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식솔들 먹여 살리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가끔은 고스톱이라도 치면서 재 충전을 해야하고
거래처 사람들과 밤 늦도록 술을 마셔야 하니 얼마나 노고가 많으냐는 거다.
밤을 새고 조간 신문을 들고 들어오는 날이면 나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거실에서 잠시 신문을 뒤적이며 아내가 깰때를 기다린다.
얼마가 지나면 아내는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 해장국은 들고 오셨우?”
“응 입이 깔깔해서....” 하며 말끝을 흐리면
“얼른 옷 갈아 입고 씻으시구랴 내 시원한 북어국 끓여 드릴게...”
“나 잠깐 눈좀 붙이리다.” 하고 방에 들어가면
창문으로 빛이 들어올까봐 커튼을 닫고 전화기 코드조차 빼어놓고 깰때까지 거실에서 기다리는 아내.
그런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아내친구들의 걱정반 푸념반의
질문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 양반 성격에 하지 말란다고 안 할것도 아닌데, 그러다 말겠지 뭐...”
그 대답이 물어본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기에 충분할 터.
더 이상 아내의 친구들은 나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을것임을 알아채고는 화제를 바꿔 버린다.
얼마전엔 이런일도 있었다.
거실에서 소품용 조립식 앵글을 해체하는데 곁에 있던 아내가 하품을 하면서
“ 나 방에 들어갈래.”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길래 내가 “부! 창! 부! 수!” 했더니
“웬 부창부수?” 라며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곁에 앉아 공구를 챙겨주고 해체되는 부품들을 가지런히 챙겨준다.
일이 끝났을땐 따근한 커피한잔도 잊지않고....
이런 아내와 함께 산지 벌써 27년째이다.
인생에 있어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속설이 있다.
나는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함으로써 세 번의 기회중 하나를 젊은 시절에 이미 잡고 시작한 셈이니 난 진정 행운아이다.
아마 다섯 번 당첨금이 누적된 수백억 로또복권에 당첨된것 보다 더한 행운일것이다.
그것이 행운임을 알게 된건 불과 수년이 되지않았다.
이재에 밝지 않은 아내에 대해 나름 불만도 있었고
모든일에 덤덤하기만 하고 애교를 모르는 아내를 무뚝뚝하다고 불평하기도 했었다.
마흔여덟의 아버지와 마흔둘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늦둥이 막내아들의 며느리로 시집와 신혼을 보내고 있을때
느닷없이 “우리 부모님을 내가 모셔야 겠어.”라고한 나의 제안을 아무런 이의도, 싫은 표정조차도 짖지 않고
“그래 알았어요란 한마디로 “부창부수” 해준 아내.
첫아이 돌 때부터 부모님을 모시기 시작해서 삼년터울의 둘째아이 고3이 될 때까지 이십여년동안이나 중풍에 치매까지 앓은 시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던 아내의 노고조차 진정으로 와 닿지 않았던게 사실이고 보면 난 참 어리석은 인간이다.
고마움을 깨닫고 아내를 바라보니 이미 머리는 반백이 된
중년의 여인이 되어있다.
내가 그걸 깨닫기 까지 아마 아내의 속은 몇 번이나 썩어 문드러 졌고, 몇 번이나 녹아 내렸을게다.
공고를 졸업하고 야간대학을 다닐때 내게 시집와 그 빠듯한 월급으로 등록금과 부모님 용돈을 떼어놓고는 생활비가 모자란
다고 눈물짓다가도 이내 “여보 한달동안 수고했어요.” 하며
안주를 만들고 소주를 내 오던 아내.
두 번의 사업실패와 재기.
IMF를 맞으면서 다시한번 찾아온 위기속에서도 나를 믿고 꿋꿋이 따라와준 아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 매달려 건설현장 막일이라도 해야겠다고 나섰을때
작업복을 갈아입고 혹한의 건설현장에 선뜻 따라 나서준 아내.
“부창부수”
이쯤되면 부창부수가 아니라 살신성인의 의지라고 불러줘야할것 같다.
아내 덕분에 이제 빚도 다 갚고 얼마후면 우리가 노후를 보낼 시골집도 하나 장만할 수 있을것 같다.
이제 아내도 낼 모레면 나이 오십.
이제부터는 아내에 대해 보은하는 마음으로 夫唱婦隨가 아닌 婦唱夫隨의 삶을 살아가련다.
* 이 글은 mbc 여성시대에 올린 글로서 방송신청을 했는데 채택되지는 않았다.
채택여부와 관계없이 이글은 결혼 27주년을 맞아 아내에게 보내는 내 마음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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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봤습니다..형제님^^ 임신하고 나서 기세등등한 제 아내에게 일부러라도 보여줘야겠습니다^^ 언제나 행복한 가정을 기원합니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 부러워요.^^
늘 행복하시길 빕니다~
형제님,가정에 언제나 주님사랑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격려해 주신 형제님! 자매님! 열심히 살겠습니다. 내일 대련으로 들어갑니다. 또 새로운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뗍니다. 이번 주일은 홍메이 미사에 참석하겠습니다. 만나면 아는척 해 주세요. 그날 .저는 혼자 거든요. 언제쯤 아내를 대련으로 부를 수 있을른지...,그리고 함께 미사참례를 할 수 있을런지... 에휴! 또 아내 혼자 두고 떠납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물씬 담긴 사연~~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지금쯤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시겠군요.두분 다 영.육간 건강 하시길 기원합니다.
형제님 ~~~그냥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