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아, 그 물을 마시지 마오 >
지구 구성 분자의 70퍼센트가 물이고 사람 몸의 60-70 퍼센트도 물입니다.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에 잉태되면서 바다(양수)에서 생육을 시작합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물이 있었다고 창세기 1장은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물은 태초 이전의 시간으로부터 흘러온 존재의 근원 물질입니다.
그래서 신화에는 강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대표적인 강은 스튁스로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입니다. 비통의 강인 아케론과 망각의 강인 레테, 슬픔의 강인 코퀴토스, 불의 강인 플레게톤 들이 그리스신화에 나옵니다.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용(龍)은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관문이 요단강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요단강을 건너다’는 관용어를 죽음에 대한 비유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류는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강(물)에 투사하여 삶과 죽음, 씻김과 환생 같은 종교적 표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특별한 물을 마십니다. 자연 상태의 물이 아니라 가공된 물을 마십니다. 콩을 볶고 갈아서 그 분자들을 씻어내거나 압축하여 기름을 짜 맑은 물에 희석하여 마십니다. 그것을 커피라고 합니다. 이 커피를 파는 물장사는 호르무즈를 통과해야 하는 중동산 검은 물에 버금갈 정도로 덩치가 커졌습니다. 세계적으로 덩치가 가장 큰 물장사는 스타벅스입니다.
스타벅스는 물을 표상으로 합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기업 명칭으로 삼고, 바다 요정 세이렌의 초상을 로고로 만들었습니다. 항해사와 바다 요정, 그리고 커피는 다 물을 원료와 표상으로 합니다. 물은 바다처럼 난폭하게 사람을 위협(세이렌)하기도 하지만 그 위험한 파도를 넘는 지혜(항해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명과 지혜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道=진리)를 물과 같은 것(上善若水)이라고 말합니다.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르며 순리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물을 마시는 것은 생물학적 욕구에 의해서이지만, 커피나 차 같이 물을 재가공하여 마시는 이유는 심미적 아름다움을 체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판매하는 물장사가 도를 모를 뿐만 아니라 천박하고 비열한 인간이라면, 우리 조상들이 관용적으로 썼던 말로 ‘부정 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 레위기에도 부정한 것(타메 טָמֵא)에 대한 분류와 터부(taboo)가 나옵니다. ‘부정(不淨) 타다’는 말은 깨끗하지 못하거나 나쁜 기운, 악귀 같이 사악한 것에 접촉하여 재수 없는 일이나 해(害)를 입는다는 뜻이니 성서의 부정(타메) 관념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양자물리학의 끈이론(string theory)에 따르면 물질의 최소 단위는 입자가 아닌, 진동하는 1차원의 끈입니다. 그러므로 ‘부정 탄다’는 말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질 가운데 더럽고 악한 기운이 파동을 일으키며 전이되는 물리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 정용진이 사과를 했습니다.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사과문의 말미에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이라고 합니다. 스타벅스의 반사회적 행위가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 중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행위는 다양성의 차원에서 정당하다는 궤변입니다. 나아가 스타벅스 불매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는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이 고통을 겪는다고 호소합니다. 이건 사과가 아니라 또 다른 혐오와 조롱입니다.
이 자는 태어나서 한 번도 타자의 아픔에 공감해 본 적도 없고 자기를 돌아보거나 반성해 본 적도 없는 인간입니다. 더욱이 사과 따위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인간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돈으로 해결하고 인맥과 권력, 언론을 동원하여 암막을 치며 편리하게 살아온 자입니다. 인간성이 부정한 자입니다. 그런 인간에게서 흘러나온, 부정(不淨)의 기운이 파동을 일으키는 물(커피)은 돈을 준다 해도 먹고 싶지 않습니다. 그 물을 마시게 되면 부정 탈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닷길에 10년을 표류합니다. 그는 요상한 노래를 불러 사람을 유혹하여 죽인다는 바다 요정 세이렌의 해역을 통과할 때, 선원들의 귀를 밀납으로 막고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어 세이렌의 유혹을 견뎌 귀향에 성공합니다. 세이렌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것과, 그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은 거짓과 야만으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방법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서 더 안전한 민주주의로 항행하기 위해서는 그 물을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공무도하가는 이제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임아, 그 물을 마시지 마오.
첫댓글 사진은 2026년 5월 12~16일, 제주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강남지역협의회'에 서울동남노회 훈련원이 참석. 공항컷과 애월의 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