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겨놓았던 비밀의 섬, 세어도 다시 문 열어
하루 한번 행정선으로, 일반여행객은 단 5명만 허용하는 은둔의 섬
함께 걷는 건 바람 뿐, 바람과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
최근, 인천 서구에 있는 ‘세어도’라는 섬에 다녀왔다. 인천 바닷길로 15분이면 만날 수 있는데 참 가기 어려운 섬이다. 인천 서구의 유일한 유인도다. 인천 서구청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해야 하지만 하루에 주민이 아닌 일반여행객은 단 5명 만 허용한다. 이 섬에는 여객선도 없다. 주민운송을 위한 12명 정원의 ‘정서진호’라는 행정선 만 하루 한번 다닌다.
그나마 지난 몇 년간은 코로나 및 선착장 공사 등 때문에 아예 문을 닫았었다. 일반여행객들은 일체 예약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난 5월 중순, 드디어 세어도가 다시 문을 열었다. 여전히 일반여행객은 하루 5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암튼 예약은 가능해졌다.
매월 25일부터 다음달 예약을 받는데 하루 늦은 다음날 들어가 보니 이미 한달 예약이 마감되고 겨우 한 좌석 만 남았다. 만사 제치고 바로 예약, 드디어 오래전부터 벼르던 신비의 섬, 세어도에 갈 수 있게 됐다. 혼자 가야 해서 무척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인도를 개척하는 심정으로 세어도 행 행정선을 탈 수 있는 경인항 컨테이너부두로 갔다.
세어도 선착장 가는 방법은 승용차의 경우 내비게이션에서 인천광역시 서구 오류동 1554번지 근처 경인항 컨테이너부두로 가면 되며, 대중교통의 경우에는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영종 방향으로 가는 44번 버스를 탑승, 쿠팡물류센터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이곳에서 도보로 경인항 컨테이너부두까지 바닷가방향으로 645m, 10여 분 이동하면 세어도 임시선착장 안내판이 걸려 있는 철문을 만난다.
세어도 가는 행정선은 매월 두 번 배 점검을 위한 결항 2회, 섬 주민들만 만석부두에서 왕래하는 5일 내외를 제외하면 일반여행객이 승선하는 경인항 관리부두의 경우 실제 운항일은 20여 일에 지나지않는다. 여기에 일반여행객의 입도는 매일 5명 만 허용하므로 예약이 힘들 수 밖에 없다.
임시선착장에 도착하니 허름한 창고같은 컨테이너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선착장 관리사무소다. 세어도 입도는 반드시 인천 서구청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한 여행객 만 승선이 가능하다. 선착장관리사무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신고를 해야 승선할 수 있다. 운임은 무료다. 승용차는 가져갈 수 없다.
세어도를 왕래하는 행정선 이름은 ‘정서진호’. 12명 정원의 작은 배다. 오전 9시에 경인항 컨테이너부두를 출항하면 세어도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귀항시간은 오후 4시 20분. 섬에서 6시간 정도 머무를 수 있는 셈이다.
필자는 세어도 방문이 처음이라 여유있게 가다보니 출항시간 40분 전쯤 일찍 부두에 도착했다. 선착장관리인은 1명, 허룡(59세)이라는 분이다. 허룡 관리소장에게 몇마디 궁금한 점들을 문의해봤다. 승객이 몇 명 밖에 안되어서인지 커피도 제공하면서 친절하게 답해준다.
이곳 경인항 관리부두는 경인아라뱃길 출발지라 한다. 경인아라뱃길은 2012년 5월에 개통한 국내 최초의 내륙 운하로 김포 한강에서 인천 서해바다까지 연결된 물길이다. 부두 건너편에 아라뱃길여객터미널이 보인다. 동해의 ‘정동진’에 대응하는 서해의 ‘정서진’도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
경인항 관리부두는 특별히 ‘갑문’으로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항구이다. 말로만 듣던 갑문을 이곳에서 처음 본다. 정서진호 선착장은 갑문에서 바닷 쪽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선착장 자체가 고정시설이 아니라 일종의 부교 형태이다.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 때는 물이 빠져 선착장이 내려앉고 갯벌이 드러난다. 바닷물을 갑문으로 막아 아라뱃길에 상시 유람선이 다닐 수 있도록 수위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세어도를 처음 방문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점은 수도권에서 매우 가깝고 아름답기도 한 세어도가 왜 아직도 여객선이 다니지않고 행정선 만 다니고 있는지, 관광지로 개발이 안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주민은 몇 명이나 살고 있는지 등이다. 허룡 관리소장은 “세어도는 물부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90미터 가량 관정을 뚫어 섬에서 식수를 끌어올리기는 하지만 충분하지않고 정수를 하더라도 어느 단계에서는 짠물이 나오기도 하지요. 세어도에 실제 살고 있는 주민은 현재 15명 정도 되는데 이토록 적은 주민을 위해 육지에서 바닷물 속으로 수도관을 설치하기도 힘든가 봅니다”라고 말한다.
사무소 구석에는 2L 짜리 식수병이 10여 개 놓여 있다. 인천 남동구 정수장인가 하는 곳에서 세어도 주민이 원하는 대로 무료로 식수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한다. 허니 섬을 관광객들에게 무제한 개방하면 자연을 손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식수문제도 심각할 것이라고 얘기해 준다.
선착장 관리사무소에는 세어도어촌체험마을과 둘레길을 소개하는 팜플렛이 비치되어 있다. 인천 서구의 서쪽 끝 바닷가를 지키고 있는 세어도는 현재 인천 서구 원창동 353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로 농어, 숭어, 새우잡이 등 어업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다.
세어도 둘레길은 총 6.2km로, 중앙산책로 1.5km, 서측산책로 1.2km, 동측산책로 1.2km, 남측산책로 0.8km, 북측산책로 1.5km로 나뉘어져 있다. 허룡관리소장은 팜플렛에 그려진 색깔별 둘레길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시간이 여의치않을 경우 우선적으로 꼭 가볼 만한 산책로를 추천해준다.
드디어 정서진호 승선시간이다. 12명 정원의 작은 배에는 선장과 함께 승하선을 안내하는 갑판장도 있는데 여자분이다. 뱃길에서 잠시 다가가 몇마디 얘기를 나눠봤다. 여갑판장 이름은 민경선(64). 선장은 홍영복 씨로 두분이 부부간이고 동갑내기라고 한다. “세어도가 어느쪽에 있나요?” “아직은 안보여요. 조금 더 가야 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세어도 출신이고 갑판장은 시집와서 계속 세어도에 살고 있다고 한다. 행정선 자체는 서구청 소유라고 한다. 계약직으로 행정선을 운행한지는 5년 정도. ”부부가 함께 행정선에서 일하니 돈도 벌고 좋으시겠어요“. ”수입이 있는 건 좋지만 자유시간이 적어 힘들어요. 아파도 병원갈 시간도 없고 개인적인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두분은 세어도에서 최연소라고 한다. 세어도 주민의 대부분은 70대, 최연장자는 80대 중반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배가 서서히 섬에 접근한다. 선착장 주변은 공사로 약간 어수선하다. 갑판장은 세어도 선착장 공사와 대합실 및 마을회관 정비 등에 지자체에서 97억원 정도 투자했다고 소개한다. 지난 몇 년간 일반여행객들의 세어도 방문을 금지해온 건 코로나와 함께 선착장 공사 때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새로 지은 대합실과 함께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 건물이다.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이 카페는 은둔의 섬에 있는 카페 치고는 꽤 현대식이다.
메뉴도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창문으로 내다보는 바다경관이 절경이다. 세어도에는 민박집도 식당, 슈퍼도 없다. 이곳 카페가 여행객들에겐 유일한 쉼터인 셈이다. 커피 등 음료수는 물론, 간단한 빵과 라면이 가능하다. 공사인부 등 특별한 경우에 한해 비공식적으로 마을회관 및 통장 댁(양성철 010-3306-3546)에서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카페에서 몇 발자국 더 가면 좌측으로 아기자기한 정원이 있는 개인집이 눈에 들어온다. 마침 여자 주인이 꽃밭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분의 작업모자가 특이하다. 마치 베트남 여인들이 많이 쓰는 아오자이모자같다. “양산모자가 참 예쁘네요”. 말을 건네본다. “전도사 분이 선물로 준 건데 여름에 산책하거나 밭일할 때 쓰면 좋아요”. “이 섬에 교회도 있나요?” “교회는 없고요. 개신교 전도사라는 분이 전도하기 위해 섬에 들어온 적이 있어요”.
이 집 여자 주인은 유옥재(66) 씨. 이 섬으로 들어온지는 6년 됐다고 한다. 꽃을 좋아해서 작기는 하지만 꽃밭도 가꾸고 쬐그만 하우스도 만들어놨다. “이 하우스요? 이거 쿠팡에서 산 거예요”. 쿠팡에서 안파는 게 없는 것 같다. 미니하우스 안에는 콜라비도 심고 고추, 딸기, 쑥갓, 상추도 자라고 있다.
대화 중에 이웃집 남자 한 분이 왔다. “이 섬은 왜 개발이 안되는 건가요?”.“외지인 방문을 제한하는 건 왜인지요?” 같은 질문을 마을 주민에게 또 해봤다. 마을 주민은 식수문제 이외 또 다른 이유도 언급했다. 실제 거주 주민은 15명 정도이지만 섬의 땅 주인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130명 정도라던가? 개발을 할려면 일일이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연락이 쉽지않고 의견도 제 각각이어서 합의가 어렵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게 좋지요". 유옥재 씨 역시 개발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굳이 관광목적으로 개발한다면 섬 해안을 일주하는 해상탐방데크길 등을 만든다면 바다는 개인소유가 아니니 지자체에서 예산 만 허용되면 간단히 결정할 수 있지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유옥재 씨 댁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섰다. 선착장 주변에만 마을이 조성돼 있고 섬의 대부분은 울창한 숲이다. 그 원시림 사이로 예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서쪽 산책로 끝에는 ‘소세어도’라는 새끼섬 무인도도 있다.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 시에는 약 130m 거리의 노둣길을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소세어도에는 소나무가 군락으로 울창하며, 정자와 전망대도 있다.
섬 둘레길을 돌다 보면 중간에 해돋이전망대, 해넘이전망대도 있고, 섬 끝에는 ‘해암정’이라고 부르는 정자도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마침 간조시간이 13시 51분이어서 소세어도를 건너가 볼 수 있었고 세어도 사방의 광활한 갯벌경관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갯벌은 단순히 바다밑 땅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숨쉬고 있는 자연의 보고요 생태정원이다.
해암정 앞 바다 건너에는 동검도가 지척으로 보인다. 물 빠진 갯벌이 세어도 끝에서 동검도까지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다. 마을의 한 여인이 외간남자와 불륜을 일으키다 발각되자 섬을 탈출코자 간조 때 이 갯벌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미쳐 동검도에 다다르기 전에 바닷물이 들어와 익사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산책숲길 곳곳에는 인동초, 엉겅퀴, 개망초 등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섬 전체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지지않아 자연경관이 살아있다보니 계절에 따라 진달래군락지, 찔레군락지, 참나리군락지, 가는잎처녀고사리군락지, 현호색군락지, 두루미천남성군락지, 조개풀군락지 등 야생화 군락지들도 많다.
'세어도의 숨겨진 보물 야생화를 찾아라' 라는 팜플렛도 있다. 단, 드믈게 뱀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주민의 조언) 반바지차림이나 둘레길이 조성되지않은 풀밭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 둘레길의 경우에도 등산화를 신고 발 아래를 조심하면서 걷는 게 안전상 바람직할 것 같다.
섬 대부분이 소나무숲이지만 갈대숲도 있다. 마을을 벗어나 몇시간을 혼자 걷는 동안 단 한사람도 만나지못했다. 섬끝 해암정에 가서야 겨우 한 사람 정자에서 쉬고 있는 젊은이를 만날 수 있었다. 둘레길을 거의 다 돌고 다시 해암정에 가보니 그 젊은이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노트북까지 펴놓고 몇시간을 그곳에만 머물고 있다.
하긴 이렇게 조용한 섬 정자가 글 쓰는 사람에겐 최고의 쉼터가 되겠지. 죽음같이 적막한 섬끝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있으면 누구든 시를 쓰고 싶고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도 보내고싶지 않을까?
해안가 나무 아래 고색창연한 벤치도 있다. 여기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다면 영화의 한 장면 같을 것이다. '세어나무쉼터'라고 부르는 곳이다.
완전 무인도 같다. 함께 걷는 건 바람 뿐이었다. 바람의 손을 잡고 바람과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 그냥 서너시간을 꿈길을 걷듯 혼자 걸었다. 너무 호젓해서 슬펐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