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wdFDtPhSne4?si=y0BQuT9jTqreLrde
겟세마네 기도 14:32~36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잠든 제자들 14:37~42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길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잠자는 제자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후, 다시 가서 동일한 기도를 하십니다.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오신 주님은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릴 때가 왔으니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
겟세마네 기도 14:32~36
겟세마네 기도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예수님의 마지막 영적 전투 현장입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와 겟세마네로 가셔서 기도로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십니다(32절; 눅 22:39). 앞으로 있을 유다의 배반과 제자들의 떠남, 그리고 십자가에서 감내해야 할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고통 등으로 예수님 마음은 죽을 만큼 깊은 괴로움을 느끼십니다(34절).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 아들이심에도 인간의 모든 고난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마실 ‘고난의 잔’인 십자가를 옮겨 달라고 간구하시면서도 결국 하나님 원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하십니다(35~36절).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설득하는 자리가 아닌, 자신의 뜻을 하나님 뜻 앞에 겸손히 내려놓는 순종의 자리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나요?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
잠든 제자들 14:37~42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피곤해서 잠이 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옛 이름인 ‘시몬’을 부르시며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며 나무라십니다(37절). 마음은 깨어 기도하기를 원하지만, 제자들은 지친 육신과 슬픔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합니다(40절; 눅 22:45).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거듭 당부하십니다(38절). 그들에게 닥칠 시험이 크고 무겁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의 손에 팔릴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일어나라 함께 가자”(42절) 하시며 제자들을 깨우십니다. 다가올 시험을 넉넉히 이겨 내는 비결은 육신의 약함에 머물지 않고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잠자는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육신의 약함을 이기고 깨어 기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절묵상:마가복음 14장 42절
제자들이 예수님의 길을 따르지 못한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나서지만, 결국 그들 중단 한 명도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본 그들 마음에 생긴 두려움 때문입니다. 제자의 길은 평안한 길이 아니라 죽을 수도 있는 골고다 길입니다. 무리는 평안한 길을 선택하지만, 제자는 예수님이 가신 골고다 길을 선택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바라는 결과보다 주님이 더 나은 생각을 갖고 계심을 인정하는 고백이 되어야 한다. - 윌리엄 J. 피터슨
오늘의 기도
주님, 가장 참담한 순간에도 아버지 뜻을 이루기 원하셨던 주님의 순종을 닮기 원합니다. 제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어리석은 한탄을 멈추고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며 인내하게 하소서. 잠들어 있는 제 삶을 깨우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로 나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549 내 주여 뜻대로)
오늘 본문은 체포되기 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내용과 제자들도 동참하기 원했지만 끝내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록한 기사입니다. 주님은 동일한 말씀으로 세 차례 기도합니다. 그 후 그 때까지도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릴 때가 왔으니 함께 가자고 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제자들에게 기도요청, 주님의 첫 번째 기도, 깨어 있을 것을 당부하심, 나머지 두 차례의 기도와 수난의 도래 등입니다.
‘겟세마네’란 ‘기름 짜는 곳’이란 뜻입니다. 감람산 서쪽 기슭 근처에 감람나무(올리브 나무)가 우거진 동산이 있었는데 그곳에 예부터 올리브기름 짜는 장소가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부쳐진 것입니다. 그 곳은 자주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모였던 장소인 관계로 가룟 유다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 들어가셔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슬픔으로 인하여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곧 앞에 닥친 고난과 죽음의 무게로 말미암아 거의 무너질 지경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력을 다해 기도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과, 본문 후반부터는 기도할 것을 당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는 제자들의 모습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세 번이나 기도를 중단하고 제자들에게로 갔으나 그 때마다 그들은 잠자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임무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시는데 비해 제자들은 그 중차대한 순간에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은 복음서의 기록에서 꾸준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내용입니다. 이 기도는 ‘잔을 옮겨 달라는’ 말과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는 말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두 동사가 연속하여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비록 짧더라도 시간이 걸렸다고 할 수 있습다.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 바로 이 말씀 때문입니다. 이는 ‘내 마음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이다’라는 말로, 죽음의 두려움에 압도된 사람이 그렇게 빨리 빨리 죽음을 결단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였을까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본문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세 제자를 데리고 가실 때 매우 놀라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라는 말씀으로, 겟세마네에 도착해 기도하기 전부터 그 마음에 공포와 번민이 엄습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베드로와 아고보와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왜 세 사람에게만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스승이 잠자지 않고 기도하니까 너희라도 깨어 기도하라! 는 아닐 것입니다. 그들 모두 다혈질이므로, 어떤 사고라도 칠지 모르니까 옆에 두신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이 일은 평소에는 없던 일입니다. 스승의 고난에 너희들이라도 동참해 달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기도하자는 당부입니다. 세 번씩이나 기도를 요청한 것은 바로 중보로 도우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졸린 제자들을 일부러 깨워 기도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을 돕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제자였던 것입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가장 위대한 기도입니다. 육신을 이기시고 십자가를 기꺼이 지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로 인해 인류에게 비로소 구원이 임합니다. 제자들은 깨달아야 했습니다. 기도요청은 동역의 요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중보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가 사역이고,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요청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역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앞에서 오직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기도의 자리에 함께 있으라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막14:32)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있어야 할 자리도 기도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의 이름은 겟세마네입니다 겟세마네는 히브리어로 기름을 뜻하는 "שמן"(셰멘)에서 온 말로 기름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기도의 자리는 기름짜는 곳입니다 깨어 있는 거룩한 신부들은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어디서 준비했을까요? 기도의 자리에서 기름을 짜낸 것입니다 왜 기름이 필요할까요? 기름 없이 제물 없고, "한 어린 양에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출29:40), 기름 없이 예물 없고,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그 위에 기름을 붓고"(레2:1),
기 름 없이 제사장도 회막도 증거궤도 번제단도 예배도 없기 때문입니다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너는 그것을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이며 등잔대와 그 기구이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라"(출30:25~30)
그렇다면 기름은 어떻게 짜낼까요?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태산 같은 무게의 압박을 견디셨고 거룩한 기름을 짜내셨습니다 이러한 압박을 견디는 것은 고되기 때문에 기도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깨어 있으라 하셨지만 제자들은 피곤하여 잠들고 말았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14:37~38)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오실 때까지도 잠들어 있었고, 이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막14:41)
이제 곧 주께서 다시 오실 것인데, 자는 모습 기름 없는 모습 보이지 않기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겟세마네에서 깨어 기도함으로 거룩한 기름을 짜내고, 성전 등불에 소용되는 기름을 드려서 예배의 자리와 주 오시는 길에 불 밝히기를 원합니다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출35:28~29)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의 등불을 켜시고 흑암을 밝혀 주실 줄 믿습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시18:28)
--
첫 번째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셔서 베드로에게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마 26:40)고 하셨으니 그 기도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세 번에 걸쳐 기도하시며 거듭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일어나 깨어 기도하라 권면하셨지만 그 육신이 약함에 대하여서는 그의 제자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수술을 하는 의사들도 자신이 직접 집도 하지 않고 보조 의사로서 참여할 때에는 원래 발휘하는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듯 연약한 육신에 의존하고 세상에 취한 상태로는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분의 영의 눈으로 바라보고 온전히 붙드는 믿음을 통해 그 기도는 지속될 수 있습니다. ‘졸며 쉬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41절) 이제 자신을 배반할 자가 오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일어나 그를 향해 가자고 하십니다.
기도로 무장된 주님께서는 그 어떤 고난과 수치도 이미 감당할 준비가 되셨고 또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지기 위해 앞장서 나아가십니다. 우리의 삶 앞에 먼저 모든 것을 지고 가신 그 큰 발자국을 바라보며 주어진 무게를 넉넉히 감당하는 주님의 제자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3,34절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심히 놀라고 슬퍼하십니다(시 42:5,11; 43:5). 지금까지 의연하고 당당하시던 주님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입니다. 단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죄악을 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대면하셔야 하는 두려움이 크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늘 성부, 성령 하나님과 연합되어 계신 예수님이 인류의 죄로 인해 단절되는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던 것입니다. 오직 우리를 향한 사랑의 힘으로 이겨내신 길이었습니다.
35,36절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의 바람’을 포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마실 잔을 지나가게 해주시기를 구하시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다시 ‘나의 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자신의 바람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예수님은 힘써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 자기 욕망을 이기고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41,42절 고민하고 슬퍼하며 기도하신 후에는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함에도 기도하는 것은 순종의 힘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만 하지 않으시고, 분연히 일어나 원수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잠자는 제자들을 깨우고 일으키시듯 오늘 우리에게도 십자가의 여정을 함께하시려고 ‘일어나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어주십니다. 기도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기도만 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도의 힘으로 담대하게 일어나 순종의 일을 시작합시다.
2월13일 청라호수공원 전도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34,37,38,40절 주님은 ‘깨어 있으라’고 요청하시지만, 제자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습니다.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는 평소와 다른 주님을 보면서도 그들은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당부를 한 시간도 지키지 못합니다. 주와 함께 죽겠다 장담했지만(31절), 잠시도 주님과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없었던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힘과 결심이 이토록 약하고 허무한 줄 깨달아야만, 비로소 제자들은 기도의 능력을 의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도
저의 약함과 악함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기도의 능력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
✔ 겟세마네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 순종을 결단할 수 있게 하는 기도였습니다(32~36절).
예수님은 겟세마네라 하는 곳으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시기 위해 가셨습니다.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에 맞게 예수님은 기름틀에서 기름을 짜내듯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땀 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 앉아 함께 깨어 있으므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했습니다.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33절b).. 예수님은 기도하러 가시는 도중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엄습해 온 것을 경험하십니다.
예수님의 두려움과 불안은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해야 하는 메시아로서의 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 기도하실 때, 할 수만 있다면 이 시간이 자기에게서 비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35절). 왜냐하면 ‘아빠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시는 분이시기에 능히 고난의 잔을 옮기실 수 있는 분(36절a)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아들을 철저하게 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혹독한 시련의 과정이 생략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6절b)..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참다운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내하며 묵묵히 갈 길을 가는 삶입니다. 내 욕심과 내 뜻을 앞세우면 결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곧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셨지만, 철저하게 순종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히 두렵고 슬퍼하며 고민하시면서도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되 내 자신의 뜻에 맞추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 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기도여야 하겠습니다.
➲ 시험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기도였습니다(37~40절).
잠시 기도하시기를 멈추시고 제자들 곁으로 오신 예수님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보시며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37~38절)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육신의 약함을 말씀하십니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하늘의 능력을 덧입어야만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두 번째에도 자고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되자 예수님께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40절).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육신의 연약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이다...’(40절,새번역)... 육신의 연약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피곤에 지쳐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이 있는데, ‘하는 것 없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정말 하는 것 없이 바쁘게 생활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기도하려 할 때는 피곤을 이기지 못해 기도에 집중하지 못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오늘 본문에 제자들에게 하신 것을 보니 용납해 주실 것 같습니다..ㅎㅎ 주님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기도를 통해 연약함을 극복하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기도하되 시험을 이겨낼 수 있도록 시간과 체력관리를 잘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고난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기도였습니다(41~42절).
예수님께서 세 번째 와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남은 시간을 자고 쉬어라. 그 정도면 넉넉하다. 때가 왔다. 보아라, 인자는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40~41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연이어 ‘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러 차례 수난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제 예수님의 그 말씀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자기를 배반하고 팔아넘길 자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시고 계십니다.
고난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넘어지는 이유는 고난을 해석할 지식과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기도하지 않고 고난을 맞이한 것입니다. 기도는 곧 내 자신이 고난을 감당하도록 준비시켜줍니다. 기도할 때만이 고난에 대한 해석과 관점을 분명히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반응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자 있느냐... 기도할 것이요...’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기도하되 고난이 또 다른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도록 철저히 주님 앞에 내 자신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대로 삶이 진행되어 가도록 믿음으로 기도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를 통해 능력을 얻어 주님과 동행하여 고난의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막 14:43~42절).
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 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해 달라고 간구하십니다. 제자들이 자는 것을 두 번 확인하신 예수님은
세 번째에는 제자들에게 이제 되었다 하시며, 자신을 파는 자가 왔다고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처절하게 기도하시는 예수님(14:32~36)
기도는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을 위해 내 뜻과 소원을 내려놓을 때,
온전한 응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몸으로 사셨기에 끔찍한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는 십자가 길을 쉽게 가실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사랑하는 아버지와 단절되는 영적 고통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괴로우셨던지,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을 지경이라고 고백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니다. 피하고 싶은 잔이지만, 결국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대속 제물이 되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떤 기도를 드리셨나요?
- 적용 질문: 요즘 무엇 때문에 고민하며 마음이 괴로운가요? 그 문제를 놓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안일하게 잠든 제자들(14:37~42)
깨어 있지 못하면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할 수 없습니다. 잠에 빠져 무방비 상태에 있다가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목숨 걸고 기도하시는 동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을 받았음에도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차례 당부하셨지만,
그들은 끝까지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결국 주님이 잡히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합니다.
아무리 마음으로는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더라도, 안일하게 있으면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무거운 육신을 일으켜 깨워서 기도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왜 기도하지 못했나요?
- 적용 질문: 어떤 핑계로 기도하지 않고 있나요?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물과 방해 요소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십자가를 능히 지시기 위해 주님이 이토록 눈물과 땀으로 기도하셨는데,
저는 주님과 함께 있노라며 안일하게 잠에 빠졌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소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주님처럼 기도로 무장하게 하소서.
감람산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렀다.(32)
예수님께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있으라(32)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3명만 따로 데리고 가셨다.(33)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머물러 깨어 있으라(34) 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렇게 고민하시는 구나
그리고 예수님 혼자 더 나아가신다.(35)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신다.(35)
아바 아버지여!!!!(36)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6)
기도하신다.
예수님의 기도와 나의 기도는 다르다.
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되로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한다.
당신의 꿈이 아니라 나의 꿈을 이루게 해 주옵소서.
당신의 비전이 아니라 나의 비전을 이루게 해 주옵소서.
대부분이 이런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뜻이 중요한 기도를 했다.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이 힘든 것을 없애주세요.
괴로운 것을 피하게 해 주세요하는 것이 나의 기도이지만
주님은 힘든 것 괴로운 것 죽는 것과도 상관없이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주여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게 하옵소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친히 그 육신으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신
크신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의지하여
오늘도 담대하게 그 앞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짐을 그 발아래 내려놓고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고 품어주시는
그 손길을 굳게 붙들며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필요에 넘치도록 하늘의 창고를 열어 채워 주시고
선하신 음성으로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복음의 참된 기쁨을 허락하여 주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모든 분열과 다툼, 미움과 악독을 버리고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 베풀어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