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산행기
일행을 태운 버스가 교대역을 출발해 행사 집결지로 가기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지났다. 오늘은 대둔산에서 전국 건축사 등산동호회 단체 산행을 하는 날이다. 죽암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회덕을 지나 9시 35분 대둔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하늘엔 옆은 구름이 끼어 땡볕을 막아주었다. 너른 주차장 앞쪽에 다른 지역에서 온 차량도 몇 대 서 있었다. 1층 위로 햇살이 송송 들어오도록 2층 데크 강판이 덮여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 공기 내음을 맡으며 등산로 입구로 올라가는 길가에 할머니 한 분이 산나물이랑 감자 등을 팔고 계셨다. 등산로 입구로 올라서니 오늘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보였다. 그 앞에서 충북, 경남, 전북 등지에서 먼저 온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 길 양 옆으로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보였다. 그 만큼 방문객이 많은 산임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가다보니 왼편에 케이블카 승차장이 보였다. 옆으로 가던 일행 한분이 케이블카를 타고 가자며 엄살을 부렸다.
계절이 여름철로 접어들고 올해 이른 더위가 찾아와서인지 짙푸러진 녹음이 숲 내음을 더 깊게 했다. 포장길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너덜바위가 깔린 길이라 걷기 어려웠다. 점차 가파라지는 길을 오르는 동안 여러 지역에서 온 회원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지났다.
위를 바라보니 높다란 축대 사이로 난 길 위에 ‘대둔산 원효사’라는 프랫카드가 걸려 있었다. 축대를 넘어서니 앞쪽 외부 마당에 경량철골에 비닐을 씌운 시설 안에 불상이 존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왼편에 적벽돌과 붉은 색칠을 한 기와로 덥힌 6각형 암자가 놓여 있었다. 다시 길을 올라서니 원효대사가 지나다 바라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보냈다는 동심바위가 보였다.
더 가파라진 길을 조금 더 오르니 금강문이 나타났다. 옆에 세워 놓은 표지판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금산을 점령하였을 때 영규 대사가 의병과 함께 싸우기 위해 연곤평으로 진군할 당시 이곳을 지났고 권율 장군이 이곳에서 전승을 거두기도 한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
금강문을 지나 출렁다리로 지나는 길로 접어들어서니 출렁다리 위로 정상부 풍경이 펼쳐보였다. 이 산이 소금강, 작은 설악산으로 불리듯 황홀한 경치를 자아냈다. 출렁다리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려고 줄을 섰다. 뒤에 온 우리 회원들도 여기저기서 포즈를 잡고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출렁다리 아래쪽 절벽에 걸터앉아 스케치를 했다. 정상부의 기암괴석과, 거기서부터 중간에 솟은 바위사이에 걸쳐진 출렁다리, 그리고 그 아래로 깊게 패인 절벽을 한 화면에 포착해 그리는 동안 출렁다리를 건너던 회원들이 뒤돌아서서 기념사진을 찍다 손을 흔들어주었다.
스케치를 마치고 다리위를 지나며 앞을 보니 정상부의 경치가 휜출하게 보였다. 그 장면이 대둔산의 가장 빼어난 장면처럼 느껴져 다리 위에 멈춰 서서 다시 스케치를 했다. 뒤에 오던 다른 일행들이 동행한 여자 분을 놀래려고 크게 발을 굴러서 다리가 출렁거려서 때때로 자세가 불안전하게 되었다. 스케치를 마치고 다시 정상을 향해 올랐다. 경사가 심한 오름길이 정상부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정상부 가까운 지점의 언덕에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우측에 앉아 쉬고 있던 울산건축사회 회원들에게 다가가다 전에 낙동정맥 단독종주 때 길을 물어보았던 이경태 건축사와 만났다. 벌써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 때 마음을 교감하며 추억을 나누었다. 그리고 함께 울산 회원 일행과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예기를 나누었다.
다시 정상을 향했다. 하늘에 먹장구름이 구름이 많아지며 갑자기 날씨가 찌뿌등해지고 있었다. 정상부 바로 아래에 이르니 함께 온 서울 일행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올라오면서 남겨둔 김밥을 먹은 터라 바로 정상으로 발길을 옮겼다. 막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2시 19분 정상인 마천대(878)에 올랐다.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과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및 금산군 진산면에 걸쳐 있는 대둔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며 천여 개의 암봉이 6㎞에 걸쳐 이어져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대둔산은 주화산에서 시작되어 부소산에 이르는 금남정맥 줄기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데, 대둔(大芚)이라는 명칭은 ‘인적이 드문 벽산 두메산골의 험준하고 큰 산봉우리’를 의미한다. 마왕문·신선바위·넓적바위·장군봉·남근바위 등의 기암과 칠성봉·금강봉 등의 첨봉(尖峰)이 경승지를 이루는 가운데 금강구름다리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주요 사찰로는 안심사(安心寺), 태고사, 신고문사 등이 있었으나 모두 6·25때 소실되고 말았는데, 특히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元曉)가 이 절터를 발견한 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12승지(勝地) 중 하나이다. 한용운(韓龍雲)도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승지를 논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한다.
정상부에는 다른 정상석들과 달리 스테인레스 조형물로 된 개척탑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자연석에 글씨만 새긴 것들에 비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펼쳐진 산세가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산수화처럼 더욱더 그윽해 보였다. 앞쪽 가까이에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장엄한 기운을 내뿜고 그 뒤로 겹겹이 지나는 산세가 점차 희미해지며 원근의 깊이감을 자아냈다. 그 쪽을 보며 스케치를 하는 사이 제주와 경북 회원 분들이 올라와 인사를 나누고 내려섰다.
1시 4분 삼선바위 앞에 도착했다. 고려 말 한 재상이 나라가 망한 것을 한탄하여 세 딸을 데리고 이곳으로 내려왔는데 재상의 딸들이 선인으로 변하여 바위가 되어 서 있 있다는 전설이 서려 있었다. 위아래로 솟아 있는 그 봉우리들 사이에 경사가 급한 긴 철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 조금 아래쪽에 있는 구름다리보다 더 위험스러워서 그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구름다리로 오른 후 오른쪽 산행길로 돌아내려가는 곳에 높다란 바위들이 마치 석실처럼 둘러쳐진 모서리를 지났다.
1시 29분 오를 때 지났던 원효암에 도착했다. 그 아래로 내려오다보니 서울 일행 몇 분이 여기 저기 바위 턱에 앉아 한가히 쉬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주고 시장끼가 느껴져 앞서 식당으로 향했다. 2시 행사 장소인 한밭식당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니 너른 식당 안에 회원들이 빼곡이 앉아 있었다.
2시 15분 행사를 시작했다. 안치규 사무총장이 행사 시작을 알리고 이종호 회장의 인사말을 들은후 신종복 부회장이 전국 건축사 등산 동호회 임원소개와 회장 본회 회장의 축사 대독을 한 후 선물 추첨에 당첨된 회원들을 호명할 때마다 소속회 회원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그리고 각 테이블마다 모여 앉은 회원끼리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오늘 산행의 순간만큼은 자연의 기운을 쏘이며 세상 시름을 다 잊은 듯 모두가 다 밝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운영진이 행사를 마친다며 나가면서 회원 모두에게 준비한 기념품을 받아가라고 했다. 식당을 나서자 비닐봉지에 담은 검정콩과 수건을 한 장씩 나눠 주었다. 그리고 단체 사진을 찍고 각 지역 회원들이 각자 타고 온 버스에 탑승하고 귀갓길에 올랐다.
요사이 산행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대자연의 품에서 맑은 정기를 쏘이며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산행은 가장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가장 건강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건축사 회원들이 모여 세상 시름 다 잊고 수려한 산에 올라 즐거운 시간을 함께 갖는 이런 행사가 순수하게 느껴진다.
(20160611)
첫댓글 좋은글 좋은사진 감사합니다'''대건등 결과보고 자료로도 활용하도록 하겠읍니다''''ㄳ
행사 치루느라 임원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거기서 그렇게 밝고 유쾌해 보이셨던 박기현 회장님이 갑작스런 사고로 별세 하신 것이 너무도 충격입니다... 이리저리 연락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