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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tTp8A9cNpuQ?si=mspImfLqOWUqpapw
거짓 증인들 14:53~59
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신분을 드러내시는 예수님 14:60~65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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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이 대제사장 집으로 끌려가시자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 그 집 뜰 안까지 들어갑니다. 공회는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찾지만 거짓 증언만 많고, 서로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묻고, 이를 인정하신 예수님을 신성 모독으로 정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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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증인들 14:53~59
예수님이 체포되시자 모든 공회원이 모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이송되어 ‘예심 재판’을 받으신 후(요 18:13), 안나스의 사위요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공회 재판’을 받으십니다.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부합해야 법적 효력이 있기에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는 거짓 증언자들을 동원합니다. 예수님을 고소할 명분을 찾지만, 서로의 증언이 다릅니다. 특히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라는 예수님 말씀을 ‘내가 성전을 헐고’로 왜곡해 성전 모독죄로 기소하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증언도 일치하지 않습니다(58절). 율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 제9계명(출 20:16)을 범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대제사장들이 취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거짓 증언의 자리를 권고받을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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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드러내시는 예수님 14:60~65
예수님을 성전 모독죄로 기소하려는 계획이 무산되자, 대제사장이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61절)라고 직접 심문합니다. 거짓 증언에 침묵하시던 예수님이 그 질문에는 “내가 그니라”(62절)라고 답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들의 자기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우편에 앉으신 인자’는 하나님께 위임받은 심판자를, ‘구름을 타고 오심’은 영광스러운 재림을 의미합니다(시 110:1; 단 7:13~14).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분노하고, 사람들은 침을 뱉으며 폭력을 행사합니다. 죄인들이 죄 없으신 하나님 아들을 사형시켜야 마땅하다고 정죄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공회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시인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한절묵상:마가복음 14장 62, 64절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신성 모독으로 정죄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 아들이며 장차 구름을 타고 올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신성 모독이 아니라 신성을 가진 분이 하신 진리의 선언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진리의 선언도 신성 모독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고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은 놀라운 능력이 됩니다.
주님이 죄인을 오래 참으신다고 해서 그분을 연약한 존재로 여겨 회개치 않는 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 존 맥아더
오늘의 기도
주님! 많은 사람의 조롱과 배척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진리를 선포하신 주님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의 반응과 제 이미지에 신경 쓰느라, 정작 제가 알고 믿는 진리를 전하는 일에 주저했음을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죽음, 부활, 재림이 제 신앙생활의 핵심이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98 속죄하신 구세주를)
오늘 본문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예수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을 받고 사형언도를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한 밤중에 열린 불법 재판으로 유대종교지도자들은 거짓 증인을 내세워 그리스도를 죽일 증거를 찾고, 결국 신성모독으로 유죄 판결을 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스승을 멀리 따라간 베드로, 거짓 증인들의 심문, 대제사장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사형선고와 사람들의 반응 등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 예수님 체포당시 베드로의 행적에 대한 기록입니다. 여기서 아랫사람들은 대제사장의 종들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그곳에 나타났는지 모릅니다.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갔을 때 같이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아예 멀리 도망간 것에 비해 그만은 적어도 스승의 심문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의리 있는 행동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것도 스승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수제자로서 일생일대의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주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주님을 매몰차게 부인한 것입니다.
‘거짓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유죄로 만들려고 거짓 증거를 대었지만 그것마저도 서로 맞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곧 피의자가 범죄자로 되려면 적어도 2명 이상의 고발자의 진술이 일치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성립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곧장 이어진 말이 ‘성전을 헐고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짓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해선 안 될 말입니다. 왜냐하면, 고대 세계에서 제사처소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범죄라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일치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의 그 발언의 속뜻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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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 ‘네가 그리스도냐’라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여태껏 침묵하시던 예수님이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그동안 굳이 응수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은 명백한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말에는 답변을 하시니 그것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그들이 판 함정으로, 그렇게 되면 주님의 운명은 십자가로 판결이 날 것은 불 보듯 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설령 목숨이 연장된다고 하더라고 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성품을 갖고 계셨기에 그렇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큰 이익을 얻습니다. 하늘나라의 비밀을 안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정체가 선명하게 드러났으니,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이제 곧 오실 심판주라는 사실입니다. 여태껏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유도 심문한 대제사장의 질문이 너무나 명확하기에 스스로 자신을 밝힌 것입니다. 이로서 그간 베일에 감추어졌던 마가복음의 비밀모티브가 말끔하게 사라져 버립니다. ‘내가 그니라’ - 그분은 메시아로, 곧 오실 성자하나님입니다. 진실 앞에 진실이 밝혀진 셈입니다.
거짓 증인을 내세운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그것에 맞서 진실을 밝히는 예수님입니다. 재판 결과 공회가 승리합니다. 예수님에게 사형이 집행되니까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 이긴 줄 알았더니 공회는 불과 몇 십 년도 안 되어 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예루살렘 성과 함께 성전의 핵심멤버들은 모두 멸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2,000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씀하셨고 그분 자체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위기 앞에서 목숨을 구걸할 것이냐? 그러함에도 진실을 밝힐 것이냐? 성경을 읽는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실은 진실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습니다. 진실은 진리를 밝힐 수 있지만 거짓은 결코 진리를 밝힐 수 없습니다. 결국 그것은 멸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는 영원합니다. 진리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자리가 진리의 자리입니다. 오직 우리가 설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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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거짓 증인들을 많이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말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 죄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전훼손죄를 덮어씌우려 했지만 이 거짓말도 서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교활한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하시자 신성모독죄로 정죄했습니다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막14:61~64)
그래서 너무 어처구니 없게도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죄로 사형판결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그에게 침을 뱉으며 손바닥으로 치더라"(막14:64~65)
이로써 소작농들이 포도원을 강탈하기 위해 상속자를 죽일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겁니다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막12:1~8)
세상이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인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박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일3:2)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저 소작농들의 쿠데타가 완전한 실패로 귀결 되었듯이
우리도 주와 같은 형상으로 부활하게 하셔서 저들의 악의를 무효케 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소작농에 불과한 자들이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에서 주인 노릇을 하며 참 상속자인 하나님의 본 자녀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첫째는 저 소작농 종교강도들은 성령 없는 육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1:19)
둘째는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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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처음으로 끌려간 곳은 대제사장 안나스였고 자신의 교훈에 대해 묻는 그에게 드러내놓고 늘 이야기했으므로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는 대답을 하신 후 손찌검을 당하셨고(요 18:22) 다시 사위인 가야바 그 해의 제사장에게 보내졌습니다 (요 18:24). 그곳의 심문에서 “네가 과연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했겠다?!”라는 의미의 조롱(61절, 눅 22:67)을 받으십니다.
하지만 침묵으로 일관하시던 주님께서는 정착 자신을 정치적 반란의 주동자가 되게 하는 그 말에 대해 오히려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권의 우편에 앉아 있을 것(눅 22:69)과 다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62절)”고 대답하심으로 신성모독의 죄명으로 증인 없이 정죄 받고 침 뱉음과 주먹과 손바닥으로 맞으시며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로마인들의 법정으로 몰리게 됩니다.
무죄한 자로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지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하지 않고 십자가로 나아가신 것입니다. 또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그들의 입을 통해서도 그분의 정체성이 어쩔 수 없이 고백되고 있기도 합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물으시고 또 함께 하자고 하시는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의 유혹과 권세를 거부하며 입술을 열어 담대하게 주되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53-59절 예수님을 재판하기 위해 공회가 열립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한밤중을 노렸듯이, 예수님을 정죄하려는 재판도 한밤중에 열립니다. 사형판결을 내리는 재판을 밤에 열지 못하도록 한 법을 공회 스스로 어긴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모으려고 거짓 증인들을 매수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재판이 불의할수록 예수님의 의로우심은 더 확고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사회의 불법과 불의가 극심한 곳일수록 주의 백성이 드러내는 의도 그곳에서 더 밝게 빛나야겠습니다.
63-65절 대제사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하자, 즉시 사형판결을 내립니다. 주위의 사람들도 주님께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면서 능욕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눈앞에 계신데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말로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내심 주님을 반기지 않는 것은 그들이 세상의 기득권을 너무 누리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복음 앞에서 당당한 삶❞
예수님은 불의한 방법으로 부당하게 핍박을 받으셨지만 인내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
✔ 복음 앞에 선 우리의 삶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 적극적으로 복음을 변증하는 삶이어야 합니다(53~59절).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로 끌려가 재판을 받으십니다. 이들의 재판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재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진 불법적인 재판임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로마의 통치하에서 산헤드린은 사형을 언도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판장에 모인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증거를 찾았지만, 예수님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님에 대해 거짓말로 증언했지만 역시 서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며 말하기를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거짓 증인들의 거짓 증거로 인하여 억울하게 핍박을 받으셨던 것처럼 세상은 온갖 거짓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을 교묘하게 짜 맞추어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 안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혼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거짓에 맞설 수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변증해야 합니다.
거짓의 검으로 휘두르는 세상 앞에 진리의 검으로 맞서 흑암의 권세를 밀어내고 복음의 진리의 빛을 환하게 비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지식을 더 넓혀 세상의 거짓 증언들 앞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된 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진실함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60~65절).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61절a)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신 예수님은 거짓 증인들을 상대로 자신을 정당화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다시 묻습니다.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61절b)... 물론 믿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정죄할 것을 찾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6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셨던 예수님은 고난의 길에서 본격적으로 메시아로서의 정체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선언은 당장에 신성을 모독한 행위로 간주되었고, 대제사장은 자신의 옷을 찢음으로 예수님이 신성 모독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공포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 선언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증인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의 재판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변호하셨다면 재판의 결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인 인류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침묵하셨습니다. 반면에 복음의 진리 앞에서는 또한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거짓이 난무하고 있는 시대에 예수님이 진정한 구원자이시며,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말로만이 아니라 진실한 삶을 통해 증거 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최악인 상황에서 다른 어떤 변명보다 삶으로 나의 진실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지혜로운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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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수님을 모욕하는 사람들(53-65절)
오늘 예수님을 잡아온 이들의 재판은 이미 답을 내어 놓고 하는 재판입니다. 여러 증인을 세우며 예수님의 잘못을 찾으려고 했지만 서로 맞지 않아서 아무런 잘못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자들이라고 하는 어떠한 모습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정적을 제거하려고 혈안이 된 패거리의 모습에 불과합니다.
대제사장이 당신이 찬양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은 그 진실된 말을 듣고 옷을 찢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사람들이 모욕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이렇듯 영적으로 눈이 감긴 사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진실된 말을 해도 그것을 알아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말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로 받아 들여서 메시야를 받아 들일 기회를 놓쳐 버리고 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로 가지만 이 주님을 핍박하는 자들은 참으로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지금 범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묵상하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믿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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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이 대제사장 집으로 끌려가시자 베드로는 멀찍이 따르며 그 집 뜰 안까지 들어갑니다.
공회는 거짓 증언이 일치하지 않아 예수님 죽일 증거를 얻지 못합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찬송받을 이의 아들이냐 묻고, 이를 인정한 예수님을 신성 모독으로 정죄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비겁한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당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겠다고 했다는 등
근거 없는 거짓 증언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시지만,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질문엔
그렇다고 답하십니다. 이전까지는 메시아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셨지만, 때가 되자 유대 최고 권력자들이
모인 공회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십니다. 이 때문에 신성 모독 죄로
사형을 언도받지만,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이를 개의치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진리는 타협할 문제가 아닙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유도 심문에 기꺼이 응해 사형을 자초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내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이심을 당당히 밝혀야 할 때는 언제인가요?
마가복음 14:53~65 '내가 바로 그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한 밤중에 가룟유다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무장한 군병들 함께 와서
예수님께 입을 맞추었고
베드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잘랐고
모든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아마도 제자중 도마는 벗은 몸으로 도망을 갔다.
예수님은 성경의 말씀되로 체포되셨다.
한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간다.(53)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인다.(53)
죄를 짓는 데는 시간과 관계가 없구나.
퇴근하고 집에서 쉬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부 집합을 하는 구나.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일 증거를 찾는다.(55)
명확한 증거를 찾아 놓고 체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체포를 해 놓고 혐의를 찾고 있구나.
죄 없으신 예수님에 대한 죄의 증거가 있을 리가 없다.
죽일 만한 죄의 증거를 찾지 못한다.(55)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한다.(56)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59)
죽일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거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거로는 죽이지 말것이요(신17:6)
2~3명의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사형에 처 할 수 있지만
어떤 증거도 찾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증거가 서로 일치하지 못한다.
그것도 폭력으로 고문하고 거짓으로 꾸며낸 증거임에도 일치하지 않는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죄는 없으셨던 예수님
죄인이 의인을 심문하고 심판하는 아이러니가 이 밤에 이 곳에서 이루어 지고 있구나.
증거하는 자가 많았지만 죽일 증거를 찾지 못하자
가야바 대제사장이 직접 예수님을 신문한다.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60) 묻는다.
예수님은 잠잠하시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신다.(61)
만약에 예수님이 여기에서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의 죄와
거짓 고소한는 자들의 죄를 고발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였으므로 예수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으리라.
누군가 나를 해꼬지 할려고 있지도 않는 누명을 씌워서 거짓으로 증거 할 때
만약에 내가 그 사람의 약점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폭로해 버리기가 쉽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세상말로 털어서 먼지 않나는 사람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의 잘못은 조금이고 타인의 잘못은 태산 같은데 내가 억울하게 당한다고 생각할 때
그 태산 같은 약점을 폭로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왜 없겠는가 마는
예수님은 침묵했다.
대 제사장이 다시 묻는다.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61)
예수님게서 내가 그니라(62)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62)
대답하신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이 메시야 라는 것을 고백케 하려고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메시야 이므로 메시야임을 숨기실 이유가 없으셨기에
내가 바로 그다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63) 쇼를 하고 있다.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정죄한다.(64)
경건한 척 자신의 옷을 찢고 참람하다 말하고 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쇼이고
무죄하신 예수님을 심문하는 죄 많은 인간들의 타락한 모습이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말없이 침묵하시는 예수님
나도 내 십자가를 지고 침묵하며 살게 하옵소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
무지하고 포악한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과 공의로
무너진 세상에서 친히 그 육체로 하나님의 나라를 일으켜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놀라운 손길을 항상 기억하고
그 은혜에 합당한 겸손과 순종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주님의 제자로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히 채워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가 더욱 깊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온전히 전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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