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신앙대청소
2024년 3월 24일 빌 2:3-9
1. 영성훈련
(1) 영(靈)
교회에서는 영에 대해 많이 말하는데, 영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는 바람, 숨 같은 단어로 영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한자로는 이를 영(靈)이라고 썼습니다. 이 영이라는 글자가 재밌습니다. 제단(巫) 위에 그릇(口口口)들이 주욱 놓여 있는데, 그 위로 비(雨)가 촉촉하게 내리는 모습입니다. 제단 위에 그릇들이 주욱 놓여 있는 것은 제사상을 의미합니다. 가뭄이 오래 되면 제사를 드리지요. 비를 내려달라고 빈다고 해서 기우제(祈雨祭)라고 하지요. 이런 제사상을 생각하면 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데, 그 위로 비가 촉촉하게 내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야말로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일이 모두 풀려나가겠지요. 이런 모습이 영적인 겁니다. 본래 한자가 그런 뜻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저는 그렇게 이해합니다. 이런 촉촉한 마음의 상태가 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촉촉한 마음의 상태를 영성(靈性)이라고도 부릅니다. 교회에서는 영적인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이런 촉촉한 마음의 상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메마르면 안 됩니다. 농사짓는 밭도, 우리 마음 밭도 메마르면 안 됩니다. 푸석푸석하면 안 돼요. 먼지만 납니다. 그러면 안 돼요. 촉촉해야 합니다. 촉촉하려면 자꾸만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위에 비가 내려야 합니다.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란 찬송은 이런 모습을 잘 나타내줍니다. 비가 없이, 물이 없이 촉촉해질 수 없습니다.
(2) 영성훈련
그래서 교회에서는 영성훈련이란 걸 강조합니다. 영성훈련이란 또 뭘까요? 어떤 분이 설명하기를 영성훈련이란 “닮고자 하는 사람을 마음에 담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가 닮고자 하는 사람을 마음에 담는 것이 영성훈련이랍니다. 참 기억하기 좋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영성훈련이란, ‘예수를 닮기 위해 예수를 나의 마음에 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내가 아니라 예수가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은 난데, 행하는 것은 예수’인 그런 경지에 이르는 것이 영성훈련의 목표입니다. 모습은 나예요, 그런데 하는 일은 예수입니다. 우리 교우들은 모두 그런 경지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모습은 난데, 하는 짓은 사탄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가 막히는 노릇이지요. 살다가 우리가 이런 사람 되어서야 하겠습니까? 모습은 나인데 하는 일은 예수인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빌 2:3-9
(1) 예수님의 마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빌립보의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의 바탕이 변해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변할 수 있습니까? 5절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이 마음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했습니다. 옛 번역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모든 사역을 잘 감당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6-8절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2) 자기를 비워서
신학에서 예수가 누구냐는 문제를 그리스도론, 혹은 기독론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빌립보서 2장의 신앙고백은 기독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 나타난 동사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비워서’, ‘낮추시고’, ‘순종하셨으니’,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단어들은 하나같이 낮아지는 마음, 겸손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모든 의미를 하나로 담고 있는 “자기를 비워서”(7절)라는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태도를 가장 잘 표현한 구절입니다. 영어성경 NIV에서는, 이 ‘자기를 비워서’라는 구절을 ‘make himself nothing’이라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자기 자신을 무(無)로 만들어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품어야 할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런 예수를 높이셨습니다. 9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름이 인격 전체를 대신하여 쓰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자기를 낮춤으로 높아지는, 죽음으로 살게 되는, 모든 사람을 섬김으로 모든 사람을 얻게 되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버림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기독교 신앙의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3. 봄맞이 신앙대청소
(1) 이사 준비
제가 이번 주간에 이사를 갑니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오래 된 짐들 가운데 버릴 것들은 버리고, 오래 가려져 있어 먼지가 쌓인 곳들은 좀 털어내고 청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청소를 해도 그 색이 드러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화분을 두었던 발코니 타일 같은 곳은 먼지가 오래 쌓여서 닦아도 때가 지질 않는 겁니다. 너무 오래 찌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걸 보면서 ‘아, 어쩌면 우리 마음도 이렇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바닥이 너무 오래 찌들었어요. 세상살이 가운데 너무 물들어서, 때를 타서, 때가 때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요. 본래 타일 색이 그 색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만 그런 줄로 알고 살아간단 말입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이 본래 그런 색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지으시지 않았단 말입니다. 이 지저분하고 찌든 때를 벗겨버려야 합니다.
(2) 신앙대청소
오늘 오후에는 교회 대청소를 합니다. 봄이고, 또 교회의 가장 큰 절기인 부활절을 앞두었기에 준비하는 마음으로 예배당과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려고 합니다. 예배당도 쓸고 닦고, 예배당 입구 계단과 주방, 교육부실과 친교실, 화장실도 깨끗하게 청소하려고 합니다. 이 청소를 전 교인이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했으면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이 절기에 하는 교회 대청소가 저는 매우 뜻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셔서 청소부터 하셨지요? 다만 이 청소가 건물을 청소하는 데만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청소는 우리의 마음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속의 때로 찌든 우리의 마음을 청소해야 합니다.
오늘은 종려주일, 사순절의 절정을 이루는 때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배우는 이 계절에 마음 속 찌든 때를 깨끗이 닦아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