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주지훈, 영민한 신인 배우의 발걸음
만화로 인기 있었던 박소희의 ‘궁’이 드라마화 된다고 했을 때, 우려가 많았습니다. 만화 팬들은 극히 ‘만화적’인 이 소재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걱정했고, 캐스팅에 대해 우려했습니다. 황인뢰 PD가 감독을 맡는다는 것에 대한 신뢰감은 있었지만, 생소한 모델 출신 신인 배우와 가수 출신으로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하는 여배우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감은 컸지요. 당시 가상 캐스팅을 하면서 강동원이나 조인성 같은 쟁쟁한 청춘 스타들이 맡아줬으면 하고 바랬던 시청자들에게 실망은 더욱 컸겠지요. 미리 공개된 스틸 컷을 본 후 실망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졌습니다. 만화적 상상력을 고스란히 구현해 낸 미술 세트들과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배우들, 신인 배우들의 모자란 부분을 커버 해 준 중견 배우들의 활약에 힘입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이 [궁]으로 큰 덕을 보았지만, 아마 가장 큰 성과를 얻었던 것은 주지훈 이었을 겁니다. 윤은혜는 어찌되었건 잡음 속에서도 주목 받을 수 있었지만 남자 주인공 ‘신’의 역할을 맡은 주지훈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는 있었지만, 거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윤은혜가 논란 속에서도 나날이 기사에 올랐던 것과는 달리 그는 주목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논란을 뒤집은 채 [궁]은 ‘최악의 캐스팅’에서 ‘최상의 캐스팅’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노련한 감독과 그가 잘 고른 신인 배우들의 조합은 성공을 이루어 냈고, 이들은 흩어졌습니다. 이 후, 윤은혜는 바쁘게 차기작을 골랐습니다. [포도밭 그 사나이]였죠. 이 역시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전작과 거의 다름 없는 캐릭터를 맡았고 그 캐릭터들의 모습은 ‘배우’가 자유 자재로 그 캐릭터의 옷을 입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윤은혜라는 사람 그 자체의 모습이 그런 면이 많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실제로 드라마 ‘궁’에도 윤은혜를 캐스팅 할 때 황인뢰 감독이 “채경이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라고 말했으니까요. 아마도 자연인 윤은혜와 캐릭터가 잘 맞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주지훈은 윤은혜에 비해서는 긴 공백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마왕]이었지요. 솔직히 말하면, 그가 [마왕]에 어울릴 거라는 생각은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직 그는 겨우 트렌디 드라마 한 편을 성공시킨 신인 배우에 불과했고, 이들이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아직은 ‘궁’의 성공이 황인뢰 PD의 덕이 컸다고(물론 그렇기도 했습니다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쉽지 않은 장르에, 완성도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던 [부활]의 느낌과 상당히 맞닿은 점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캐릭터도 쉽지 않았지요. 자신과 대척 점에 서 균형을 맞출 배우는 이미 연기력을 인정 받은 엄태웅이었습니다. 캐스팅을 놓고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많이 기울어 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분명 다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처럼 보여질지도 모르지만, 저는 좋은 배우라면 ‘똑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 배우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연기하면서 다소 ‘괴물’ 같은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본능적인 연기를 천부적으로 타고나지 않았다면 배우는 철저히 ‘경험’과 ‘영민함’ 여부에 따라 성공이 결정 됩니다. 배우는 작품을 고르는 눈도 필요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을 판단할 판단력도 필요합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자신이 그 역할을 잘 연기해 내기 위해서는 인물에 대한 이해력이 중요합니다. 그 이해력은 무엇보다 ‘똑똑함’에서 나온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도 많이 읽어야 할 테고, 적당한 선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당연하게도 제가 말하는 똑똑함이 단순히 ‘학습적인 성과’는 아닙니다.
말하자면, 주지훈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영민한 배우입니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선택’을 잘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가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는 소위 ‘기가 센’ 배우는 아닙니다. 그래도 최소한 그가 맡은 역할로 드라마 전체에 폐를 끼치지는 않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신’에서 ‘오승하’로 변신한 그의 모습은 썩 훌륭합니다. 괜히 ‘오변진리교([마왕]에서 주지훈이 연기하는 ‘오승하’ 변호사를 따르는 종교/인터넷 패러디)’가 나오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는 첫 작품의 성공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고, 신중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골라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의심을 만족으로 바꾸기에 충분했습니다. 일단 [마왕]에서는 자신의 비주얼과 캐릭터가 너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궁’에서도 상처가 있는 인물이기는 했지만, 훨씬 더 어둡고 복잡한 캐릭터를 능력 내에서 잘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찌 되었건, 그는 자신이 해 낼 수 있고 자신을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캐릭터를 선택한 셈이지요.
좀 난데 없지만 ‘현빈’ 생각이 나네요. 시트콤으로 인기를 얻고, [아일랜드]를 선택해 여러모로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었죠. 그리고는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스타덤에 올랐구요. 그의 연기 또한 그리 나쁘지 않아요. 물론 영화로 선택한 [백만 장자의 첫사랑]은 다소 이해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지만요. 다음 드라마로 선택한 [눈의 여왕]의 캐릭터도 매력은 있었구요. 그도 외적인 면에 있어서 꽤 영민한 구석이 있는 배우라 미래가 기대 됩니다.
단 두 편이지만, 그가 선택하는(‘궁’은 선택이라기 보다는 선택 당한 것이었겠지만) 혹은 연기하는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그가 제법 ‘똑똑한 배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선택하는 다음 작품 선택 여부에 따라 갈라지기는 하겠지만, 어찌 되었건 그의 모습은 여러모로 다음 선택을 기대하게 합니다. 현재로써 그가 보여주는 움직임은 분명히 ‘영민한 배우의 첫 발걸음’ 바로 그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겠지요. 부디, 그 발걸음을 조심히 옮겨 그가 앞으로도 ‘좋은 선택’으로 ‘좋은 배우’가 되길 바랍니다.
※ 출처&원문보기 : 다음 블로그 'Fermata' (http://blog.daum.net/suda_b/5818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