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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의 이관(李關)
서 기 원
어느날, 서울 불광동에 있는 이관(李關)의 집으로 충청남도청이란 고무 도장이 찍힌 노란 봉투가 날아들었다. 배달된 우편물은 으례 이관의 방 탁자 위에 놓여 있게 마련이었는데 이때 따라 아내가 간수하고 있다가 채 웃도리도 벗지 못한 남편에게 건네었다.
“이게 뭔데?”
가위질을 한 것이 못마땅해서 무뚝뚝하게 물었다.
“산소 계신 곳에 공업 단지가 들어선다지 뭐예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군.”
근래 도처에서 이른바 개발 붐이 있어나고 있는 터라 조금도 놀랄 만한 사건일 수는 없었지만 그런 일이 설마 이관 자신에게 들이닥칠 줄은 미처 예상을 하지 못했다.
내외 모두 주번머리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고, 또 그러기에 십여 년 전의 국민주택이라는 것을 개수하여 여지껏 살아온 터이었다.
“그 근처도 그 동안 땅값이 꽤 올랐을 거예요.”
아내의 말에,
“어서 저녁상이나 차려오지 그래.”
이관은 핀잔을 주듯 일렀다. 그가 관리하고 있는 혹은 모셔야 할 직계 조상의 무덤은 두 군데 선산에 10기가 있다. 외아들인데다가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역시 돌아가신 숙부의 아들들인 사촌형제와 당질이 서넛 있을 뿐이고, 또 사는 형편들이 그나마 이관이 나은 편이어서 그 여러 봉분들의 엄청난 중량이 그의 홀쭉한 등허리를 내리누르고 있는 것도 피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모와 조부모대(代)의 다섯 기는 고향인 충북 옥천(沃川)에 있고 그 위로 두 대의 다섯 기가 충남 홍성(洪城)에 있다. 산지의 크기로. 말하면 홍성 쪽이 서너 곱은 된다.
크게 성공할 것도 없고 실패할 것도 없이 어영부영 살아온 이관은 자주 성묘를 가지 못하는 것을 조금은 부담스럽게 여기면서도 서울 살림이란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며 큰 관심없이 지내온 것이었다.
이관은 상을 물리자 굳은 표정으로 응접실을 겸하고 있는 거실에 들어가 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아내의 참견을 반사적으로 꺼리고 있는 듯했다.
홍성에 있는 산은 제법 쓸만하다. 9정보 남짓의 펑퍼짐한 야산이다. 삼구 이십칠, 2만 7천 평 가운데 아래턱의 이천 평 정도를 밭으로 일구어 삼 대째 내려오는 황 서방네가 부쳐먹고 있다. 군청에서 보낸 문서는 땅 임자에 대한 매상 통고였는데 무슨 전자 부품 업체를 위한 소규모의 공장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그 고장 출신의 국회의원이 전문대학과 무공해 공장을 유치한다는 지방 소식을 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다. 잘은 모르지만 이런 경우 땅 주인들이 이의(異議)를 제기해 보았자 별수가 없고, 그저 보상금이나 억울하지 않게 타 먹으면 다행일 것이었다. 공문에는 그 밖의 매상 절차와 방법 같은 것을 적지 않아 이런 일에 어두운 이관의 궁금증을 더해 주었다.
대뜸 머리속에 떠오른 것이 다섯 기의 분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옛 일에 관해서는 아버지 생존시에 다소 보고들은 풍월이 있고 《사레편람(四禮便覽)》 같은 책도 구경한 적이 있을 뿐이지만 이른바 시속(時俗)에 맞추어 약식으로 지르면 그만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간은 그리 촉박하지 않지만, 현지의 물정도 살필 겸 이관은 이틀간의 휴가를 맡아 홍성으로 내려갔다.
고속버스는 온양(溫陽)까지 밖에 없다. 거기서 지방 버스를 갈아다고 한 시간쯤 달려야 한다. 천안(天安) 장항(長頂) 간은 서부 충남의 동맥인데도 옛 신작로를 그냥 포장했을 뿐이었다. 충청도 사람은 떼를 쓰지 않아 그리 된 거란 말이 있기는 하다. 헌데 옥천서 대청호(大淸湖)를 질러 보은(報恩) 가는 길은 무슨 세계은행인가 하는 데서 빚을 내어 고속도로 못지않게시리 쌩쌩 달리게 만든 걸 보면 아무래도 남도보다는 북도 사람이 야무지지 싶었다.
홍성읍내에 당도하여 내렸다. 조양문(朝陽門)이란 현판을 단 성문을 빠져 이관은 곧장 군청으로 향했다. 민원실의 담당 창구를 찾아 공문을 디밀었다. 장발을 한 애송이 직원이 펜대를 놓고 유심히 이관을 올려다보더니,
“일부러 오섰읍니까? 곧 보상금 내역을 송부해 드릴 텐데요.”
호기심어린 눈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말이오.”
“우리도 빨리 끝내는 게 좋으니까 우선 이 안내서를 드리지요. 필요한 구비 서류가 적혀있읍니다.”
말씨는 제법 공손하면서도 이쪽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일방적인 응대가 좀 불쾌하였으나 창구를 붙들고 시비할 노릇도 아니어서 참기로 했다.
군청은 옛 홍주목(洪州牧) 관아 자리에 있다. 뜰 안으로 수백 년 묵은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버티어 섰고, 뼈대만은 성한 동헌(東軒)이 보존되어 있다. 그보다는 읍내를 에워싼 홍주성의 내력이 간단치 않다. 의병(義兵) 나리로 꽤 유명한 것이다.
창의장(倡義將) 민종식(閔宗植)이 이끄는 의병 천여 명이 홍주성을 점거하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과 장렬한 전투를 벌인 바로 그 자리이다.
이관은 성벽 아래를 천천히 거닐면서 사뭇 감회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민종식 대장의 참모를 지내다 순국한 증조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증빙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해 상기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 시간 가량 그렇게 성곽 둘레를 산책한 이관은 치부 근처의 식당에서 요기를 했다.
그리고는 택시를 잡아 값을 흥정했다. 읍에서 동쪽으로 십 리 갸웃 추산리란 마을이다. 어귀에서 차를 돌려보낸 이관은 농가와 논밭 그리고 그 위의 펑퍼짐한 산등성이를 하나하나 매만지듯이 감상하고 있다. 저 가심재 남면(南面)의 거의 전부가 이관의 명의로 되어 있다. 왼컨으로 불룩한 둔덕을 이루고 있는 언저리에 조상들이 잠들고 계시다.
“명당이로군. 저기다 대면 옥천은 쓸만한 자리가 어디 남아 있을라구.”
이관은 뭔가 혼잣소리로 중얼중얼했다. 불도저가 산을 깔아뭉개는 광경을 상상하고 가슴이 섬뜩해지고, 긴 한숨이 절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간의 불효를 용서하소서, 아니 지금의 막심한 불효를 용서하소서, 남의 땅을 멋대로 차지하고 남의 이를 데 없이 소중한 유택(幽宅)들을 몰아내는 횡포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못나고 힘없는 자손을 불쌍하게 여기소서…… 이 따위 가당지도 않은 이치를 꾸며대면서 이관은 의젓한 걸음걸이로 동리에 들어섰다.
마침 황 서방이 집에 있어 다행이었다.
“선상님, 참 오래간만에 오셨구먼요.”
호들갑을 떨며 반겨주기를 기대하지 않았으나 왠지 좀 쌀쌀맞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그의 마누라도 부엌에서 나와 인사를 했다.
이관은 인도되는 대로 건넌방에 좌정하여 황 서방의 큰절을 받았다. 이관은 좀 게면쩍은 눈으로 방바닥에 손을 가볍게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너댓 아래인 황 서방이 이처럼 예절을 지킬 줄 안다는 것은 이관과의 관계를 떠나서도 매우 대견스런 일이었다. 원래는 십여 마지기의 묘답이 있었지만 아버지대에서 딴 데로 넘어갔고 지금은 이천 평 남짓한 밭뙈기만 달려 있다.
농지세(農地稅)는 황 서방이 물지만 그건 별게 아니고, 말하자면 이 밭에서 나는 소출 가운데 도조(賭租)에 해당하는 몫만큼 이관의 선산을 돌보고 있는 셈이라고나 할는지. 좀 야박한 계산 같지만, 가외의 대접이나 봉사를 요구한다는 것은 세상읕 거꾸로 살지 않는 바엔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그러기에 ‘선상님과 서방’의 관계도 큰 파탄 없이 이어져 온 것이리라. 댁내 문안을 나누기가 바쁘게 황 서방은,
“요 며칠 전 작은댁 서방님두 다녀가셨지유. 삼 년만에 뵈웠나유.”
했다.
“거 참 희한한 일이군.”
이관은 대꾸와는 달리 안면이 뻣뻣해졌다. 군에서 이중으로 통지가 갔을 리는 만무하고 신문에 난 걸 보았거나 소식을 들은 게 틀림없었다.
하긴 애초부터 사촌동생 생각을 안한 셈은 아니었다. 직계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선산을 관리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장손이고, 또 그러기에 필요한 약간의 재산도 장손의 명의로 되어 있는 것이지만 재산의 일부가 불가피하게 처분이 되는 마당에 있어서는 그 대가를 장손 혼자 임의로 하지 않는 것이 법 이전의 사람의 도리일 터이다.
해서 여기 내려오는 버스 속에서도 이런저런 궁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관을 포함하여 집안의 누구건 김치국부티 마실 생각은 말아야 했다. 옥천의 산은 토질도 나쁘고 험상궂은 지세로 보아 산소 다섯 자리를 낼 여지가 없지 않은가. 그럴진대 산을 바꾸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나지나 큰 난리닜시유. 우리 마을서두 날마다 모여 의논하지만 뭐 신통한 수가 나야 말이지유.”
황 서방이 땅이 꺼지게 중얼거렸다.
“그럴 테지.”
“농군은 그지 땅을 파먹고 살아야 하는데, 쥐꼬리만한 보상금 가지구 워디 가서 이만한 땅을 장만한데유?”
“글쎄나 말일세.”
황 서방이 자꾸만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것 같아 어물쩍 대꾸했다.
하긴 그릴 것이다. 이럴 경우 농민들은 도시, 하다못해 읍에라도 나가든지, 그럴 국량이 못 되면 농지 값이 싼 곳을 찾아야 할 것이었다. 댐 건설로 말미암은 수몰지구에선 이주촌(移住村)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지만 그 비슷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농가 주택 자금인지 뭔지 죄금 융자해 준다고는 하지만, ……큰일 났시유. 허긴 산을 가진 사람은 괜찮겠지만서두.”
것도 옳은 말인 듯하였다. 논 값은 요지부동인데 임야는 슬금슬금 오르고 있는 것이 이른바 개발의 혜택을 못 보고 있는 농촌의 실정이니 말이다.
황 서방은 무심코 뱉은 말일지 모르지만 이관에겐 언중유골(言中有骨)로 들렸다. 그래서인지 골상을 잔뜩 찌푸리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참, 내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구먼. 성묘부티 하셔야지유.”
하며 황 서방은 마누라를 불러 성묘 차비를 일렀다. 양은쟁반에 술잔 하나, 막걸리 주전자와 돗자리 한 장이 전부이다. 황 서방 막내아들이 주전자를 들고 꽁무니를 따랐다.
곧잘 불어대던 봄바람도 자고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산지를 일궈 돌무더기를 씌운 덩굴이 파랗게 물들고 있다. 논두렁에서 그 언저리까지는 한창 보리가 자라고 있는 밭이고 그 위 애솔나무밭 사이로 돌아뵈는 등성이께가 산소이다. 봉분은 아래턱으로 증즈부 웃턱으로 고조부 해서 한 쌍씩 모시고 고조할아버지의 계비(繼毗)는 골 건너에 따로 모시었다. 고조할아버지의 묘엔 석주(石柱)가 둘에 우람한 비석이 우뚝 서 있다. 증조 내외분이 상석(床石)뿐인 것이 좀 허전했다.
이관은 상석 위에 놓인 잔에 술을 따라 헌주했다. 황 서방은 이마가 돗자리에 닿도록 죄아리는 이관의 거조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집을 나설 땐 황 서방네에서 하루 묵을까 했으나 성묘하는 사이 마음이 변해서, 한길까지 걸어나갈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산하여 황 서방네 마루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재수 좋게도 택시 한 대가 동네에 들어왔고, 빈 차를 면하려는지 클랙슨 소리를 울려대는 것이었다.
“계제에 잘 됐군. 나중 편지할 테지만, 황 서방의 도움을 받아야겠어.”
이관은 만원짜리 두 장을 황 서방에게 쥐어주고는 작별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황급히 떠났다.
아침 6시께, 이관은 습관대로 개를 끌고 산책을 나섰다. 시멘트 포장을 한 주택가의 언덕배기를 올라가면 풍치림으로 묶여 있는 바위 산자락에 들어선다.
산보객들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길목이라 주위를 잘 살펴 후미진 장소에서 똥 오줌을 누이고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간밤에 부슬비가 내려 공기는 더욱 신선하지만 바람이 좀 시리다. 헌데 늦잠 버릇을 못 고치는 아들놈이 청색의 트레이닝 웃도리를 걸치고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네가 웬 일이냐.”
의아한 낯으로 묻자 대뜸 한다는 소리가,
“아버지 우리 산이 도시 계획에 들어갔다면서요.”
“손바닥만한 걸 가지고 산, 산 하지 마라. 도시 계획이 아니고 공업단지야. 조상께 면목이 없게 됐다. 어머니가 뭐라구 하데?”
“그렇다구만 하시던데요.”
후기(後期)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지만, 아비보다는 민사에 이약하다는 것이 이관의 생각이었다.
“그래 궁금해서 쫓아올라왔니? 늘 너희들한데 하는 소리다민 조상이라는 것은 원망해서도 안 되고 덕을 보려고 바래서도 안 된다.”
사뭇 훈계조로 이르자 아들은 놀란 눈으로 말문을 열려다 말았다.
녀석이 혹 장가 밑천이라도 넘보고 있는 셈인가,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놈이 설마 장가들겠다고 대들지는 않을 테지, 또 어릴 때부터 공것을 바라게시리 가르치지는 않았으니까. 곁눈으로 아들의 허여멀쑥한 얼굴을 보며 이 따위 생각이 오락가락하는 이관이었다.
“진구(개이름) 데리고 한 바퀴 돌고 오려무나.”
이관은 쇠줄을 넘겨 주고는 연방 헛기침을 하며 내려갔다. 아들이 집안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야 당연한 노릇이다. 헌데도. 그게 싫은 것이다.
이관의 회사는 을지로 4가에 있었다. 전자 부품을 수출하는 조그만 업체로 주식회사란 명색뿐인 사장의 개인 회사였는데 천무와 상무 그리고 부장 셋에 통틀어 스무 명이 안 된다.
아홉시 반에 사장실에서 갖는 간부회의를 파하고 이관도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의 직함은 관리부장, 듣기엔 나쁘지 않지만 회사가 들어 있는 사장 소유의 5층 건물을 관리하는 것이 주된 소임이었다.
세든 사무실의 임대료와 관리비의 칭수, 청소 용역의 감독 따위를 사내 직원 하나만 데리고 도맡고 있다. 이런 잡무보다는 좀더 머리 쓰는 일거리도 감당할 만하다 싶지만 지금 처지에 불만은 별로 없다.
회사는 그런대로 홍콩 등지의 거래선들이 탄탄하고 전자 제품의 경기도 괜찮은 편이어서 이관을 위해서도 그만하면 안정된 직장이었다. 사장실을 빼고는 교실만한 너비의 간막이 없는 방을 하나만 쓰고 있다.
마침 웃사람들 모습이 안 보이기에 이관치고는 용기를 내어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장거리로, 예의 안내문 말미에 적힌 번호였다.
“군행정괍니다.”
“여보세요. 홍성 군청입니까?”
“말씀하세요.”
“그 공업단지 지역에 관한 문의인데요. 그 보상 통진가 하는 게 아직 안 와서요.”
“고시 기간이 남았어요. 그게 끝나야 협의에 들어가니까요. 그때 가서 다시 연락하세요.”
상대는 채 말을 맺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이관이 무안을 당한 듯 멀쑥해 앉아 있으니까 총무부장이란 사람이 좀 상기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이 부장 희소식이로군요. 혼자 재미보지 마시고 탁 털어놓으세요.”
“선산을 뺏기게 됐는데 머가 희소식이란 말이오.”
“거저 뺏나요. 아뭏든 이 부장 조상 덕 단단히 보시게 됐군요.”
김 부장은 아예 이켠 책상머리로 건너와 말을 계속했다.
“요샌 보상을 터무니없이 강요하지는 못해요. 거야 시세보다는 못하겠지만 어지간히 현실화됐다니까.”
“시세보다 못하다면 그게 어디 현실화요.”
“그런 게 아니고 관청의 지가(地I賈)라는 것이 복덕방에서 부르는 값과 같을 수야 없지요.”
하며 이관의 소유의 땅 넓이와 위치, 그리고 산의 경사도 같은 것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었다. 이관은 쓴 탕약을 들이킨 상판으로 대강 대꾸했다, 사무실에서 통화를 한 것부터 김 부장을 비롯한 직원들 귀에 들어가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걍남 요지에 번듯한 이층집을 가진 김 부장에게 부족하나마 갚아 줄 모처럼의 기회가 된 셈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상 덕을 보게 되어 축하한다는 김 부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주위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이관은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었고, 종잡을 수 없는 자기 혐오와 이와논 딴판인 무슨 자랑거리라도 남에게 구경시켜 주고 싶은 엇갈린 심사를 가누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이만 일에 흔들려 한심스런 내색을 해서야 되겠나, 이관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무슨 긴요한 문서라도 정성들여 기안하는 척했다.
하지만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두 군데 산소와 그 근처의 수려하고 정겨운 풍경을 지울 재간이 없었다.
“뭘 그리 심각하게 궁리하고 계시오? 점심이나 하러 가십시다.”
업무부 박 부장의 웃는 얼굴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써 점심땐가?”
“한두 번 가지고 되겠어요. 우선 오놀 점심부티 사시오.”
“김치국부터 마시자 이 말씀인가. 좋시다. 뭐 그린 일 아니드래도 점심 못 사겠소.”
이관의 기세 좋은 대꾸에 모두들 소리내어 웃었다. 최 전무와 부장 차장들 해서 일곱 사람이 줄줄이 따라나섰다.
염치도 체면도 없는 치들이군. 그러나 이관은 관용스런 미소를 띠며 최 전무를 모시는 형국으로 길 건너 골목 안의 단골 식당에 들어갔다.
“소금구이로 하십시다.”
“그리구 보니 뜬소문이 아니었구먼.”
이런 수작으로 시작된 판은 고기 십오인 분 맥주 열 병은 실히 비웠다. 물론 8만원이 넘는 계산은 외상으로 달게 했는데, 이관은 바가지를 쓰기는커녕 도리어 그 값만한 소득을 얻은 기분이었다. 모두들 열심히 고깃덩이를 입 안으로 쑤셔넣으면서도 이것저것 알은 체를 하는 얘기 가운데 도움이 됨직한 게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토지 보상 조건에 승복치 않을 경우, 새로 생긴 법으로 수용(收用) 을 할 수 있다든가, 대상 구역 안의 분묘 이장에 관해서는 일정 기간 고시한다든가 하는 따위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귀가 솔깃해진 것은,
“조금도 염려하실 것 없어요. 지도 몇 해 전 이장을 했었는데, 아니 머 이 부장님 같은 케이스는 아니고요, 방우리에 가시면 청부하는 업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석물 만드는 데 가셔서 앝아보시면 됩니다.”
하는 서른을 갓 넘은 총무부 차장의 말이었다.
“그땐 줄잡아 봉분 하나에 60만원 정도 먹혔는데 그 사이 워낙 품삯이 뛰었으니까. 허지만 분량이 많으면 좀 감해 줄 거예요.”
조상께서 돈을 먹었다니 쌍소리 임에는 틀림이 없겠으나, 이관에겐 귀한 정보라 할 만했다.
그렇다면 한 기에 80씩 치고 오팔이 사십, 그런 정도겠군, 하여 이관은 지레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다음 달 월급날이었다. 이관은 외상 음식대만큼의 액수를 가불해서 봉투를 채우고 일찌감치 퇴근하여 아내에게 넘겨주었다. 식구들에게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사 불여 튼튼이라. 어찌 될는지 얄 수 없는 일, 엄벙덤벙하다간 큰 낭패 본다구.”
이런 식으로 가계부 적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단단히 일렀다.
“알고 있어요. 당신이나 헤피 쓰지 마세요. 괜히 주위 사방의 봉 노릇 하지 마시고.”
아내의 대답에 속이 뜨끔했지만, 한켠으론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릴밖에 없는 것이 아내의 꿍꿍이속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용케 참고 있지만 조만간에 그놈의 ‘아파트’ 소리가 귓전을 때리게 될 것이 뻔하다. 아내는 별스레 또박또박 떼어 아·파·트로 발음을 하곤 했다. 집을 팔아 한 이천만원만 보태면 넓이를 줄이지 않고도 엔간한 아파트에 들 수 있겠네요, 하며 한숨을 푹 쉰 적이 있었다.
“허튼소리 지우라구. 돈도 없거니와, 난 그놈의 공중에 매달린 궤짝 같은 건 딱 질색이니까.”
마당깨나 잘 가꾸고 사는 양 핀잔을 준 적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마루에서 잠깐 TV를 보는 척하더니 이관은 이내 거실로 사라졌다. 헌데 마누라가 단단히 작심한 듯 쫓아들어오더니 방바닥에 엉덩이를 떨구었다.
“어떻게 돼가요? 대관절.”
“뭐가 어떻게 돼, 지들 하자는 대로 하고 있는 중이지.”
좀체 바깥일을 마누라한테 옮기지 않는 이관이긴 하지만, 이참 일엔 너무 식구들을 빼돌리고 있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누라는 염탐을 하듯 슬금슬금 물어댔다.
“보상 가격은 얼마나 나온대요?”
“엇그제 알아보았더니 그 근처가 원체 궁벽진 곳이라 별게 없겠더군. 모두 꼭 같은 건 아니지만 평당 돈 천원 정도 될 모양이야.”
이관은 백 오십원을 깎아서 알려 주었다. 그리 쳐도 삼구 이십 칠, 지금 사는 집값의 반은 넘는다.
마누라도 골똘히 암산을 한 듯하나 내색은 않고,
“산소 옮겨 모시는 게 큰일이네요.”
“이장 비용 말이오?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까짓 거야 기백 만원이면 족하다구.”
“그럼요?”
“산지를 새로 장만해야 할 게 아닌가?”
이관은 뚱딴지같이 언성을 높였다. 실상 이 말을 뱉어 놓고 싶어 입안이 근질근질했던 것이다.
마누라는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라구. 대대로 내러오는 선산을 팔아먹고, 허기야 내가 좋아서 파는 것은 아니지만 대토(代土)를 마련하지 않은 채 자손들 호의호식하는 데 탕진해 버리잔 말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
스스로의 말에 도취되어 더욱 흥분을 돋우는 이관이었다.
“호의호식하잔 얘기는 아니잖아요. 그지…….”
“그지라니, 또 그놈의 아파트 타령 할 참인가.”
하지만 마누라는 딴전을 피우듯 목청을 가다듬었다.
“옥천으로 뫼시면 안 되나요? 거기도 꽤 넓던데.”
“모르는 소리 말라구. 거긴 묘 쓸 만한 자리가 없어. 없기도 하지만 아무데나 모셔 놓고 입 싹 씻고 있으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느냐, 아니 조상들 뵈올 낯이 있겠느냐 이 말이야.”
마누라는 아마 남편이 이 지경으로 조상을 공경하고 자손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데 조금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관은 시무룩해진 마누라의 옆얼굴을 힐끗 쳐다보고 좀 안됐다 싶었는지,
“조상을 원망도 안하고 덕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평소의 내 신조요.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하며 은근히 언성을 낮추었다.
내 일일이 가장의 체면상 말해 줄 수는 없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게 될 일은 아니고,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 당질이야 알 바 없다 지더라도, 당장에 걸리는 것이 작은댁 사촌동생이 아닌가. 그뿐인가, 산지기 황 서방도 내 땅 내가 처분하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것저것 다 빼면 남는 게 뭣인가, 이런 말씀인데, 이 따위 타산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그게 아니지 않느냐, 해서 이관의 감감한 심정은 쉬이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허지만 자손이 잘 돼야 선조들께서도 좋아하실 거 아니겠어요.”
마누라는 남편의 융통성 없고 고지식함을 안타까와하는 듯했다.
“거야 말해 뭐해. 헌데 작은놈은 통 콧배기도 안 보이니 어딜 헤매구 다니는 거야.”
“도서관에 다니잖아요.”
“애들한테 실없는 소리 절대로 하지 말아요. 잘못 버릇들여 놓았다간 큰일난다구.”
이런 식으로 입을 봉해 놓고 말았는데 상대가 아무리 마누라라 할지라도 할 말 있고 못할 말이 있으니 이게 다 유서있는 가문의 자손이자 가장에게 지워진 멍에 같은 것이 아니랴 싶었다.
마침 마루에서 전화 벨이 울렸다.
“당신한테 왔어요. 작은댁 서방님이에요.”
마누라의 음성에 이관은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다소 긴장해서 수화기를 잡았다.
“웬일이냐? 전화를 다 걸게.”
형님 그간 적조했는데 별고 없으시구요.”
“모두 잘 있다.”
“전화론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고, ……홍성 산소 건 때문에 일차 만나 뵈어야 쓰겄시요.”
오늘 따라 충청도 사투리가 강하게 들리니 이상한 노릇이었다.
“내일 회사로 오려무나, 점심이나 함께 하지.”
이관치고는 제법 싹싹하게 말한 편이었다.
그와 사촌동생간엔 세 살 터울밖에 되지 않지만, 하대와 공대가 지나칠 만큼 분명하다. 중학읕 간신히 마친 학력도 그렇고 하는 일과 집 안 처지도 그러지러해서 뭐 이관의 주제도 별것 아니긴 하지만, 아무래도 저울대가 한켠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요샌 장사도 통 안 되고 해서 지내기가 좀 힘든 모양이었다.
이튿날, 동생은 정확하게 지정된 시간에 나타났다. 우선 지하실 다방으로 데리고 가서 차를 나누었다. 동생은 의외로 새로 지은 듯한 곤색 양복읕 말쑥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요즘은 친구가 하는 인쇄소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경기가 없어서요.”
“전번 홍성엘 들렀더니 너도 다녀갔다고 하더라만.”
좀체 용건을 끄집어내려고 하지 않기에 이렇게 말문을 열게 됐다.
“형님, 평소에 제가 너무 했시유. 원체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탓도 있었지만서두요, 통 성묘를 못했거들랑요. 마침 손도 비구 해서요. 황 서방한테 대강 얘기는 들었지만서두 일이 거창하게 됐더구먼유.”
겉으론 어리숙하면서도 꽤나 간사스린 말솜씨다 싶었지만 이관은 근엄한 얼굴로,
“우리 가문으로서야 큰 변고라 할 수 있지. 헌데 고용살이 신세라 시간을 맘대로 낼 수가 있나.”
딴엔 그렇기 때문에 일이 도무지 진척이 안 되고 있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 었는데 오활하게시리,
“그러실 것 같아 말씀입니다.”
말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아니 뭐 별루 복잡할 건 없어.”
“그래서 말입니다. 지야 배운 건 없지마, 노가다판의 경험도 있구 하니 형 님의 수고를 덜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가만히 새겨들으니 이장의 역사(役事)를 제가 맡겠다논 말귀였다. 허긴 생각만 해도 거역스러운 일이었다. 회사를 열흘 보름씩 비워야 될 판국인데, 아무리 사정을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그걸 너그럽게 받아줄 만한 직장이 못 될 성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청인에게 몽땅 떠맡겨 버릴 성질의 일도 아니었다.
“점심이나 들면서 얘기하자구.”
이관은 동생을 재촉하고 앞장을 섰다. 중국집으로 들어가 구석 자리를 잡았다. 막연하나마 뭔가 해롭지 않다 싶은 예감이 들었다. 맥주 한 병과 잡채를 시켰다.
“졸지에 대사(大事)를 치르게 되니 혼자 힘으론 벅차구나. 집 안에 노인들도 안 계시고, 네가 그 일거리를 맡아준다면 한결 수월해지구말구. 이장도 이장이지만 먼저 새 자리를 잡는 일도 수월치 않아.”
이관은 어리어리한 동생의 표정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네가 무슨 지관(地官)을 데리고 산 보러 다닐 처지야 못 되지만 그래도 아무렇게나 잡을 수야 없지.”
“왜 옥천은 안 되나요? 찾아보면 쓸만한 데가 있을 텐데요?”
“아니야, 내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까 해서 지관은 아니지만 풍수를 좀 아는 친구를 데려간 적이 있어. 워낙 악산인데다 비좁아놔서 한두 자리도 골라내기 어렵다는 거야. 내 눈에도 그렇더라구.”
“그러시구먼유, 아, 산을 사신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워디 있을라구요.”
동생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조금도 빈정거리거나 이죽거리는 말씨가 아닌 것이다. 내가 잘못 짚었나, 괜헌 오해를 한 게로군, 좀 쑥스러운 심사가 된 이관은 동생 잔에 첨잔을 해 주며 말했다.
“그래 잘 됐다. 돈이 나오는 대로 이장에 필요한 몫을 떼어 네한테 맡기겠다. 대강 예산을 세워 보려무나.”
“예. 예. 그러지유.”
동생은 무슨 큰 이권이나 따낸 업자의 상판처럼 싱글벙글하는 것이었다. 이권이라, 이런 것도 이권인가, 용돈깨나 뜯어쓰겠지만, 엔간하면 모르는 체 눈감아주는 것이 장손의 금도이기도 할 것이었다.
공사 기간도 마감되고 정작 토지 보상 업무라는 것이 시작된 듯했다. 황 서방에겐 안됐지만 미적미적 일을 지체할 까닭이 조금도 없었다.
이관은 인감도장을 찍은 동의서와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 등과 함께 군청에 등기로 우송했다.
보름쯤 지나 보상금을 수령 하라는 기별이 왔다. 28,593,263이란 숫자만 봐서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액수였다. 7년 전 십여 년 다진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받은 퇴직금의 다섯 배가 넘는 셈이었다. 속히 그 숫자와 대면하고 싶었지만 돈 찾는 것보다 산지를 물색하는 일이 급했다. 동생에게 일러 놓았더니 부동산 소개업자의 인도를 받으며 부지런히 지방을 왕래하는 모양이었다.
하루 동생이 나타나 합당한 물건을 두 군데 보고 왔는데 우선 부동산 회사에 함께 가서 설명을 들으라는 것이었다. 한수(漢水) 이남 경기도 땅이 값이 오를 대로 오른 사정쯤 이관도 잘 알고 있다.
투기를 노리는 것도 아니고 자자손손 몇백 년을 보존해야 할 선산, 아니 가족묘지가 될 터인데 당연히 긴 안목으로 골라잡아야 할 이치였다. 그렇다고 교통이 불편한 강원도 구석까지 들어갈 것까지는 없고 천상 연줄이 깊은 충청도 지역이 합당할 것 같아, 미리 동생에게 일러놓은 터이었다.
우충충한 사무실에 들어가니 컬러 사진을 곁들인 매물 광고가 더덕더덕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삼천리개발의 박 상무라고 했다.
“어르신네 의향에 꼬옥 맞을 겁니다. 계씨하고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이만한 데가 없었지요. 이 두 가지 다 쓸만한데 계씨의 의견도 제 생각과 같습니다만 이 쪽이 나무랄 데 없읍니다. 아무리 산소를 쓰시기 위한 일이라 하드래도 투자 전망을 외면하실 수야 있겠읍니까.”
박 상무는 탁자에 지도를 펴 놓았다. 도무지 매끄럽고 빈틈이 없는 말주변이었다.
“투자는 무슨 투자요. 산소 팔아먹으려고 산을 사겠소?”
이관은 좀 당황해서 이렇게 대꾸했다.
“예닐곱 군데 봤는데요. 예, 이 냥반 말구 딴 회사 사람하구두 다녀봤는데요.”
하며 동생도 박 상무의 권유에 동감을 표시했다.
하나는 보은에서 상주(尙州) 가는 중간, 관기리(官基里) 라고 하는 곳을 볼펜으로 찔렀다. 다른 하나는 천안에서 정남으로 공주(公州) 가는 도로를 더듬다 광정리(廣亭里) 라는 데서 멎었다.
“음, 위지는 나쁘지 않구먼.”
“거리는 대전보다 가찹지요. 일이 년 사이에 틀림없이 포장이 됩니다. 아직은 공주군이 잠잠하지만 이 도로가 포장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포장이란 낱말이 이관의 귀를 근질근질하게 했다. ’만분의 1지도로 설명을 들으니 자동차 길에서도 과히 멀다 할 수 없었다. 만 평 남짓한 임야인데, 평당2천 원이면 흥정을 붙일 반하다고 했다.
“사진만 봐서야 어디 알 수 있겠소.”
“어르신네, 언제든지 좋습니다. 시간을 내시지요. 차편은 저희가 무료로 제공해 드리니까요.”
이렇게 해서 이관은 동생과 함께 현지를 답사하게 된 것이다. 마침 하루를 건너뛴 연휴를 맞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무료 제공의 차편이란 박 상무가 손수 운전하는 구형 포니였다.
“하도 시골길을 달려 차가 낡았읍니다. 불편하실 테지만 용서하십시오.”
박 상무의 깍듯한 말치레였다.
“먼저 보은으로 가실까요.?”
“그럽시다.”
이관과 동생이 나란히 뒷좌석을 차지했는데, 보기보다 성능이 좋은 듯 고속도로에서 백 킬로를 유지하변서 기세좋게 달리는 것이었다.
옥천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보은까지는 한 40분 거리밖에 안 된다. 쾌청한 가을 날씨여서 호수를 끼고 도는 경관이 일품이었다. 방향은 다르지만 고향 마을이 지척이다. 어쩐지 부모님께 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보은 읍내에서 점심을 먹고 차에 올랐다. 사업 상 감내해야 할 고역이긴 하겠으나 임야를 전문으로 하는 장사도 수월치 않구나 싶었다.
“이러다 헛탕치면 맥빠지겠구먼.”
“이게 저희들 일인걸요. 아닌게아니라 고생치군 별게 없어요. 다섯에 하나 정도 성사가 될까요. 허지만 실물을 보지 않고도 저희를 믿고 사논 분이 계시긴 하지만요.”
대개 이런 부동산 소개업자의 경우 매매(賣買) 쌍방을 직접 붙여 주지는 않는다. 파는 사람은 실제 팔리는 금액을 알 수가 없다. 하긴 받을 금만 받으면 그만이니까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는 측 역시 실제 얼마로 내놨는지 모른다. 중간의 차액은 물론 소개인의 호주머니에 들어가고 거기다 소개료도 받는다. 그래서 묘미가 있는 듯하지만 투기판을 제외하고는 대충 실거래의 시세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엉티리없는 짓거리는 하기 어렵다. 과욕을 내면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게 다 박 상무를 통해 얻어들은 지식이다. 관기리에서 동쪽으로 비포장 도로를 타고 삼십 분쯤 달렸다. 차에서 내리자 박 상무는 냇물 건너 동네를 가리키며 그 너머 뒷산이라고 했다. 왜 그런지 첫인상이 그리 좋지 못했다.
“여기서 한 일 킬로쯤 될까요. 기왕 오셨으니 가까이가 구경하시지요.”
내키지 않았지만 박 상무의 뒤를 따라갔다.
“도로가 신통치 않은 것 같은데.”
“아뇰씨다, 어르신네. 마을서 산지까지는 산판을 오르내리던 추럭 길이 나 있으니까요. 저기 저 능선 안쪽이지요. 오른편 소나무 숲까지 모양이야 번듯하지 않습니까. 향도 좋구요.”
“것두 괜잖긴 한데 경사가 좀 심한 편이라서유.”
동생도 그다지 탐탁치 않은 눈치였다. 그릴 바엔 떠나기 전에 분명한 얘기를 했어야 할 게 아닌가, 하여 기분이 언짢아졌지만, 혹 업자와 짝자꿍이 된 듯한 의심을 살 까닭이 없었을 것이긴 하다. 박 상무는 재빨리 이관의 흉중을 읽었는지,
“아무래도 광정리편이 나으실 겁니다. 이놈은 이렇다 할 험은 없지만 좀 값이 세서요.”
값은 고하(高下) 간에 물건만 쓸만하다면 어쩌구 하며 돈자랑을 하려드는 사람한텐 일종의 함정과 같은 언사일 것이지만 이관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다시 보은 읍내 옥천을 거쳐 이번엔 대천 시내로 들어갔다. 잠시도 쉴새없는 강행군이라 벌써 두 시간 넘었지만 커피로 한숨을 돌렸다. 공주까지는 잘 포장되어 있다. 금강(錦江)의 정감어린 풍치를 감상할 겨를이 없다.
한 시간 가량 자갈투성이의 울퉁불퉁한 신작로를 달린다.
“이래 뵈도 국도(國道)지요. 여지껏 방치해 두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다 왔움니다. 고단하질 테지만.”
광정리에서 조치원(鳥致院) 방면으로 십 리 가웃 벗어나 차를 멈추었다.
“어떻습니까?”
차도에서 냇물 너머 바로 마주보이는 산이었다. 경사도 비교적 완만하고 산자락 일대에는 개간해도 됨직한 야산받이 같았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리기다 소나무를 밋밋하게 조림해 놓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흔치 않는 물건이지요. 사업을 하다 실돼한 임자가 급해서 내놓은 것이니까요. 나무 값만 해도 어딥니까.”
박 상무는 벌써 이 편의 가슴 속을 꿰뚫어본 듯했다.
“묘자리는 어떨지 모르겠군.”
“글쎄 지관이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제가 보기로는 두어 군데 명당이 있더라구요.”
“그래?”
이관은 시큰둥하게 대꾸했지만 저 산의 비탈만큼이나 비스듬히 기울어진 심중인 것이었다.
이어 월요일. 이참엔 홍성행이라 간밤에 개꿈만 꾸고 잠을 설친 탓인지 온 몸이 쑤시고 무거웠지만 이런 안성마춤인 짬이 흔한 것은 아니다.
황 서방을 달래기 위해선 혼자보다 둘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싶어 동생을 동행시켰다. 마누라는 잔뜩 심술이 나 있는 모양이지만 여자가 사내 대장부의 깊은 뜻을 얄 턱이 없을 것이니 별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쓸데없이 신바람을 피우고 쏘다니는 형색일랑 아예 삼가야 할 것이었다.
근래 퍽이나 낯익은 군청에 들러 무슨 과장인가 하는 사람과 정중히 인사를 나누었다.
“잘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운하시겠지만 어떡합니까. 다 나라 잘 되기 위한 일이니.”
하여 지급전표라는 쪽지를 건네주고 나서 악수를 청했다.
“신속하게 처리해 주셔서 감사한 건 제편이올씨다.”
이관도 점잖게 인사했다. 모르긴 해도 금액이 커서 창구를 통하지 않고 이쯤 대접을 해 준 것 같았다.
“군수께 인사를 하시겠읍니까.”
과장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권했으나 이관은 꽁무니를 빼듯 사양했다. 자꾸 높은 양반 만나면 번거롭고 성가시게 될 성싶었던 것이다.
그 전표를 가지고 농혐 지점으로 가서 돈을 찾았다. 삼백만원을 현금으로, 나머지 28,593,263, 원은 송금 수표로 했다. 고액권 세 다발을 챙기려고 미리 손가방을 준비해 온 티이었다.
읍내서 어름어름할 나위도 없이 곧장 황 서방네로 들이이닥치니 모두들 논에 나갔는지 텅 비어 있었다. 동네 아이에게 오백원짜리를 쥐어주고 황 서방을 급히 찾아오게 했다.
“잘 있었나 황 서방.”
“안녕하셨시유? 웬일이시래유, 두 분께서 함께 찾아오시다니.”
“그리 됐네. 황 서방 이리 올라와 내 말 좀 듣게. 절일랑 뒀다 하구.”
손발을 씻고 마루에 오른 황 서방은 뭔가 좀 미심쩍은 눈초리로 그래도 절만은 시늉을 냈다.
차중에서 내내 궁리를 해둔 언변이요 조리(條理)라 할 만했는데,
“다름이 아니라 자네도 아다시피 본의아니게시리 산을 나라에 팔고 산소를 옮겨야 하게 됐어. 자네 집과 우리 집의 인연으로 말하면 무슨 산주요 산지기의 그런 사이가 아니지 않나. 가뜩이나 사정이 딱해서 심란한 자네 심정이야 뉘 모르겠나만 자네도 내 처지를 잘 이해해 줘야 쓰겠어. 자네가 갈아먹고 있는 밭 이천 평은 비록 내 명의로 되어 있긴 하지만 그게 어디 내 것인가. 자네의 땀이 배어있지. 임자의 서운한 기분도 알겠고 해서 약소하지만 내 정표를 약간 표시하려고 하네. 자 사양 말고 받아 두어. 농토 구하는 데 보태라구.”
이관은 말을 맺고 나서 동생에게 눈짓을 했다. 동생이 가방을 열고 흰 종이에 싼 돈뭉치를 황 서방 무릎 앞으로 밀어놓았다.
“삼백이야.”
이건 동생의 목소리였다. 순간, 황 서방의 얼굴에 야릇한 기운이 스쳤다. 그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관을 몹시 불안스럽게 했으나,
“아이구 제가 워떻게 이런 걸 받는데유. 댁내 밭을 빌려쓴 것만 해두 미안해 죽겠는데…….”
졸지에 송구해 마지않는 낯으로 지껄이는 것이었다.
“아니야, 넣어두게, 내 모르지 않아. 자네에게 그 뭣인가 경작권이란 게 있다는 걸 내 모르겠나. 아닌 말로 만에 하나 임자가 송사라도 일으킨다면 이 편도 도리없이 맞받아야 하겠으되 설마 피차 그렇게야 할 수 있겠나. 솔직히 말해서 목돈 좀 생겼네만, 얼씨구 좋아라, 협소하기 짝이 없는 옥천에다 비집고 들어가 사십사 할 수야 있겠는가. 더구나 조상 대대의 선산을 축낸다고 해서야 남들이 뭐라 하겠는사. 제대로 도리를 차리자면 한 푼도 축내지 말고 고스란히 산을 장만하는 데 써야 하지. 이장 비용이야 가급적이면 따로 염출하고 말일세. 그럴 형편이 못 돼 한이네만.”
이관은 자신의 극진한 언사에 도취된 꼬락서니로 줄줄이 읊어대는 것이었다.
“이걸루 임자네와 갈라지는 것도 아니잖아. 형님 말씀대로 받아무게.”
이번엔 동생이 거들었다. 밭금은 산과 달리 대체로 고른 편이어서 이 근처라면 4, 5천원 할 테니까. 당국의 감정 가격으로 가늠하면 기껏해야 5백을 넘지 않을 것이다. 무슨 황 서방에게 보상을 해야 할 경우도 아니고 이만하면 합당한 선일 터이다. 과연 황 서방이 이런 계산을 했는지 어쩐지 알 수는 없지만 제삼자가 나서서 중재를 한다 하더라도 이 편이 욕먹을 구석은 없다.
“이제 용건이 원반하게 끝났으니 얼른 술상이나 보아 오게.”
이관은 주섬주섬 돈뭉치를 챙기는 황 서방을 외면하고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막걸리 잔을 돌리면서 이장에 따른 갖가지 일거리를 의논했다. 황 서방 얘기로는 서울서 하청꾼들이 내려와 몽땅 일을 해치우게 하면 동네사람들한테 옥을 먹게 된다는 것이었다. 시골 일꾼도 십여 명 쓰고, 되도록이면 돼지 한 마리쯤 잡아 막걸리 너댓 말하고 해서 마을에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아무렴 사람이란 거취가 분명해야지. 그런 것쯤 아무 염려 말게. 자세한 일은 내 동생하고 잘 상의하게.”
제법 도량있는 대인(大人)처럼 비치는 이관의 신관이었다.
“오늘일랑 하룻밤 신세를 져야겠군. 참 그땐 그때고 당장 도가술 서너 말 노인네들께 보내드리 게.”
안주머니에 간직 한 수표가 좀 불안하긴 했지만 취기와 함께 식곤증이 덮쳐들어 도무지 삭신을 가눌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놈의 노란 봉투가 날아온 날로부터 반 년이 넘은 것이다. 아직도 현지 주민들은 보상 가격을 올려달라고 떼를 쓰고 진정도 하는 모양이었지만, 다른 명목으로 그들을 지원해 줄지언정 일단 결정된 사정가를 변경할 가망은 전혀 없다는 것이어서 이관으로서는 여러 모로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과시 인륜의 대사라, 열기설기 걸리는 일거리가 너무 많아,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일 겨를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장의 차비는 전적으로 동생 녀석한테 위임한다치더라도 대금 천 팔백 오십만원을 주고 사들인 공주의 새 산에 지관을 데리고 내려가야 한다. 또 산에서 그중 가까운 동네사람들에게도 인사치레를 해야 한다 해서 동생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동생이 적어 낸 비용은 그때마다 한 푼도 깎지 않고 선뜻선뜻 내주었다. 녀석도 먹을 알이 있어야 할 노릇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인색하게 굴지 않는 게 되레 마음이 편한 이관이었다.
어쨌거나 정작 요긴한 대목은 한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
“형님은 무척 바쁘신 몸인데 일일이 돌보실 수 있나유. 파묘(破墓)하기 전 먼례(緬禮) 때하구 이장 뒤 제사 때하구, 두 차례만 내려오세유.”
동생의 말에 못 이긴 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형제간의 우애가 이처럼 돈독하게 될 줄이야, 역시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들은 남다른 데가 있는 법인가 하였다.
회사 사람들한테는 산을 계약하고 나서 저녁을 한턱 잘 내는 것으로 족했지만, 이런 대접으로 풀리지 않는 것이 남편과 아비를 수상쩍게만 바라보는 집안 식구들의 눈길이었다.
그들은 뭔가를 곡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완고한 구석이 없는 바 아니지만 시체 물정에 생판 어둡거나, 아니면 처자식을 굶어죽게 할 지경으로 무능한 위인은 아니라는 것쯤 모르고 있을 까닭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돈을 엉뚱한 데 쏟아버리지 않고, 산지를 매입한 일을 무척 다행스럽게 여기는 마누라이긴 했다. 허지만 마누라의 속셈이 어떻다는 건 뻔히 알고 있다.
그런 시골 구석에 산을 죄금 사 본들 그 놈의 아·파·트를 사는 것만 어느 모로 보나 같지 못하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릴만도 한 것이 아파트를 전전하면서 재산을 몇 억으로 불린 친구들이 주위에 없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관은 마누라한테 보기좋게 한방 당한 것이다.
“지나간 일 얘기해저 소용이 없지만요, 사실은 철(澈)이한테 천만원만 대주고 싶었어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녀석한테 뭐라고?”
마누라의 한숨섞인 실토인즉, 내년이면 철이가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데 학교는 시원치 않아도 영어는 자신이 있기에 무슨 토플인가 뭔가 유학가는 영어시험을 치렀더니 거뜬히 5점첨 대를 땄다는 것이었고 그래 그런지는 몰라도 도미 유학 바람이 잔뜩 들어 첫해 등록금하고 생활비만 대주면 나머지는 제손으로 벌어서 대학원을 마치겠으니, 무슨 수를 내달라고 졸라댔다는 것이었다.
이관은 목묵히 앉아 있었다. 동생한테 빗나간 화살이 마누라, 그리고 자식한테마저 빗나간 것이란 말인가. 이관은 발작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아아니 그녀석 정신이 있어 없어. 조상을 팔아먹으면서 유학가겠다는 거야.
제 분수를 알아야지 원!”
“당신 참 이상하구료. 공부 더하겠다는 게 뭣이 나빠요. 조상님 덕을 보자논 건 아니지만, 지손이 잘 돼야 조상님도 기뻐하실 거 아니겠어요. 안 그래요?”
“허허허, 이 여편네 엉뚱한데 갖다붙이네.”
말이 궁해진 이관은 이렇게 지껄이고 탄식을 길게 토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곧추세워 쏘아붙였다.
“거 죽도록 고생해서 자식놈 미국 보내 놓으면, 십중팔구 어디 돌아오기나 하는 줄 얄아? 하물며 제 조상 생각을 할 턱이 있느냐 이 말씀이야.”
실상 이관은 스스로의 수치심 같은 것을 이린 꼴로 풀어 보려는 심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만두세요.”
마누라논 남편 서슬에 낭패하여 손을 내젓고는 몸을 일으켰다. 공교롭게도 다음날이 아버님 제사였다. 옥천에 성묘간 지 일 년도 넘는다.
이관은 제수감으로 만원짜리 석 장을 어리벙벙한 마누라한테 내놓았다. 그 심정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관은 이날 일찌감치 퇴근하여 반주를 삼가하고 저녁을 들었다. 제삿날이면 아들놈과 딸년도 초저녁에 귀가하게 되어 있다. 이 정도의 가정교육에는 차질이 없는 것이다. 아버님 대에선 정각 열두시에 향을 피우지만 이관 대에 와선 대충 열 시 전후하여 제사를 모시는 관행이다.
이관은 근무시간에 제문(祭文)을 초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그가 고안한 제문의 틀이 있기는 해도 오늘의 아버지 제사 때만큼은 그걸 되풀이 낭독해서는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께 죄송스러울 뿐 아니라 뭔가 착잡하게 얽힌 자신의 마음 속을 정리할 수 없기도 하고 거기다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서도 뭔가 한마디 해야 할 듯싶어 벼르고 벼른 끝에 그 나름의 문장을 꾸려 보았던 것이다.
밥상을 물리자 여렴풋이 예기했던 대로 동생이 나타났다. 백부(伯父)의 제사에 참례함은 아름다운 가풍일 것이다.
그간의 경위와 진행 상황을 놓고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대청 이랄 것도 없는 마룻방에 잿상을 차리고 제법 높다란 놋쇠 쌍촉대를 세웠다.
모두들 단정하게 차려입고 두 손을 맞잡고 섰다. 제주인 이관은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근엄하게 젯상 앞으로 꿇어앉았다.
먼저 술잔을 올리고 배례한 다음, 안호주머니에서 제문을 내어 두 손으로 받쳤다.
“유세차 을축 시월 초팔일 삼가 아버님 영전에 아뢰옴니다.”
한문체와 우리말이 뒤섞인 묘한 제문이었다.
“오늘 아버님의 제사를 뫼시면서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한 가지 아버님께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 익히 아시고 계시는 바와 같이, 시세 물정은 뭐라 말씀드릴 수 없을 만큼 혼탁하기 짝이 없사옵고, 인심은 각박하고, 돈만 아는 판국이라 어느 놈이 저희들의 간을 빼먹을지 알 수 없는 세태이옵니다. 세상사 여사한데 어찌 아버님의 자식이라고 하여 무사태평으로 지낼 수가 있겠나이까. 하늘에서 흰히 굽어살피시사 진작에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만 그간 우리 가문으로서는 말 못할 고초와 수난을 겪었사옵나이다.”
여기까지 읽어내린 이관은 제문을 팽개치고 양손을 바닥에 뻗친 채 한층 목청을 높여 외어대는 것이었다.
“아버님이시여. 불효자를 용서하시옵소서. 저승에서 훤히 내려다보고 계시오리오만 이참의 일은 자손으로서 대대 선조들을 대면할 낯이 없게 되었나이다. 하오나 힘 없는 이 자식이 무슨 수를 낼 수 있으오리까. 오로지 아버님의 명예를 더렵히지 않고, 또한 선조 할아버님들의 심려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하여 불초 관(關)으로서는 심신이 탈진할 만큼 부심(腐心) 하고 동분서주하였나이다. 불일내 증조할아버님과 고조할아버님 내외분을 산수도 수려한 공주땅으로 뫼시게 되었는바, 그간의 우여곡절은 아버님께서도 굽어살피고 계시리라 믿사옵니다. 비록 세상은 뒤죽박죽이 되어도, 두 곳 선산은 요지부동일 것이오며 따라서 우리 가문도 평안(平安)과 강녕(康寧)을 누리게 될 것이옵니다. 모쪼록 불효막심한 이 자식놈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이참 가문의 대사가 순조롭게 마무리되게 두루두루 굽어 살피소서.”
이관의 구성진 음성은 젯상에서 풍기는 갖가지 복잡한 음식 냄새와 함께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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