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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화의 벗님들!
2024년 8월의 찜통더위도 끝이나고,
벼이삭이 익어가는 9월이 오고야 말았다.
세월을 이길 장사없다고 석양의 시간에 천하보다 소중한 건강을 위해 몸을 귀찮게 움직여 운동으로 천연보약 많이 많이 먹어 즐거운 항해합시다.
2024-8-30 자전거페달 굴려 100km라이딩
☛hiking시간 및 거리 : 9:00-20:00(11시간)
가는길40.0km 오는길 60.0km 왕복 100km
☛hiking코스 : 익산서부역송학사거리-목천포-농장마을-공덕-650년은행나무-대동리탄허대종사생가-만경능제방죽-성덕최성림친구생가-죽산-하시모도농장사무실-동진강휴게소-동진강전망대-거전-심포항-진봉-만경-새챙이다리-귀로
자유인 조동화는 2024년 여름이 가고 있으나 아직은 한낮의 더위는 에어컨을 가동해야 더위는 견딜만 하나, 자전거 페달을 굴려 “땀을 보면 건강이 보인다”는 건강글귀를 세기며 온종일 자전거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라이딩 생명수 물은 집에서 출발할 때에 두병을 가지고 나오지만 땀을 많이 흘려 물 두병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성덕 나시경노당에서 물병에 물을 보충하였으며 동진강휴게소에서 또 물을 보충 하여 수분을 땀으로 배설한만큼 물을 먹어야지요.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달리므로서 대지의 자연의 아름다움에 앤돌핀이 생성되고, 땀을 많이 배설하여 몸안의 노폐물을 제거하여 몸의 활력을 찾는거여.
조물주는 인체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고 체내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땀’을 선물해주었다. 그래서 땀이 어떻게 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 몸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다.
땀이 잘 나야 건강하다.
100km 자전거 라이딩 하면서 특기할만한 일은 만경을 지나 성덕에 도착하여 이리중학 동창 최성림친구 생가를 찾아본 것이다.
김제시성덕면성덕리664-1의 최성림친구 생가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니 집이 비어 있었고, 이곳에서 수백년동안 조상대대로 살아온 오래된 흔적이 역력했다.
시골의 고향집에 귀농할 사람도 없으나 최성림친구는 일주일이 두세번 수백평 넓은 고향집에 다녀가곤 한다.
오늘도 이른 아침 다녀가며 대파와 가지나무에 물을 흠벅주고갔네.
오산의 이리중학동창생 이기태친구집도 집이 비어 있어 살던집이라 일주일에 두세번 다녀가는 것은 비슷하여 농촌시골집 풍경은 대동소이하네.
시골의 조동화본가도 비어있고, 조동화처가도 빈집이여.
수백년 살아온 집이라 팔지도 못하고 그대로 있는거여.
아침에 출발한 조동화의 자전거라이딩 습관은 온종일 페달굴려 땀흘리는 일인바 불교에서 말하는 속세의 근심걱정 다 떨치기에 정신건강에 아주 짱으로 좋아여.
온종일 자전거페달 밟아 저녁시간에 집에 도착하여 막걸리 두어잔 기분좋아 감개무량하였다.
버나드 쇼는 자기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죽음에 임박하여 자기 삶을 후회하고 반성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인생일까?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이라고 말하겠다. 무수히 많은 인생의 정답중에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좋고 명쾌한 정답은 없다.
최선을 다하며 살자.
행복이 뭐 별거 있습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을거 하면 그게 행복입디다.
두눈이 있어 자연을 감상할수 있어 감사하고,
두발이 쓸만해 자전거하이킹을 할수 있어 감사하고, 집에 까지 무사히 귀로 할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오늘하루가 흘러가다.
감사한 마음으로 세월을 낚으니 행복하였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감사합시다.
행복합시다.
김제 공덕면 마현에 있는 위대한 신령의 나무 650년된 은행나무를 찾은 것은 신령의 나무에서 품어져 나오는 탁월한 기를 받기위함이여.
조동화는 1년이면 몇차례 650년 은행나무를 찾아 세월의 노를 저으며 은행나무와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
마현리 길가에 거대한 은행나무가 푸른 자태를 뽐내며 은행이 다갈 다갈 열려 있었다.
은행나무의 기를 받고 다음 이동은 대동리의 탄허 대종사생가로 향하였다.
☛공덕 은행나무 전북기념물106호
-소재지 : 전북 김제시 공덕면 마현리 816-1번지
공덕면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650년 정도로 추정되며(1350년경), 높이는 약 15m, 둘레는 4.5m로 8개의 가지가 사방으로 갈라져 있으며 경로당 옆에 있어서 주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650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마현마을 사람들과 함께 해온 은행나무는, 음력 1월 3일날 나무 밑에 모여 마을의 안전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만경으로 이동하는 중 육종연구단지 4차선도로 약 900m거리에 대동리 탄허대종사 생가에 들렀다.
70-80년대 한국불교계에서 성철과 탄허대종사는 이름을 날린 스타였다.
조동화가 전라도 김제가 태어난 곳인데 우리나라 최고의 학승으로 이름을 떨친 탄허대종사가 태어난 곳이 전라도 김제 만경이라니 자부심을 느낄만도 하제.
불교계의 거목이 김제 만경에서 나왔구나.
탄허스님은 가족의 중매로 16세 결혼하여 아내와 아들과 딸을 두고 22세 되던해 오대산 상원사에 한암스님을 은사로 입산, 3년간 참선한 후 14년간 두문불출 참선과 경전을 공부하며 오대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속명 김금택 탄허스님은 아내와 1남1녀를 두고 오대산 한암스님을 찾아 도의 요체를 깨닫고 귀향할 계획이었으나 일생을 속세와 단절하며 살았다.
신동소리 들어가며 어려서 사서삼경을 통달하는등 재주가 남달랐던 탄허스님은 인생의 해답을 얻지못해 세속의 행복을 단절하고, 인간의 근원을 찾기 위해 오대산으로 고행의 길을 떠나 도를 닦던 그도 71세에 1983년6월5일 열반하시었다.
그러고본게 누구나 이세상에 왔다가 떠나가는구나.
이리살던 저리 살던 인간의 삶이란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만경능제방죽 자전거 산책길을 달려보았다.
연꽃이 피여있어 구경할만 하였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이곳 저곳이 공사중이었다.
능제저수지에는 조종 면허시험장이 설치되여 있다.
능제(菱堤)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만경현조에도 능제라고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저수지이다.
‘능제’란 이름은 예로부터 이곳에 연꽃과 마름이 많아서 ‘마름 능(菱)’을 붙인 것이 그 시작이다.
만경능제 저수지는 만수위 면적 1,959ha로 1930년대에 축조하여, 현재는 운암호의 물을 받아 저장하는 양수저수지(揚水貯水池)가 되었다.
능제저수지는 귀[굽이·귀퉁이]가 99곳이나 되는데, 귀가 100곳이 되면 나라에 큰 경사가 일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자전거페달 굴려 자전거라이딩하며 김제 성덕이 고향인 이리중학 동창생 최성림친구의 집을 찾아보았다.
대대손손 성덕 나시부락에서 살았구나.
나시사람들은 전주최씨들이 씨족을 이루어 평화롭고 순박한 시골생활을 하시었구나.
나시마을은 전주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전형적인 시골마을로 150여호가 있었으나 지금은 빈집들이 많아 50여호가 남아있었다.
정치가 최낙도선생이 이곳 나시마을에서 태어나 서해방송 보도국장으로 근무하다가 정치가가 되어 국회의원 3선을 하였으며 조동화의 숙부 조병무와 김제고등학교 동창으로 동창회모임을 했으며 정치자금도 모아서 준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정치가 최낙도선생이 나시에서 부농의 아들로 김제고등학교와 서울로 유학하여 중앙대학을 나온 사실은 최성림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조동화의 친구 최성림은 성덕면 나시마을의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이리중학교에 입학하여 군산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임하여 개인사업을 하였다.
최성림친구는 동창모임을 같이하면서 친구간의 정이 깊어 고창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는 아들이 사준 k8 승용차로 시승도 시켜 주었었지.
남부시장의 한복거리 에덴주단은 최성림 안식구가 운영하는데 사람들이 한복을 별로 입지않아 경기가 뜸한편이나 고객이 많아 졌으면 하는 소망이여.
성림친구!
우리들 젊은 청춘이 있었건만, 옛시절은 다시올수 없고 오직 추억속에 간직하며, 더 나이먹지 말고 세월을 멈출수 있다면 희망을 다짐해 보지만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할꼬 아무튼 건강관리 잘하고 자기자신에 충실하세.>
<나시마을 모종이여.
조동화는 모종에 들어가 에어컨을 켜고 점심을 먹은 후 한시간정도 누워서 휴식하였다.>
<나시마을 경노당에 물을 보충하고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더위에 자전거라이딩 할 때 물은 생명수여.
할머니 한분이 누워서 휴식하고 있었는데 자전거 타는 사람이라고 소개후 물을 보충하였다.>
<최성림친구 성덕 시골집을 방문후 김제 죽산 끝머리 지날 때 등록문화재 61호 하시모토농장 사무실이 보여 답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감내해야 하였던 수탈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역사적 현장임과 동시에 전라북도의 근대사가 갖는 지역적 특수성을 대변해 주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제 지역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전국 최대의 쌀 생산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들어와 대규모의 농장을 경영하며 쌀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익산에서 만경평야를 지나 성덕 죽산 동진강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휴게소에 들러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을 보충하고 한시간 시원한 에어컨에서 쉬었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아 한가하였다.
고속도로도 아니어서 손님들이 별로 없으니 가게들은 어떻게 하라고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말이다.
동진강휴게소는 명칭을 “지평선새마루”라 이름붙이고
지상 2층 규모의 지평선 새마루는 음식점과 카페, 편의점, 먹거리 부스 외에도 농특산물 판매 홍보장, 북 쉼터, 수유실, 트리하우스를 활용한 포토존, 전기차 충전소, 모정 등 주민 편의시설이 확충돼 쾌적하고 만족도 높은 휴게 쉼터로 자리매김하였다.>
<동진강휴게소에서 20km 동진강방수제도로를 페달을 굴리여 동진강전망대에 도착했다.
20km구간은 자전거도로가 아주 잘 나 있다.
동진강타워전망대는 7-8층 높이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입구는 굳게 닫쳐 있었다.>
<광활한 새만금의 모습이여.
새만금의 크기는 409㎢(1억3천만평)로 파리의 4배 여의도면적의 140배 서울시면적의 3분의2크기라고 한다.
새만금(萬金)이라는 이름은 만경(萬頃)·김제(金堤) 평야의 앞 글자를 따왔는데, 단군이래의 최대 역사(役事)라는 국책사업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광활하고 방대한 새만금이었다.>
<심포항에 들렀다.
새만금의 개발로 어부들의 일터가 사라져 옛날의 북적대던 횟집을 거의 철거되었다.
남아있는 집들은 을씨년 스러웠다.>
<온종일 자전거페달을 굴려 해가 붉은 노을을 물들이며 서산에 기울지는 시간에 “새챙이다리”에서 지나고 있어 사진을 찰각했다.
일제가 건설한 일제하 슬픈 역사의 현장 새챙이 다리!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을 그들의 나라로 만들려 하였구나.
만경강을 옛지리지에는 신창진(新昌津) 또는 사수(泗水)라 했다. 그리고 지금도 김제군 청하면에서 옥구군 대야면으로 건너오는 다리를 소위 새챙이다리라 부른다. 이 다리가 놓여지기 전에는 나룻배로 이 강을 건넜다. 곧 이 나루가 새챙이나루이며 이걸 한자로 표기하면 신창진이 되는 것이다.
1928년부터 1933년까지 총공사 기간 5년에 걸쳐 만들어진 "새창이 다리"는 일제가 공사비 28만환을 들여, 쌀 침탈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건립한 근대적인 다리다.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에서 청하면 동지산리로 이어진 이 다리는 길이 530m, 폭 왕복 2차선 도로로 이뤄졌다.
이 다리가 만들어진 배경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김제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월하게 수송하기 위해 만든 나루터였지만 교통량과 쌀 이동량 등이 늘면서 다리를 건립한 것이다. 이 다리를 새창이(일명 새챙이)다리 또는 만경교라고 했다.
지금은 새챙이다리가 노후화되어 통행금지되여, 바로옆에 새로운 만경대교를 1998년 설치 운용하고 있으며 옛 “새챙이다리”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며 자전거동호인들이 많이 이용한다.>
우리 앞에 남은 세월
푸른잎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고
예쁜꽃도 언젠가는 떨어 지지요
이세상에
영원 한것은 없습니다
오늘 이시간도 다시 오지 않습니다
영웅호걸 절세가인도
세월따라 덧없이 가는데
우리에게 무엇이 안타깝고
미련이 남을까요
누구나 그러하듯이
세월이 갈수록 곁에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남은 사람들 마저 세상과
점점 격리되어 외로워 집니다
이별이 점점 많아져 가는
고적한 인생 길에
서로 서로 안부라도 전하며
마음 함께하는 동행자로 인하여
쓸쓸하지 않은
나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이들어 외롭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사는데
활력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대안입니다
세월앞에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좋은시간 보내야 합니다
아껴쓰면 20년 ....
대충쓰면 10년 .....
아차하면 5년 .....
까딱하면 순간 ....
우리앞에 남은 세월들 입니다.
= 좋은글 중에서 =
인생(人生)이란 무엇인가?
인생? 지금 살고 있는 오늘이 소중한 것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인생? 암에 걸려서 3개월 후에 죽는다는 판정을 받은 친구가 와서 손을 잡고 울고 위로하고,
그 불행을 슬퍼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한 시간밖에 못살 사람이 3개월이나 살 사람을 불행하다고 위로해 주고 갔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 수많은 인생에 대한 명언 중에서도 막시무스가
최고의 명언 5개를 골라보았다.
1. 인생이란 불충분한 전제(前提)에서 충분한 결론을 끌어내는 기술이다.
인생이 충분한 전제에서 결론을 내리는 일이라면, 우리가 사는일이 이렇게 서툴고 실수투성이는 아닐 것이다.
인생은 도대체가 전제(前提...먼저 내세우는 것)가 없는 놀이다.
막시무스가 인생에 대한 최고의 명언으로 꼽는 영국의 소설가 사무엘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의 말이다.
2. 인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어차피 당신은 살아 나가지 못할 테니까.
막시무스가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으로 사는 사람을 볼 때마다 해주고 싶은 얘기다.
아무리 심각해도 인생에서 살아 나간 사람은 없다.
넥타이 풀고 살자.
미국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엘버트 허바드(Elbert Hubbard, 1865~1915)가 남긴 멋진 말이다.
3. 당신은 여기 잠깐 들른 것이다.
서둘지 말고 걱정하지도 마라.
그리고 가는 길에 꽃향기도 꼭 맡아보아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고 쓴 천상병의 세계관과 비슷한 인생관을 담고 있는 글이다.
우리는 여기 잠시 들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여행자처럼 살자.
살아 있을 때는 지금의 타이거 우즈만큼 유명했던
하겐(Walter Charles Hagen, 1892~1969)이라는 미국의 프로 골퍼가 한 이야기다.
4. 인생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비워서 행복해진 사람은 많아도 채워서 행복해진 사람은 별로 없다.
살면서 욕심이 날 때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뭔가 부끄러운 짓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하는 말이다.
인생에는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작가 겸 삽화가였던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 1928~ )의 말이다.
5.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고 그게 전부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이 막시무스의 생활만 돌이켜 봐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을 기억하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노력해 본다.
단 하루라도 제대로 말이다.
독설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65~1950)의 인생 관찰이다.
인간의 노화과정
老化는 生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기의 흐름' 이라는 유명한 動物學者 "콘호드"의 말이 있습니다.
'老化'에는 개인差, 男女의 성차(性差)가 있으나 의사들은 유전(遺傳)성에 많이 관계된다고 합니다.
눈의 老化는 7~10歲부터 시작되고,45-50歲에 이르러서 비로소 노안(老眼)이 되는 것을 자기스스로 인지하고 발견하게 되며.
'미각(味覺)은 13歲 때부터 老化가 시작되니, 4~50代가 되면 味覺신경이 老化하여 13歲前 먹었던, 최고의 음식 맛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게 되며, 나이를 먹을수록 짜게 먹기가 쉽다고 합니다.
體力은 17歲부터 老化하기 시작합니다,
운동중에서 가장 체력을많이 소모하는 운동이 자유형 장거리 수영입니다.
대개 올림픽에서 이 종목에 우승하는 선수는 17~18세 전후인데, 이 승자도 4年 후 올림픽의 이 종목에서는 다시 승자는 되지 못합니다.
'혈관(血管)은 10~12세부터 老化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죽은 깨, 기미는 10세에 시작하여 25세쯤 눈에 띄게 됩니다.
특히 혈관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더 老化하는데, 越南戰에 참전하여 전사한 20代 청년 병사들의 血管이 40代와 같이 老化된 상태로 된것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腦(뇌)는 20歲 때부터 老化하는데, 20歲가 지나면 하루 腦세포가 10萬개씩 죽는다고 합니다.
뇌세포는 출산할 때 약140억개로 一生동안 늘지는 않습니다.
뇌세포 중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뇌세포수는 약 40억개이고, 20세 후부터는 하루 10만개가 노화하여 죽으니, 10年이면 3억 6천개, 30年이면 약 10억개가 죽고, 80歲 쯤 될 때는 사용하던 40억개 중반인 약20억개가 죽게 되며 노망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腦를 많이 쓰며 단련을 잘 시키면, 腦細胞는 덜 죽습니다.
老化방지를 위하여 글을 하루에 2 時間정도 쓰시거나 읽으시면 10만개가 죽지 않아, 老化를 방지할 수 있으므로 살아계실 때까지 건강하게 살도록 매일 글을 쓰도록 권장하는 바입니다.
특히 腦의 老化로 記憶力이 나빠지더라도 腦를 잘 쓰며 단련을 잘 시키면, 腦의 전두엽(前頭葉) 즉 창조를 관장하는 부분만은 그리 쉽게 老化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前頭葉의 단련방법으로서는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거나, 글을 짓는 것이 제일 좋고, 룰이 있는 운동경기를 하며 자제력을 기르고 讀書와 글 짓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TV를 보면서 필요한 것을 메모하거나 新聞을 읽으면서 언더라인을 하고 메모를 해둔다던가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그것에 관련되는 배경을 상상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40代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여러가지 성인병이 시작되는 수가 많다 합니다.
이 成人病은 일단 발생하면 완치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高血壓, 中風, 心臟病에 가장 나쁜 것이 소금끼와 스트레스(stress)입니다.
그러므로 可能한 한 싱겁게 먹고 스트레스를 解消하도록 하며 糖尿病의 原因이 폭음, 포식, 밤 새워 노는 것,
또한 일만 죽어라 하고 취미가 없는 생활 등은 이런 성인병의 促發原因이므로 제거하도록 하며, 아직도 근치가 어려운 癌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니,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곧 진단을 받아 조기 치료를 하도록 하여야 하며 初期 癌은 완치시킬 수가 있다 합니다.
특히 60~80代에는 男性은 위암(胃癌)에 대한 정기검사를, 女性은 子宮癌에 대한 정기검사를 받아 조기발견을 하는 것이 가장 필수항목입니다.
또 70견(肩), 류마치스 등도 스트레스에 의한 老化와도 관계되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생활이나 "라인댄스" 운동이 필요합니다.
60~80代는 老後를 위하여 趣味生活을 곧 시작하여, 무엇이든지 Life Work로써 활동하며 쉼이 없이 마라톤 式으로 조금씩 매일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Computer 공부, 書藝, 讀書, 골프, 여행, 음악감상, 낚시, 등산 등 무엇이던 몸과 머리를 쓰는 일을 꾸준히 趣味로 계속하는 것이 老化방지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비교적 安定된 60~80代 우리님들께서는 글을쓰고 음악을 벗삼아 수준 높고 지혜로운 規則生活를 하시고 신체와 두뇌를 꾸준히 써가며 근심 걱정버리고 고민과 스트레스없이 즐겁게 살아가실 것을 간곡히 권장합니다.
참고로 조선시대만해도 평균수명이 30살을 넘지 않았습니다.
물론 거의 비슷한 시기의 로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아생존율이 극도로 낮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평균수명은 19세 로마시대의 평균수명은 28세였습니다.
16세기 유럽인의 평균수명도 21세를 넘지못했으며 1900년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47세, 이씨조선 역대 왕들의 평균수명도 47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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