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여행 스케치
얼마전 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소속으로 현재 광주 가톨릭대학교 구약 성서 담당 교수인 김혜윤 수녀님의 “성경 여행 스케치”라는 조그만 책자를 만났습니다.
수녀님께서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하시면서 성경을 통해 진정한 탐색 대상으로 삼고 분석해야 할 것은 하느님이나 성경이라는 책 자체, 또는 성경 인물의 일생이 아니라 그 정보를 통해 성찰적 시각으로 반추한 ‘나 자신’이라는 말씀에 공감해서 읽고 또 읽어 보았습니다.
우선 앞 부분 읽은데 까지 요약해 보며 묵상합니다...
여행을 떠나며...
여행...그 말만큼 지친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위로를 주는 단어도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조금의 융통성이나 여유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닫힌 문이어서, 가볍게 훌쩍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숨막혀도 현실과 운명을 쉽게 놓을 수 없는, 바로 그런 분들께 이제 좀 특별한 여행을 제안하려 합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끼리 함께 떠나보자는 것인데 이 여행의 목적지는 ‘성경의 세계’입니다.
시인 함성호는 시(詩)를 '저 어둡고 황홀한 숲'이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숲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곳이 어둡고 깊어서 '웬만해서는 비밀을 잘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성경이 어둡고 끝도 없이 깊지만 그런만큼 황홀한 숲이라는 겁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삶 자체는 끝없는 순례이며,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중단없는 여행이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지독히도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평범함이야말로 반복될 수 없고 대체될 수 없는 삶과 운명의 도정(道程)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며 여행을 시작하자고 하셨어요...
수녀님께서 성경을 소개하시면서...교육의 진정한 완성은 information(정보)을 통해 교육의 대상자가 formation(형성, 양성)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transformation(전이, 변화)이 이루어질 때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우리말의 '아름답다'라는 말은 '앎답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아는 사람다울 때 아름답다는 말씀이지요.
삶을 살아가면서 터득하고 깨닫게 되는 진리가 진정으로 나를 새롭게 형성해 갈 때(formation), 우리는 진정한 '앎 '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존재로 변화(transformation)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으면서 객관적인 인식의 대상 또는 인식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남게되는데...정답부터 제시하자면 그건 '나 자신'과 '내 주변' '우리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정리해서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고 만나지지 않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러한 만남을 통해 좀더 정화된 눈으로 내 현실, 내 가족, 내 사회, 내 공동체 안에 존재하시는 그분의 존재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읽어 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성경을 복음(기쁜소식)이라고 하는데 복음화(기쁜 소식화)의 대상이 누구여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는 겁니다. 바로 내가 너에게 기쁜 사람이 되는 것, 기쁜 사람이 되지 못했다면 오히려 불편함을 주거나 되도록 피하고 싶은 존재로 살아 왔다면 우선적으로 바로 나 자신이 복음화의 일차 대상인 것입니다. 복음화의 완성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느님 때문에 모두가 기쁜 소식이 되는 구원과 해방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질 때 하느님 말씀 선포의 목적도 완성되는 것입니다.
수녀님 말씀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사랑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으로 무장된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쁘게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과 역동성을 가지며, 누가 어떤 태도로 반응한다 해도 끄떡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전파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주변과 공동체의 고통은 의외로 쉽게 극복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 자신의 부족함을, 한계를, 겸손히 고백하고 그러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믿음과 신뢰를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복음화을 위한 첫째 조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이 심장에 기쁜 소식으로 품어지고 새겨지는 때는 도대체 언제인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건 극도의 고통중에 있을 때입니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건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스스로 획득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내 차원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이 때의 해법은 이 모든 사건의 흐름과 결과를 결정하시고 관장하시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의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심장에 새김이 가능한 근거는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을 '닮게'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창세기1,26)
우리말 '닮다'는 '담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곧 내 안에 누군가를 '담았을 때' 그 누군가를 '닮을 수 있다'는 논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를 닮아간다고 합니다. 이는 서로를 '담고' 함께 살아온 흔적이며 결과인 것입니다.
마음에 담은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나 어떤 가치라면 그것을 그대로 닮아 가기도 합니다.
복음화, 하느님을 담은 상태로 세상을 보는 것 - 곧 하느님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주관적 왜곡과 오해의 가능성은 붕괴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 가 내 판단을 대신하기 때문이지요.
한자어 '성인 聖人 '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 한자어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위인만이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잘 듣고(耳), 잘 말하며(口) 평범한 우리도 모두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복음화'란 원죄로 인해 손상된 본성적 시각의 돌아섬(회개)을 의미합니다. 곧 '자기 식의 봄과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사물과 사건을 바라봄을 바로 복음화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내 안에 복음화가 이루어질 때 나는 더 이상 '누구의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의 하느님' , 곧 내 안에 계시기에 내가 정직하게 만나게 된 그 분을 전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바로 하느님의 시선으로 타인과 세상을 보게 될 때 타인과 세상에 대한 오해나 아집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화의 결과는 무엇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구원과 해방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그리고 여러 제약을 받아 가면서도 굳건히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이유는 구원과 해방을 궁극적으로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입니다.
성경은 구원과 해방이 '하느님과의 구체적 만남'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건이나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 순간, 이제껏 자신을 해방된 존재로 살지 못하게 해온 본질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되고, 거기에서 풀려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성경에서 각양각색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 그것은 아마도 각자가 추구하고 염원하는 삶과 그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수성과 다원성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제시되는 특성이 있으니, 바로 구원과 해방의 실현은 그것을 체험한 존재를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으로 변화시켜 놓는다는 점입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자캐오(루카 19,1-10)라고 하시면서 지금까지 자캐오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 것은 돈이었으며, 돈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아 지독한 이기주의자로 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구원의 매체라고 믿어 왔던 실체(돈)가 사실은 자신을 옭아매고 자유롭지 못하게 한 궁극적 원인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발생했다는 겁니다.
수녀님 다음 말씀으로 이 장을 마무리 하십니다.
"일반적으로 두려움은 상실에서 온다고 한다. 그래서 잃어버릴지도 모를 불안함에 더 연연하여 그것을 지키고자 바둥대지만, 하느님과의 만남은 그것이 그토록 필요한 것인가를, 그리고 정말로 삶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아울러서 그 불안과 연연함 때문에 삶이 엉망이 되어 왔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처럼 하느님과의 만남은 그 어떤 특별한 훈계나 가르침 없이도,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여기에서 빠져나와 진정한 생명의 삶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자유와 해방, 구원의 길로 들어가는 첫째 조건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 이어서 성경의 속성, 정경, 유다교와 그리스교의 분리, 성경해석 방법, 성경해석을 위한 교회 문헌등으로 이어집니다...중간 부분의 계약에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길이라는 제목 밑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암이나 불의의 사고보다 사람을 더 강하게 죽음으로 몰아가는 병은 절망, 두려움, 불안 같은 부정적 심리라고 한다.
살아가는데 누구나 '공공의 적'으로 느끼는 것은 삶의 고비마다 복병처럼 숨어 있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고통이라는 것인데 사실 이러한 두려움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역설적이지만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그 실체와 친해지는 것이다. 만일 세상이 두렵다면 우리는 세상과 가까워져야 하고, 죽음이 두렵다면 죽음과 가까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