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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일 선사(勤日 禪師) 무(無)자 화두
근일선사가 참선법과 인연을 맺은 과정을 보면 우리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쑥맥에서 출발하신 데다가 나중에 전강, 경봉, 성철, 향곡, 송담, 진제 등
대선사들과 나누었던 법담이 생생하게 기록된 것이니 만큼,
우리들이 발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근일선사는 송광사 방장이셨던 구산(九山)큰스님의 법을 물려받았습니다.
오늘 법문은 안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달리는 말에 더 달리라고 재촉하는 격인데,
이 더운 여름에 스님도 아닌 세속인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용맹정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스님들도 여름에는 용맹정진을 두려워하는데 우리 거사님, 보살님들이 용맹정진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고 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로 반정도 지났지요. 8박9일 중 반 정도 지났는데 누군가 잘 된 분들도 있을 것이고,
잘 안된다는 분도 있을 것이라 봅니다. 물으십시요.
내가 봐서는 이 자체만 해도 장하다는 생각이 들고,
다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중단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8박9일 약속했으면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끝내야지요.
무엇이 바빠서 어쩌니하는 것은 여러분이 참다 참다 못참으니까 도망가는 것입니다.
지금 몇 분이나 됩니까?
(수선회 회장 답, '34명입니다.')
물으십시요. 공부가 잘 된 분은 물을 필요가 없고 공부가 안 된 분은 물으십시요.
화두를 지어가는 참 뜻을 알고 공부해야 수월합니다.
이 공부를 하는 것은 우리가 근본을 찾자는 것이고,
모든 것의 근본은 "나"이니 나를 알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 참나를 알고 그 다음으로 나 밖에 나를 찾자는 것인데,
그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화두하는데
귀근득지(歸根得志)요 수조실종(隨照失宗)이로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르면 종을 잃는다.
우리의 근본이 나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육체만 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육체도 나지만 육체를 이끄는 주인공이 있어서 그 자리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알고 비춤을 따르면 종을 이룬다는 것은 경계에 팔리면
다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보고 듣고 내지 무슨 부처님 경계라도 온전히 화두 하나만 추구하되
"화두 하나가 잘 들리는냐, 안들리느냐, 또 화두하는데 장애는 없는냐."
이것을 묻지 그 밖에 무슨 향상일구(向上一句)가 중한 것은 아닙니다.
공부가 좀 깊어진 뒤에 백척간두진일보(百尺幹頭進一步)하는
도리를 물어야 합니다. 지금 꼭 필요한 것을 물어야 되며
겉다리를 아무리 찾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마삼근(麻三斤)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순수순일하게 잘 되느냐 이것입니다.
어째서 마삼근이라 했는고, "어떤 것이 부처님일까?" 하니까 "마삼근"이라 했읍니다.
어찌 부처님을 물었는데 마삼근이라 했는고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으니
첫째는 믿음입니다. 무엇을 부처라고 배웠읍니까. 마삼근이라는 말에 믿음이 갑니까. 안갑니까?
믿음이 안가면 공부가 안됩니다. 그 정말로 마삼근이라고 일러준 스님을 믿어야 되거든.
부처라는 말도 믿고 마삼근이라는 말도 믿었다면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부처는 마음이 부처라 했는데 어째서 마삼근이라고 하였는가?
알 수 없거든. 이 알 수 없는 것으로
전부를 삼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공부 안될 턱이 없거든.
그냥 흐리멍텅하게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 화두는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는 화두를 탄다는 말이 있는데
타는 화두가 힘이 없고 그럼으로 해서 깨친 사람이 드뭅니다.
조주무자(趙州無字)도 그렇고 이뭣고도 그렇고 모두 1600공안(公案)이 다 그렇습니다만,
하도 신심도 없고 선지식도 잘 안믿으니까 이것이라도 해라하여 염불하듯이.
"관세음보살"하는 것이나 "이뭣고"나 "마삼근"이나 다 똑 같습니다.
탐(貪)은 탐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부처님은 일체 유정무정 개유불성(一切有情無情 皆有佛性)이라고 했는데
조주스님한테 '개도 불성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하니 '없느니라.'
부처님도 믿고 조주스님도 믿었기 때문에 거기서 의심이 생기는데
너 "無"자 해라 하니까 그냥 밭에 무우도 생각나고, 안되는 거요.
혹 "無"자 하는 분 밭에 무우는 생각 안납니까?
개도 생각나고. 배추도 생각나고 온갖 분별이 다 따라간.
몸에 불이 붙어놓으면 무슨 생각이 있겠읍니까? 딴 생각없읍니다.
불끌 생각 밖에 없듯이.
정말로 이 화두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
전부라고 덤비면 의정(疑情)이 안 일어날 수 없읍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믿음, 하고자 하는 용기, 알 수 없는 의정. 의심이라 하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신적으로 나갑니다. 그러면 못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의심은 남 불신하는 것인데 그래 하는 수좌도 봤읍니다.
사사건건 사람까지 의심해버려. 병이든 그런 사람도 있는데
믿음이 없는 의정은 있을 수도 없고 못써요. 전체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것을 뭐냐? 포도라고 배웠는데
혹 오늘날 그것을 포도가 아니라고 하면,
난 포도라고 배웠는데 왜 아니라고 하는고, 그렇게 전체가 공부 아닌 것이 없는기라.
자기 알음알이로 세상을 볼려고 하지 말고
정말로 이 공부는 자기 공부된 만큼 받아들이고 공부된 만큼 믿읍니다.
여기 지금 여러분도 공부된 만큼, 저 빗소리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받아들입니다.
공부가 안된 사람은 저 빗소리 보고 걱정한다.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합니다.
비가 많이오면 어쩔까. 저 비가 어쩌고 경계에 따라서 혹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참 비가 오니까 좋다. 좋아하는 것이나 미워하는 것이나 꼭 같습니다.
보되 본 바가 없고, 듣되 들은 바가 없어야 됩니다.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저 환희의 경계는 될지언정
비에 끄달릴 필요는 없읍니다. 좋게 보는 것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좋읍니다.
지금 서울 같은데 있으면 덥고 피서가고 할 텐데 공부하고 있는 것만 봐도
다 부처님이거든 내가 봐서. 잠 안자고 공부하는 것만 봐도 대단하고.
그래 그 향상일구를 찾을려고 하지말고 공부하는데 정말로 화두일념(話頭一念)이 되어서
화두가 타파될 때 더 나갈 수가 없단 말이여.
그런데 그것을 점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座臥 語黙動靜)에
과연 내가 일여(一如)하느냐
또 꿈을 꿔도 그 공부가 안넘어가느냐.오매일여(悟昧一如)는
걱정 안해도 됩니다. 왜 안해도 되느냐 하면 어묵동정에 일여만해도 굉장합니다.
말하고 가고 옴에 실지 어묵동정이 어려운 것은 앉아있으면
선정(禪定)에 들어도 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혹 어떤 사람이 개중에는 공부가 많이 되어서 5-6시간씩 선정에 드는 사람도 있는데
실지 말하면 잘 안됩니다. 이 말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좌의 오계가
첫째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둘째 잠을 적게 자라,
셋째 책을 보지마라,
네째 음식을 많이 먹지마라,
다섯째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마라.
이것이 오계인데 그런데 말하면서도 공부가 안 도망갈 정도면 공부가 솔찬히 깊은 것입니다.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이 말인데 여기 묵언(默言)이라고 써붙였읍니다만,
이 말안하기도 어렵읍니다. 보통 수행이 되기 전에는 말 안하기도 어렵습니다.
다겁생(多劫生)에 익힌 습기 때문에
그저 쓸데없는 말이나 욕이라도 해야 후련하고 흉이라도 한번 해야 후련한 것입니다.
그것에 전부 끄달리다보니 갑자기 묵언이 답답합니다.
이 사방으로 쫓아다니는 놈을 끌어앉어 놓으니 죽을 지경입니다.
허리는 아프고, 잠은 얼마나 자놨노? 잠은 때만 되면 잤으니 고비를 넘기려니 엄청나게 어려운 것입니다.
참 묘한 것이 이 몸뚱이는 마음 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실은 마음대로 되게 되어 있어요.
세상이. 마음대로 안된다 하지만 사실은 뜻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된다 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써놓고 안믿읍니다.
매일 잠을 잤으니까 그 때가 되면 저절로 잠이 옵니다. 안자는 습관이 되면 잠이 안옵니다.
미국은 지금 밤인데 그곳에 가면 잠이 안옵니다.
그 습관 때문에 밤이라해서 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습기 때문입니다.
이 몸뚱이 다스리는데 생각에 따라서 늘 달라집니다.
출격장부(出格丈夫)가 되기 위해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 왔지 않읍니까.
그렇다면 이보다 다행스러운데가 어디있겠읍니까. 다행스러운 마음을 가지면 공부가 됩니다.
참 백천만겁난조우(白千萬劫難遭遇)다. 백천만겁에 사람몸 만나기 어려운데
혹 짐승으로 태어났으면 어쩌겠읍니까? 하도 요새 사람이 흔하니까 귀한 줄 모릅니다.
사람은 그렇더라도 부처님법 만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또 정법만나기가 얼마나 어렵읍니까?
또 이 참선법회 만나기가 쉽읍니까? 혼자는 할려고 해도 못합니다.
그러니 도반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혼자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도 없거니와
같이하기 때문에 얼마나 고맙고 서로 귀중합니까?
그래서 감사하고 고마운 줄 알면 공부가 안될 수가 없고 또 중간에 갈려고 해도 못갑니다.
중간에 간 사람은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 있겠읍니까?
사실은 끝마치고 갈려고 했는데 도저히 어려우니 핑계를 댄 것입니다.
생사대사보다 더 급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읍니까?
그것은 소중히 안 여기고 또 근기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중간에 물러서지 마십시오.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산모가 달 채우지 못하고 어린애를 낳은 격입니다.
그러니 화두만 열심히 들으십시요. 고비는 조금 넘긴 것 같읍니다.
이 묘한 것은 삼천배 절을 해야겠다고 목표를 세우면 500배가 고비고
그 다음은 잘 넘어가다가 끝에 가서 또 어려워집니다.
108배를 할 때도 30배가 고비고 인생살이도 그렇고 그렇습니다.
지금 8박9일이라고 정해놓으니까 처음이 좀 어렵지 지금부터는 빨리 지나갑니다.
그러다 마지막 7,8일째가 되면 그 때부터는 참 시간이 지루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내지 말고 집에 가서도 여기 공부한 마음으로 간단없이 열심히 해야 될 것입니다.
가나오나 매일 경계에 팔려서 시비나 하고 지내지 말고 보기는 보되 본 바 없이 보고,
듣기는 듣되 들은 바 없이 들으란 말입니다.
화두를 항상 관하면서 의정을 일으키고 가나오나 이것을 본업으로 알고
다른 것은 부업으로 삼으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나 찾는 공부이기 때문이며
참선이란 나를 참구한다는 말이며, 선은 근본이요, 진리요, 나이고, 참자는 참구한다는 뜻입니다.
나를 찾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읍니까?
그리고 잠깐이라도 선정에 들고 화두를 들면 그 공덕이 한량이 없읍니다.
우리가 목표를 너무 크게 잡기 때문에 그렇읍니다.
여러분 본인을 잘 모르겠지만 시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요.
과연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나, 어떻게 하면 돈을 버는가,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입고 이름을 떨치고, 엉뚱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읍니다.
요새 월급 올려주라는 사람들을 보십시요.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 다 뛰어넘었지요.
용맹정진한 사람들이 한번씩 앉았으면 다 해결될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공부됐는가 안됐는가는 주위 사람을 보면 압니다.
처음에 이 사람도 공부를 해보니 안되더군요.
화두가 전혀 안되고 시간은 지루하고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다만 이 석달을 선방에 들어가긴 들어갔는데 중간에 나오면 안된다하니 나올 수도 없고,
다리는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죽을 지경이였읍니다.
화두만 되면 좋겠는데 화두는 그만두고라도 잠이라도 왔으면 좋겠읍니다.
지루해서 50분도 시간이 잘 안갑니다. 내가 어제는 무엇을 했던가,
그제는 무얼했던가, 다겁생래 생각까지 나는데
심지어는 아버지께서 네 살 때 글 배우던 생각까지 나는데 그래도 50분이 잘 안갑니다.
그것도 한두번이지 늘 생각하면 싱거운 것입니다.
그러다가 안되니까 개미가 지나가는 것이나 보고 옆 사람 조는 것보고
'아 저놈 잘 잔다'하고, 잠이나 오면 잠이나 자지 잠은 안오고 화두는
들릴 턱이 없고 무(無)자 하라니까 밭에 무우도 생각나고 개도 생각나고
안 됩디다. 하도 안되서 경봉(鏡峯)스님이 "이머꼬"하라 하셔서,
큰스님이 이머꼬하라니, 이머꼬는 하는데 이머꼬가 되어야지요.
이것도 한참하니 개 생각도 나고, 무(無)자 생각도 나고 안 됩니다.
중간에 못 도망가게 한철내 싸우는 것 입니다.
이 공부는 선근(善根)이 없이는 어렵다고 봅니다.
경봉스님 회상(會上)에서 옛날에는 차가 못다니니까,
원주에서 짐을 니아카에 싣고 밀고 당기며 힘차게 올라가다가 니아카 쇠에 발이 끼어버렸읍니다.
조금만 더 올라갔으면 난 병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업고 왔는데 병원에 갈려니 그런 창피가 어디 있읍니까?
병원에 안갔읍니다. 이 잘못이 다 내 죄업이니 창피한 노릇이지요.
그러나 아프고 쑤실 때 화두가 되면 아픔도 적읍니다.
약이래야 일꾼들이 담배 피운 담배가루와 머큐롬으로 소독하는 것이 고작이였읍니다.
그러니 경봉스님께서 마음으로 관을 해라 하셔서 화두 삼은 것입니다.
아프니까 어디가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허리는 아파죽겠는데,
이 다친 것이 더 아프니까 허리 아픈 것은 다 도망가고 없는 것입니다.
변소도 업고 가야되니, 마음으로 치료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니까 공부는 선근도 있어야지 못합니다. 다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것입니다.
한 달쯤 되니까 혼자서도 걸을 수도 있게 되었읍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이 어떤 놈인고 가만히 생각하니 쏙쏙 쑤셔도 '이것은 고기덩어리'하게 되더군요.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여긴 신선노름입니다.
감옥에서는 갖은 고문을 당하고 고추가루를 입에 넣고하여 인간 취급도 안합니다.
그렇게 독하게 하면 다 깨칠 것입니다. 어디 잠 오라고 그냥 놔둡니까?
그래서 이 공부는 편하면 공부가 안됩니다. 심하게 누구에게 뺨을 맞으면 안 잊어지고 분합니다.
분심이 나면 하는데 편하니까 화두가 안됩니다.
그리고 화두를 쉽게 쉽게 줍니다. 소중해 보십시요. 안 잊어집니다.
그런데 소중한 것도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할 수도 있읍니다.
짧은 순간에도 강한 것이 있고, 시간이 지나서 소중한 것도 있읍니다.
예를 들으면 힘없는 염불도 여러번 하면 그것이 강해집니다.
또 짧은 순간이라도 큰 충격을 받으면 강하지 않읍니까?
오랜 세월 동안 하니까 화두도 되더라 이 말입니다.
정말 진실로 발심해서 충격을 받으면 그 순간에 화두가 될 텐데
쉽게 주고 그러니까 쉽게 생각하고 합니다.
그나마 선지식도 어렵게 만났읍니다.
누가 선지식인지 도인인지 지금 승려들 중에 거의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그만두고라도 내가 그랬읍니다.
그런데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선지식을 만나게 됩디다.
매일 봐도 몰랐는데, 누가 도인인가 물었읍니다.
승려로서는 내 스승인 각성스님이 글을 많이 아는 사람이라
글 많이 아는 이가 도인인줄 알았읍니다.
내가 공부가 덜되어서 그랬는지, 좋게 말하면 바꿔질려고 그랬겠지만
저렇게 많이 아는 사람도 행(行)이 저렇다면 내가 더 배울 것이 무엇이 있겠나 하고,
그만두고 선방에 참선하러 갔읍니다. 오대산에 가서 옆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보니
한 시간을 못참아서 몸을 비틀고 졸고 합니다. 난 잠도 안오고 두시간 앉았어도 좋읍니다만,
다 이것은 초심자일 때는 잘 되는 것이고 고참이 되면 잠도 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그저 선방에 앉아있는 사람은 도인인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구나 했읍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안하고 그 곳에 입승스님은 결제를 안한다 합니다.
그때 나는 하도 안되서 경포대에 가서 울었읍니다.
"부처님이시여, 나는 평탄하고자 바라지 않읍니다.
나에게 떠한 어려움이 부딪쳐도 이겨낼 힘을 주옵소서!" 하고 기원했읍니다.
그리고 무문관을 들어가니 경험이 없다고 안받아 줍다.
그래서 어디 조그마한 절에 가서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선지식을 만나게 되더군요.
그 선지식이 누군가하면 경봉스님이였읍니다.
그런데 그 전에는 무(無)자 화두를 했읍니다.
그것이 어느 절에 가니까 '스님 무슨 화두를 탔느냐?'
그래서 '화두가 물건인가 타게' 하니까 아무 소리도 안합디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화두를 타는가보구나' 했읍니다.
그것도 모르고 그냥 앉아있으면 공부인 줄 알고 했읍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있어 물어 볼 수도 없고, 우리 스님에게 물었읍니다.
'화두를 타야 합니까?'
'타야 된다'
'그럼 스님 주십시오'
'無자 해라'
'無자요?'
'無자, 개가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왜 無까? 그리하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있느냐 없느냐 왜 無로 했을까, 그런 생각은 안나고 쓸데없는 생각만 나옵니다.
無하면 밭에 무우, 배추 별 생각이다 납니다.
그래 경봉스님 회상에 가니까. '이뭐꼬' 하라 하시는데 되야지요,
안되요. 5분도 안되고, 전혀 안됩니다. 허리만 아프고 이 시간에 책을 봤으면
얼마나 보았을 것인가 생각하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죽겠는데
더우기 다리는 다쳤으니 도망갈 수도 없고, 모기는 그리도 많이 무는데 잡을 수도 없고,
용을 쓰니까 뒤로 퉁퉁 넘어집니다. 여러분도 넘어져 봤지요.
오늘은 맛있는 것 안해 올 것인가. 음식은 무엇을 먹을까만 생각하고 죽을 지경입니다.
내가 그래서 여러분들께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다 퇴굴심을 내가지고 도망가 버립니다. 또 본능적인 삿된 생각은 더 납니다.
남자는 여자 생각나고, 여자는 남자 생각나고 그럴 것입니다.
공부하고 있으면 업식이 동하니까더 할 것입니다.
물이 잔잔할 때는 온갖 빛이 다 비칩니다.
마음이 잔잔하니까 지난 업식이 다 떠올라 공부가 더 안됩니다.
그래서 못 참는 것입니다. 그냥 도망갈 수 없고 핑계를 되고 도망갑니다.
여기 올 때는 그런 생각 갖고 왔겠읍니까?
고비를 참고 죽어도 끝까지 가야지 토끼가 되지 말고 거북이가 되십시요.
그것이 다 법문입니다. 끝끝내 가면 그자리가 다 통하는데, 그것을 못합니다.
그래가지고 한철을 턱 마치고 보니 법당의 주련이 다르게 보입니다.
선방에 들어가기 전하고, 내 나름대로의 느낌이 다르고, 글새김이 확 틀립니다.
그리고 단적으로 헐떡임이 없어졌읍니다. 누구한테나 일등해야 되고
무엇이든 일등해야 된다는 욕심이 참 많았는데 그것이 꺼졌습니다.
무엇을 잘해아 되겠는 마음, 무엇이 좋다는 마음이 없으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읍다.
그래서 '바로 이것이구나!' 했읍니다.
선이야 말로 화두를 들고 앉아 있는 것만해도 공덕이 한량이 없구나,
억만금을 가지고 있어서 불안하고 돈 지키는 노예가 된다면 그 아무 필요가 없고,
아무리 많이 알았다 하더라도 마음이 불안하면 그 무슨 필요가 있고,
근본자리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구나 하고 해제하자마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시작했읍니다.
스님 3명과 처사 한명이 했읍니다. 그때 스님들이 걸작이 많았는지,
요새 여러분들이 들어보면 알만한 사람들입니다. 개차반들 말도 못합니다.
인격 때문에 이야기를 못합니다. 다만, 큰스님 회상에서 임금님 쓰는 관을 만들어서 쓰고
도포를 입고 다니기도 합니다. 얼마나 공부가 안되었으면 그랬겠읍니까?
또 먹는 타령이나 하고, 곡차라고 먹고, 지금 철우(鐵牛)스님이 입승보실 때인데
그 가지가지 일일이 다 말도 못합니다. 술은 난초약이고, 담배는 영산마라 하며 피웁니다.
화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요. 그래도 나는 하자고 해도 안했읍니다.
저 사람들은 공부가 많이 되었기 때문에 저렇게 해도 되겠지 했읍니다.
처음 오면 신고라 하여 돈 내라 해서 곡차 마시고 했읍니다. 난 흉 안봤습니다.
저 사람들은 다 한 경계 지나서 저렇겠지 하면서 지냈읍니다.
지금이라 이런 생각이나 하지 그때는 그런 생각할 능력도 없었읍니다.
나는 그것을 먹으면 벼락이 떨어지는 줄 알았고 큰 벌받는 줄 알았는데 어찌 먹겠읍니까.
'아 저 사람들은 굉장한 도인들이다.' 그런 생각을 했읍니다.
그래 한철 지나니 큰스님께서 어떠하셨겠읍니까?
그런데 네 명이 졸면 두들겨 패기로 하고 용맹정진한다하니 경봉스님이 얼마나 좋아하셨겠읍니까.
지금 내가 여러분들만 봐도 좋은데 공부 열심히 한다면 안좋겠읍니까.
경봉스님은 40년 조실해도 이런 사람들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네 명이 용맹정진한다하니 안좋겠읍니까. 평상시에 없던 것을 다 주시면서 먹으라 합니다.
한 일주일하고 나니까 해제할 기분이 없어집니다.
깨칠 때가 해제이지 그까짓거 화두들 때 그것이 해제 아닙니다.
3개월에 해제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그런 중 그 때 해인사에서 총림한다고 신문에 나서 그 곳에 갈려고 하니
큰스님께서 못가게 하시더군요.
그러나 '내 마음 먹었으니 한번 갔다오겠습니다.'하고 기필코 나섰읍니다.
그 곳에 간다고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닌데, 억지 춘향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때 6시간 잔 팀과 4시간 잔 팀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더 할려고 가행정진에 들어갔읍니다.
거기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잠 안자고 공부하시는 분이 있었읍니다.
혜암(慧庵)스님이 입승을 보는데 잠을 안자고 합니다.
그 스님 보면 50분 앉아있으면 45분은 졸고 5분은 그냥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장한 일입니다.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저 분에게 떨어져서 되나 싶어서 '스님 나를 좀 깨워주십시요!'하고
12시에 깨어서 하는데 열심히 하다보면 언제 졸았는지 모릅니다.
졸아도 경책해 주는 사람없고, 그렿게 하다가 위장병도 생겼읍니다.
화두는 그냥 염화두 이뭣고 입니다.
또 성철스님은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이것이 무엇인고,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아 이놈 마음, 부처, 물건 다 끄달립니다.
화두가 되면 의심스럽읍니다. 보통 전생에 많이 하신 분 아니면 어렵읍니다.
어뗜 사람은 돈이 얼마나 있나 세고, 해제철에 어디가서 얼마를 탈까, 그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앉아서 하다가 안되니까 별궁리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억지로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해야지 순리적으로 잘 잠 다자고 먹을 것 다 먹고는 안됩니다.
조금씩이라도 욕심을 가져야 됩니다. 조금씩이라도 남보다 더 할려는 욕심으로 들어갔읍니다.
그래서 옆에 사람이 선지식이라 합니다. 혼자 있으면 드러누울 것도 남이 있으면 못 눕읍니다.
그래서 옆에 도반이 나의 선지식입니다.
남 졸고 있으면 우습지요. 밤에 공부하고 있다가 옆에 보면 송장으로 보입니다.
송장들 잠 잘잔다. 그것만 해도 나는 용기 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공부가 3년이 다되어도 억지춘향입니다.
그렇게 이뭣꼬를 하니까 보이는 것마다 이뭣꼬이고, 사람을 봐도 이것이 무엇인고,
글자만 봐도 이것이 무엇인고,하도 염불하듯이 하니까,
놓칠 것 같아도 그냥 몸에 익혀놓으니까 이뭣꼬 밖에 없읍니다. 의정은 생각도 못합니다.
그런 뒤에는 떨어집니다. 친구 이름도 잊어버리고, 밥맛도 떨어지고,
좋고 나쁜 것 그런 것도 없고 단순해져서 큰스님 법문을 알아들을 수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오매일여 가기 전에는 법문 묻지도 않고 이것만 믿고 한다고 하는데
안되어서 백일을 잠 안자고 해도 안되면 옷을 벗고 나가야지,
내 청춘 다보내고 무엇하나 해서 3년을 정하고 했읍니다.
한 70여명 중에서 5명만 뽑아서 졸면 때리고 포행도 없이 했읍니다.
그러기 한 40일 지나니까 화두가 잡히기 시작하고, 50일이 지나니까 시간이 그렇게 잘 갑니다.
지루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읍니다. 그런데 그것도 마장이 옵니다.
졸면 돌아가면서 패기로 했는데 내가 졸면 안봐주고, 공격이 전부 나한네 오는데,
졸지 않는데도 패는 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내가 이 철이면 갈 몸인데
조니 안조니 시비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부처님이 나를 경책해 주는구나'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졸지않는데 때린다고 싸우는 사람도 있고, 공부가 안되니 그렇겠지요.
75일쯤 되니까 9명이 불었읍니다. 눈이 많이 와가지고 합친 것입니다.
혼자서 고집할 수도 없었읍니다. 그때 드러누우면 허리가 아프고
몸은 다 썩어 있었읍니다. 무슨 죄인가 하면, 축구 시합에서 많이 다친데다가 용맹정진하니까,
피가 안돌아서 온몸을 긁으면 피가 나고, 눈으로 감아놓고 또 하고 하니 피가 안도니 썩은 것입니다.
이 때 아픈 것이 10년을 갔읍니다. 전신에 퍼져서 눈에서까지 고름이 나올 지경이었읍니다.
향곡(香谷)스님 회상에서 도천(道泉)스님이 늘 고름을 뽑아주고 했읍니다.
성냥으로 고름을 뽑고 나병환자들 먹는 약으로 뽑았는데 육백육국을 맞으니까
전신에 퍼져서 사람들은 문둥병인줄 알았을 것입니다. 손만대면 간지럽고, 굶으면 편합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아픈 것이 선지식입니다.
그 이야기를 일일이 다할 수는 없고 '몸에 병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나니 병으로 양약을 삼아라.
일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뜻대로 되면 뜻을 가벼운데 두나니,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수행을 삼아라. '참 기가 막힌 말입니다.
공부하는 분상에 장애 속에서 다 도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피력도 있어야지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것입니다.
졸다가 누가 깨워주나 해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읍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공부할려고 하면 다 도와줍니다.
전부가 도의 모습이고 도와주는 것인데 한 생각 잘못 일으키면 전부 장애입니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하되 항상 다행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지금 화두가 안된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요. 앉아있는 공부만 해도 한량이 없읍니다.
그리고 망상이 떨어지면 잠이 오고 졸음이 옵니다.
일구월심(日久月沈)하면 자연정혜원명(自然定慧圓明)하리라.
날이 가고 달이 깊어지면 절로 정과 혜가 밝아니느니라.
이 일보다 더 빠른 길이 없읍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이 뗏목에 비유했읍니다.
공부할 때 위에서 물도 흐르고 비바람치고 하는데 노젓고 삿대질하기가 힘듭니다.
열삿대쯤 가다가 조금 쉬면 20삿대쯤 물러갑니다. 아이구 내 이래서는 안되겠다해서
또 한참 올라가다가 또 쉬면 도로 가버리고, 표시가 있어야 할 것인데 더 안됩니다. 더 안되요.
보통 사람 같으면 중단할 것이지만, 끝끝내 그렇게 하면 그 다음에는 바람도 자고
물도 장애가 적을 때가 있어서 그 한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은 가만히 삿대질만 해도 줄줄 흘러갑니다.
그러니 잘 될 때보다 안될 때가 소중하니 좌절하지 말고 이 길뿐이다,
세상살이는 부업이고 참선은 본업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업으로 삼고 내 못 깨달는 것은 그만두고 일념만년토록 한 생각 만년 가도록
그러면 염라대왕이 함부로 못 잡아가고 부러운 것이 없읍니다.
'역대조사가 어찌 나를 속였을 것인가.' 이것을 믿고 하십시요.
그래서 그 고비를 지나고 한 75일쯤하고 못했읍니다. 100일을 못채우니 분해 죽겟읍니다.
기필코 채워야 되겠다 해서 해제하자마자 백일을 채웠읍니다.
그것도 단식으로 했읍니다. 한 6일쯤하니까 이러다가 죽는구나 싶었읍니다.
초조하기가 짝이 없었읍니다.
왜 그렇게 굶었나 하면, 성철스님이 병원에 가라고 5,000원을 주는데 내 기분에 엄청난 돈이었읍니다.
그 때는 한철 나면 300원을 줄 때인데, 지금은 한철 나면 몇 십만원을 줍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돈입니까. 또 그 때는 국가적으로도 어려운 때이고,
더구나 전부가 기독교병원인데 그 귀한 돈으로 어찌 병원에 가겠읍니까.
차라리 다리 자르고 병신으로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지요.
뜸을 많이 뜨고 이명래고약을 많이 없앴습니다. 열댓군데 떠놓고 고약부치면 시원합니다.
고름이 심할 때는 떼어내면 썩은 피가 줄줄 흐릅니다. 지금도 선합니다.
손으로 누르면 일어나지를 안했읍니다.
요사이 병원에 갔으면 별놈의 병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데로 붙쳤을 겁니다.
굶으니까 바싹 말랐읍니다.
굶으면 가려움이 덜하고 음식만 먹으면 간지러운 것이 더합니다.
그런 상태로 화두를 들때 잇빨을 물고 금강좌(金鋼座)하고 서너시간씩 있으면
그 때에야 선정에 들고 그러면 아픈 것도 가려운 것도 잊어버립니다.
긴장만 좀 풀리면 근지러워 못삽니다.
그런 고비를 넘기고 심지어는 이 고운사까지 올 때까지도 그 기운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그 단식을 하면 낫겠다는 생각에서 했읍니다.
죽더라도 기필코 20일, 100일을 채워야 된다 이러고 있는 데
사제가 한 명 오더니 우유를 줍니다. 속으로는 반갑지만 '너나 먹어라.'하고 내 보냈읍니다.
그러니 노스님 한 분이 와서
'단식을 어떻게 합니까?'
'네 안 먹습니다.'
'에이, 물도 안 먹으면 죽습니다.'
단식한다니까 멍청하게 굶는 것이 단식인줄 알고 물을 안 먹으니까
피가 말라서 한 일주일 되니까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 물을 먹어도 단식입니까?'
'물은 먹어야 됩니다.'
해서 물을 먹으니 그리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육체는 이렇게 고비를 넘기기가 어렵읍니다. 다겁생래로 애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보름쯤 되니 환희가 나기 시작하는데 지금도 안 잊어집니다.
어떻게 환희가 나는지 석가는 새벽별을 보고 소리쳤지만
나는 저녁별을 보고 소리친다. 아름다운 것이 꽃이라면 꽃아닌 것이 있겠느냐.
환희심이 터지니 감당을 못하겠읍니다. 변재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잘못하면 점장이가 될 것 같아 '이것 가지고 선지식이 다 되었다고는 안 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억제를 하면서 이 때부터는 내 몸이 필요하고 있어야 공부하겠다 싶어가지고
일어나서 기간을 다 채우고 향곡스님 회상에 갔읍니다.
법문을 들으니까 이해가 다 가는 것입니다.
그 때에 선지식이 잘 잡아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 잡아주고 인정해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양논작위선덴 석화도 불법이요 정광도 마구통이라 열활진곤이라도 적과우장궁이요
양구거불도 삼화작이라 역대조사가 태도삼천리라 삼화총화초이요 사마당상 근택이라
불보공처진보술은 명안 납승야나루라라고 하시는데 이해가 다 갑니다.
난 그렇게 안하겠다 싶읍니다. 무릅을 끓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없었읍니다.
반철도 안나서 가야겠다했는데 고름이 터져 수월했습니다.
그래서 향곡스님께 가서
'스님 법문 들으면 이해가 가는데 전 그렇게 안 하겠읍니다.'
'응. 그래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약논작위산데 진진찰찰이 무비급이라 하겠읍니다.'
하니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읍니다. 하신 말씀이
'가도 가는 줄 모르고 와도 오는 줄 모르면 깨달음법,
인가가 무슨 필요가 있읍니까?'
말도 올리고 사자같은 사람이 여우가 되버렸읍니다. 거기서 아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은 반드시 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꾸지람해 주고 병통을 집어주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 무엇이든지 물어라 하고 미쳤읍니다. 큰소리 펑펑치니까 수좌 한 명이
성철스님 법문하실 때 동별당 서별당 고양이 갖고 싸운 것에 대하여 물으셨다면서 묻읍니다.
남전스님이 '일러라, 일으면 이 고양이를 살릴 것이고 일르지 못하면 죽인다'하시니
아무도 대답을 못해서 칼로 고양이 목을 쳤는데 조주스님이 들어오시니
남전스님이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너같으면 어떻게 했겠느나'하시니 신짝을 지고 나갔읍니다.
이에 '너가 있었으면 고양이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하셨으니
'이 신짝 매고 간 도리가 무엇인가?'라고 해제법문에 하셨다 하기에
'그 당시 조주스님이 물구나무 설 줄 알았던들 물구나무 서서 갔을 것이야'라고
대답을 하니 말을 안합디다. 그래서 성철스님을 찾아가서
'스님 이번 해제법문에 고양이 법문하셨다면서요.'
'그래'
'나는 그렇게 안하겠읍니다.'
'그래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저는 물구나무 서서 가겠읍니다.'
'그래 그 첫 대답이 그럴 듯하다. 옛 선지식도 그 첫 대답에 많이 속았느니라.
그 물구나무 선 도리하고 남전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예, 저가 묻는 사람에 따라서 대답을 하겠읍니다.'
'그래야지. 선지식이 그렇게 물으면 내가 물구나무 서겠지만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그럴 때는 너 목은 어떻게 할 것이냐?'
'고양이 목자르면 인과가 있어서 저도 목 당할 것 아닙니까.
큰스님은 주 안달아도 알지요.'
'그럼 내 다른 것 하나 묻지. 너가 이것만 답하면 확철대오로 인정해준다.'
그러면서 능행파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옛날에 보살이 큰스님 될 것 같은
한 스님을 토굴을 지어서 한 10년간 시봉했읍니다. 10년이 되는 어느날 딸을 시켜서 시험을 했읍니다.
딸에게 가서 스님을 보듬고 교태를 부리면서
'스님 이럴 때 경계가 어떠합니까'
하고 물으라 했읍니다. 딸이 시키는데로 행하니 스님이
'고목에 한암하니 한기가 돈다.'
마른나무에 찬 바위가 의지하니 한기가 돈다 라고 답했습니다.
이를 어머님에게 그대로 전하니 보살이 토굴에 가서 스님의 멱살을 잡고
'이 흉악한 속인놈을 내가 10년동안 밥을 먹였구나.
에이 도적놈 나가거라' 하며 끄집어내고 불을 탁 질렀읍니다.
그런데 왜 쫓았느냐 이것을 묻기에
'지극히 그 스님을 위해서 쫓았읍니다'
'그래 어찌하면 안쫓겨나겠느냐. 너 같으면 어찌하겠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안 쫓겨날려면 입 벌리지 말고 공부만 했으면 됩니다.
고목이 한암하니 한기가 돈다는 말도 안하고 교태를 부리나 말거나 정진만 했으면 됩니다.
공부가 안깊어졌기 때문에 그런 헛소리를 하지 공부가 깊어지면 그런 것 말할 필요가 무엇있읍니까.
들리지도 안합니다. 정말로 진실로 열심히 했다면 들리겠읍니까.
뜨거운 것이나 차가운 것이나 똑 같읍니다. 사실 안 그렇겠읍니까.
'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느나?'
'부지런한 해가 동쪽에 뜨니 벌나비가 춤을 춥니다.'
부지런한 해, 참 부지런한 해입니다. 늘 해뜨고 내일 또 해 뜹니다.
내 이름이 무엇입니까. 부지런할 근자 날일자이니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 그 말하고 고목에 한암하니 한기가 돈다는 말하고 같느냐 다르냐.'
'천리현격입니다.'
'틀리단 말이지'
'예'
'너 아직 덜 되었구나. 네 서울 갈려면 아직 멀었어. 아직 수원밖에 못갔다.
네가 더 열심히 하면 네가 내 은혜를 못 갚을 것이다.'
내 그래서 종정스님 존경합니다. 그때 만약 잘 못 일러주셨으면
큰 일 아닙니까. 변명해 보았자 소용없읍니다.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짓 선지식은 못합니다. 그 때부터 새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강스님 회상으로 가는 도중 낙동강에서 망상 피워 시 한 수 읊고,
佛祖死活以不亂이로다.
부처님과 조사를 죽이고 살리는 것이 어렵지 않도다.
雨下濕地無疑하니.
비가 내려 땅 젖음을 보고 내가 의심이 없으니,
洛東僑下流所去라.
낙동강 다리 아래 물이 흘러가네.
하고 시를 짓고 그 때부터 전강스님 회상에서 3년 동안 공부했읍니다.
전강스님도 참 간절하신 분입니다. 낮에는 대중하고 정진하고
밤에는 큰스님하고 같이 정진하시는데 제가 기는 살아놓으니까
법문하실 때 조금만 잘못하면 그대로 안 있고 막 공격했읍니다.
하루는 '이 사람아 득력했다면 큰 허물이 아닐 것일세.' 본인이 득력했다고 하십니다.
큰스님께서 그리고 '이놈들아! 나는 77대 조사라면서도 내 한 시간 밖에 잠 안자고 공부하는데
너희들은 잠만 퍼자느냐!'하시기에 '이 노장하고 한번 겨루어보자'해서
낮에는 대중하고 정진하고 밤에는 큰스님하고 같이 정진했읍니다.
(중략)
그 당시에는 소견도 그랬지만 여러가지면에서 그랬습니다.
묵언(默言: 송담선사)스님 하신 말씀이 있는데
'선지식을 꼼짝 못하게 하면 자동 인가 아닙니까?'하셨읍니다.
내가 묵언스님께 그랬읍니다.
'스님은 다 좋은데 호탕한 것이 없읍니다.'
'내가 큰스님처럼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나는 난폭하지 않게 공부나 하다가 갈렵니다.'
그렇게 점잖하십니다. 받아들이는 폭이 넓고 진실하고 좋고
훌륭한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 스님 말이 본사 주지 안하면
내가 어디까지 따라가든지 기필코 한다 해서 본사 주지했습니다.
용주사에서 막 붙들고 그랬읍니다.
진제(眞際)스님은 천하 선지식 다 치지만은 그 기질이 좀 그래도
없는 소식 가지고 써먹읍니다. 내가 남의 선지식 함부로 처서 안됩니다만,
그 후에 은제방 주지로 계실때 수좌들하고 갔더니,
'수좌스님들 어디서 공부하고 왔읍니까?
'전강스님 회상에서 지냈읍니다.'
전강스님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사정없이 처버립니다.
야, 무엇 좀 있겠다 싶어서
'그럼 나하고 한번 겨루어 봅시다' 하니
턱 보더니 '조용히 만나자!'하면서 산으로 갑니다.
수좌들이 따라와 멀리서 봤겠지요. 땅 가리키는 법문을 묻읍니다.
'너 어디서 왔느냐?'
'보주서 왔읍니다'
'그래 보검을 가지고 왔느냐?'
그에 땅을 척 가르켰읍니다.
'왜 보검을 가지고 왔느냐는 질문에 땅을 가르키느냐?'라고 합니다.
여기서 간파하면 곤란합니다.
그래도 그 스님 인가도 받은 훌륭한 스님 아닙니까.
스님이 원하는데로 그대로 답했습니다.
다음은 수건 법문을 묻읍니다.
'둘이 지나가는데 옆에서 칼소리 난다하니 칼 찬 사람이 수건을 주는데
왜 칼소리 난다는데 수건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대로 답했습니다.
세번째는 고양이 법문을 묻기에 또 그대로 답했습니다.
네번째는 '부처가 도는 데 허물이 있읍니다'라고
향곡스님께 말씀드리니 '너가 내가 할 말을 했다.'고.
'나는 스님이 그래도 공부인인줄 알고 한로축괴(韓鷺逐塊)로 답을 했는데
그런 소견 가지고 묻는 것을 보니 스님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럼 내가 하나 묻겠읍니다. 그것만 대답해 보라'하기에
'고따위 소견 가지고 시험하지 말라'그랬읍니다.
그러니 어깨를 턱 대기에
'다시 한 번 대보라.'하니
막 손을 붙들면서
'방으로 가자' 해서 갔더니
'내 이 썩은 방망이지만 나하고 같이 좀 지내자'
그리 좋아하셨읍니다. 그러면서 전강스님 여래선을 알았다고 인정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스님(전강스님)한테 찾아가 보라고 하니
"지내보니 별 것 아닙니다."
수좌는 그런 기질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만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도 사자새끼입니다. 뜻을 들어 혹 잘못 들으면 오해합니다.
천하 선지식다 그렇게 했으니 오해 많이 사고 있습니다.
저 놈 건방지게 선지식 다 친다고, 그러나 내가 그렇게 남을 무시하는
성질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놈 잘 못 받아들이면 그래 받아 들입니다.
월산(月山)스님한테 절 딱 해 놓고 '스님, 무엇이든지 물어보십시요.'
그랬읍니다. 한 두시간 했는데 그리 좋아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공부할려는 사람을 보면 반갑고 그런 것 아닙니까.
버릇없이 했다면 내 잘못이지만 예의는 갖추고 본분상에서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다보면 기가 모일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보이는 것은 나의 모습이요,
들리는 것은 나의 소린줄 알아야 됩니다.
공부가 소중한 줄 알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공부 분상에는 존경심을 딱 가지고 해야 되고
버릇없이 선지식 우습게 알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정말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참선 참자만 들어도 공덕이 한량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은 화두도 잘 안 잡히고 어렵지만
나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고, 애를 쓰니까 도망안가고, 잡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이기기가 쉽고 져주기가 어렵습니다.
나로 인해서 어떻게 하면 저분들을 편하게 해줄까.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난행을 능행하면 존중여불입니다.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할 줄 알아야 존중하기를 부처님과 같습니다.
잠 다자고 먹을 것 다 먹고 할 말 다하고 공부할 사람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망상을 펴도 이 자리를 지키는 것만 해도 엄청납니다.
집에서 지금 우리 아들, 딸, 부모가 공부한다고 달리 안 보겠습니까?
망상 없을 수 없읍니다. 이것 다 묘용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만 약속을 지키고 하되,
아주 힘이 들면 잠깐 쉬어주어서 융통성이 있게 하십시요. 우리 용맹정진할 때는 포행이 없었습니다.
앉고 싶은 사람은 계속 앉고, 정말 다리가 아픈 사람은 나가서 돌고,
선정에 들면 깨우지 않았읍니다. 열심히 하는 보살들도 있습니다.
그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한번 들기가 어려우니 들면 가만히 두어야 합니다.
공부가 될만하면 돌고하니 아주 안좋읍니다.
경험에 의하면 3시간은 지나야 선정에 들어요.
그러니 포행없이 하고 다리가 아프면 무릎을 꿇고 하고 해서 용을 쓰면 그래저래 잡힙니다.
그래서 한 시간만 정에 들어도 힘이 굉장합니다. 하루가 빨리빨리 지나갑니다. 그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서로 같은 도반이고 분신 아닙니까?
그러니 서로 공부하도록 방해가 안가도록 소중히 해주시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됩니다.
한 사람도 가서는 안됩니다. 중간에 간 사람은 큰 죄가 됩니다.
이 생사대사보다 더 급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지금은 화두가 안잡힌다 하더라도 염화두가 아니라도 하고
앉아서 조는 사람이 있어도 흉보지 마십시요. 한 경계가 지난 사람입니다.
망상이 떨어지면 졸립니다. 그러니 너무 두들기지 말고,
코 골면 때려야 됩니다. 코 고는 것은 분명히 조는 것입니다.
혜암스님은 졸다가도 가서 때릴려하면 깹니다.
전강스님에게서 시를 읊고 해제하고 설악산 홍련암에 가니
'설악산고천년성이요 동해강심만년수라
雪嶽山高千年○ 東海江深萬年○
관음영조재하천고 백구척진파상비'
觀音靈鳥在何處 白鷗尺盡波上飛
란 글이 있는데 참 글 경지는 좋다마는 나는 저렇게 안하겠다 싶어서
쓰기를
설악산색 천고수요 동해수심 만년청이라
雪嶽山色 千○○ 東海水深 萬年淸
관음영조 재하천고 백구척진 파상비라.'
觀音靈鳥 在何處 白鷗尺盡 波上飛
이렇게 해 가지고 전강스님께 보냈읍니다. 해석하면
설악산은 높아서 천년의 도리요
동해강은 깊어서 만년의 물이로다.
관음영조는 어느 곳에 숨었는고
백구는 자질하며 파도에서 나는구나. 라고 했는데
나는 "설악색은 천고에 변하고 동해바다는 깊어서 만년에 맑도다.
관음영조는 어느 곳에 있는고 백구는 자질을 하며 파도에서 나는구나."
그 하나 하나를 보면 설악산이 아무리 높아도 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동해가 어디 강입니까? 바다입니다. 사실 그대로 해야 됩니다.
글은 진실해야 됩니다. 또 깊으니까 맑은 것 아닙니까?
관음영조가 어디 숨었읍니까? 못 봤지요. 그렇게 글을 쓰니까
어느 것이 잘 되었느니 말이 많았읍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잘되었냐 큰스님께 점검해오라 해서 보이니
이것이 근일이가 한 것 같다하고 잡아냅니다. 이 글귀 잡아 낸 사람을
두 선지식 밖에 못봤읍니다. 선지식 다 점검해 봤읍니다. 안절부절합니다.
경봉스님은 '욕심 같으면 백구등한 파상비라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하시기에
'아니 스님 그럼 일없는 소식 밖에 더 됩니까' 하니
'그럼 오언구로 해보자.' 하시면서
설악은 천고수요
동해는 만년수라
영조는 하처잰데
백구는 파상비라.
두 자씩 빼버린 것입니다. '설악산색 안해도 설악 속에 다 들어 있고,
동해는 깊다 안해도 깊은 줄 다 알고, 관음영조는 그대로 신령스러운 새이고,
백구는 척질 안해도 파도에서 나는구나. 하면 숨을 맛도 안있나'하시면서
참 좋아하셨읍니다. 공부는 못 속입니다. 아주 깊은 구절구절마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 맛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떡 맛, 과일 맛 이것 좋은 것만 압니다. 경봉스님 화상에서 지내는데,
혜암스님이 입승보고 내가 부입승보는데, 사부대중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별 걸작들이 다 있었읍니다.
이 철에 깨치지 못하면 목을 베어 바치겠다는 용기가 대단한 사람도 있었읍니다.
그래 지내는데 혜암스님 참 자비스러워 고구정령 법문을 일려주는데
이것을 고맙고 생각안하고 잔소리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 있어서 잘못하면 깨지게 생겼읍니다.
그래서 입승방에 찿아가서
'스님 공부 안 되는 원인이 세 가지가 있읍니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합니다. 나이 20살이나 차이가 난 대선배입니다.
지금은 같이 늙어갑니다만,
'무엇이냐?'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해도 안되는고 이것이 첫째 장애요,
두번째는 명예욕이 강합니다. 어디가서 법문이나 할까, 입승이나 할까
그러고, 세번째는 회양목을 하고 있읍니다.
공부는 성성하고 적적하며 면면하고 밀밀해야 될 것인데 항상 제자리 걸음하고 있으니
언지 공부 맛보겠소.'
'내가 요새 선지식처럼 할려면 나도 할수 있다.'
'아, 그래요. 그럼 내가 하나 묻겠읍니다. 입야타요, 불입야타니까?'
이 안에 들어와도 때리고 이 안에 들어오지 못해도 때린다.
즉 입 열어도 틀리고, 입 안열어도 틀린다는 소리입니다.
'전강스님이 나에게 그렇게 물으면 이 원상을 지우지 않고
절을 세번하고 나오겠읍니다.'
'스님 그것 갖고 되겠소? 내가 스님을 부정하면 스님은 나를 믿지 않을거요.
내 곪았다 생각하고 침을 대겠읍니다.'
하고 떡 이야기하니 다시는 입승을 안하겠다고 합니다. 공부 된 사람은 들어보면 압니다.
여기서는 이야기 할 수 없읍니다. 여러분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곪아야 침을 댑니다.
그 다음은 법문을 떡 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시간을 했읍니다. 그때 목을 베어 바치겠다는 수좌가
"옛 조사 소 타고 소 찾는다는 도리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에
"너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니까?"
어리어리하기에 벼락같이 할을 하고
"네가 너소리 해도 시원찮을 터인데 조사스님 어쩌고 그래가지고
어찌 목 베어 바치겠느나. 선지식은 처음 길을 몰랐을 때 필요하고
해태심이 날 때 분지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깨달았을 때
바로 깨달았느냐, 못깨달았느냐 점검할 때 필요한 법이야."
분지나게 할려고 그랬읍니다. 그래가지고 수좌 하나가 나한테 무엇이라 하는데
너무 설치면 그 사람에게 무엇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 내 이 회상에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경봉스님이 시장 안 가신다고 대신 해달라고 해서
쌍계사 주지 고산스님이 범어사 동래 포교당 주지했을 때
들기름 두 말을 화주해 주고 밤에 떠났습니다.
그때 진제스님 상좌가 공부하고 있는데
'스님 따라가겠읍니다' 하기에
'내 길은 험하다. 여기서 공부해라'
하고 토굴로 들어갔읍니다. 들어갈 때 성철스님에게
'스님 이제는 혼자 공부해도 될 것 같으니 들어가겠읍니다'
하고 9년을 지내고 여기 주지로 왔습니다.
그 후에도 가끔 가서 일하고 문답도 하고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다가 전강스님 회상에 가는 도중 큰스님 열반에 들었습니다.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정말로 공부가 소중하고 선지식이
소중한 줄 알아야 됩니다.
또 화두에 심천이 있읍니까마는, '이뭣꼬' 화두가 무난하고 좋습니다.
이 화두의 출처를 말씀드리면, 육조스님께 남악회양선사가 찾아갔읍니다.
도인이라 해서 찾아갔더니 '너 어디서 왔느냐?' 거사님 갔으면
'서울에서 왔읍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살다가 온 곳 숭산에서 왔읍니다. 어떤 물건이 이와 같이 왔느냐? 하니 대답을 못했읍니다.
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는데 어떤 물건이냐 하는 것인데 8년을 고심하다가 깨달은 것입니다.
8년 동안 이 무엇이라 해야 되느냐, 이것이 '이뭣꼬'의 시작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하는 이 주인공이 있는데 이 이름이 마음이지 그 자리가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면 물건이냐, 물건도 아니란 말이며, 그럼 부처냐, 부처도 아니니 어떤 이름을 붙여도 안맞읍니다.
그래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이뭣꼬'입니다.
'이것이 무엇인고'를 7자로 줄이면 이뭣꼬고 이뭣꼬를 줄이면 당장 '이'하는 이것이 무엇이냐 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슬픈 것인고 하면 슬퍼지고, 즐거운 생각을 하면 즐거워지듯이
염불과 틀린 것은 이것이 무엇인가 할 때 그 의문점이고 다른 염불은 의지심을 가짐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따로 있어가지고 우리 소원을 이루어준다 이러는데
이뭣꼬는 그런 의지심이 없기 때문에 좋읍니다. 염불은 의지심이 있기 때문에 단점이 있읍니다.
이것이 무엇인고는 바로 가까운 나이고, 염불경계도 됩니다.
그러니까 염송, 염불, 염선으로 되어서, 의미 없이 하면 염송이고,
부처님을 생각할 때는 염불이고, 이것이 깊어지면 염선 즉 의정을 일으키는 당장 이것이 무엇인고 입니다.
관세음보살도 관세음보살 부르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러면 그것이 화두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추구하다보면 깊어집니다.
방법은 따질것 없이 앉아서 하면 좌선이고, 걸어다니면서 하면 행선이고,
들어누워서 하면 와선이고, 일체처가 공부입니다.
바른 자세, 바른 호흡, 바른 생각이라야하는 것은 구차한 소리입니다.
호흡법이 어떻고 언제 호흡법 따집니까? 이리 따지고 저리따지고 그러는데 그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하십시요.
급한 마음갖지 말고 하면 되고 그러다보면 물을 말이 생길 것이고
그 때 어려울 때 물으십시요. 지금 너줄하게 복잡하지요.
그러니 그렇게 쉽게 이루지말고 자기 나름대로 하다보면 어떤 길이 있읍니다.
다만 이 정말로 참선이 소중하고 선이 소중한 줄만 알면 공부가 됩니다.
기필코 내가 물러나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만 하면 됩니다.
몇 일전에 한 보살이 오셨는데 부채질을 하니 시원하기에 공기를 화두로,
지금 생각하니 화두지 화두인지도 모르고, 무엇이 이렇게 시원한고 이것 생각하다가 보니
그만 삼매에 들어서 다섯, 여섯시간을 그냥 지냅니다.
자기가 드는 방법이 있어서 그렇게 하면 오육시간 그냥 삼매에 듭니다.
그러니까 염력이 강해져서 저 회사가 기울어져가면 일으켜 주어야 되겠다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무당으로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낙공에 떨어진것 아닌가 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만해도 힘이 있읍니다.
아무튼 공부가 조금 깊어지면 자기 생각대로 된 것으로 끄달리지 마십시요.
그런 경계나 좋은 경계가 오더라도 그것으로 삼지 마십시요.
선을 하면 귀신도 못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속인들 신통을 좋아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요.
또 이뭣꼬를 약하게 하니까 윙하고 띵한데 당장 '이'하는 놈이 무엇인가,
혹시 어디 아프더라도 아프다하는 이 놈이 무엇인고 하십시요.
머리가 띵할 때 머리 불 붙여놓으면 머리 땡한 생각이 없읍니다.
약하게 하기 때문에 띵히니 뭣하니 끄달립니다.
정말로 당장 보고, 맛보고, 말하고 하는 이 주인공, 알 수 없는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천번 면면밀밀하게 추구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용을 쓰고 찡을 쓰고 그러면 머리 아프고 합니다.
그러니 음식을 좀 적게 잡수시고 이 육신이 있어야 되겠다 싶으면 마지못해 먹되,
음식에 탐해서 먹지말고 그렇게 열심히 하면 안될 턱이 없읍니다.
< 1980년 수선회 법회 >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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