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다 남 살필 때 중생 속에 연꽃 핀다 / 각현 스님
많은 분들이 법화경을 공부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법화경을 공부하시면서 왜 그렇게 이름 지어졌을까하고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부처님 당시의 언어 산스크리트어로
법화경은 ‘묘한 백년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중국 사람들이 ‘묘법연화경’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부처님의 경전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연꽃을 상징해서
제목으로 쓴 경전은 흔치 않습니다.
연꽃에 어떤 의미가 있어서 ‘묘법연화경’이라 했을까요.
아마도 여러분들이 이 뜻을 아시면 ‘아, 법화경에 이런 의미가 있구나’하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연꽃은 반드시 진흙 속에서 핍니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 이파리를 붙인 후에 꽃이 올라오는데,
흙탕물이나 더러운 물 하나도 용납하지 않아 물이 잎에 떨어지면 또르르 굴려 버리고
고고하게 연꽃잎만 피웁니다. 이것은 우리가 법화경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진리와 보살을 상징합니다.
보살은 삶은 더러움과 번뇌, 갈등, 욕망, 고뇌가 있는 중생,
곧 연꽃처럼 흙탕물에 살면서 진흙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꽃을 피워 고고하고 맑으며
청아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때문에 보살은 곧 연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묘법연화경’은 진흙탕 속에서 보살의 고고한 모습을 보이는,
진리를 밝히는 가르침, 진리를 실천하는 보살의 원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화경에서는 이것이 핵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구도자의 참다운 모습과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꽃이고 보살인 것입니다.
경제위기는 욕심 부린 과보
얼마 전 입적하신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시면서 각막을 기증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구도자의 거룩한 모습, 이것은 분명 사회를 맑게 할 수 있는 것이고
이 혼탁한 사회 속에서 살아있는 연꽃, 한 떨기 연꽃처럼 고고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도자의 참다운 모습입니다.
이 같은 보살의 정신이 연꽃을 ‘묘법연화경’에 등장시킨 가장 핵심적 요인입니다.
많은 스님들이 처렴상정(處染常淨)이라는 글을 많이 씁니다.
혼탁한곳에 있으면서도 항상 맑은 것이 바로 연꽃입니다.
중생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물 한 방울도 용납하지 않는 연꽃처럼 고고하게 구도자의 모습으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법화경에서 말하고 있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위기를 가만히 돌이켜보면, 결국은 분수없이 너무 욕심을 내다 가져온
중생의 욕망의 과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조금 더 정성스럽게 성실한 삶을 살고 이웃을 보살피는 아름다운 마음들을 가졌다면
이렇게 경제위기를 맞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과분하게 풍족하게 살다보니
고무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세계일수록 법화경의 가르침, 핵심사상을 우리가 간과할 수 없습니다.
법화경의 정신은 연꽃과 같이 고통과 번뇌를 함께하는 중생들 속에서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고고한 향기를 내듯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의 가르침을 펼친다는데 있습니다.
법화경 핵심사상의 하나는 진리를 밝히는 것, 또 하나는 보살이 진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달라져야합니다. 어제까지 여러분들이 진리를 밝히는 것을 배웠다면
오늘부터는 진리를 실천하는 보살의 자세, 보살의 위신력, 구도자의 정신자세를 배워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법화경에서 중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는 모두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일체여래는 일체중생의 아버지이며 우리는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언젠가 성불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에 성불할 수 없는 중생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세 번째 보살은 모두 법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 등 수없이 많은 보살이 있습니다.
그 보살이 곧 법사이며 보살은 모두가 법사가 되어야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살은 바로 나입니다. 언젠가는 성불할 수 있는, 성불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는 위대한 존재고, 거룩한 존재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존재입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고, 배고프고, 못났지만
언젠가는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부처님의 아들이며,
언젠가는 성불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는 모든 중생을 부처님처럼 받들라는 것입니다.
나도 부처요, 너도 부처요. 내 남편도, 내 아내도, 동생, 아들, 딸, 내 이웃 등
지금은 비록 도둑질하고 거짓말하는 중생이지만 모두 부처님처럼 받들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법화경은 이 네 가지 목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법화경의 4대 목표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바세계에는 질병, 고뇌, 욕망, 갈등, 번뇌, 아픔 등 수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바세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바세계를 참고 또 참고 인내해야 할 세계라고 하셨습니다.
미륵부처님이 건설하는 세계는 용화세계입니다.
밝은 세계, 꿈의 세계, 환희의 세계, 기쁨의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 고구려, 백제 그 삼국이 전쟁을 할 때 전쟁 중에도 미륵부처님을 조성해서,
하루빨리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원했던 것이 우리 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이곳저곳에 미륵부처님이 많이 계십니다.
미륵을 통해서 꿈과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법화경을 읽거나 외거나 해설하거나 쓰면 육근이 장엄하고
모두 청정해지는 오종법사가 된다고 합니다.
오종법사는 첫째 법화경을 갖고 있는 공덕, 두 번째 읽는 법사, 세 번째 외우는 법사,
네 번째 남에게 해설하는 법사, 다섯 번째는 법화경을 쓰는 법사를 말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위대하고 거룩하고, 장엄한 법사입니다.
설령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인식 하는 모든 것들이 혼탁하다고 하더라도,
법화경을 읽으면 고고하고 맑고 밝고 투명해서 여법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화경에서 가르치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연꽃은 진흙 탕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바세계는 탁한 세계입니다.
고통의 세계이며 번뇌, 갈등, 더러운 고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사바세계라고 한 것입니다.
실천할 줄 아는 이가 곧 보살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혼탁한 세계에서 비록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연꽃처럼 어디를 가든 열 사람이 모이면 열사람, 백사람이 모이면 백사람 속에서도
연꽃처럼 고고하기 피어나기를 당부 드립니다.
보살이 고통의 세계에 살며 중생을 구원한 네 가지 비법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포용하고 이끄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을 알려 드릴 테니 한번 이것을 여러분이 남편과 자식들에게 써보십시오.
첫째는 보시섭입니다. 물질을 베풀고, 마음, 물질, 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나누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애어섭입니다. 이것은 따뜻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다정한 말, 온화한 말, 부드러운 말입니다.
세 번째는 이행섭. 몸과 입과 뜻으로
상대방을 이롭게, 친절하게, 상대방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동사섭입니다. 같은 무리에 있으면서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성격, 개성을 이해해
협동심을 갖고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다.
부부가 너는 너, 나는 나해서는 바른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남편의 성격과 개성을 살펴 어떻게 하면 남편을 위해
내가 이 가정을 현명하게 꾸려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하는 아들이 어떻게 하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할까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법사라면, 불자라면,
이웃들 속에 이 사섭법을 실천하고 행동하고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법사, 보살입니다. 여러분이 법화경을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해
더 많은 보살과, 더 많은 법사가 이 법당에서 출현하기를 기원합니다.
2009. 06. 01
이 법문은 대구 법왕사에서 봉행된 제19회 백고좌법회에서
연꽃마을 대표이사 각현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각현 스님 은
1944년 경북 문경 출생. 1968년 법주사에서 월탄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73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74년 법주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1986년 동국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수료했으며
1989년 미국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법주사 부주지를, 1988년부터 9대와 10대, 11대 중앙종회 의원을,
1997년 청주불교방송사장, 2003년 법보신문 사장을 역임하고
1990년부터 현재까지 연꽃마을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08년 불교인권상 수상, 제23회 불이상 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첫댓글
오종법사 (五種法師)
법화경에서 말하는 오종법사 :
①받아 가짐ㆍ②읽음ㆍ③외움ㆍ④해설ㆍ⑤옮겨 씀
여기에서 받아 가짐(受持)은 정행(正行)입니다. 곧 주(主)되는 수행입니다.
그 밖의 ②읽음(讀) ③외움(誦) ④해설(解說) ⑤옮겨 씀(書寫)은 조행(助行),
곧 정행을 돕는 수행입니다.
▒ 받아 가짐 - 수지(受持)
<받는다(受)>는 것은 법화경을 마음에 깊이 믿는 것이며,
<가진다(持)>는 것은 그 마음에 깊이 믿는 바에 승차(乘車)하여 마침내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믿는 마음이 계속되면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런고로 <받아 가진다>는 것은
법화경 신앙의 생명, 곧 법화 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에 법화경 신앙 분상에서 정행(正行)이라 합니다.
▒ 읽는다 - 독(讀)
<읽는다(讀)>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읽는 것,
또는 귀로 듣는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읽는다>는 것을 <듣는다(聞)>라고도 표현합니다.
눈으로 읽든지 귀로 듣든지,
아무튼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마음에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읽는다>는 뜻입니다. (정독)
▒ 외운다 - 송(誦)
<외운다(誦)>는 것은, 글자를 보지 않고 읽는 것입니다.
경전을 <외운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여기서 <외운다>는 것은 다만 입으로 소리를 내서 외울 뿐 아니라,
마음 속으로 되풀이 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심독(心讀), 곧 마음에 깊이 믿어야 할 것이며, 또한 색독(色讀), 곧 가슴으로 깊이 믿고,
몸으로 직접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외운다>는 참 뜻입니다.
▒ 해설한다 - 해설(解說)
<해설한다(解說)>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경전을 <해설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남에게 설명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올바르게 부처님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자 하되 잘 안되는 것은,
요컨대 자기의 믿음과 아는 정도가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해설한다>는 것은, 몹시 까다로운 일이지만 힘써 노력하면,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신앙적으로 법화경을 받아 가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까지 실행하고 있는가를 가슴으로 알 수 있습니다.
▒ 옮겨 쓴다 - 서사(書寫)
<옮겨 쓴다(書寫)>는 것은, 경전을 베끼는 것으로서,
옛날부터 많이 실행해 온 것입니다.
불교에 대한 책을 저술하는 것도,
경전의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므로 <옮겨 쓴다>의 일환입니다.
<자료참고: 창원시 진해구 백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