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문신 백사 '이항복'의 후손
서울 명동일대의 토지를 모두 처분하고
(현재가치 2조원)
노비문서를 사했으며
50여명의 형제가족들을
대동하고 만주로 향했다.
그가 세운 학교는
'신흥무관학교'
"일주일에 3번 밥을 지우면
운수대통이라 여겼다."
-아들 이규창의 회고-
첫째 이건영 병환으로 사망.
둘째 이석영 영양실조로 사망.
셋째 이철영 병환으로 사망.
여섯째 이호영 의병활동 중 행방불명
넷째 이회영 일본관동군 사령관을
처단할 목적으로 이동중 밀정에 체포
1932년 대련 일제 감옥소에서 고문으로 사망,
일제는 자살했다고 거짓 발표.
광복을 유일하게 목격한 다섯째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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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이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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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100년] 이회영을 기억하여 기록하다.(feat.'기억록', 성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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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집안의 재산 2조원어치를 매각해서 외국으로 건너가 군사학교를 세우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다? 자민당 지부 부류들은 절대 생각 못할 일. 보수? 웃기고 있네. ㅎ
같은 종씨지만 다른 유파는 남조선을 막후지배하고있..
수백년 귀족집안인데... 재산도 많고 벼슬과 명예 다가졋는데 일제의 회유를 버리고 만주로 일족이 건너가 독립운동하다 그 부자집안 후손이 돈이없어 굶어 죽는... 안타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