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어패가 있을지 모르나 순리로 사는
삶이 되면 모든 삶이 녹 쓸지 않으며 외려 그 시간이
곱해질수록 모든 일상이 부드럽고도 따뜻해진다.
그 이유라면
이 말의 뜻에는 이미 세상의 모든 안녕과 편안이 그대로 안착되어 가기 때문이다. 이들속에는 사람을 해치거나 목적과 계산으로의 거짓이며 조작 따위가 어느 한구석에도 앉을 이유도 그렇게 해야할 어떤 무엇도 전혀 갖고있지 않다. 마치 산소나 맑은 에너지가 언제나 본래의 그
마음과 자세로 항상 그대로 가는 그 참 모습으로만
가듯이 ....그래서
그런 곳이란 아무리 수만 세월이 흘러도 목적과 실리를
노린 휘두름 따위가 전혀 필요가 없다. 또
이런 얘기란 도덕경이나 의도된 착함 따위의 강조와
덧붙임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물 흐르듯 그 순한
진실의 손을 잡고 그냥 가면 그만일 뿐, 오래전부터
내가 알던 어느 분은 가능한 이런 기본의 자세와
하기들이 점점 더 버겁고 힘든 반대쪽이 되지않도록
모든 시작으로부터 스스로를 잘 길들이며 올바른
습(習)으로 잘 채우라고 하신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주변이 갈수록 더 이토록 요란하고 시끄러운
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지닌 의식이나 행동이며 모든
하기 자세가 잘못되어 와서
결국 오늘을 맞고 있는것은 이닐까?
늘 깨어있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탐구와 지성의 시간을
기울어야 한다고 하셨다.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를
언제나 배우고 익히는 일에 활짝 열려있어야 한다고도
하셨다.그 누구를 가릴 것없이 배우고 찾는일을 멈추면
머리는 굳어지고 행동은 음흉해지며 거칠어진다는 것.
그뿐이겠는가 머리가 굳어지면 삶에 생기와 탄력을 잃고
노쇠와 죽음으로 더 빨리 내달린다고도 하신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고전(古典)을 읽으면서 인간학(人間學)을
배웠다고 한다. 자신을 다스리고 높이는 인격(人格)공부를 먼저 부단히 해간것으로 스승을 삼은 것은 아닐까? 스스로의 마음과 행실을 먼저 바르게 하도록 심신을
닦고나서야 다음으로 세상 일에 나서게 했다는
사실이다. 또
그분은 덧붙어 힘주어 말 하셨다.
현제와 과거를 물을 것 없이 어디나 말끝마다 개혁을
내세우지만 날이 갈수록 공직자들의 비리가 속출하는
이유도 그들이 일찍이 (인간학)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
라는 것.먼저 타인을 배려하고 정직과 덕(德) 있음을
생명처럼 여기며 인간다운 자세와 품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돈과 자리의 유혹)이면
너무 싑게 꺾이고 만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형성의 출발인 학창시절에 고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잘못된, 크게 잘못된 이 땅의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때문에 가장 소중한 (인간의 윤리관)을 이룰 수 없게한 것이 라는 것.
조선 영조 때 사람 유중림이 지은
(산림경제: 山林經濟)중 (독서 권장하기)에 이런 글이
실려있다고. 글이란 읽으면 읽을수록 사리를 판단하는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도 총명해진다 고,
흔히 독서를 부귀나 공명을 얻기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글 읽는 일 (독서)에서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모르는 무리들이라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듯이 사람이라면 정신의 음식인
책도 함께 매끼를 챙기 듯 책다운 책으로 자주 가까이 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옛글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으면 젊어서 먼저 유익하고 젊어서
책을 읽으연 늙어서 쇠하지 않으며 늙어서 책을 읽으면
죽을 때까지 썩지 않는다)라는, 정말 지당하신 말씀이
시다.
마지막에 또 그분은
산중에 살며 책과 차(茶)가 없다면 길은 누가
인도(人道) 해주며 생각은 무엇으로 고요히 가다듬을까
라며 늘 좋은 책으로서 어둠을 밝히라고 하신다.
다시 봄
이 봄에 가슴에 귀한 책의 꽃씨 하나 넓고 따뜻하게
심어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