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눅 8: 40-48)
♥† 변화의 기적을 이뤄내라 †♥
< 사랑이 기적의 원천이다 >
<브루스 올마이티>란 영화가 있다. 방송기자 브루스가 오랫동안 원하던 메인 앵커 자리를 경쟁자에게 빼앗긴 후 분노 중에 방송 사고를 냈다. 그 후 연이어 잘못된 일이 벌어지자 하나님을 욕했다. 그때 하나님이 말했다.
“내게 불평이 많아 피곤하네. 자네를 전능하게 해 줄 테니 자네가 하나님 일을 해 보게.” 그때부터 전능하게 된 브루스는 능력을 과시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각종 특종을 내면서 마침내 메인 앵커 자리를 꿰찼다.
이제 전능한 능력으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여겼지만 어느 날부터 그의 머리에 세상 사람들의 기도가 다 들려왔다. 그 기도를 일일이 응답하는 게 귀찮아 모든 기도에 ‘예스’라고 응답하자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복권 1등 당첨자도 43만 3천 명이나 나와 1등 당첨 금액이 고작 17달러가 되자 폭동이 일어났다.
또한 동료 여성 진행자가 그에게 키스할 때 그 장면을 애인 그레이스가 보면서 둘의 관계가 파탄 났다. 그 후 애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능력을 쓰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는 전능한 능력으로도 바꿀 수 없었다.
전능함이 엉망진창을 낳은 현실로 인해 좌절감을 느낄 때 하나님이 말했다. “신기한 기적은 기적이 아니고 마술이네. 투잡을 뛰는 미혼모가 아이를 축구 시합에 보내려고 없는 시간을 내는 게 기적이고 10대가 마약을 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는 게 기적이네.
사람들은 기적을 원하면서 내게 모든 것을 다 해 달라고 하네.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네.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보게.” 그때부터 브루스는 여러 가지 선행을 베풀었다.
그 즈음에 헤어진 애인의 근황을 살펴보자 그녀는 브루스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를 원하고 더 이상 누군가에게 상처 주기를 원하지 않기에 브루스를 잊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때 그는 전능함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한 상황에 절망해 비가 내리는 도로에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 노릇을 못하겠습니다.”라고 외치다가 트럭에 치였다. 그 후 하늘의 하얀 공간으로 옮겨진 후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원을 말했다. “그레이스가 사랑과 존경으로 대해줄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고 기쁘게 살게 하소서.”
그 기도를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고 브루스를 땅으로 내려 보내 주었다. 그 후 병원에 찾아온 그레이스와 관계가 회복된다. 그때 브루스는 인간의 마음은 전능한 능력보다 진실한 사랑으로 열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평범한 삶에서 그레이스와 소소한 사랑을 나누며 행복을 찾는다.
이 영화는 놀라운 능력보다 진실한 사랑이 더 중요함을 교훈하는 영화다. 사람은 평범함 중에도 얼마든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능력과 소유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사랑이 인생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적의 원천이다.
< 변화의 기적을 이루는 길 >
본문에는 회당장 야이로와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두 명 모두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 나중에 야이로의 죽은 딸은 살아나고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즉시 치유 받았다. 그런 변화의 기적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예수님을 간절히 추구하라
본문 40절을 보라.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서 돌아오셨을 때 모든 무리가 학수고대하며 예수님을 기다렸다가 환영했다. 거라사 지방에서 예수님이 무덤 사이에 거하는 군대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무리가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환영하는 모습은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삶은 은혜를 받는 핵심 요소다. 그때 회당장인 야이로가 와서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했다.(41절)..
회당장은 회당에서 율법을 낭독하거나 가르치고 설교자를 선정할 권리가 있었고 회당의 유지와 보수 책임을 지닌 유대 사회의 정신적인 리더였다. 왜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예수님을 집에 오시라고 했는가? 열두 살 먹은 외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분이 높은 사람도 사랑하는 외딸이 죽어간다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된다. 그래서 인생에 고난도 필요하다. 고난을 통해 체면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그때부터 기적은 시작된다. 은혜 받는 데 가장 방해되는 것 중 하나가 체면이다. 사람 앞에서는 적절하게 체면을 차리되 하나님 앞에서는 체면을 버리라.
계속 같은 죄를 지으면 체면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가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 나이와 신분과 재력과 체면도 다 버려야 참된 믿음이 가능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도 넘치게 된다. 체면을 버린 야이로의 요청을 수용해 예수님이 그의 집으로 갈 때 무리가 밀려들었다.
그 무리 때문에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그 발걸음을 더 지연시킨 일이 생겼다.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고침 받은 일이었다. 그때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여인을 찾으시자 야이로는 속으로 초조해하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딸이 죽어 가는데 예수님은 왜 저리 여유를 부리실까.”
마침내 야이로가 두려워하던 최악의 일이 생겼다.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알려준 것이다. 야이로는 예수님께 섭섭하기도 하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혈루증 여인이 미웠을 것이다. 게다가 여인은 아무 희생도 없이 그저 가만히 다가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졌는데 고침 받았고 자신은 회당장 체면도 다 버리고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려 사정했는데 딸이 죽었으니 기막힌 일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그런 일을 겪는다. 내가 먼저 믿고 기도와 봉사도 더 하고 말씀도 더 보는데 축복은 남이 더 받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들면 기도하고 헌신할 마음도 없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헌신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결국 승리를 주신다.
믿음은 단발 승부가 아닌 마라톤과 같다. “믿~쉽니다”라고 한다고 잘 믿는 것이 아니다. 기도가 바로 응답되면 누구나 기도할 것이기에 하나님은 참된 믿음을 위해 기도 응답을 지연시키실 때도 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병든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은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셨다. 그때 예수님이 일부러 지연하신 것 같다.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시다가 지연하신 것은 혈루증을 앓던 여인 때문이었지만 나사로에게 가는 것을 지연하신 것은 의도적인 것 같다.
그 지연이 결국 ‘나사로의 치유’보다 ‘나사로의 소생’이란 더욱 놀라운 기적을 낳았다. 기도 응답과 축복의 지연에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이 있다. 지연은 거절이 아니다. 계속 믿고 나아가면 응답의 지연은 나의 소원보다 더 선한 응답을 가져다준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50절).” 이 말씀을 깊이 새겨들으라. 나의 믿음과 헌신과는 달리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빠지지 말라. 그런 생각은 내가 무엇인가를 받을만하다는 교만한 생각이다. 고난 중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믿으면 반드시 더 좋은 은혜의 역사를 체험한다.
회당장은 위급한 상황에서 지체하시는 예수님께 한마디 불평하지 않았다. 그 모습 속에서 예수님은 그의 감사하는 믿음을 보셨을 것이다. 가시적인 응답과 축복이 없어도 감사하는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계속 추구하라.
하나님의 응답은 더디 이뤄지거나 빨리 이뤄지지 않고 가장 적확한 시간에 이뤄진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추구하되 응답의 때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라. 잘 기다리는 것도 믿음의 열매다.
2. 예수님을 겸손히 추구하라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갈 때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자 그녀의 혈루증이 즉시 그쳤다"(43-44절). 혈루증은 자궁근종으로 생긴 만성 출혈증으로써 고대 유대인들은 혈루증을 나병처럼 불결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부정하게 여기며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 그런 차별 가운데 12년을 투병하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왔다. 그녀에게는 포기하지 않은 열정이 있었다.
고대에는 불치병에 걸리면 미신적인 치유 방법을 많이 썼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혈루증 치유와 관련된 두 가지 미신이 있었다. 하나는 흰 나귀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소화되지 않은 보리알을 볶아 먹으면 낫는다는 미신과 타조 알을 무명 조각에 싸서 품에 넣고 다니면 낫는다는 미신이었다.
그런 미신도 따르며 그녀는 치유를 위해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무런 차도가 없을 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갔는데 무리가 너무 많았다. 그 상황에서 부끄러운 자신의 처지로 앞에 나설 수도 없었다. 군중들이 알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어서 무리 틈에 끼어 예수님의 뒤로 갔다.
그때 예수님의 몸을 만지면 부정 타게 하는 죄송스러운 행동이 될까봐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댔다. 그녀의 예수님을 추구하는 열정도 감동적이지만 더욱 감동적인 것은 겸손하게 예수님을 추구하는 태도다.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면서도 늘 겸손을 잃지 말라.
겸손한 사람은 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넘치는 희망을 가진다. 사실 그녀의 상황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당시 그녀는 좋은 시절을 혈루증과 싸우며 보냈을 것이다. 12년간 용한 의사는 다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많은 괴로움을 받으면서 가진 재산도 다 날리고 병은 심해졌다. 게다가 옷을 자주 갈아입을 형편도 안 되고 물이 귀한 지역에서 목욕도 자주 못해서 악취로 인한 수치심도 컸을 것이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소외감이었을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유출병에 걸리면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가족과도 함께 살 수 없었다. 그런 절망적인 고통 중에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그녀는 희망을 가졌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지만 희망은 소생시키는 치료약이 된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죽음을 무릅쓰고 사람을 헤치고 나아가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댈 때 역사가 일어났다. 아무리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결코 포기하지 말라. 계속 승리를 생각하고 말하면 승리 가능성은 커진다.
한 사람이 베트남 전쟁 포로로 7년간 감옥에 갇혔다. 그는 골프광이었는데 감옥에서 골프를 칠 수 없자 머리로 상상하며 골프를 쳤다. 골프장에 서서 골프채를 잡고 자세를 갖추고 스윙해서 공이 몇 야드 날아갔다고 여기며 상상으로 골프를 쳤다.
그 후 7년 만에 석방되어 진짜 골프를 치니까 이전보다 실력이 훨씬 좋아져 있었다. 좋은 비전을 가지고 좋은 상상을 하며 믿음 가운데 계속 나의 할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 성공과 승리를 생각하며 용기 있게 장벽에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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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면 낫는다는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갈 때 장벽이 많았다. 부정한 여인이 사람들 곁에 가면 돌을 맞거나 조롱을 당할 수도 있었다. 또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미는 상황에서 군중을 뚫고 나갈 힘도 부족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라. 가만히 있으면 승리할 수 없다. 좋은 비전을 가지고 그 비전을 향해 일어서야 선한 변화의 역사가 나타난다.
3. 예수님을 믿음으로 추구하라
"그녀가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자 만성 혈루증이 즉시 그쳤다. 그때 예수님이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라고 하셨다. 다 아니라고 하자 베드로가 말했다.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밉니다.(45절).
” 예수님은 누가 손을 댔는지를 알면서도 물으신 것은 그녀의 치유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녀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질문 의도도 모르고 사람들은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았다고 했고 베드로도 밀려서 닿은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다.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알고 있다(46절).” 그 순간 혈루증 여인이 더 이상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했다.(47절).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48절).” 예수님은 그녀에게 “딸아!”라는 호칭으로 평안을 주신 후 그녀의 행동하는 믿음이 그녀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셨다.
유대 율법은 부정하게 여긴 유출병 환자와 접촉한 사물과 사람도 부정하게 여겼기에 그녀의 행동은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든 행동이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불같이 화를 냈겠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행동을 꾸짖기보다 오히려 믿음으로 여기셨다.
예수님은 율법보다 생명을 중시하셨고 전통과 관습보다 믿음을 중시하심으로 전통과 관습에 눌린 사람들에게 참된 정결과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다. 예수님은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계신 고결하신 분이 아니라 고결하시지만 사람의 손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곳에 계신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추구하라. 없는 것을 통해 있는 것을 보고 작은 것을 통해 큰일을 이루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 평안과 응답이 주어지고 온전한 회복의 역사도 나타난다.
그처럼 예수님밖에는 희망이 없고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간절한 믿음을 가지라. 조금 살만 하고 조금 안다고 살 길이 많은 줄 알면 어느 순간에 길이 다 막힌다. 길이 많다고 생각될 때 깨어 근신해서 예수님밖에 길이 없는 줄 알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지 말고 거머리처럼 하나님께 달라붙으라. 마귀는 방학이 없다. 하나님 관계에서도 방학이 없게 하라. 거머리는 한번 붙으면 몸이 쪼개져도 잘 안 떨어진다. 그런 끈질긴 충성심을 가지고 믿어야 고난과 유혹을 이길 수 있다.
기도하기 싫어도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기도하고 예배에 나오기 싫어도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예배에 참석하라. 몸이 피곤하고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하나님께 달라붙는 거머리전법을 쓰라.
1998년에 분당 정자동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바로 옆에 초대형 교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 교회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우리 교회 새벽기도에는 한두 명 나올 때도 있었다. 그래도 끈질기고 성실하게 매일 말씀을 준비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성경강해 원고가 점차 쌓였고 마침내 때가 되어 <월간새벽기도>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이끌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가장 적절한 때에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신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가는데 혈루증 앓는 여인을 만나 지체하게 하신 것도 야이로에게 끝까지 신뢰하고 인내하라는 뜻이었다. 하나님을 따를 때 도중에 장벽을 만나도 조급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라.
누가 내 믿음을 방해해도 포기하지 말라.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 것도 그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역경과 장애가 있어도 하나님을 꼭 붙잡는 거머리 전법을 발휘하면 반드시 승리의 날이 찾아온다.
믿음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예수님의 많은 기적이 믿음을 통해 이뤄졌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흘러들게 하려면 믿음으로 축복의 문을 열라.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하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 10: 17).
믿음으로 살 때 아브라함의 복이 내게도 약속된다. 복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흔들리지 않는 실천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이루고 선한 변화를 이끌어내면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 변화의 기적을 이뤄내라 >
의사는 직접 환자를 수술하기 전에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에서 수많은 수술 경험을 쌓는다. 아무리 의학 공부 성적이 좋았어도 임상 경험이 없으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 공부나 말보다 실력이 중요하고 지식보다 지식의 실천이 중요하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대로 살면서 고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은 집회에서 찬양과 경배를 멋지게 하는 모습보다 고난 중에 빛나는 성육신의 믿음에 더 감동하신다.
예수님을 아는 것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고 예수님을 닮는 것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랑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성령 충만을 감정 충만으로 오해하지 말라. 성령 충만의 결과는 거룩한 의지와 행동하는 믿음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랑과 평안과 감사를 잃지 않는 것이 성령 충만이다.
하나님과 깊이 만나라. 하나님과 깊이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고 예수님의 삶을 내 삶으로 삼는 것이다. 집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한 극적인 표시로 남이 보는 데서 홀라당 넘어지면서도,
언행과 가치관에 하나님의 뜻이 배어 있지 않고 예수님의 향기가 전혀 풍기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처럼 큰 죄다. 믿음은 쇼가 아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은 사람과의 깊은 만남을 낳는다. 믿음이 깊어지려면 업무나 사업상의 필요 외에는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지 말라. 만남이 깊어지려면 시간의 한계로 인해 만남의 수는 줄여야 한다.
사람 대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라. 기도 시간은 하나님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이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하나님의 뜻에 젖어드는 시간이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이루면 사람과의 갈등과 환경적인 시련도 점차 줄어든다.
예배 시간도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체험하라.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이루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손길을 느끼면 기적적인 역사를 체험하고 삶도 극적으로 변화된다. 그러므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하라.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의 옷 가라도 만지려는 모습은 예수님과 만나려는 몸부림이었다. 믿음은 명상이나 수양이 아닌 진리와의 만남이다. 예수님의 주변에 머물지 말고 예수님 안에 온전히 거하고
교회 주변에 머물지 말고 교회 안에 온전히 거하라. 그런 만남이 있으면 그때부터 나의 심장이 선교 비전으로 뜨거워지고 삶에 행복과 보람도 넘치면서 우울한 기운은 사라지고 헛된 것도 멀리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만남처럼 복된 것은 없다. 가장 큰 불행은 이단 교주와의 잘못된 만남이다. 교주가 달리 교주가 아니다. 필자를 지나치게 의지하면 필자도 교주가 된다. 믿음의 핵심 기초는 아무리 위대해도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과의 잘못된 만남에 못지않은 큰 불행이 형식적인 만남이다.
형식적인 만남을 뜻의 일치를 통해 참된 만남으로 만들라. 작은 부분에서 세세하게 다 일치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큰 틀과 비전에서 일치하면 된다. 무엇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나를 일치시키라. 그런 일치가 있는 곳에 행복도 자리한다.
신앙생활의 큰 위기는 문제가 많거나 축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나 교회 주변만 맴돌지 말라. 수명을 다해 신호가 끊긴 채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 성도가 되지 말라. 많은 활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폐기된 인공위성도 여전히 빠르게 시속 수만 킬로미터로 지구 주위를 돌지만 관제소와의 교신과 통제가 끊긴 상태다.
많은 활동보다 깊은 만남이 중요하다. 많이 이뤘어도 많이 드리는 삶이 없다면 성공과 기적도 큰 의미가 없다. 앞으로도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통해 변화의 기적을 멋지게 이뤄내라.(이한규 목사 / -주일설교(2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