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다시 한 번 검토(檢討)하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원문(原文)에서 ‘中國’(중국)과 ‘東國’(동국)이라는 낱말을 검색(檢索)하면,
‘中國’(중국)은 총(總) 2,386건(件)이 나오며,
‘東國’(동국)은 모두 346건(件)이 나옵니다.
참고(參考)로 부언(附言)하면,
원문(原文) 기준(基準)으로 ‘朝鮮’(조선)이라는 낱말은 총(總) 3,130건(件)이 나옵니다.
그리고 ‘本朝’(본조)는 1,296건(件)이며, ‘東夏’(동하)는 39건(件)이고, ‘靑邱’(청구)는 15건(件)이며, ‘小中華’(소중화)는 19건(件)입니다.
또한 ‘中朝’(중조)는 2,903건(件)이고, ‘中夏’(중하)는 22건(件)이며, ‘中州’(중주)는 48건(件)이고, ‘中華’(중화)는 149건(件)입니다.
[참고=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지금(只今)까지는 단순(單純)하게, 그 낱말이 나오는 횟수(回數)를 제가 언급(言及)하였습니다.
위에서 열거(列擧)된 낱말들 가운데 가장 빈도(頻度)가 높은 것은 역시(亦是) ‘朝鮮’(조선)입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원문(原文)에서 그 낱말들을 검색(檢索)하였으므로, 그것은 당연(當然)한 결과(結果)라고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言及)된 낱말들을 검토(檢討)하면, 아래와 같은 대비(對比) 관계(關係)가 성립(成立)됩니다.
‘中國’(중국) vs ‘東國’(동국)
‘中朝’(중조) vs ‘本朝’(본조)
‘中夏’(중하) vs ‘東夏’(동하)
‘中州’(중주) vs ‘靑邱’(청구)
‘中華’(중화) vs ‘小中華’(소중화)
이제부터는 ‘中國’(중국)과 ‘東國’(동국)이라는 낱말에 관심(關心)을 두고자 합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中國’(중국)과 ‘東國’(동국)은 어떻게 구별(區別)되는 것일까요?
‘朝鮮’(조선)은 ‘국호’(國號)라고 보는 것이 타당(妥當)한데, ‘中國’(중국)과 ‘東國’(동국)은 그렇지 않다고 보입니다.
‘中國’(중국)과 ‘東國’(동국)이라는 낱말이 공식(公式) 국호(國號)는 아니지만, 모름지기 특정(特定) 국가(國家)를 가리키는 ‘별칭’(別稱) 또는 ‘별명’(別名)이라고 보입니다.
15세기(世紀)의 기록(記錄)인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에서는 ‘中國’(중국)을 ‘황제(皇帝)가 계시는 나라’ 곧 ‘황제국’(皇帝國)이라고 합니다.
혹자(或者)는 ‘中國’(중국)을 조선(朝鮮)의 중앙조정(中央朝廷)이라고 해석(解析)하는데, 그것이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이라면 ‘東國’(동국)은 무엇일까요?
‘東國’(동국)은 조선(朝鮮)의 지방조정(地方朝廷)일까요?
조선(朝鮮)의 지방조정(地方朝廷)은 ‘東國’(동국) 하나만 있었을까요?
‘中國’(중국)이 ‘황제국’(皇帝國)이라면, ‘東國’(동국)은 ‘제후국’(諸侯國)인가요?
그 당시(當時)에 제후국(諸侯國)은 하나만 있었을까요?
황제국(皇帝國)과 여러 제후국(諸侯國)을 일괄(一括) 통칭(統稱)하여, 조선(朝鮮) 전역(全域)을 ‘東國’(동국)이라고 불렀을까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전반(全般)에서 이러한 낱말들의 정의(定義)는 무엇일까요?
‘中國’(중국)을, ‘국가’(國家)가 아닌, 이른바 ‘조정’(朝廷)이라는 개념(槪念)으로 치부(置簿)할 내용(內容)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中朝’(중조)라는 낱말이 따로 존재(存在)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國’(국)은, 작든 크든, 어디까지나 지리적(地理的) 개념(槪念)의 특정(特定)한 ‘나라’를 가리키는 한자(漢字)입니다.
하여간(何如間) ‘中國’(중국)과 ‘中朝’(중조)는 각각(各各) 그 쓰임새가 다르다고 봅니다.
중국(中國)의 조정(朝廷) 곧 ‘中朝’(중조)라는 표현(表現)은 분명(分明)히 ‘조정’(朝廷)의 개념(槪念)이 내재(內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조정’(朝廷)은 ‘조가’(朝家) 또는 ‘조당’(朝堂)이라는 낱말과 같은 것입니다.
‘中國’(중국)은 ‘황제국’(皇帝國)이므로, ‘中朝’(중조)를 황제국(皇帝國)의 조정(朝廷) 곧 ‘皇朝’(황조)라고 불러도 무방(無妨)합니다.
또한 황제(皇帝)는 천자(天子)이므로, ‘皇朝’(황조)를 천자국(天子國)의 조정(朝廷) 곧 ‘天朝’(천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中朝(중조)=皇朝(황조)=天朝(천조)”라는 등식(等式)이 성립(成立)됩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원문(原文)에서, ‘皇朝’(황조)는 905건(件)이 나오며 ‘天朝’(천조)는 2,672건(件)이 나타납니다.
앞서 언급(言及)하였지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中國’(중국)과 ‘東國’(동국)이라는 낱말이 다수(多數) 등장(登場)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中國’(중국)의 역사서(歷史書)일까요?
아니면, ‘東國’(동국)의 역사서(歷史書)일까요?
아니면, ‘中國’(중국)과 ‘東國’(동국) 모두의 역사서(歷史書)일까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中國’(중국)과 ‘東國’(동국) 각각(各各)에 관(關)한 기록(記錄)의 분량(分量)은 어느 정도(程度)일까요?
두 가지의 경우(境遇)로 나누어 검토(檢討)할 필요(必要)가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작성(作成)한 사관(史官)들이 ‘中國’(중국)에 ‘東國’(동국)을 포함(包含)시켜 이를 하나의 ‘朝鮮’(조선)으로 보았다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中國’(중국)과 ‘東國’(동국)은 대내(對內) 관계(關係) 곧 조선(朝鮮)의 내부(內部) 관계(關係)로 서술(敍述)되었을 것입니다.
반면(反面), 종래(從來)의 정설(定說)과 같이, 기록(記錄) 당시(當時)의 사관(史官)들이 ‘朝鮮’(조선)을 ‘中國’(중국)을 제외(除外)한 ‘東國’(동국)으로 보았다면 결국(結局) ‘中國’(중국)은 별개(別個)의 국가(國家)로 취급(取扱)되므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中國’(중국)과 ‘東國’(동국)은 대외(對外) 관계(關係) 곧 조선(朝鮮)의 외부(外部) 관계(關係)로 표현(表現)되었을 것입니다.
지금(只今)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두 가지의 경우(境遇) 가운데 어느 쪽으로 기록(記錄)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혹자(或者)는 오늘날 세상(世上)에 공개(公開)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과거(過去)의 어느 시기(時期)에 왜곡(歪曲)/날조(捏造)되었다고 주장(主張)하는데,
그렇다면 본래(本來)의 내용(內容)은 어떻게 기록(記錄)되었을까요?
첫댓글 의미있는 해석 입니다 항상 친일학자의 엉터리 해석에 혼돈만 가중되는 속에서 빛을 찾은 느낌입니다
내국인들 끼리는 중국,중조,중하,중주,중화 라고 언어 사용하고 외국인인 타 민족에게는 동국,본조,동하,청구,소중화 라고 이야기 했다라고 이해 하면 됩니까 ?
저의 해석입니다만, 기자조선과 이조선을 보면, '기자'와 '이'가 사람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中朝’(중조)의 경우도 사람이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런지요? 즉, 中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인데, 아직 확신은 없습니다. 중=승려=Monk가 되기도 합니다... 서양을 보면 수도원 문화가 많이 발달되 있고, 수도원은 일종의 절(temple)로 인식이 되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학문과 예술이 발달을 하였고, 칼뱅이 이야기한 '신성한 공동체'의 기원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스위스와 동유럽지역이 그렇습니다. 근본과 출신을 따지기 보다는 공동체적인 삶에 더욱 높은 가치를 두는 부분도 있죠.
중세에 화학적인 방법으로 금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독특한 철학을 바탕으로 연금술이 발달하였고(후대 화학의 발전을 가져옴),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법사의 전설이 구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컨셉으로 접근해 본다면, 本朝’(본조)라는 것은 근본을 따지는 사람들의 그룹이 되겠죠. 본이 어디냐를 기본적으로 물어보니, 본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이 그룹에 들어갈 수가 없죠. 그리고, 그러부터 파생된 사회질서가 강력하여 보다 보수적인 행태를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본조보다는 중조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죠.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그들의 본이 있게 되어 있으므로, original은 본조가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