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이 인사하는 화창한 아침입니다. 그러나 조금은 시린 바람이 함께 불어오는 추운 아침이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따뜻한 것이 좋겠지만 자연이라는 어머니는 쉽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주지 않는군요.
겨울의 고기압이 생기는 곳의 날씨는 맑을지는 몰라도 날은 춥답니다. 찬 공기를 수반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구름 없이 하늘이 뻥 뚫어져 있어서 열이 하늘로 다 빠져나가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기압 때에는 구름도 많아 눈도 내리기도 하지만, 맑은 날 보다 오히려 따뜻합니다. 하늘에 있는 그 구름들이 담요처럼 지열을 따뜻하게 덮어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그때의 구름을 담요Blanket처럼 작용을 한다고 하더군요. 캠핑할 때에는 그래서 별이 환희 보이는 맑은 밤 보다는 조금 구름 낀 밤이 더 따뜻하고 좋다는 겁니다. 맑음 속에서도 추움과 시림이 있듯, 흐릿함 속에서도 따뜻함이 있을 수 있는 것, 그래서 자연은 우리더러 편견을 갖지 말라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어제 밤 11시에 정말 유쾌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보통 때에는 다음날 일찍 출근 해야 하기 때문에 볼 수 없는 박수홍,김용만이 진행하는 프로습니다. 아… 처음부터 끝까지 보다가 배꼽 빠지는 줄 모르게 웃으며 즐겁게 보았습니다. 포장마차라는 컨셉을 가지고 진행 하는 프로였는데 늘 초대손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초대손님은 이문세, 김종진, 전태관, 그리고 박경림 이렇게 넷 이었습니다. 다들 방송 진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 정신 없이 말도 많고 재미도 있었고 그랬었죠. 그 중 그런 순서도 있더군요. 넷 중 한 사람을 앉혀놓고 무언가를 질문하면 답을 하는데 뒤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가부를 숟가락을 넣은 병을 흔들어서 반응을 하는 그런 순서요.
이문세도 앉혀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김종진, 전태관등 다 재미있게 했었습니다. 박경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질문입니다.
“유학 가려는 계획이 있다고 하는데, 그 목적이 성형수술 하러 가는 것이 아니냐?”
원래 황당한 질문을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박경림이 맞받아 칩니다. 사실 자기 입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지만 자기 예뻐졌다는 말 많이 듣는다고, 실제로 많이 예뻐졌다고… 그러자 몇몇은 병을 흔들고, 웃고, 뒤집어 지고, 뭐 그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박경림의 대부라 불리는 이문세가 묻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문세는 박경림이 연예계에 진출할 적에 도움도 많이 주었고, 훈계도 많이 하고 연예인의 예의범절 등을 많이 주지시켜서 현재의 박경림을 만든 것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죠. 늘 박경림은 이문세에게 가장 감사한 사람이라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자주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래서 대부라는 별명도 함께 붙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대부’ 이문세가 박경림에게 아주 가혹한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아, 박경림씨는 연예계에서 마당발이라고 소문이 많이 났는데, 그것이 과연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려고, 관리를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냐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제 이어지는 박경림의 대답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차별하는 것이 무척 싫었습니다. 적어도 제 자신은 그렇게 따돌림 당하거나 무시 당하거나 차별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음…”
이때 박경림의 입술이 실룩 거리기 시작합니다. 평소 박경림 같지 않게 말을 더듬고 있습니다. 말 잇기가 선뜻 이어지지 않는 듯,
“그런데, 저는 제 자신은 괜찮은데, 부모님이, 우리 부모님이 누군가에게 차별 당하고 무시당하고 그러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벌써 부모님 이야기에 박경림은 눈물 때문에 말도 잘 하지도 못합니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정말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자, 차별하지 말고 똑 같이 다 잘해주자, 그렇게 마음 먹었습니다.”
박경림은 우느라 이미 눈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는 그럽니다. 저처럼 생긴 연예인이 뜰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인 관리를 잘 해서 그러는 게 아니냐고. 그러나 저는 사람 사이에서 ‘관리’란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지 사람사이에서는 ‘관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경림은 흘러내리는 눈물 외에도 복받치는 감정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을까, 이 사람을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싶어졌습니다.
저는 아주 잠깐 이었지만 박경림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화제의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를 보러 왔을 때 였죠. 당시 저는 배우 이혜은씨 초대로 연극을 보러 온 것이었는데 이미 박경림은 전에 옥주현과 이혜은씨 초대로 이 연극을 보러 오고는 완전히 감동으로 뒤집어졌습니다. 완전히 ‘꽂힌’ 박경림은 다음에 스케줄이 조금 비어있던 이효리와 박진영을 초대하여 데려와서 또 보러 왔습니다. 바로 그날 우리들도 초대되었던 겁니다. 잘 들 아시겠지만 이날 연극을 본 박진영이 이기찬 뮤직비디오 ‘또 한번 사랑은 가고’에 쓰고 싶다고 하게 되고 이후, 이기찬과 더불어 백설공주를…연극의 인기는 전국을 강타하게 됩니다.
그게 벌써 제 작년 일이었군요. 당시 연극을 다 보고 난후 나온 박경림이 이혜은씨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저에게도 인사를 하고 몇 마디 이야기도 하고 아, 물론 배우들과 사진도 찍어 주고 그러기도 하며 당시로서는 좀 얼떨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참 예의가 바르구나…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즈음, 그 해에 박경림은 MBC에서 코미디 대상을 타게 되었고, 이기찬도 최고 인기가수 대열에 들어가고, 백설공주를… 연극은 지금까지도 장기 공연에 성공하는 등,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 다 주었죠. 지금도 박경림이란 이름 세 자를 생각하면 즐거운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혹시 나는 직장 동료나, 동호회, 혹은 친구 조차도 ‘관리’를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관리’라는 말은 정말 너무 냉혹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관리’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에 그러면 무슨 비즈니스 목적으로만 만나는 것인가요? 그와 나 사이에는 무언가 이익을 향한 문제가 연결 되어있나요? 그래야만 만나는 것인가요? 솔직히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문제 아니었습니까?
저는 박경림이란 어린 사람이 남을 웃기는 줄만 알았지 이토록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외모를 보자면 지금의 성공을 두고서 당연히 무언가의 오해는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편견과 시기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미스코리아 만큼 예쁘지는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나쁘다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흐릿한 겨울 날씨처럼 따뜻함을 몰래 품어놓은 담요 같은, 그런 사람이었던 겁니다.
저는 그 사람을 앞으로는 더 지켜보고 응원해 주고 싶습니다. 제게 너무나도 큰 선물을 주고 갔으니까요. 또한 앞으로는 이 카페,칼럼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닌 여러분과 관계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렵니다. 오늘부터라도 더 많은 사람과 관계하고자 노력하렵니다. 여러분, 함께 정말 고맙습니다. 박경림씨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