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근혜입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스에키 후미히코 선생님의 『일본불교사』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1장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와 남도(南都)의 교학(14-54p)' 부분 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쇼토쿠 태자(574~622)는 일본 최초의 여자 천황인 스이코 천황(推古天皇, 일본 33대 천황, 554년 ~ 628년 4월 15일)의 섭정(攝政)을 맡아 국가체제 정비(견수사 파견, 관위십이계와 헌법 17조 제정, 사서 찬록 등)을 정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심이 깊어 절을 세우고 직접 불경에 대해 강의도 하고 주석서도 썼다고 합니다.
595년 고구려 승려인 혜자와 백제의 승려인 혜총이 건너오자 혜자를 스승으로 삼아 5계를 받고 불교를 널리 보급하는데 앞장 섰다고 합니다. 또 오사카 지방에 시텐노지(四天王寺)라는 사찰을 세우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고구려의 기술자들을 초청하여 호류지(法隆寺)를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호류지는 쇼토쿠 태자를 그 개조로 삼는 쇼토쿠종(聖德宗)의 총본산입니다.
이러한 행적들로 보아 분명 쇼토쿠 태자는 일본 역사에서, 일본 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예전에는 일본 만엔짜리 지폐의 모델이 쇼토쿠 태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불교사 23p에 굉장히 흥미로운 문장이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생략) 근대의 쇼토쿠 태자관을 보면, 불교 신자에 의한 소박한 태자신앙에서 천황제와 불교에 접점에 서는 존재로서의 전전(戰前) 국가주의체제하의 다소 수상스러운 평가, 스스로 전향 체험을 거듭한 가메이 쇼이치로(龜井勝一郞)의 고대 지식인의 비극이라는 관점, 거기에 근년 화제가 된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의 '쇼토쿠 태자 원령론(怨靈論)'에 이르기까지, 신란(親鸞)과 더불어 다양한 쇼토쿠 태자론이 전개되어 왔다. 최근에는 소설이나 만화의 주인공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 부분을 읽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원령이라 하면 한이 많은 무시무시한 귀신인데 어째서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지 신기하고 이상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숙제 겸 해서 찾았었던 원령론에 대한 위키피디아 내용을 번역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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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십자가』(부제: 호류지론)은 철학자 우메하라 다케시가 저술한 호류지에 관한 평론. 잡지 『스바루』(당시는 계간지)에 3회에 걸쳐 게제되어, 1972년(쇼와 47년) 5월에 신조사에서 출판되었다.
호류지는 불법진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쇼토쿠 태자의 원령을 진혼할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그 대담한 반론이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에 여러가지 고전이나 사료, 논고 등을 논거로서 제시하고 있다.
우메하라 타케시는 「재앙의 조건」 으로서
1. 개인이 신으로 모셔지는 것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패자가 많다.
2. 게다가 그 때 그들은 무죄인데 살해 당한 사람이다.
3. 죄없이 살해된 자가, 병이나 하늘의 재앙, 기근에 의해 시대의 지배자를 괴롭힌다.
4. 시대의 권력자는 그 재앙을 가라앉히고 자기의 정권을 평안하고 태평하게 하기 위해 재앙령을 정성들여 묻는다.
5. 그와 함께 재앙의 신의 덕을 칭송하고, 좋은 이름을 그 령에게 추증한다.
라는 공식을 부여하여, 성(聖)전개해 간다. 성덕태자가 이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호류지의 건조목적이 쇼토쿠 태자의 원령진혼을 위한 것일거라는 가능성에 대한 논을 우메하라 타케시의 호류지론에서 또 하나 착안할 특징은, 소가씨(蘇我氏)를 제치고 정치적 실권을 쥔 후지와라씨(藤原氏)가 역사를 지배했다고 하고, 『니혼쇼키(日本書紀)』의 실질적인 저자가 후지와라노 후미토(藤原不比等)가 논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식이나 통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대담한 가설과 섬세한 자료에 의한 장대한 논증, 고찰은 많은 학자들을 놀라게하여, 1972년에 제26회 매일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작가 타니자키 준이치로는 그 서스펜스 같으며 드라마틱한 구성에 「맹연문학(猛然文学)」, 비소설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또 고고학자가 아닌 한 철학자의 논고가 꽤 전문적인 역사적, 고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독자를 감탄시켰다.
한편으로는 고고학, 역사학 입장에서는 사카모토 타로(坂本太郎)의 「호류지 원령사설에 대해서」(『일본역사』第300号)를 시작으로, 격한 비판이나 반론이 나오고 있다. 수수께끼가 많은 호류지 건축 목적에 대한 논은 오늘날 여러가지 의논을 주고받고 있으며, 완전한 논증은 그것을 확실하게 입증할 문헌이 발견되지 않는 한, 추측의 영역에 머문다는 것이 지금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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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굉장히 재미있는 이론이지요?
이런 이론이 이야기 되기에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와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역사 속 위대한 인물마저 '원령'으로 만들 수 있는 일본 사람들의 정신세계 근저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하나 더 늘게 되었답니다.
다음에도 이어서 쇼토쿠 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쇼토쿠 태자와 산교기쇼(三經義疏)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김근혜 합장
첫댓글 "게다가 호류지의 건조목적이 쇼토쿠 태자의 원령진혼을 위한 것일거라는 가능성에 대한 논을 우메하라 타케시의 호류지론에서 또 하나 착안할 특징은, 소가씨(蘇我氏)를 제치고 정치적 실권을 쥔 후지와라씨(藤原氏)가 역사를 지배했다고 하고, 『니혼쇼키(日本書紀)』의 실질적인 저자가 후지와라노 후미토(藤原不比等)가 논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분은 비문(非文)입니다. 읽어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어요. 주어가 무엇인지? 다시 고쳐서 쓰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비문이 등장하는 것은 그 내용을 글쓰는 이가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고했어요. 나무아미타불
그리고 또 하나 " --- 다고 합니다."라는 표현이 앞 부분에서 쭉 이어지는 것은 좋지 않아요. 남이 하는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종하고, 글쓰는 이의 자신이 없어요. " --- 했다", 라고 하면서, 가끔 정말로 인용이 필요한 부분에서만 " --- 라고 합니다"가 나와야 합니다. 고쳐 보세요. 나무아미타불
蘇我氏を排して政治的実権を握った藤原氏が歴史を掌ったとし、『日本書紀』の実質的な著者が藤原不比等と論じている所と言える。
가 교수님이 지적하신 문장의 원문입니다. 掌ったとし、이 부분이 제일 문제인데... 의역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역사를 지배했었다고 하며(?), 지배했었다는 것이(?) 이런 식으로 고쳐야될까요?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의역이 좀 필요하네요. "역사를 좌지우지하였다고 해서"라고 한다면 어떨가요?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