께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 허락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축복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것들을 포기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도 손해 보는 일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장차 내 자신이 누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때, 이 땅에서 내가 포기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주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고, 믿음 안에서 영적 풍성함을 누리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은혜입니다(27~31절).
만찬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을 기다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예수님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도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넘어지고 흩어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다시금 회복시켜 주실 것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자신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나의 무능력함도 아십니다.
보이지 않는 한계선 정해 놓고 그 한계선 안에서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경향이 내 안에 있음 또한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내치지 않으시고, 넘어진 나를 일으켜 회복시키시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시면서도 십자가를 지셔야했던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럼에도 끝까지 제자들을 포기하거나 책망하시 않으시고,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는 넘어진 자를 회복시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는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은혜의 증거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함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신뢰하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허락하신 십자가 은혜를 주목하므로 영적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은혜를 힘입어 더욱 주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막 14:22~31절)..
1.성만찬의 제정(22-25절)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시면서 제정한 성만찬은 그 의미가 아주 큽니다.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를 통하여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되어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이 유월절은 새로운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영적인 유월절로 세워진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 할 것은 유월절 만찬에 필수적인 어린양의 고기가 없이 떡과 포도주만으로 드린 것은 구약의 어린양의 모형이 아닌 실제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만찬을 행할 때 마다 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찢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번 새기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성만찬을 행할 때 참된 의미를 새기며 참여하고 있는가?
2.베드로의 실패를 아신 예수님(26-31절)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 갈것을 말씀하실 때 그는 장담하며 자신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그날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장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그날 저녁 닭 울기전에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은 부인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베드로의 약함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며 우리를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묵상하기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있는가?
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주시며 자신의 몸과 피라 하십니다.
식사 후 모두 감람산으로 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를 버릴 것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자기만은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다는 베드로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그가 세 번 주를 부인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최후의 만찬(14:22~25)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 제물로 자신을 내주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유월절 식사를 나누시던 예수님은 무교병과 포도주를 가지고
위대한 진리를 선언하십니다. 유월절 떡은 예수님의 몸이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처럼 자신의 살과 피를 내줌으로써 구원을 이루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양이 되셔서, 이스라엘의 반역 때문에 깨졌던
언약이 회복되고 주님을 믿는 이들은 의롭다 여김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살과 피를 영적 양식으로 삼으면
새 언약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주신 ‘떡’과 ‘잔’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나요?
- 적용 질문: 성찬에 참여하는 태도를 돌아볼 때, 더 준비하거나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또 다른 배신을 경고하심(14:26~31)
믿음에도 겸손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절감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는 사람만이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따를 수 있습니다. 제자들 모두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는 말씀에,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자신만은 그러지 않겠다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당장 그날 밤에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거듭된 경고를 들었다면 마땅히 내면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신앙을 근본적으로 점검하며, 영적으로 더욱 무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순간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과신했고, 그로 말미암아 이후에 비참한 실패를 맛봅니다.
변덕스러운 감정적 결단과 각오만으로는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경고하셨음에도 베드로와 제자들이 과신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순간적인 열정이나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살과 피까지 제게 내어 주신 주님! 주님의 말씀을 꼭꼭 씹어 먹으며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하소서.
믿음으로 결단하고 성령의 도움을 의지해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대신하여 무섭고 수치스러운 죄의 형벌을 받으시고
그 순전한 살과 생명의 피를 나눠주심으로
영원한 천국 백성으로 초대하시는 그 놀라운 사랑을 다시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신 그 은혜에 합당한 주님의 백성,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증인으로서의 삶에서
돌이키지 않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증인으로
땀 흘리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에도 참 빛과 진리 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나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높이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