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한담(,避暑閑談) 소운/박목철
1, 손 주,
시골에 피서를 왔다. 체온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에 좁은 서울 아파트에서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 값이 무서운 것은 둘째 치고 에어컨을 틀면 잠시 후 너무 추워진다.
적당히 시원한 에어컨은 아직 기술적으로 어려운 듯하다. 껐다 키고를 반복하다 보면 잠을 설치게 마련이다. 보따리 싸서 시골로 달아날 수밖에 없다.
시골에 오면 손 주가 좋은 친구이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 지능도 저하되고, 단순해지니 손 주와 눈높이가 비슷해지는 것 같다.
같이 어린애가 되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녀석도 사내라고 할 배를 이겨 먹으려 하고 할 배도 지기 싫어서 서로 고집을 부리다 핀잔을 듣는다. “ 애하고 싸워요?”
내 편들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슬며시 꼬리 내리고 내방으로 갈 수 밖에, ㅎㅎ
* 이제 태어난지 4년이 좀 지났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장신이다.
* 밥 외엔 잘 먹지 않는다. 그래도 비싼 고기 사주면 맛은 기가 막히게 잘 안다. ㅎㅎ
* 할배차와 나란히, 할배차는 시골에서 일 엄청 하느라 늙었다. 손주차가 할배 차보다 더 비싸다.
* 애 이뻐 하는건 대 물림 한 듯, 외 할머니가 애라면 버릇 다 버린다고 난리지만 "니들도 다 그렇게 컷어,"
* 신식 엄마라 얼굴 탄다고 완전 인디안 전투 분장을 해 놓았다. ㅎㅎ,
* 녀석 분위기 좋은 곳을 찾는다. 심심하면 휘팍에 가쟈고 조른다.
* 자동차를 유난히 좋아한다. 장난감 차값만 해도 차 한대 값은 될듯
* 녀석 파리바켓트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재미가 들어서 진부에 자주 나간다.
2, 닭
작년에 봉 평장에서 병아리가 올망졸망 달린 암탉 한 마리를 사위가 사왔다.
암탉은 너무 작아서 비둘기를 연상케 하는 오골계였다. 너무 작아서 자그만 새장에 넣어서 가져 올 정도였고, 병아리들은 제 어미 날개 밑에 숨어서 몇 마리나 되는지도 정확히 알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두 마리가 더 얹혀서 온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일 년 만에 모두가 커서 제 어미를 훌쩍 넘더니, 암놈들이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열아홉 마리나 불려 놓았다. 닭장 틈새로 외출을 하는 것을 그냥 두었더니 이젠 완전 야생 닭이 되어서
온 집안은 물론 숲속까지 헤집고 다닌다.
밤에 보니 한 무리는 높은 나무위에 둥지를 튼 놈도 있다. 나중에 잡을 일이 걱정이다.
우리 큰 딸은 서울서 이사 올 때 방안에 있던 거미까지 거두어서 옮겨올 정도로 생명체에 대해서 애정이 깊다. 어디서 알아봤는지, “아빠, 닭 수명이 삼십년이나 된다는데,”
설마! 아무튼 큰일이다. 닭 잡는단 얘기 나오면 펄펄 뛸 태고 수명이 삼십년 이라면, 헐!
녀석들 겁도 없이 마당을 휘젓고 다니며 똥을 싸댄다. 그래도 시골스런 풍경이 정겹긴 하다.
* 이닭이 처음 사온 어미닭이다. 비둘기 만 하다. 이번에도 13마리의 병아리를 품어냈다.
* 닭장 지붕보다 높은 나무위에 올라가 둥지를 틀었다. 완전 야생닭이다.
* 종자가 아주 작은 토종 오골계, 꼭 까마귀 같다.
* 인물 좋은 수닭이다. 사람이나 닭이나 잘 생기고 봐야, ㅎㅎ,
* 큰 암닭들은 이 숫놈을 따라 다닌다. 오골 어미닭은 새끼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3, 시골에 있으면 바쁘다. 손톱 밑에 때가 새까맣게 낀다.
시골일은 거의가 흙을 만지는 일이고 잡초를 뽑는 것이 그 중 가장 큰 일이다.
잡초를 뽑다보면 잡초이긴 하지만 보기에 정감이 가는 풀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주변과의 조화이다. 키가 너무 크거나, 하면 뽑히게 된다. 토끼풀이나 돈 나물, 등 몇몇은 번식이 너무 좋은 것을 빼면 그대로 두어도 보기 싫지 않은 풀이라 할 수 있다.
인간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잡초에게서 배우는 교훈이다. “두드러지지 마라,”
시골일은 비가 나리면 하기가 어렵다.
커피를 한잔 타서 창가에 앉아 밖을 보거나, 여기저기 쳐 박아 두었던 잡동사니를 꺼내서 정리를 하거나 하게 된다. 묵 은 짐을 정리하다 보면 버릴 것도 많지만 타임머신을 탄 듯 감회 깊은 옛것을 대하는 즐거움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때도 있었구나 하는 고운 추억,
* 크로바를 하트 모양으로 다듬어 놓으니 그런데로 볼 만 하다.
* 잡동사니를 정리하다 옛날 사보에 기재한 콩트가 발견되었다. "건축기술부 부장 박목철," 젊다. 내가 아닌것 같다.
첫댓글 손주를 주제로 글을 풀어 놓으신걸 보니...
손주 사랑하심에 각별하시네요. 손주 이쁘지요~ ^^*
좋은 글과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샤넬 코코님, 방문 감사 드립니다.
손주는 자식과는 또 다르더군요,
무더운 장마철,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