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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광덕사,호도나무),부산(수영공원,금정산성,범어사,광안리)여행 후기 -----
2002년 9월 7일 15시 ~ 2002년 9월 9일 6시까지
☞
이번에 가본곳 (* 밑줄 친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장소로 바로 이동합니다.)
1. 서울역
2. 천안시내
3. 광덕사
4. 광덕사 호도나무
5. 천안역
6. 부산역
7.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구간
8. 수영공원
9. 푸조나무,곰솔
10. 수영성 남문
11. 25의용단
12. 범어사입구
13. 금정산성
14. 금정산성 북문
15. 범어사 경내
16. 범어사 부도
17.
광안리해수욕장
18. 해운대
19. 부산역
20. 영등포역
* 스캐너가 약간 맛이 간 관계로 관련 수집품, 사진등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 후기의 후반부는
약간 재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
* 부산 현지에서
필자를 맞아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이 후기를 올립니다.
< 단칼 - 김현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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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 영턱스클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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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좋을까 - 이수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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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sweetie - 보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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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two - 윤도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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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gain - 쥬얼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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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ver - 핑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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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el me - 이정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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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악새 - 자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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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d cafe - 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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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월 7일 토요일.. 그날은 날씨가
맑았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집을 나섰다.
수락산역에서
서울지하철7호선(장암↔건대입구↔반포↔온수)을
타고 노원역에서
서울지하철4호선(당고개↔서울역↔
사당↔과천,안산,오이도)으로 환승하여 3:10분에 서울역(4호선)에
도착했다.
서울역사(驛舍)에는 지방으로 내려가려는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매표소에 가서 천안까지 열차표를 구입하고 좀 서성이다가 3:30분에 개표를 받고 타는 곳으로 나간다.
이번에 타는 열차는
15:40분에 서울역을 출발하여 천안경유 장항으로 가는 무궁화호 제349열차이다.
좌석은 없고. 입석이다. 운임은 4400원..
15:40분이 되자 열차는 승객을 가득실고 서울역을 출발..
나는 빈자리에 잠깐 앉았다. 운이 좋으면 수원까지 앉아갈 수는 있는데.. 쩝..
한강을 건너 영등포역에 이르니 엄청난 승객들이 열차안으로 몰려든다.
여기서 나는 자리에서 밀려나고... 천안까지 입석으로 가게 되었다.
그래도 8월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입석으로 간 것보다는 낫다. 거리도 훨씬 짧고..
열차는 안양,군포,부곡을 지나 수원역에 이르렀는데 여기서도 졀라 많이 탔다.
완전 피난열차를 방불케 하는군..
객실내 복도는 수백명의 입석들로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이다.
오산,서정리,평택,성환을 지나 16:50분에 천안역에
도착했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천안역에서 승객들이 제법 많이 내리는군..
열차표를 기념품으로 가져오고 천안역을 나온다.
2.
천안시(天安市)는 충남 최대의 도시이다.
서울에서 1시간거리 밖에 안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고, 최근에는 수원-천안구간에서 수도권 전철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다. 이것이 개통되면 서울까지 저렴한 요금으로 전철을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경부고속철도가 천안(아산)역을 정차함으로써 앞으로 이 지역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천안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1. 동양최대를 자랑하는
좌불상(坐佛像)
2. 3.1운동이 벌어진
병천아우내장터,
3. 그 유명한
유관순열사의 생가(柳寬順烈士之生家)
4. 독립군을 이끌던
이동녕장군 생가(李東寧將軍之生家)
5.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 정도 와야 되는
독립기념관(獨立記念館)
6. 호도의 본향
광덕사(光德寺)
7.
귀부의 모습이 특이한
홍경사 비갈(弘慶寺 碑碣)
8. 암행어사의 대명사인
박문수(朴文秀) 유적
9. 교통의 요충지
천안3거리 공원(公園)등이 있으며,
* 이 지방의 대표적인 음식,특산품은
호도와
병천순대 이다.
천안역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표를 구입하고, 역전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이번에 내가 갈 곳은 천안의 명찰(名刹)인 광덕사이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매표소에서 버스시간을 확인해 보니 17:20분에 천안터미널을 출발하는군..
천안터미널에서 천안역까지 보통 10분정도 걸리니까. 17:30분정도에 오겠군..
매표소에서 중고생버스표 2장을 구입(중고생 요금 540원, 일반인 요금
700원)
말없이 버스를 기다린다. 그때 시간이 마침 퇴근시간인지라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많았다.
17:30분이 되자 광덕사로 가는
보성여객 소속 천안시내버스 61번(천안터미널↔천안역↔풍세↔광덕↔광덕사)
BF105가 왔다.
하필이면 왜 저런 고물차가 걸렸을까??
그러나 안탈 수 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 버스에 탑승..
남산동,청수동을 지나 천안시내를 벗어나고..
풍세,광덕,보산원리를 지나 산속 깊숙히 자리잡은 광덕리에 진입..
광덕사입구 3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진입하여 해수부락 쪽으로 좀 들어가니 광덕사종점이 나온다.
천안역을 출발한지 50분만에 광덕사 종점에 도착.. (18:20분)
종점까지 타고 온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4명정도..
3.
광덕사 종점의 풍경을 잠깐 언급하면..
종점 주위에는 등산객,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식당들이 들어서 있고. 버스가 회차하는 곳에는 주차장이 있다.
이 주차장은 물론 주차료를 받는다.
주차장옆에는 가게가 있는데 가게문에는 천안으로 나가는 버스시간표가 걸려있다.
종점에서 계속 직진하면 해수부락이 나오며, 종점에서 오른쪽 길로 가면 광덕산과 광덕사가 나온다.
나는 당연히 오른쪽 길로 가야 된다. 해수부락에는 볼 일이 없으므로..
천안시내로 나가는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광덕사 방면으로 올라가니 길 오른편에 냇물이 졸졸졸 흐른다.
길 왼편에는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군..
좀 올라가니 호돌이상이 나온다.
호돌이는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상 옆에는 호도전래사적비(胡桃傳來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호도는 원래 우리나라 과일이 아니다.
고려말기 때
유청신이란 사람이 몽고에서 호도의 씨앗을 가져와서 이곳
광덕사에 심었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호도나무의 시초이다.
사적비를 지나니 광덕사의 대한 안내판이 나온다.
광덕사 경내와 광덕사의 내력(來歷)이 적혀 있다.
안내판을 대충 읽어보고 '太華山光德寺'
라고 쓰인 일주문(一柱門)을 지난다.
일주문을 지나니 길 옆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하나 서 있군..
그 느티나무는 수령(樹齡)이 400년 이상 된 나무이다.
높이는 약 20m정도. 지정보호수 8-342호이다.
느티나무를 지나니 길 왼편에 안양암(安陽庵)이라는 절이 나온다.
이 절은 광덕사의 부속사찰..
4. 안양암을 지나니 3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앞쪽으로 가면 광덕사가 나오며, 오른쪽 개울건너로 가도 광덕사가
나온다.
그런데 오른쪽 길로 800m정도 들어가면 조선시대 3대 기생(妓生)중
하나인 부용(芙蓉)의 묘가
있다.
그래서 부용의 묘를 보기로 하고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개울을 건너 200m정도 가니 산길위로 석교(石橋)가 걸려있군.. 그 다리는 광덕사 경내에서 옛 천불전쪽으로
가는 다리이다.
다리를 지나서 산길을 계속 올라가니 여러 개의 갈림길이 나온다. 그러나 부용의 묘를 알리는 이정표는 없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될까??
그래서 갈림길중에 하나를 택하여 들어갔으나, 부용의 묘는 커녕..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길가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과 키작은 나무들 뿐...
마침 그때 시간이 저녁 6:30분이고 날도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 가보기로 하고 철수 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산기슭에는 광덕사 소유의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군데군데 옥수수도 달려있군.. 쩝..
산길을 내려와서 아까전 천불전 쪽으로
갔다. 천불전(千佛殿)은
현재 주춧돌만 남아있다.
이 천불전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었다고 하며 1975년에 옛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했다.
그러나 1999년 12월 화재로 완전 전소(全燒)되었고,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천불전이 전소하면서 안에 있던 조선중기 때 그려진 탱화도 불길 속에 완전히 사라져 말았다.
참 안타까운일이 아닐 수 없다.. 쩝..
이 천불전은 충남지방문화재자료 247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해제된 듯
싶다.
* 광덕사의 천불전의 옛 모습..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옛 천불전을 기준으로 왼쪽 구석에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다. 건물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잊어먹었다. ㅋㅋㅋ
천불전의 옛터를 보고 석교를 건넜다. 석교아래에는 아까전 부용의 묘로 올라가는 산길과 계곡이 있다.
다리를 건너니 오른쪽 공터에 최근에 만든 웅장한 3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잠깐 광덕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 처음화면으로 가기)
(-> 광덕사 호도나무)
5.
광덕사(廣德寺)는
광덕산(태화산) 산자락에 위치해 있는 고찰(古刹)이다.
광덕사에는 예전에 28방(房) 89암(庵)이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광덕사 정도만 남아있다.
이 사찰은 신라 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때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신라 흥덕왕 때 진산대사(珍山大師)가
석가의 치아 1매와 사리(舍利) 10과, 승가리(僧伽梨) 1령(嶺), 불좌(佛座) 1병을 봉안하면서 광덕사를 크게
중창한다. 한때는 경기, 충청지방에서는 가장 큰 절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고 그 이후에 대웅전과
천불전(지금은 터만 남음)을 세웠다.
특히 이 사찰은 조선 7대왕인 세조(世祖)가 방문했던 절이다.
세조는 조선 4대왕 세종대왕의 2째아들이다. 그는 효녕대군의 영향을 받아 불교에 관심이 많았고 불교를 자신의
신앙으로 삼았다.
1455년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고, 1457년 사육신 사건과
노산군 사건 이후 세조는 불교에 더욱 빠져들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주요 사찰들을 순례하게 된다.
1457년 세조가 온양온천에서 놀다가 광덕사에 석가의 치아(齒牙)와 사리를 모시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곳을 방문..
광덕사와 개천사 승려들의 온갖 부역을 면제해주고 위전(位田)을 하사한다는 교지(敎旨)를 내렸는데 그 교지가
바로 광덕사소장면역사패교지(廣德寺所藏免役賜牌敎旨)이다.
이 교지는 보물 1246호이다.
* 광덕사
면역사패교지의 일부분
(보물 1246호)
그외에 광덕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동산문화재(動産文化財)들은 다음과 같다.
* 광덕사소장조선시대사경 (廣德寺所藏朝鮮時代寫經)
- 보물 1247호
*
광덕사노사나불괘불탱 (廣德寺蘆舍那佛掛佛幀)
- 보물 1261호
5-1. 광덕사 기타 정보 :
★ 입장료
없음.
* 광덕사 접근 방법 :
①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
경부고속도로→천안I.C→천안시내(천안대로
경유)→천안3거리공원→천안외곽도로→풍세,광덕방면 지방도→풍세→
광덕→광덕리→광덕사주차장
②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
서울역,영등포역,부산역,광주역,동대구역,장항역,여수역,진주역에서 천안까지 열차편 이용.
자세한 열차 시간표는 -->
(열차시간표 안내)
또는 강남고속터미널,동서울터미널,남부터미널에서 천안까지 직행버스,고속버스가 수시로 운행.
천안에서 하차.
그외에 대전,수원,의정부,춘천,강릉,대구,전주,태안,청주,공주 등지에서 천안까지 직행버스가 운행..
자세한 시간표와 운임은 해당터미널에 문의 바람..
천안터미널과 천안역에서 광덕사까지
천안시내버스 61번(광덕사↔천안터미널)이 40~60분 간격으로
1일 21회 운행한다.
광덕사 → 천안역,터미널 시내버스 시간표 (2002,9,20일 현재) | |||
오전 7:00 | 7:45 | 8:25 | 9:05 |
9:45 | 10:25 | 11:05 | 11:45 |
12:25 | 오후 1:00 | 2:30 | 3:05 |
3:45 | 4:30 | 5:00 | 5:45 |
6:30 | 7:20 | 8:25 | 9:00 |
9:30 |
지금부터 광덕사 경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6.
3층석탑을 지나니 삼성각으로 가는 길과 산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 산쪽에 무엇인가가 있다고 해서
산쪽으로 올라갔다.
산쪽으로 150m정도 들어가니 언덕 오른쪽 평평한 곳에 부도(浮屠)들이 세워져 있군..
이 광덕사 부도는
광덕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기슭에 있으며, 모두 4기가 서 있다.
이 부도들은 각각 청상당 부도, 적조당 부도, 우암당 부도, 무명 부도라 일컫는다.
청상당 부도는 청상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이다. 이 승려는 조선 선조 36년(1603)에 출생하여 현종 12년(1671)에
은적사에서 입적(入寂 = 승려들의 죽음을 뜻함)하였는데 그 제자들이 스님의 사리를 얻어와
이곳 광덕사에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형태는 전체가 거의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기단부(基壇部)와 탑신부(塔身部) 그리고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다. 기단부는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뉜다. 연꽃무늬가 펼쳐진 아래받침돌 위에 6각의 가운데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각 면에 난간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둥근 모습이고, 그 위로 6각의 지붕돌이 놓여 있다. 꼭대기에는 화려한 머리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광덕사 '사적기'에 따르면, 조선 현종 13년(1672) 경에 이 부도를 세웠다
한다.
적조당 부도는 전체가 8각을 이루어,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다. 기단부는 아래와 윗받침돌
에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그 사이 8각 가운데받침돌은 각 면마다 난간을 새겼고 한쪽면에 ‘적조당’이라는
글씨를 새겨 사리의 주인공을 밝히고 있다. 탑신의 몸돌은 둥글고, 6각 지붕돌 꼭대기에는 보륜(寶輪)과 보주(寶珠)
가 놓여 소박한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우암당 부도의 기단부는 둥근 아래받침돌 위로 가운데받침 ·윗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무늬는 두지 않고, 다만
'우암당'이라 새긴 글씨만 있을 뿐이다. 탑신은 타원형의 몸돌과 6각 지붕돌이 있고 그 위로 둥근 머리장식이 솟아
있다.
무명 부도는 말 그대로 주인을 알 수 없는 부도로써 연꽃무늬를 새긴 아래받침돌
위에 8각의 가운데받침돌을
올리고 세 줄의 연꽃잎을 새긴 윗받침돌을 얹어 기단을 마련하였다. 가운데받침돌은 8면마다 신장상(神將像)을
1구씩 돋을새김 하였는데, 그 수법이 대담하고 우수하다. 탑신은 종모양을 하고 있어서 둥글고 길쭉하며,
꼭대기에는 보주를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광덕사 '사적기'의 기록이나, 전체적인 형태, 둥근 탑신의 모습 등으로 보아 모두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이 부도들은 충남지방유형문화재 85호이다.
* 광덕사 석종형 부도
부도 주위에는 밤나무가 많군.
이 부도들을 통해 광덕사가 한때 잘나갔음을 알 수 가 있다.
부도를 관람하고 다시 내려와서 대웅전 쪽으로 갔다.
대웅전 못미쳐에 약수터가 있군.. 그래서 물좀 마시고 가지고 온 물통에 물을 가득 담고, 날씨가 더운지라
세수도 했다.
약수터에서 볼일이 끝나자 광덕사 경내(境內)로 진입.. 경내는 썰렁하고 조용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그앞에 3층석탑이 세워져있고. 3층석탑을 기준으로
좌측에 요사(寮舍)가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서 먼저 대웅전(大雄殿)으로
갔다.
이 광덕사 대웅전은 광덕사의 중심건물이다.
이 건물은 1983년에 완전 해체 복원하였는데 처음보다 크게 세웠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에는 석가여래와 그의 제자인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뒤쪽에 영조 17년(1741)에 제작된 탱화가 있는데 이
것이 바로 보물 1261호로 지정된
광덕사노사나불괘불탱(廣德寺蘆舍那佛掛佛幀)이다.
광덕사 대웅전은 충남지방문화재자료 246호이다.
* 광덕사 대웅전
대웅전은 위에 사진과는 달리 안에 못들어가게 잠겨져 있다. 그래서 안을 볼 수 가 없군..
이럴줄 알았으면 좀 빨리 오는 건데...
대웅전을 한바퀴 돌고 뜰에 세워져 있는
3층석탑으로 갔다.
이 석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의 석탑이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후기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아래층 기단의 기둥 장식이 생략되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3층석탑은 충남지방유형문화재 120호이다.
탑의 높이는 약 3m정도이다.
* 광덕사 3층석탑
(대웅전앞에 세워져 있음)
3층석탑의 모습은 위의 사진과 같다.
이때쯤 날이 거의 저물기 시작... 점점 어둠이 밀려오는군..
그런데 3층석탑앞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석사자(石獅子)가 2개가 서
있군..
이 2기의 석사자상은 받침돌을 따로 두지 않고 한돌로 조각하였는데, 하늘을 바라 보는 얼굴은 거의 수평으로 되어
있으며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털은 구름무늬를 이루고 있고, 입은 약간 벌린 모습으로, 그 안에 이빨도
표현했는데, 사실성은 좀 떨어진다.
이 돌사자상은 여러차례 도난을 당했었다. 여러번 도난을 당해 불법반출 되었던 것을 겨우겨우 찾아서 제자리에
갖다놓은 것.. 어떻게 이 무거운 돌사자상을 가져갔을까??
이 석사자상은 충남지방문화재자료 252호이다.
* 대웅전 앞 돌계단 양쪽에 세워진 석사자상
7. 돌사자상과
3층석탑을 보고 문루를 통해 광덕사를 나온다. (-> 처음화면으로)
그런데 문루앞에 거대한 나무가 하나 세워져 있군.. 그 나무는 무엇일까?
(-> 광덕사에 대하여)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호도나무이다.
호도나무(胡桃)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약 20m까지 자란다. 꽃은 4∼5월에 피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광덕사의 이 호도나무는 수령이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3.7m이다. 외과수술의 흔적이
있으나 나무의 상태는 좋은 편이다. 호도나무 3m 앞에는 이 나무의 전설과 관련된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
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의 내용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몽고(원나라)에
놀러 갔다가 왕의
어가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도나무의 어린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이 역시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천안시 광덕면 지역이 우리나라
호도나무의 시배지(始培地 - 처음 심어진 곳)임은
틀림 없다.
이 호도나무는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398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광덕사 호도나무의 모습
(오른쪽은 호도나무의 열매)
* 호도나무앞에 세워진 기념비
(비문의 '유청신 선생 호도 시식지=柳淸臣 先生 胡桃 試植地')
이 호도나무는 광덕사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높이가 약 20m에 이르는 이 노거수에는 많은 호도열매가 열려있었다.
이 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호도나무의 시조(始祖)격 되는 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8. 호도나무를 보고 나올 무렵.. 날은 완전히 저물고.. 그때 시간 7시..
호도나무와 작별을 하고 기념품상가와 안양암,느티나무,일주문,호돌이상을 지나 광덕사종점으로 나왔다.
마침 천안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7:20분에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쳐서 나온 것이다.
버스종점 가게 앞에 있는 의자(마루 비슷하게 생김)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7:20분이
넘도록 버스가 안온다.
허걱 어떻게 된거지?? 마침 버스를 기다리던 아줌마와 가게 주인이 버스가 7시에 오자마자 바로 도망을
갔다고
그런다.. 허걱~ 도망을 가다니..
버스가 지정된 시간보다 20분이나 빨리 도망을 쳤다고 그러니.. 이런 환장할 일이 다 있나...
(그날 천안 61번 운행회사는 보성여객이다. 좀 반성 좀 할 것..)
할 수 없이 다음차인 8:25분 차를 기다렸다.
그러나 날도 어두워지고 모기들의 공격도 장난아니고.. 참 난처하게 되었다.
버스정류장에는 나 이외에도 여자 한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기다리던 아줌마는 아는 사람의 차를
얻어타고 가버리는군..
7:50분이 되자 종점가게도 문을 닫고...
정류장은 완전 어둠에 잠기게 된다. 물론 길건너에 식당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음..
날씨도 춥고 그래서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마시는데 이런.. 물만 나오는군.. 허걱~~
괜히 아까운 300원만 날렸다.
8:10분이 되자 천안시내로 나가는 보성여객 소속 천안시내버스 61번(광덕사↔천안역,터미널)
로얄미디가 들어온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 3명은 버스에 오르고,
8:25분이 되자 버스는 광덕사 종점을 출발...
나는 피곤한지라 잠이 들고.. 잠에서 깨보니 광덕이다. 그런데 이넘의 버스가 여기서 무려 15분이나 짱박는 것이
아닌가.. 허걱~ 오늘 완전 잘못 걸렸군..
9시에 광덕을 출발하여 풍세를
지나 천안시내로 진입.. 9:20분에 천안역에 도착하여 내렸다.
(-> 처음 화면으로)
9. 천안역에 도착하여 부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천안역사(驛舍)로 들어갔다.
여기서 밤 11:56분까지 머물러 있어야 된다.
할것도 없고 해서 TV앞에 가서 '제국의 아침'을 보니 10:50분...
역사 안쪽 휴게실에서 약 40분동안 앉아서 쉬었다.
어느덧 시간은 11:45분..
드디어 내가 탈 열차의 개표를 시작.. 개표를 받고 1번타는 곳으로 나갔다.
서울방향 상행선은 계속 엄청난 승객들이 타고,내리고.. 그리고 지연도 10~20분 이상이나 해먹고..
다행히 하행선은 제시각에 도착하고 출발했다.
11:54분이 되자 내가 탈 열차가 천안역으로 들어오고...
이번에 내가 타는 열차는 서울역을 22:45분에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는 무궁화호 제 271열차이다.
좌석은 4-37석 -> 11-29석이다.
열차에 올라 지정된 좌석에 앉으면서 잠을 청하나 잠은 오지를 않는다...
조치원역을 지나 잠이 잠깐 들었는데 깨보니 영동역이다.
영동역부터는 잠이 안오는군..
어둠으로 뒤덮힌 창밖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그러는 사이 열차는 김천,구미,왜관,대구,동대구를 지나고..
밀양역에 이를 무렵 다시 잠이 들고.. zzz
잠에서 깨보니 열차는 이미
부산광역시(釜山廣域市)에 진입해 있었다.
열차는 9월 8일 새벽 4:26분에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했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10. 부산은 거의 1달여만에 와본다. 참 오랜만에 와보는군..
열차표를 기념품으로 가져오고 부산역사(驛舍)로 나온다.
아직 이른시간이지만 역내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역내에서 잠깐 머물러 있다가 4:50분에 부산역을 나온다.
마침 배가 고픈지라 아침을 먹기 위해서..
부산역 광장에는 우동을 파는 행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우동가격이 2500원이나 하는군.. 우동은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라..
지하도를 통해 길건너로 갔다. 길 건너에는 온갖 김밥집과 분식집들이 새벽인데도 영업을 하고 있군..
여기서 잠깐 그날 만나기로 한 여자애한테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한 이유는 부산에 도착한 것을 알림과
동시에 잠을
깨우기 위해서.. ㅋㅋㅋ
전화를 하고 부근 분식집에 들어가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으로는 라볶기를 먹음.. 간만에 먹어본다.
아침을 먹고 부산1호선지하철역으로 갔다.
이른 아침인지라 마땅히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리고 8월 29일에 개통된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구간을
타보기
위해서..
2년전에 구입한 하나로카드로 지하철 요금을 대신하고.. 1호선 노포동,서면방면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그때시간 5:35분.. 이미 노포동행 첫번째 열차는 지나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0여분 정도를 기다리니 노포동행 2번째 열차가 들어온다.
부산지하철 1호선(노포동↔서면↔하단↔신평)을
타고 부산진,범일,범내골을 지나 서면역에서 내렸다.
서면역에서 내린 이유는 부산지하철 2호선(장산↔해운대↔서면↔호포)으로
환승하기 위해서..
서면2호선 승강장으로 이동하여 2호선 장산행 열차를 탔다.
전철역 곳곳에는 부산 2호선 완전개통을 알리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른아침이라 승객은 별로 없다.
금련산역을 지나 광안역에 이르니 왠 갈매기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뭔가 했더니 해수욕장(海水浴場)을 알리는
안내방송이었다.
센텀시티,시립박물관역을 지나 해운대역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여기서도 갈매기울음소리가 나왔다.
중동역을 지나 부산지하철 2호선의 동쪽 마지막역인 장산(萇山)역에
도착했다. (6:40분)
장산역은 해운대신도시내에 있는 전철역(電鐵驛)이다.
그러나 해운대신도시에 볼일이 없는 관계로 다시 호포행 열차를 타고 해운대,센텀시티,민락역을 지나
수영역(水營驛)에서 내렸다.
수영역에서 내린 이유는 수영로터리 근방에 있는 수영공원에 가기 위해서..
2호선 수영역은 지하철이 개통되었건만 아직도 공사중이다. 진출입로가 모두 완성되지 않은 관계로 아직도
공사를 하고 있다.
수영역을 나와서 수영로터리를 지나 골목길로
300m정도 들어가니 수영공원이 나온다.
(-> 처음 화면으로)
11. 수영공원(水營公園,
다른말로는 수영사적공원이라고 함)은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에 위치한 조그만 공원이다.
조선시대 때 이곳에는 좌수영성(左水營城)이 있었다. 이 성은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가 머물던 진영(鎭營)이
있었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영성(營城)을 쌓았다.
좌수영은 원래 부산포에 있다가 여러번 이전한 뒤, 효종3년(1652년)에 다시 부산포로
이전하여 고종32년(1895년)
까지 사용되었다.
이곳 좌수영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모두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가 경상도 동부해안을 방어했다.
이곳 수영공원에는 옛 좌수영성의 남문이 남아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푸조나무와 곰솔이 있고,
민간신앙을 알 수 있는 서낭당이 자리잡고 있다.
공원북쪽에는 의용단(義勇檀)이 있으며, 공원입구에는 안용복선생 사당이 세워져 있다.
공원 정상에는 민속관과 공연장이 있으며 부근 시민들이 많이 찾아오는 공원이다.
* 수영구 관광안내도
(수영공원은 지도 윗쪽에 있음)
* 수영공원 접근 방법 :
①
부산역(1호선),노포동(1호선),사상역(2호선),하단역(1호선),구남역(2호선),해운대역(2호선),명륜동역(1호선)
에서 지하철 이용, 수영역(2호선) 하차, 수영역에서 도보 500m, 8~10분 정도 소요
②
부산역에서 부산 40,139,140,239,좌석239,240,2001,2003번
이용 수영로터리 하차. 도보 10분
③ 노포동터미널(노포동역)에서 부산 49-1번 이용, 수영로터리 하차,
도보 10분
④ 해운대역에서 부산
40,139,140,239,63,63-1,36,좌석142,239,240,2001,2003번 이용 수영로터리 하차. 도보 10분
⑤ 기장읍에서 부산63-1(* 배차간격 2시간 이상),
좌석142번 이용 수영로터리 하차, 도보 10분
12. 수영공원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사당(祠堂)이다.
그 사당은 누구의 사당인가?
사당정문(正門)앞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니 그 사당은 안용복장군의 사당이다.
그럼 안용복(安龍福)은 누구인가?
☞ 안용복
장군은 부산의 동래부(東萊府) 사람으로 수군이자 어민에 불과했던 관계로 생몰(生沒)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그에 대한 우리나라 사료(史料)는 약간의 언급이 있을 뿐이나 바다 건너 일본의 사료(史料)에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안용복은 일본어를 아주 잘 했다고 하는데.. (부럽당~~)
이는 동래부 소속 수군(水軍)으로 있을 때 부산의 왜관(倭館 : 지금의 부산 초량동)에 자주
드나들면서 배우지 않았나
생각된다.
안용복은 1693년(숙종19년)에 동래지역 어민 40여명과 함께 울릉도(鬱陵島) 근해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부근에서
고기를 잡던 일본 어부들과 충돌하게 되었다. (그때도 쪽발이들이 울릉도,독도 근해에 들어와서 불법 어업을
일삼음)
그때 일본의 어선은 7척이나 되어 그는 중과부적으로 일본어민들에게 납치되어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그곳 관리에게 호통을 치면서 말하기를..
"울릉도는 대조선국(大朝鮮國)의 영토이다. 내 나라땅에서 마음대로 다니는데, 너희들이 감히 나를
붙잡아 와?
(이넘들 간땡이 부었구나!!) 또한 네놈들이 우리 땅에 들어와 불법 어업을 일삼는 것도 도저히 용서 못한다"
안용복의 이런 호통에 겁을 잔뜩 처먹은 쪽발이관리들이 금은보화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줄테니 울릉도와 독도를 몰래 양보해 주지 않겠소? 부탁하오" 라고 말하니,
안용복은 더욱 더 호통을
치면서 말하기를
"당장 집어 치워라!! 어찌 남의 나라 땅을 그따위 금덩어리와 바꾸자는 거냐?"
결국 지방 관리는 중앙에 이 사실을 보고했고, 중앙(그 당시는 에도江戶막부
시대)으로 올라간 안용복은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는 관백(關白)의 서계(書契)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 동래부사와 위접관(慰接官) 홍동하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조선정부는 쪽발이들의 울릉도,독도지역 불법 어업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울릉도 지역이
일본어민들의 불법 조업장소로 전락해 버린다.
이에 안용복은 1696년에 어부 16명을 데리고 울릉도로 들어가 불법 조업중인 일본어민들을 크게 꾸짖는다.
이때 일본어부들이 자기네들은 마쓰시마(松島) 사람들인데 고기를 잡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대꾸를 하니
안용복은 울릉도는 조선땅인데 어딜 감히 침범하냐고 꾸짖으면서 모두 쫓아냈다.
그 다음날 독도근해로 나가자 거기서 불법조업을 일삼던 일본어선들을 추격하다가 풍랑을 만나 오키시마에
표류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도주(島主)를 만나 앞서 자기가 이곳에 와서 울릉도,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정하고
관백의 서계까지 받았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다시 불법행위를 일삼으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졌다.
이에 당황한 도주는 호키슈 태수(太守)에게 보고하여 처리하겠다고 말을 했으나
오랜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안용복은 직접 호키슈에 가서 울릉도,독도 감독관을 자칭하고 태수에게 항의, 이에 크게 쫄은 태수는 울릉도를
침범한 15명의 어부를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다고 엎드려서 빌다 싶이 했다.
안용복장군은 이런 큰 공을 세우고 귀국했으나 조선정부에서는 그가 국경을 넘어가 나라의 허락도 없이 국제문제를
일으켰다는 말도 안되는 죄를 뒤집어 씌워 체포하여 귀양을 보내고.. 그 이후 안용복의 행적은 알 수 가 없다.
나라를 위해 그렇게 동분서주 했건만 어리석은 조선정부는 그런 것을 인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죄를 뒤집어 씌워
귀양을 보낸 것이다.
그 이후 안용복의 이런 활약에 크게 감동한 후세 사람들은 그에게 '장군'이라 호칭하고
1964년 울릉도에 그의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1967년 10월 30일에 안용복 장군 기념사업회에서 수영공원 내에
안용복장군 충혼탑을 건립하였으며.
매년 양력 6월 6일에 제를 올린다.
장군의 업적에 비해 충혼탑의 초라함을 안타깝게 여겨 장군의 업적과 위상을 드높이기 위하여 2000년 5월 10일
실시설계 용역을 거쳐 2000년 7월 31일 수영공원 남단에 사당1동(8평), 동상1기, 기존 충혼탑 이전 등 총 경역
400평 규모로 착공하여 2001년 3월 26일 준공하였으며, 사당의 현판을 독도를 지켰다는 뜻에서
수강사(守彊詞)라고
하였다
수영공원을 찾아오는 이들은 안용복장군 사당을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
* 안용복 장군의 사당인 수강사(守彊詞)
사당내에는 본전(本殿)이 있고 오른편에 충혼비(忠魂碑), 왼편에 동상(銅像)이 세워져 있다.
본전은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안용복장군의 영정,위패와
제사의 필요한
여러가지 도구들이 있을 것 이다.
본전 오른편에 충혼비에는 안용복장군을 기리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은 다 모른다.
왼편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한 그의 자랑스런 동상은 울릉도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럴 것이다.
수강사 경내를 둘러보고 공원으로 들어간다.
13. 수강사를 나와서 언덕(공원자체가 조그만
언덕임)으로 좀 올라가니 오래된 나무가 나를 맞이한다.
평범한 나무는 아닌 것 같고... 나무 앞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니 그 나무가 푸조나무라고
하는군..
(-> 처음 화면으로)
문화재청에 등록된 이 나무의 명칭은 '수영동 푸조나무(수영동에 있다고 해서 수영동 푸조나무라고 함)'이다.
쇄기풀목의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푸조나무는 수세가 강건하고 병충해가 적으며 목재는 연하면서도 단단해서 세공재
등의 귀한 용도로 쓰이는 나무이다.
높이 18m, 나무둘레 8.5m, 수관폭 25m의 이 나무는 전체적으로 옆으로 기울어져 자라는데, 줄기에는 상처의 흔적이
있고 혹이 발달해 있다. 줄기의 끝은 죽어 있으나 전체적으로 위엄있는 모습이다. 이 나무의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고, 마을을 보호해 주는 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 할머니의 넋이 깃들어 있어 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의심이 가면 직접 나무에 올라가서 떨어져 보기 바람..ㅋㅋ)
이 푸조나무는 천연기념물 311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수영동 푸조나무
(나무부근에 곰솔과 할매당이 있다)
푸조나무 주위에는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여름에 여기서 낮잠
자면 아주 좋을 듯 싶다. 그늘도 시원하고..
푸조나무를 보고 좀 올라가니 비석군(碑石群)이 있군.. 비석군은 말 그대로 비석들이 무리지어 서 있는 것.
이 비석들은 대부분이 경상좌수사와 동래부사의 선정비(善政碑),불망비(不忘碑)들이다.
이 비석들은 원래 수영구,동래구 지역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에 모두 집합시킨 것이다.
비석옆에는 이것이 무슨 비석인가를 설명해 주는 조그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수십기의 비석들을 살펴보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서낭당이 보인다.
이 서낭당의 정확한 명칭은 '송씨할매당'이다. 이 할매당이 세워진 것은 약
400여년 전으로 추측되며 1981년에
김을배 씨에 의해 건립된 송씨할매당은 일제 때 쪽발이 병사에게 항거한 송씨 할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송씨 제당을 세워 모시게 되었다.
성주신당→독신묘→곰솔나무 즉 송씨할매제→독신제→당산나무의 순으로 제(祭)가 치뤄지나,
1960년대 이전에는 송씨할매제→독니제→먼물샘제→거릿대제의 순으로 매년 섣달 그믐 자정에 제를 지냈다.
그러나 10년전부터는 당산제를 지내지 않고 있으며, 요즘은 매일 무속인들이 송씨할매당을 찾고 있다.
이 사당은 최근에 다시 만들었기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다.
할매당 주위에는 돌담이 쳐져 있다.
* 수영공원내에 위치한 할매당
할매당 앞에는 홍예만 남아 있는 성문이 있군..
성문 왼편에는 넓은 테니스장이 있고.. (->
처음 화면으로)
나는 그 홍예문으로 갔다. 이 문은 바로 수영성의 남문(南門)이다.
이 성문은 조선 숙종 18년(1692)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확실하게 축성 시기는 알 수 없다.
지금 남아있는 성문은
약 200m 가량 떨어진 곳(옛 수영국민학교 자리)에서 옮겨온 것으로, 1993년
보수하였으며 현재 수영공원의 정문
구실을 하고 있다.
무지개 모양으로 쌓은 홍예문 양쪽 옆에 개조각상인 '박견(拍犬)'을 만들어 놓아 왜구(쪽발이 해적패거리)를
감시하던 성의 임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좌수영지'에 의하면 4개의 문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성문 옆에 조각상을
배치한 것은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수영성 남문은 부산지방유형문화재 17호이다.
* 수영성 남문 (성문 뒤에 곰솔이 보인다)
14. 홍예만 남은 수영성의 남문을 지나니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
글씨는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하마비란 말그대로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하마비의 내용은 "수령이하의 사람은 말에서 내려서 이동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성안에 들어올 때 경상좌수사를 제외한 사람은 말에서 내려서 성안으로 들어오라는 것 같군..
하마비를 보고 다시 홍예문을 지나 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할매당 옆에 오래된 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규모가 있어 보이는 나무가 곰솔이다.
곰솔은 나무 종류중 하나이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곰솔나무(해송나무)는 중부이남의 해안과 도서지방에 자생하는 향토수종으로
소나무과에 속하는 침엽교목이다.
높이 22m, 둘레 4.5m, 수관폭 동서 19m, 남북 21.8m의 약 4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노거수(老巨樹)이다. 조선시대 때
좌수영이 설치되었을 때 군신목으로 정해 군신을 보호하고 통괄하는 것으로 믿어 군사들은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무사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이 곰솔나무는 천연기념물 270호이다.
곰솔나무 주위에는 수령 200~400년이상 된 곰솔들이 서 있다.
* 수영동 곰솔나무
(나무 오른편에 할매당이 보인다)
곰솔나무는 근방에 있는 푸조나무와 함께 수영공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나무이다.
곰솔나무는 그냥 소나무 비슷하게 생겼다고 보면 되겠다.
곰솔나무를 둘러보고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이라 해봐야 그냥 조그만 뒷동산이다.
언덕의 정상부분에 이르니 한옥식 건물이 2채가 보이고 가운데에 놀이마당이 있다.
놀이마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건물은 민속예술관(民俗藝術館)이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라 문은 열려있지 않다.
그리고 놀이마당 앞쪽에는 수영사적관(水營史蹟館)이 있는데 이 곳은 수영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재를 전시,소개
하는 전시관이다. 영업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17시까지. 그 때 시간 아침 7:20분..
시간이 이른지라 들어 갈 수 는 없었다.
그리고 이 놀이마당은 부산지역의 주요 무형문화재를 공연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공연하는 것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인 수영야류,
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 좌수영어방놀이,
부산지방무형문화재 제2호 수영농청놀이 등이다.
그러나 아침일찍부터 공연을 할리는 없을 테고..
놀이마당을 지나 북쪽으로 내려가니 무슨 사당(祠堂)이 있군..
그 사당은 사방으로 담장이 쳐져있고 담장안에
사우(祠宇) 몇채와 비석들이 있군..
그 사당은 무엇인가? (-> 처음 화면으로)
바로 25인의용단(二十五人義勇壇 - 3글자로 줄이면
의용단)이다.
이 의용단은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지키며 쪽발이와 장렬히 싸우다 순절한
25명의 의로운 충절을 기리고 있는
제단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좌수사로 있던 박홍은 성을 버리고 줄행랑을 치자. 좌수영군인 김옥계 외
24명의
일반백성,병사들과 단결하여 7년간 쪽발이와 항쟁하다가 전사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609년에 동래부사 이안눌이 확인이 되는 25명의 의용을
찾아내어 그들의 후손에게 군역을 면해주고 집집마다
'의용'이란 푯말을 붙여 충절을 기렸다. 그 후 1853년(철종4년)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수영공원에 비를 세우고
의용단이라 이름 하였다.
1974년 12월 부산시에서 낡은 비석단 3개소에 의용제인비 25기를 건립하고 외삼문 1동과 한식
담장을 설치하여 새롭
게 단장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의용단이 지형적인 저습지로 배수가 원할하지 못해 수목생육이 어렵고 의용제인비가
노천에
설치되어 있어 제향에 어려움이 많자 1999년 9월 기초 사업계획을 시작으로 하여 200년 5월 10일
사당1동
(17평),내삼문(5.4평),외삼문(3.3평), 관리사1동(6평), 담장 보수, 의용단앞 주차장 설치 등 2001년 3월에
준공하였다.
사당 현판은 목숨을 버려 나라를 지킨 25의용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라는 뜻의 의용사(義勇詞) 내상문은 길이길이 품
어 오래도록 잊지
않는다는 뜻의 영회문, 외삼문은 성심을 간직한다는 뜻의 존성문(守彊門), 관리사는 25사당
관리 및 향사 봉행시 제실로 활용하기 위하여
전사당(典祀堂)으로 하였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말 정(丁)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의용단은 부산지방기념물 12호이다.
* 25인 의용단
의용단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굳게 닫혀 있는지라 들어 갈 수 가 없었다.
아쉽군..
공원남쪽에 안용복장군 사당이, 북쪽에는 25인 의용단이...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인다..
15. 의용단을 보고 다시 놀이마당 쪽으로 갔다.
놀이마당을 지나 언덕 정상부분 벤치에 앉아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음 8시에 수영공원을 나와서 수영로터리로
갔다.
이번에 내가 갈곳은 범어사입구이다. 여기서 만나기로 한 일행들이 있어서.
수영로터리 정류장으로 가서 노포동 방면 버스를 기다니리 10여분 뒤에 삼신교통 소속 부산시내버스
49-1번
(노포동터미널↔부산대↔안락동↔토곡↔광안리해수욕장,
자세한 노선 보기)이 오는군..
버스에 오르니 운전사가 "어서오세요!!"라고 일일히 인사를 한다.. 음 삼신교통
친절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진짜였군..
버스는 토곡,안락동,동래,부곡동,부산대,장전역,구서동,남산동을 지나 9시에
범어사입구 차고지에 도착하여
내린다. (-> 처음 화면으로)
그런데 아직 일행들이 안왔군..
그래서 여러차례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나는 이곳(범어사입구 종점)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을 하고,
삼신교통 차고지 정류장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일행들을 기다리니 9:20분에 부산지역 일행들이 등장했다.
일행들과 인사하고 승용차로 범어사순환도로를 경유 범어사를 지나 원효암 부근까지 이동하여
등산을 시작했다.
16. 휴일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제법 많군...
금정산(金井山)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그렇게 험하지는 않다.
산으로 부지런히 올라가다가 갑자기 오른쪽 길로 진입해서 가는데.. 그 길은 인적이 거의 없었다.
오른쪽 길로 10분 정도 올라가니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나온다.
여기가 원효봉이라고 그런다. 우리는 봉우리 정상으로 올라가서 약 10분 정도
쉬면서 부산시내(특히 금정구)를
바라보았다. 경관이 좋군..
원효봉을 지나서 좀 가니 길 오른편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그럼 그 철조망의 정체는 무엇인가? 철조망 안쪽은 부산 최대의 사찰인 범어사 소유의
산지(山地)이다.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 철조망을 만든 듯 싶다.
올라가는 도중에 늪지대 비슷한 곳도 있고, 산길 상태가 안좋은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고
부지런히 올라가니 어느덧 금정산성(金井山城)내에 진입했다.
성곽의 높이는 1m도 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다.
(-> 처음 화면으로)
17. 금정산성(金井山城)은 조선시대에
돌로 쌓은 석성(石城)으로 임진,병자 양난(兩難)을 겪은 이후 숙종 29년
(1703)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았다. 성의 전체길이는
17,337m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산성(山城)이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박태항에게 명하여 쌓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에 앞서 현종 8년(1667)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곳에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한 성임을 알 수 있으며, 성의 크기나 성벽을 쌓은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성을 쌓은 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 수 있다.
숙종 33년(1707)에는 성이 너무 넓다 해서 성의 중간에 남북을 구분하는 성을 쌓았고 영조 50년(1774)에는 성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렵다 하여 일단 폐쇄하였다가, 순조 6년(1806)에 성을 다시 고쳤으며, 성벽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이용하였다. 일제시대 때 심술궂은 쪽발이들이 산성을 마구 때려 부신 것을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동문,
서문,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에 북문을 복원하였다.
현재 17km중에서 겨우 4㎞정도만 성벽이 남아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주변의 대규모 방어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 금정산성은 사적 215호이다.
금정산(金井山)에는 금정산성과 범어사, 원효암, 석불사, 국청사 등의 사찰이 있으며
원효봉,고당봉 등의 봉우리와
금강공원등의 명승지가 산재해 있다.
* 금정산성 접근 방법 :
①
온천장역(1호선)에서 부산좌석버스 203번 이용. 금정산성의 동문을 경유하여
금성동으로 운행.
②
덕천역,화명역(2호선)에서 금성동으로 운행하는 마을버스 이용. 서문을 경유하여 금성동으로 운행.
③ 부산 110-1,80,80-1,202번 이용하여
금강공원(식물원입구)하차하여 등산..
④ 범어사입구(삼신교통)에서 부산 90번 이용. 범어사 하차하여 등산..
* 금정산성 안내도
* 금정산성 서문 주변
* 금정산성의
북문 주변
18. 산성내로 진입하여 성곽을 따라 내려가니
금정산성의 북문(北門)이 나온다.
북문을 통해서 범어사로 내려갈 수 가 있다.
북문에는 많은 등산객들과 이들을 상대로 음식을 팔고 있는 상인들로 약간 혼잡하군..
북문을 지나서 계속 성을 따라 올라갔다.
우리의 목표지점은 금정산의 유래가 된 금샘(金井)이다...
우리는 10분정도 올라가다가 갑자기 오른쪽길로 접어든다.
성곽(城郭)을 벗어나서 좀 들어가다가 괜찮은 바위가 있어서 거기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김밥이다. 김밥을 맛나게 먹고 충분하게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금샘을 찾으러 떠났다.
그러나 금샘은 찾지 못했다.
금샘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암봉(岩峯)으로 올라갔으나 금샘은 없었다.
암봉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금샘은 커녕 그 비슷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 길을 잘못 들어선 듯 싶군.
할 수 없이 금샘은 포기하고 아까전 오던 길로 해서 다시 금정산성의 북문(北門)으로
내려왔다.
* 우리가 찾던 금샘은 아래의 사진으로 대신 한다.
* 고당봉의 금샘 (범어사의 창건설화와 관련이 있다는..)
* 봉화대의 금샘
(장사바위라고 불리는 바위에 있음)
북문에서 물 좀 마시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 북문을 통해 성밖으로 나간다.
범어사로 내려가는 길은 그런데로 평탄하고 괜찮다.
나무로 울창한 산길을 30분 정도 계속 내려가니
범어사의 서쪽 부분이 나온다.
이제 다 내려왔군.. (-> 처음 화면으로 가기)
계곡 위에 세워진 다리를 건너 담장을 따라서 범어사(梵魚寺) 경내로 들어선다.
범어사는 3번 째 와본다.
(많이도 와 봤군..)
19. 범어사는 금정산 중턱에 위치한 사찰이다.
이 절은 678년(신라 문무왕1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해인사(海印寺 -
경남합천),통도사(通度寺 - 경남양산)
와 함께 경남 3대 사찰중 하나이다. (부산에서 제일 큰 절임)
원효대사를 비롯한 많은 고승들이 여기서 수도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휴정)가
이곳을 사령부로 정하고
의병을 모았는데 그후 지금까지 서산대사의 법손(法孫)들이 이 사찰의 법통을 이어오고 있다.
범어사란 이름의 유래는 동국(東國)의 남단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바위 한가운데에는
샘이 있다. 그 물빛은 금색이며, 물속에는 범천(梵天)의 고기가 놀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절을 세우니 산이름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했고 절이름을 범어사라 했다는 것이다.
범어사는 임진왜란 때 쪽발이들이 모두 불질러 버렸고 그 뒤 1602년(선조35년)에 중건,
1613년(광해군5년)에 중수했다.
노송의 울창한 숲속에 위치한 이 사찰은 심산선경(深山仙境)을 이루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지금부터 범어사경내를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 범어사 입장료 : 일반 1100원,
학생,군경 700원
* 범어사 접근 방법 :
①
범어사역(1호선)하차, 범어사입구 종점까지 도보 5분, 종점에서 부산 90번시내버스
이용, 범어사 하차
부산 90번 배차간격, 휴일 수시운행 , 평일 30~50분 간격.
* 범어사(梵魚寺) 전경
20. 범어사 경내로 들어서니 팔상전(八相殿)과 산신각(山神閣)이 나온다.
예전에 범어사로 들어올 때는 일주문(一柱門)쪽으로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금정산성에서 내려오는 지라
범어사에서 제일 높은 부분에 속하는 팔상전 쪽으로 오게 된 것이다.
팔상전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고 승려와 신도들이 예불을 드리고 있군..
이 건물도 좀 오래된 건물인데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건물모양도 좀 이상하다. 겉 모양은 별로 특이한 것은 없는데 건물의 왼쪽, 중앙, 오른쪽 부분의
명칭이 서로 다르군.. 건물은 하나인데. 건물의 명칭은 각각 다르다. 가운데가 팔상전,
왼쪽, 오른쪽의
명칭은 안따깝게도 잊어먹었다.
그런데 팔상전 앞에 낯이 많이 익은 듯한 여자가 왔는데 이로써 일행이 1명 더 늘었다.
늦잠을 자서 지금에서야 나타났다고 한다.
팔상전 오른쪽에는 산신각(山神閣)이 있다. 이 건물은 말그대로 산신을 모시고 있다.
산신각아래에는 큰 바위가 있다.
바위 아래에는 약수터가 있군.. 물 한모금 마시고 대웅전(大雄殿)으로 갔다.
범어사 대웅전(大雄殿)은 창건연대는 알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쪽발이들에 의해 소실되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1614년에 묘전화상이 중건한 뒤에 여러 번 중수가 있었다.
정면3간,측면3간인 다포집계통의 건물이나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있으며 측면에는 공포(拱包)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대신 측면에는 고주(高柱)2개를 세워 중종량을 받치게 했으며 그위에는 다시 종량이 있는데 박공(朴工)머리에는
방풍판(防風板)을 달았다.
대웅전안에 있는 불단에는 3존불이 모셔져있다.
불단위에는 11포작의 공포모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정자형(丁字形)의 닫집이 있다.
조선 중기 대표적인 목조건물이라 할 수 있는 이 대웅전은 보물 434호로
지정되었다.
* 범어사 대웅전
범어사 대웅전(大雄殿)을 둘러보고 돌계단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다시 오던길로 해서 범어사 경내를 나온다.
범어사 경내에는 보물 250호인 3층석탑과
부산지방유형문화재 16호인 석등이 있다.
21. 경내(境內)를 나온 이유는 신비의 범어사 부도밭을 보기 위해서..
범어사 부도군(浮屠群)이 약간 비밀스런 장소에 있다면서 우리를 안내한다.
계곡을 넘어서 5분정도 가니 나뭇가지로 만든 담이 보인다. 담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하나인데. 통과하기가
좀 힘들군..
문을 지나니 그 신비스러운 범어사 부도군이 우리를 맞이한다.
부도는 약 30~40여기 정도 있는데 제일 왼쪽에 있는 것들이 최근에 만든 것.. 중앙, 오른쪽 부분은 약간
오래된 것들이다.
마침 부도밭에는 아줌마 1명이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일행 중 1명이 아줌마를 도와 청소를 해주고..
범어사 부도밭은 그늘에 위치해 있어서 시원하다.
부도군에서 30분정도 머물면서 휴식을 취한다.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청소가 끝나자 그 아줌마는 고맙다고 답례를 하고..
신비(神秘)의 범어사 부도군(浮屠群)을 나오는데 마침 부근 계곡에서 막걸리,도토리묵, 파전 등을 파는 상인이
있어서 막걸리,파전등을 주문하고 우리는 계곡에
앉아 쉬면서 계류(溪流)에 발을 담군다. 시원하군..
막걸리와 파전,도토리묵을 먹고 장시간 동안 대화를 했는데. 대화의 내용은 아쉽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막걸리와 파전등을 그런데로 다 먹고 4시쯤에 자리를 떴다.
계곡을 나와서 좀 내려가니 범어사일주문(一柱門
- 부산지방유형문화재 2호)이 보이고, 길가에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하나 나온다. 글자는 물론 한자로 쓰여있다.
* 범어사 일주문 (왼쪽에는 金井山 梵魚寺, 중간에는
曹溪門, 오른쪽에는 禪刹 大本山)
22.
범어사 매표소를 지나서 떡 하나 사먹고.. 누가 샀는지는 모르겠음..
어느덧 범어사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범어사 버스정류장에는 부산 90번이 하산하려는 등산객들을 많이 태우고 있다.
자리가 없는지라 다음 차를 타기로 하고 5분도 안되서 부산 90번이 오는군..
이번에 타는 버스는 삼신교통에서 운행하는 부산시내버스 90번(범어사↔범어사입구,청룡동)이다.
버스는 약 30여명을 태우고 범어사정류장을 출발한지 10분도 안되서 청룡동(범어사입구) 종점에 도착했다.
우리는 광안리에 가기로 하고 부근 1호선 범어사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탔다.
남산동,두실,부산대,온천장,동래,교대앞,연산역을 지나 양정역이 이를 무렵 일행중
1명이 매정하게 배신을
때리고
전동차에서 내린다. 허걱~~
서면역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하여 전포,대연,금련산역을 지나 광안역에서
내렸다.
광안역에서 동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니 넓은 바다가 보이는군..
여기가 그 유명한 광안리 해수욕장이다.
23. 광안리 해수욕장은(廣安里
海水浴場)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에 위치해 있으며, 해수욕장의 총면적 82,000m,
백사장 길이 1.4㎞, 사장폭은 25~110m이다.
완만한 반월형(半月形)으로 휘어진 사장으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해수욕장이다.
(-> 처음 화면으로)
해수욕장 주변에는 각종 놀이시설과 레스토랑,패션샵,음식점,생선 횟집 등이 모여 있으며. 백사장내에 야외상설무대
를 설치하여 각종 공연장소로 활용하며 바다 음악제, 무용제 등 예술문화행사를 제공하고 있다.
해수욕장 앞바다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리(橋)인 광안대교(광안대로)가 있다.
아직 개통은 안된 상태..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동쪽으로 1km정도 가면 민락해안공원과 민락회센터가 있음.
* 광안리 해수욕장
* 광안리 해수욕장
주변 안내도
* 광안리 해수욕장 접근 방법 :
①
부산역(1호선),노포동(1호선),사상역(2호선),하단역(1호선),구남역(2호선),해운대역(2호선),명륜동역(1호선)
에서 지하철 이용, 광안역(2호선) 또는 금련산역(2호선) 하차, 도보 10분.
②
부산역에서 부산 40,41,139,140,239,좌석42,239,240,2001,2003번
이용 광안해수욕장입구 하차. 도보 10분
③ 노포동터미널(노포동역),범어사입구 에서 부산 49-1번 이용,
광안리해수욕장 하차, 도보 3분
④ 해운대역에서 부산
40,139,140,239,181 좌석239,240,2001,2003번 이용 광안해수욕장입구 하차. 도보 10분
⑤ 수영공원에서 도보 20분.
24. 광안리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넓은 바다가 우리를 맞이한다.
여기는 3번째 와보는데 별로 달라진 것은 없군..
백사장(白沙場)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바닷바람을 쐬고.. 시원하군..
해수욕장 앞바다에는 거대한 광안대로가 세워져 있다. 요즘 막바지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라고 한다.
저 다리가 완성되면 해운대에서 남천동 까지 바다위로 갈 수 있게 된다. 음 기대되는군..
해수욕장에서 좀 놀다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부근 갈비집으로 들어가서 저녁을 먹는다.
삼겹살 10인분과 소주를 마셨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광안역으로 나오면서 일행 들은 하나둘 집으로 가고..
나머지 3명과 함께 광안역(2호선)으로 나왔다.
여기서 부산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해운대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음료수 좀 사먹고 1명은 지하철 타고 집으로 나머지 1명은 8:55분에 기장,좌천 경유 진하행
동부여객 직행버스를 타고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사라져 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군.. 쩝..
이제 갈 곳은 어디인가? 바로 부산역이다.
부산역을 어떻게 갈까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특급좌석 2003번을 한번 타보기로 했다.
해운대역 버스정류장에서 부산여객 소속 부산좌석버스 2003번(송정↔해운대역↔부산역↔충무동,
자세한 노선 보기)
을 타고 가는데 겨우 28분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우와 엄청난 스피드..
특급좌석요금은 1300원 (하나로 카드 사용시 1200원, 나는 카드 사용)
(-> 처음 화면으로 가기)
25. 부산역에 도착하니 9:40분.. 아직도 50분정도 남았군..
부산역사(驛舍)로 들어가서 예약한 열차표를 구입하고 열차를 기다린다.
22:10분이 되자 내가 탈 열차의 개표를 시작.. 개표를 받고 타는 곳으로 나갔다.
이번에 타는 열차는 부산역을 22:30분에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제 266열차이다.
운임은 영등포역까지 17900원, 좌석은 8-23석이다.
그런데 입석승객이 졀라 많았다. 한객차당 입석이 거의 60여명은 되는 듯 싶었다.
22:30분이 되자 열차는 부산역을 출발...
출발한지 얼마 안되서 잠이 들고........ zzz
잠에서 깨보니 '~~ 잠시뒤 영등포역에 도착하겠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군..
잠시뒤 정시보다 15분이나 늦은 새벽 4:16분에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26. 영등포역(永登浦驛)에서 수백명의 승객들이 내리고..
나는 열차표를 기념품으로 챙기고 역사(驛舍)로 나왔다.
rest room에 가서 세수를 열라게 한다음 4:30분에 영등포역을 나와서 부근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4:35분이 되자 서울시내버스 30번(월계동↔석관동↔종로↔여의도↔개봉동↔광명시)의
첫차가 왔다.
그런데 첫차부터 만땅이군... 입석 승객들로 미어터지고.. 할 수 없이 다음 차를 타기로 했다.
너무 피곤한 관계로..
4:45분이 되자 아까전 30번과 같은 회사 노선인 서울 30-2번이 왔다. 그런데 이것도 만땅이네.. 다음 차를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탔다. 이번에 탄 버스는 삼화상운에서 운행하는 서울시내버스 30-2번(월계동↔석관동↔종로↔여의도↔
개봉동↔광명역↔광명시광남4거리,
자세한 노선 보기)이다.
차종은 super aero city이다. 버스옆면에 쓰여 있음.
여의도,마포,서대문,광화문을 지나 종로1가에서 겨우 자리에 앉고..
종로,동대문,신설동,종암동,월곡동을 지나 5:30분에
석계역(石溪驛)에 도착했다.
석계역에서 서울 지하철 6호선(봉화산↔안암↔신당↔이태원↔월드컵경기장↔독바위)을
타고 태릉입구역에서
서울 지하철 7호선으로 환승하여 수락산역에 도착. 집에 오니 아침 6시...
-> 이로써 천안,부산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27. 마무리
이번 여행은 충청남도의 천안지역과 부산광역시를 갔으며..
천안의 광덕사, 부산의 수영공원,금정산성,범어사,광안리해수욕장을 갔다.
그리고 8월29일에 개통된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 구간을 시승했다.
----- 집으로 가져온것들 -----
1. 서울 -> 천안 무궁화호 승차권
2. 천안 -> 부산 무궁화호 승차권 2장
3. 광덕사 호두나무잎. (분실함)
4. 부산 -> 영등포 무궁화호 승차권
* 현지에서 맞아준 이들의 이름은 적지 않았습니다.
* 이 후기는 2002년 9월 17일에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