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상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최근 몇 주 동안 한 언론에 백범 김구 선생의 시해범 안두희를 추적한 기사가 연재되었다. 권중희 선생의 회고를 바탕으로 한 글이었다.
그 글을 읽으며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안두희를 끝내 응징한 인물은 권중희 선생이 아니라 박기서 선생이었다. 이 사실은 우리 사회가 정의와 법, 역사 사이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긴장을 안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한 개인의 범죄가 역사적 차원에서 충분한 단죄 없이 오랜 세월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해방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때로 너무 늦게 도착했고, 때로는 끝내 도착하지 못했다.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을 향한 폭력이 제도적 심판을 받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간 현실은 오랫동안 응어리로 남아 있다. 뒤늦게 이루어진 개인의 응징 또한 그것이 정의의 회복이었는지, 또 다른 비극의 반복이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그 사건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인물로 이어진다. 친일파의 자녀로 태어났으나 평생을 친일 행적의 실체를 추적하는 데 바친 임종국 선생이다.
그는 『실록 친일파』 서문에서 일본군이 철수하며 “20년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는 일화를 전한다. 그것은 단순한 퇴각의 말이 아니라, 과거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경고처럼 읽힌다.
그의 삶은 미완의 역사를 기록으로 바로 세우려는 치열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 속에서 그 문제의식이 얼마나 이어지고 있는지는 다시 묻게 된다.
얼마 전 한 보도를 접했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휘하에서 활동했던 의병장의 후손이 한국에 입국한 뒤 불법체류자로 분류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소식은 단순한 사건을 넘어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법적 기준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가. 제도의 논리와 인간적 책임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독립운동의 기억 위에 세워진 사회가 그 후손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묻게 된다.
한때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민족의 반역자를 단죄하지 않은 채 세월이 흐른다면, 그 사회에 정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결국 이 물음은 과거를 향한 질문이 아니라 현재를 향한 질문이다. 역사적 정의가 미완으로 남아 있을 때, 그것은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제도와 판단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글을 덮고 난 뒤에도 생각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윤리와 판단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2011)
첫댓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는 글 쓰는 사람의 역할이 큽니다.
권중희선생의 회고록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민족의 독립과 우국의 화신 백범선생을 살해한 자가 고개 쳐 들고 한 때 나마 떵떵거리고 살았으니
이게 민족정기가 있는 국가였습니까!
임종국 선생의 <실록친일파> 참으로 귀중한 자료입니다.
의병장 후손을 제대로 모시지 못함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두희가 처단된 것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봉으로 민족정기를 일으켜 세운 박기서 선생은 1948년 정읍에서 출생하셨군요 2025년 7월 10일 77세로 영면하셨습니다
임종국 선생의 용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만 잘 뽑아도 민족정기는 속히 회복된다고 믿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마땅히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호는 대한민국입니다
박기서선생이 2025년에 77세로 영면하셨군요.
우리는 그 이름 석자를 필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