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향교골? 교동(校洞)? 명륜동(明倫洞)
옛날 향교가 있었던 골[谷]이라 하여 '향교골'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향교의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의 이름을 따서 '명륜동'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이 향교 터는 안동에서 이름난 명당(名堂)으로 안동에 신식학교가 세워질 때는 대개 이 자리에서 시작했다. 안동교대가 그 향교 터에 있었고, 안동대학교가 송천동으로 이전하기 전에는 이곳에 자리잡았으며, 현재는 안동시청이 들어섰다.
- 동들배기: 향교골 안쪽 산 위 고분이 있는 곳의 이름으로 고분(古墳)에서 귀걸이와 금관(金官), 요대(腰帶) 등이 발굴되엇다고 한다.
31. 치이골? 쳉이골? 치곡(雉谷)? 냉천9冷泉)? 화장실곡(火葬室谷)
마을의 모습이 꿩처럼 생겼다고 하여 치곡이라 불렀으며 줄고 산골의 전답으로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화장장(火葬場)을 설치하여 '화장실골'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화장장을 딴 곳으로 옮겼고, 깨끗한 주택들이 들어서서 마을을 새로 이루고 있으며 경일고등학교까지 여기에 설립되고 아파트가 들어서서 크게 번성하고 있다.
32. 딱밭골? 저전동(楮田洞)
옛날에 닥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던 골이라 하여 '딱밭골'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닥은 전혀 없고 마을 입구로부터 거의 전부가 주택이 들어서서 아담한 마을이 되었다.
33. 작은 딱밭골
딱밭골 남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로 역시 옛날에 닥나무가 많이 있었던 골인데 규모가 작다고 하여 '작은 딱밭골'이라 부르게 되었으나 현재는 그 흔적은 없고 주택지로 바뀌었다.
34. 뱀밭골? 부처바우골? 불암골(佛岩谷)
예산레 한 행인이 이곳을 지나가는데 소복한 여인이 나타나서 입을 맞추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연후에 이곳은 지신(地神)이 발동한다고 해서 지신을 누르기 위해서 미륵불(彌勒佛)을 세우고 '부처바우골'이라 한다. 이 미륵불은 퇴계로(退溪路) 확장 공사로 현재 안동대학교에 옯겨 놓았다.
35. 배나뭇골? 배남골? 백나무골? 회나무골? 이동(梨洞)
신안동 남쪽 첫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배나무가 많이 있어서 그렇게 불리어졌다고 한다. 또 100여 종류의 나무가 있어서 '백나무골'이라고도 하며 100년 묵은 회나무가 있다 하여 '회나무골'이라고도 한다.
36. 쑥머리? 수머리
쑥머리는 현재의 금탑아파트에서 안막동의 범서골 입구까지 모두 포함된다. 당시에는 늪이 있어서 '수머리'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쑥머리'로 되었고,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좋았다고 한다.
37. 밤적골? 밤저골? 율세동(栗世洞)
이 말을의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불리던 지명이며, 밤나무가 많이 있는 골이라 하여 '밤적골'이라고 하였다. 또 안동의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서 큰 절이 있었으므로 '밤절골'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세리(新世里)와 안막리(安幕]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율세동'이라 하였다. 이 골짜기 양쪽에 호암(虎岩)과 적암(賊岩)의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들이 서로 싸우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안동부(安東府)에 살인 사건이 많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에 안동부사 김가진이 부임하여 이곳에 장인촌을 만들어 장인들을 살도록 하여 그 방태(防牌)가 되도록 하였더니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한다; 그 바위는 안동 가톨릭 상지대학과 주택이 들어서면서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