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엄한 인간 품위의 하느님 자녀다운 삶 “주님과의 만남, 말씀, 치유”
2026.9.7.연중 제23주간 월요일 1코린5,1-8 루카6,6-11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
모두 즐거워하며, 영원토록 환호하리이다.”(시편5,12ㄱ)
오늘도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모두가 “존엄한 인간 품위의 하느님 자녀다운 삶”이란 오늘 강론 제목과 관련됩니다. 옛 현자의 지혜가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눈과 귀가 끌리는 곳보다 마음의 중심이 원하는 바르 잘 살펴보라.”<다산>
“나는 덕德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듯 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논어>
마음의 중심이자 덕의 원천인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바 노년 품위를 위한 우선순위 넷, <1.하느님 믿음, 2.건강, 3.일, 4.돈>도 생각납니다. 레오 14세 교황의 어제 강론 말씀도 그분의 고결한 인품을 반영합니다.
“내 마음은 고통중인 우크라이나 백성들에게 가있다.”
“서로 사랑은 우리를 노예화하지 않는 하나의 빚이다.”
(Mutual love is one debt that does not enslave us)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의 고통에 아파하는 사람이 존엄한 품위의 사람입니다.
생태적 회개를 통해 하나뿐인 공동의 집, 지구를 아끼는 실천적 사람이 진정 하느님의 자녀다운 품위의 사람입니다. 선물 받은 과일 포장지를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저탄소 금홍 복숭아. 저탄소 홍로 사과; 저탄소 농산물은 생산과정에서 농자재 사용을 줄여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고 지구환경을 지키는 농산물입니다.”
정말 그런 농사였으면 좋겠습니다. 네팔의 가공할 재앙과 비극이 더욱 생태적 회개와 더불어 실천을 요구합니다. 먹을 때 마다 배출되는 무수한 쓰레기들을 보면서 먹는 것이 죄라는 생각도 듭니다. 불가의 식사 전 <오관게五觀偈>의 묵상이 참 절실합니다.
1.“이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2.“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3.“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4.“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5.“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강복뿐이라며 하루에도 참 많이 드리는 강복입니다. 얼마 전 사촌형님 장례식장에 갔을 때, 아녜스, 테오도라, 크리스티나로 자기를 소개하며 반가워하는 친지들을 보며, “아. 세례명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의 기초구나!”하는 깨달음에 감사했습니다. 세례명에 대한 자각이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됩니다.
주님과 일치를 상징하는 성호경, 세례명, 강복이 모두 존엄한 품위의 명품신자로 만들어 주니 명품종교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지혜에 감탄합니다. 더불어 평생성사인 성체성사와 고백성사보다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 유지에 좋은 도움을 주는 성사도 없습니다.
어느 젊은 유명 시인이 엄선한 시들과 감상을 읽으면서 실망했습니다. 대부분 시들이 참 길고 복잡하고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존엄한 품위의 삶을 소망하며 쓴 오래전 자작시 두 편을 나눕니다.
“떠오르는 태양
밝아오는 하늘
잠깨는 산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새롭게 시작하는 하루; 2007.9. >
“아득히 멀리서 바라보면
아무리 크고 높아도 하늘 품 안에 안겨있는
아기 산들이다
오, 넓고도 깊은 하늘 품이여
언제나 당신 품 안
아기 산 되어 살고 싶네”<오, 넓고도 깊은 하늘 품이여; 2007.9. >
지금까지 인용했던 모든 내용들이 오늘 말씀의 이해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주님을 만날 때 권위있는 말씀의 치유요 온전한 품위의 삶을 회복합니다. 안식일법에 우선적인 일이 사랑의 치유를 통한 존엄한 인간 품위의 회복입니다. 주님의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과정이 감동적입니다. 헌 부대 의식에 고정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감시에 아랑곳없이 과감하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이십니다.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마치 미사중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이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는 질책성 말씀으로 이들의 말문을 봉쇄합니다. 물음 안에 이미 답이 자명하게 들어나기에 침묵할 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판단의 잣대인 사랑의 절대법 앞에 상대화되는 안식일법입니다. 예수님 사랑이 모든 판단의 잣대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대자유인>으로서의 비밀이 바로 여기 있으니 이런 사랑의 잣대가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사랑과 자유는 함께 가니 사랑할수록 자유롭습니다.
“손을 뻗어라.”
오그라든 손과 더불어 오그라든 마음도 활짝 펴졌을 것이니 전인적 치유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대자유인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참으로 고무적이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바로 순결과 진실이라는 주님의 말씀과 성체의 누룩 없는 빵을 모시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녁로서, 빛의 자녀로서 존엄한 인간 품위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
당신이 감싸시니, 그들은 당신 안에서 기뻐하리이다.“(시편5,12ㄴ).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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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
당신이 감싸시니, 그들은 당신 안에서 기뻐하리이다."
(시편5,12ㄴ).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