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6.5.28.연중 제8주간 목요일
1베드2,2-5.9-12 마르10,46ㄴ-26
개안開眼의 여정
“늘 예수님을 따르는 삶”
“주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
당신의 진실하심, 세세에 미치리라.”(시편100,5)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기도를 청하던 어느 자매의 오빠가 암투병중 62세에 어제 선종했고 연미사를 청했습니다.
30일간 정성을 다해 착하고 성실하게 살다간 이창규 사도 요한형제를 위해 연미사를 봉헌하려 합니다.
며칠 전 받은 메시지 중 한 대목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오빠는 그 힘든 시간을 꾸역꾸역 버티며, 아침에 커피내리고, 빵 굽는 냄새에 행복해했대요.”
기쁨과 행복을 살아야할 시간은 평범한 일상 바로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이래서 ‘깨여 있으라’ 말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주님을 잊고, 감사와 기쁨을 잊고 살아가는지요.
어제 결혼을 앞둔 딸과 방문한 분이 귀가 후 보낸 메시지입니다.
“언제나 반갑게 대해주시고, 항상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한 기쁨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 뵈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새삼 친절하고 따뜻한 환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불경기로 인해 사업을 정리한 부부의 답답한 사연에 게시판에 이름을 붙여놓고 기도해 드리기로 약속했습니다.
“주님, 이 부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힘든 세상 살아가노라 마음도 몸도 지치고 아픈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은 우리의 희망이자 기쁨이요 평화이신 예수님뿐임을 확인합니다.
오늘 복음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구원의 가르침을 줍니다.
풍부한 상징들로 가득한 복음의 요약과도 같은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대하면 무조건 <개안의 여정>으로 강론 제목을 정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기 직전 시작됩니다.
길가에 앉아있던 티매오의 아들 눈먼 거지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말마디에 전광석화 반응합니다.
삶의 방향을, 삶의 의미를 잃고 길가에 앉아 길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눈먼 거지는
바로 우리 가난한 인간 실존을 상징합니다.
비록 <눈먼 거지>이지만 내면은 주님을 찾는 갈망의 믿음에 영혼은 환히 깨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말 그대로 눈먼 거지의 절박한 기도인 자비송입니다.
이런 절박한 마음으로 자비송을 바치며 미사를 시작해야 함을 배웁니다.
잠자코 있으라는 주변의 꾸짖음에도 아랑곳없이 더욱 큰 소리로 거듭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간절히 찾을 때, 부를 때 주님도 응답하십니다. 만일 눈먼 거지가 주님을 부르지 않았다면
주님은 그냥 지나가셨을 것입니다.
발을 멈춘 예수님은, “그를 불러 오너라.” 말씀하시자 예수님과 함께 하던 이들도 호의적으로 바뀌며 그를 격려합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니, 과거 운명의 사슬로부터 구원의 탈출이자 부활의 몸짓입니다.
이어지는 물음이 스승을 찾았던 구도자들의 문답을, 불가에서 스승과 제자의 선문답을 연상케 합니다.
삶이 간절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면 말도 글도 군더더기가 없이 담백합니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단도직입적 질문은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평생 우리에게 주어지는 화두와도 같습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눈먼 거지만 아니라 우리의 답도 이 하나뿐입니다.
정말 마음의 눈이, 믿음의 눈이 열려 환상이나 편견 없이 제대로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잘 듣는 것> 못지않게 <잘 보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감격적 구원의 선언입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구원의 출구>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서니 예전의 눈먼 거지가 아닙니다.
길에서 길이신 예수님을 만나 믿음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서니 제대로 삶의 방향을,
삶의 목표를, 삶의 의미를, 삶의 중심을 찾은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장면을 압축한 듯 하고 우리 개안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날마다 평생 주님을 따라가면서 마음의 눈도, 믿음의 눈도 더욱 열려 밝아질 것이니 말 그대로 복된 개안의 여정입니다.
비록 육안의 시력은 약해져가도 영안의 시력은 날로 좋아지는 지 자문하게 됩니다.
복음에서 믿는 다는 것은 자연이나 역사, 삶에 대해 열린 눈을 지닌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믿음의 여정은 그대로 개안의 여정이 되며 무지와 허무에 대한 결정적 답이 됩니다.
오늘 베드로는 제1독서에서 세례 받아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들의 축복이 얼마나 다채롭고 풍부한지
우리 모두 활짝 열린 믿음의 눈으로 보도록 초대합니다.
베드로 사도야 말로 개안의 여정, 믿음의 여정에 빛나는 모범입니다.
믿음의 눈이, 영의 눈이 열렸을 때 발견하고 깨닫는, “새롭게 태어난 갓난아기, 살아있는 돌, 선택된 민족,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 끝없이 이어지는 축복의 현실이자 우리의 복된 신원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개안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하게하시며 끊임없이 축복을 보여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수도원 하늘 길을 걸을 때 마다, 늘 외워도 늘 좋고 새로운 <하늘 길 >주님을 따르는 기쁨을 노래한 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늘 님 그리울 때 보고 싶을 때
하늘 길
하늘 향해 쭉쭉 뻗은
하늘의 사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들
사열 받으며
하늘보고 하늘기운 숨쉬며
하늘품위 되찾고 하늘의 왕자 되어
하늘 길 하늘 님 예수님 따라
가슴펴고 힘차게
나는 듯 걷는다
이 기쁨 이 행복에 산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