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훈중 이사장, 겨우 1억받고 성적 조작? 더 교묘한 거래 있었을것”
사학재단 비리와 맞서 싸우다 해직교사의 굴레를 썼던 김형태(48)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에게 올해 새로운 별칭이 생겼다. ‘국제중 저격수’. 영훈국제중 입시비리가 검찰 수사를 통해 어느 정도 밝혀진 데는 언론보도에 더해 김 의원의 발로 뛰는 적극적인 추적 활동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김 의원은 학생인권조례 통과(2011년)와 혁신학교 조례 발의(2013년) 등에도 앞장서왔다.
보수세력에겐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일부 언론은 특수목적고 폐지를 주장해온 그가 정작 자신의 아들은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시켰다고 호되게 비판했다. 지난 25일 김 의원을 서울 중구 시의원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제중 문제를 파헤치게 된 계기는?
“지난해 12월 한 학부모가 영훈재단에 비리가 있다며 찾아왔다. <한겨레>가 지난 1월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이 영훈중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 합격했다는 걸 처음으로 터뜨렸다. 그때 이 학부모가 자기 자녀도 영훈중에 돈을 주고 입학시켰다고 털어놓았다. 이분이 (이 사실을) 언론에 제보하도록 많은 공을 들였다. 이 학부모의 용기 있는 공익제보가 없었다면 뒷돈 입학은 드러나지 않았을 거다.
교육청과 학교가 자료를 주지 않았다. 감추려고 하는 것은 뭔가 있기 때문이다. 편입학 비리를 밝히려면 재단 이사장을 압박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소문했더니 이사장이 동거녀의 아이를 2010년에 국제중에 편입학시켰다는 등 비리가 나왔다. 이걸 문제 삼겠다고 압박하니 재단 관계자가 자료를 가지고 달려왔다.”
-김하주 영훈재단 이사장이 2009~2010년에 학부모 5명으로부터 1억원의 뒷돈을 받았다는 것을 검찰이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 아들은 뒷돈 입학 등에는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 수사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겨우 1억 받자고 867명의 성적을 조작하는 위험한 범죄를 저질렀겠는가. 2010년 이후에는 더 교묘한 방법으로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단에선 수익이 거의 안 나는데 무슨 돈으로 이사장이 호화롭게 살았겠나. (김 이사장은 올해 초 20억원이 넘는 성북동 저택을 사들이고, 약 5500만원짜리 외제차 ‘링컨 엠케이엑스’를 타고 다녔다.)
학교가 이재용 부회장 부부에게 알리지 않고 감히 ‘황태자’의 성적을 조작했다? 그걸 믿으라고 하는 건 억지다. 최소한 사전에 교감은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입학 전형 자료에 학부모로 나오는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이 부회장의 전 부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삼성 쪽에서 직접 연락은 안 받았다. 대신 여러 사람으로부터 회유와 압박을 받았다. 그중엔 새누리당 의원이나 교육청 공무원도 있었다. 아는 사람이 보자고 해서 갔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자리에 있던 일도 있었다. “그 정도 했으면 됐다. 더는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농담이 아니었다.”
김 의원은 2년간 학원 강사 생활을 한 뒤 90년에 양천고 교사가 됐다. 2008년 이 학교 이사장이 급식비리로 거액의 돈을 횡령한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전교조 분회장이던 김 의원이 교육청에 제보했다. 2009년 학교에서 파면당했다. 13개월 동안 학교와 교육청, 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한 끝에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다. 2010년 곽노현 교육감 후보를 돕기 위해 선거사무소에 갔다가 “교육의원으로 출마해 곽 후보를 알리면 그의 지지율을 1% 높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강서·양천·영등포 교육의원 선거에 나와 당선됐다.
입학비리 제보 듣고 학교자료 받으려
이사장 동거녀 관련 비리설로 압박
뒤늦게 재단 관계자 요청자료 갖고와
-국제중에서 입학 비리가 터진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애초에 이사장은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국제중 지정을 추진했다. 부유층 자녀를 받아야 돈이 되니까. 내가 만난 한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은 ‘왜 아버지는 나에게 돈 안 되는 학교를 물려줬을까. 동생들처럼 빌딩이나 주지’라고 하더라. 사학이 학교를 정상적으로 운영해선 돈이 안 되니까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빼내는 거다. 그런데 교육청 감사나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번 파문에도 교육당국이 국제중 시스템 자체를 폐지할 것 같지는 않다. 김 의원은 국제중 자체를 없애자고 주장해왔다. 가능할까?
“지금도 얼마든지 국제중 문을 닫게 할 수 있다. 그동안 국고로 지원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장학금을 회수하고 앞으로 법인이 모두 부담하라고 하면 법인이 스스로 국제중 지정을 반납할 것이다. 의무 보편 교육을 하는 중학교에서 원칙적으로 국제중은 있어선 안 된다. 영훈·대원·청심은 일반중으로 전환해야 하고, 외국 장기 거주 학생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부산국제중은 외국인 학교로 바꿔야 한다.”
-왜 국제중, 자율형 사립고, 특수목적고를 없애야 하는가? 대안은 뭔가?
“교육은 분리교육과 통합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제중·자사고·특목고 등 특정한 목적을 위해 학생을 따로 모으는 수직적 다양화는 분리교육이다. 돈이 없거나, 성적이 바닥이거나, 장애 때문에 불편해하는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다. 이런 경로를 밟은 ‘외눈박이 판검사’가 쌍용차 부당 해고 문제 같은 걸 온전한 시각으로 보겠는가.
통합교육은 수평 다양화다. 한 학교 안에 외국어 잘하는 학생, 체육 잘하는 학생, 장애학생이 같이 있는 거다. 혁신학교가 바로 통합교육이다.
장기적으론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생각해보면 쉽다. 핀란드가 교육 혁명에 성공한 것은, 국가교육위원회가 정치와 경제 논리를 벗어나 교육 논리로만 수십년에 걸쳐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이재용 모르게 성적조작? 이건 억지
그동안 삼성쪽 직접 연락 안받았지만
대신 새누리 의원 등 회유·압박 받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유학기제를 어떻게 보나?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려준다는 큰 틀에서 보면 자유학기제가 맞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이 체험하는 걸 중심으로 하는 교육으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다만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 자유학기제를 몇 학년 때 해야 하는지 우리 실정에 맞는 방안을 찾을 수 있게 타당성 조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성공은 이명박 정부가 수직적 다양화로 교육을 황폐화시켜 놓은 것을 어떻게 수평적 다양화로 바꾸느냐에 있다. 서남수 장관이 장관 되기 전 “자사고는 기괴한 학교”라고 했는데, 장관이 이런 뜻대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청와대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혁신학교에 대해 감사와 전면 평가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두고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을 혁신학교가 가장 잘할 수 있다. 그런데 문 교육감은 일부 보수세력의 논리에 갇혀 혁신학교를 탄압하고 있다. 혁신학교들이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해서 만족도가 높고, 점차 공교육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교육감이 일부 보수 교장을 위한 교육감이 아니라면 혁신학교를 흠집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80년대에 영남대 이사를 했고, 노무현 정권에서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투쟁을 이끌었다. 박 대통령이 사학 개혁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오히려 박근혜 정부에서 사학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가 하니 얼마나 사학들이 반대했나.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진영논리를 벗어나야 한다. 이젠 대통령이 됐으니 더 이상 사학 쪽에 아쉬울 것이 없지 않나. 사학은 지금 치외법권이다. 교육청이 정당한 처분을 내려도 안 들으면 그만이다. 교육청이 중징계를 요구해도 경징계로 낮춘다. 공립 교사는 수십만원만 받아도 그만둬야 하는데, 사립에선 수백 배에 달하는 돈을 횡령해도 자리를 유지한다.”
-전교조 분회장 출신이다. 지금 전교조의 운동 방식에 문제점은 없나?
“일부 혁신학교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의욕이 넘치다 보니까 교장, 행정실장과 의견 충돌이 있는 거 같다. 모든 혁신학교가 싸우는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 수직적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려고 하니까 교장들이 위기감을 느낀다. 교장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고생하는데 조금만 자세를 낮춰서 교장과 부딪히는 모습이 적어지면 좋겠다.”
치외법권 누리는 사학 법개정해야
특목고 등 분리교육으로 황폐된 교육
수평적 통합교육으로 전환도 큰 과제
-아버지가 자사고를 비판하는데 둘째 아들이 자사고에 다니는 상황은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파면당했을 때 둘째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다. 학교를 안 가고 피시방에 가 있는 식이었다.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 걱정됐다. 아이가 집에서 가까운 자사고를 가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이 다 그 학교로 간다는 거다. 나는 아들한테 ‘아버지가 자사고를 반대하는 진보 성향 의원인데, 네가 자사고 가면 난처해진다’고 했다. 아들이랑 아내가 ‘자사고 추첨에 응해볼 수 있게만 해달라’고 하는 데, 가족에게 지은 죄가 많은 내가 그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김 의원이 법을 어기고 교육의원과 교사를 겸직했다면서 지난 24일 새누리당 시의원들이 사퇴를 요구하며 시의회에 자격심사를 청구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서울고등법원에서 2011년 7월에 내 해임 결정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해 9월에 양천고를 운영하는 상록학원에서 ‘복직하지 않으면 직권면직시키겠다’는 내용의 우편물을 보내왔다. 당시 시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시의회 의장, 교육감 권한 대행이 내 복직을 유예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상록학원에 보냈다. 그런데 답이 없어서 난 면직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게 상록학원이 시의회와 교육청 공문을 무시할 수 없어서 복직유예를 시켰다는 거다. 새누리당이 나한테 의원직을 사임하라고 하는데, 이건 내 책임이 아니라 학교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는 자발적으로 재단에 사표를 제출할 의사는 없다고 덧붙였다.
-남은 임기 동안 목표는 무엇인가?
“교육감이 혁신학교를 지정·취소할 때 혁신학교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이들과 협의하도록 하는 ‘혁신학교 조례’를 통과시켜야 한다. 운영위에는 시의회와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사람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감이 바뀌더라도 혁신학교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임기 내에 영훈과 대원국제중이 지정 취소됐으면 좋겠다. 학원도 대형마트처럼 일요일에 쉬도록 규제해서 학생들이 주말에라도 쉬게 하려고 한다.” /김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