呂僧珍(여승진)
중국 속담에,
“멀리 있는 물은 가까이에서 일어난 불을 끄지 못한다."
라는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라는 말이 있다.
어려움에 빠져 긴급한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게
즉각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가까이 사는 이웃이다.
그러나, 가까이 산다고 다 좋은 이웃은 아니다.
우물에 빠졌는데 구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우물 속에 돌을 던지는 식으로 남의 불행을 가중하는
나쁜 이웃도 있는 법이다.
이런 까닭으로
'사는 곳을 정할 때는 반드시 이웃을 가리라'는
의미의 거필택린(居必擇鄰)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일이다.
양나라 무제가 통치하던 시절 여승진이라는
명망 높은 대신이 있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많은 승리를 거둔 뛰어난 장수였지만
평소에는 늘 겸손하고 온화한 인격자이자
청백리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여승진이 연주자사로 있을 때
하루는 그의 동생이 찾아왔다.
채소를 팔면서 어렵게 살던 동생은
형이 높은 벼슬을 하고 있으니 자신도 벼슬을 한자리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찾아온 것이었다.
여승진은 동생의 요구를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나는 황제의 은혜를 많이
입었으나 아직까지 보답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내 사리를 앞세울 수 있겠느냐.
너는 계속 채소 장수를 하는 게 좋을 듯하다.
동생은 부끄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한편 여승진이 사는 낡은
집 옆에는 관에서 운영하는 마구간이 있었다.
그래서 늘 냄새가 나고 소란스러워 가족이 많이 불편해 했다.
주변 사람들이 여승진에게 마구간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명령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여승진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어떻게 내 일신의 편의를 위해 관가의 마구간을 옮길 수 있단 말이오!”
그를 향한 백성의 존경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를 존경하는 많은 사람이 그의 집 근처에서 살고 싶어 했다.
남강군에서 군수를 지낸 송계아는
여승진의 명망을 흠모하여 임기를 마치자
여승진의 집 옆에 있는 저택을 구입했다.
인사를 온 송계아에게
여승진이 집값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송계아가 “일천일백만 냥입니다.”라고 하자
여승진은 그 엄청난 액수에 깜짝 놀랐다.
“무슨 집값이 그렇게나 비싼가요?”
송계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백만 냥으로 집을 샀고 천만 냥으로 이웃을 샀습니다.”
여기서 나온 성어가
“백만금으로 집을 사고 천만금으로 이웃을 산다"
라는 뜻의 '백만매택(百萬買宅) 천만매린(千萬買鄰)'이다.
'좋은 이웃은 천만금으로도 얻기 어렵다'는 의미다.
여승진은 이웃으로 이사 온 송계아와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가 송계아가 재능이 출중한 사람임을 알고는
그를 황제에게 추천했다.
여승진을 철저하게 신뢰한 황제는
곧바로 송계아를 형주 지사에 임명했다.
여승진과 황제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송계아는 형주를 잘 다스려 수년 안에 큰 업적을 이루었다.
송계아가 여승진을 얻은 것처럼 좋은 이웃을 얻고 싶은가?
공자는 <논어>에서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느니,
반드시 좋은 이웃이 생기기 마련이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鄰) 이라고 했다.
스스로 덕을 갖추면
내가 좋은 이웃을 찾아갈 필요도
없이 좋은 이웃이 찾아온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