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만하게 성숙해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의 생애는 어린 시절을 빼놓고는 일생동안이 가시밭길이었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매월당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내 생애 역시 평탄한 날은 많지 않고 굴곡진 세월이었다.
한 번도 평안한 시절을 보내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보니
어느 새 인생을 천천히 결산해야 할 나이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가슴을 설레게 했던 고전들이 새롭게 읽혀지는 계절.
너무나 많이 떠돌다가 돌아오니 여러 생각들이 가슴을 어지럽힌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젊은 시절에는, 무한히 커다란 공간空間을 독차지 한 것처럼 생각을 한다. 청춘시대가 지나고 다소간 경험을 얻을 나이가 되면, 그 공간 속에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 다른 사람들도 여럿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 거의 모든 사람은 그다지 큰 차이가 인정되지 않을 만큼 서로 비슷한 상태에 다다르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인생이란, 처음에 출발을 할 때에는 하나의 커다란 수풀, 하나의 미궁迷宮, 이리저리 길이 엇갈린 미로迷路와 같다. 얼마 동안 무수한 갈래 길을 방황하여 자기 하나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백리 천 리 떨어진 곳에 와 있는 줄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무수한 길과 길은 옆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다.
온갖 착오錯誤를 거의 다 경험하고 나서 미로도 그 종점終點이 가까워지고 보면, 모두가 다 거기에서 만나기로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하나의 공지空地로 모여든다.
인생은 누구나 성숙을 문제 삼아야 할 때가 온다. 그 때는 성숙만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어떤 부분은 경화硬化를 일으키고, 어떤 부분은 부패해간다. 참으로 원만하게 성숙해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시간도, 건강도, 이상도, 그리고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남에게 나누어 줄 아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저 건너편에는 더 많은 것이 바라다보이기 때문에,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에, 이제는 가진 게 얼마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한사코 거기에 달라붙는다.
젊은 시절에는 언제나 무엇을 찬미하고 있고, 언제나 누구를 사랑하고 있다. 스스로 그런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찬미하고 사랑하는 그 자신의 청춘일 따름이다.
청춘이 지난 뒤에도 찬미와 사랑을 계속하는 사람은 축복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결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띄기 전부터, 훨씬 그 전부터 우리 내부에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동안에는 청춘시대의 자존심과 예절에 의해서 가려져 있었는데, 예절이 없어지자 별안간 그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내부를 한 바퀴도 돌기 전에 인생을 작별할 때가 오는 걸까?“
프랑스의 비평가로 ‘근대 비평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생뜨 뵈브의 <인생의 결단結團>이라는 글 중 일부분이다.
“원만하게 성숙해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게 꿈이자, 소원인데, 그게 쉽지가 않다.
이렇게 저렇게 흔들리게 하는 것들이 아주 사소한 일인데,
버스가 흔들리며 종점에서 종점으로 오가듯이
나 역시 이 지구 곳곳을 시계추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만 있다.
일본으로, 중앙아시아, 휴전선, 울릉도로, 돌아다니다가 돌아보니,
어느 덧 시월,
이 말이 내 가슴에 커다란 파도처럼 달려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내부를 한 바퀴도 돌기 전에 인생을 작별할 때가 오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일까?
2026년 10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