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소침(意氣銷沈)이란 말이 있다. 물론 한자(漢字) 말이다. 기운이 없고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 내가 그렇다.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 모르긴 해도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병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2주 전 받은 한 통의 전화는 내게 '솟아날 구멍'과도 같았다. 정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헌신예배 부탁을 해 온 것은 기적과도 같다. 기분 전환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주 전이라고 했다. 구미 새빛교회 이종형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4월 8일(바로 오늘!) 제1여전도회 헌신예배에 말씀을 전해달라는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평소 바라던 바가 이렇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주일 시간 조정을 해야 했다. 새빛교회에 오후 2시까지 도착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11시 낮 예배를 좀 일찍 끝내고 점심 식사에 속도를 낸다. 오후 예배를 당겨 드리고 차량운행 일부를 김 집사님과 분담해야 했다.
그래도 햇살요양원 주일 예배는 대체할 길이 없다. 송구스럽게도 쉬어야만 했다. 요양원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눈동자를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워져 왔다. 미리 양해를 구했다곤 하지만 미안함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상념에 젖은 채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런 도로에서의 쾌속질주는 가끔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들의 ‘질풍노도’가 이런 감정일까. 2시 10분 전에 새빛교회에 도착했다. 김 장로님이 교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함이 피어오르는 교회이다. 사람들이 따뜻하니 건물에서도 훈기가 돈다. 오후 예배는 본당이 아닌 지하 예배당에서 드린다고 했다. 만나는 분들마다 반갑게 인사를 한다. 덩달아 마음이 맑아진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징조가 좋았다.
말씀 전하기 딱 좋은 숫자이다. 숫자가 너무 많으면 위축되기 쉽고, 반대로 너무 적으면 솔직히 힘이 나지 않는다. 50 여 명, 느낌이 좋다. 시종(始終) 좋은 것뿐이다. 회중과 호흡이 맞을 것 같다. 이종형 목사님이 나를 소개했다.
고전 4:14-17을 본문으로 잡아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바울의 신앙과 신학에 기초해서 기도, 전도, 봉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진부한 내용을 새롭게 하려고 애를 썼다. 나름 기도하며 준비한 것이다.
세 개의 예화를 덧붙였다. 기도와 관련해서는 아마존강 상류의 식인종 마을 C 선교사 이야기, 전도와 관련해서는 찰스 M. 쉘던의 소설 <What Would Jesus Do?>에서 유래한 WWJD 운동. 기독교인들이 신발끈을 다져야 한다는 내용임에도 반응이 좋다.
예배를 끝내고 담임목사님 옆에 서서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손으로 전달되는 마음들이 따뜻했다. 구미는 복음의 옥토가 못 된다. 박토(薄土)이다. 새빛교회로 인해 토질의 변이(變移)가 일어나길 바란다. 기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