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람도 먹어야 한다면서 자기 몫을 양보합니다
공동선 156호(2021년 01+02)
포장마차 주인장입니다. 겨울입니다. 찬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새로운 손님이 점점 늘어납니다. 오늘은 젊은이 셋이 도시락을 받으러왔습니다. 막노동을 하면서 여관에 장기 투숙을 하는 노동자입니다. 코로나19로 건설현장에 일거리가 없습니다. 몇 달째 방세도 밀렸습니다. 한 달에 30만 원을 내야하는 데 돈이 없습니다.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습니다. 염치불구하고 민들레국수집에 왔습니다. 코로나19로 계속 일거리가 없으면 아무래도 거리로 나와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민들레국수집은 2020년 2월 중순부터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관공서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노숙하는 사람들이 전염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이 사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하여 가장 안전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니 클럽도, 사우나도, 종교시설도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환기가 잘 되고 있는 바깥세상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위험하다고 무료급식을 먹을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때 가장 힘든 일은 마스크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주변에 있는 약국을 돌아다녔지만 마스크를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난감해하고 있을 때 많은 분들이 마스크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매일 마스크를 하나씩 나눠드릴 수가 있습니다. 대구에서 신천지 사태가 시작되면서 민들레국수집도 어쩔 수 없이 2020년 2월 23일부터 급식을 중단하고 도시락으로 대체했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 민들레진료소, 민들레꿈 어린이밥집과 공부방 그리고 어린이 도서관은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문을 열지 않습니다. 민들레 옷가게도 닫았습니다. 교도소도 방문하지 못하고 영치금만 보내고 있습니다. 필리핀 엄마들을 위한 모임은 매달 한 번씩 계속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쌀과 마스크 그리고 손세정제와 생필품을 나눠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도시락용기를 구하지 못해서 이틀은 도시락 대신에 김밥을 드렸습니다. 김밥을 두세 개씩 드려도 노숙하는 분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웃돈을 얹어서 겨우 도시락 용기를 구했습니다. 일반 도시락이 아닌 5칸 돈까스 용기입니다. 제일 큰 칸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네 칸에는 반찬을 담았습니다. 국은 작은 용기에 따로 담았습니다. 아무래도 반찬이 모자랄 것 같아서 도시락 김을 곁들였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사발면을 하나 넣고 삶은 달걀과 빵과 사탕도 조금 넣었습니다. 새 마스크도 한 장 넣습니다. 왜냐하면 도시락 꾸러미 하나로 하루 세 끼 몫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세정제로 손을 소독하고 체온을 재고, 이름을 적는 것을 손님들이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명단을 적은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짜 이름을 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느날 민원이 생겼다고 공무원들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도시락 꾸러미를 받는 모습을 보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손님들이 줄을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을 때는 겨우 여섯 명이 앉으면 만원이 되는 조그만 식당이었습니다. 손님들이 그냥 차례를 기다리면서 줄을 섰습니다. 그때 손님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경쟁에서 꼴찌가 되어서 노숙까지 하는데 여기서도 경쟁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상의 천국처럼 줄을 선다면 꼴찌부터 식사합니다. 줄을 서지 않는다면 배고픈 순서대로 식사하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선착순이라는 질서를 바꾸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다가 여성, 장애가 있는 분,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 도시락을 드리면 어느새 기다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도시락 꾸러미가 떨어졌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시간 후에는 모두에게 도시락 꾸러미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손님들이 언제 찾아와도 자기 몫의 도시락은 있다는 것을 알면서 아등바등 차례를 지키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손님들은 점잖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료급식을 하는 곳에서 줄서기에 필사적인 손님들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200인 분의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200명이 훨씬 넘습니다. 줄서기에 늦으면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점점 일찍 와서 줄을 섭니다. 낮 열두 시에 식사를 할 수 있다면 200명 안에 들기 위해서 새벽부터 줄을 서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치기라도 있으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매일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합니다. 오전 11시쯤이면 도시락을 나눌 준비가 됩니다. 그 전에 손님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체온을 재고 손세정제로 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없으면 마스크를 드립니다. 그리고 손님들은 자유롭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멀찍하게 떨어져 있습니다. 도시락을 나눌 시간 전까지는 손님들 사이를 다니면서 안부를 묻고, 담배 피우는 분에게는 담배 한 개비 권해 드리고, 떡이라든가 고구마 또는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도와드립니다. 그리고 늦게 오는 손님을 위해서 오후 4시까지는 도시락을 드리기 위해서 봉사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일거리는 끊기고,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늘어납다. 배고픈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줄 서면 꼴찌부터 도시락을 드린다고 하면 멀찍하니 사회적 거리두기가 됩니다. 손님들은 어제는 굶고, 그제는 라면 하나 먹었어요.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손님들이 돈 한 푼 만지기 어렵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어느 날 노숙하는 우리 손님에게 용돈으로 오천 원 담은 봉투를 도시락꾸러미를 드리면서 함께 드렸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합니다. 용돈은 요일을 정하지 않고 아무 날이나 드문드문 드립니다. 용돈 드리는 날을 정해 놓으면 몰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감당을 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은 참 쉽습니다. 돈과 명예가 모이면 초심은 사라지고 자기가 잘나서 이룬 일인 줄 압니다. 그러면 결국은 자만심과 욕심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수도원이 가난해서 망한 경우는 없습니다. 돈이 많아서 망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가장 좋고 쉬운 길은 가난하게 돕는 것입니다. 돈은 나를 중심으로 했을 때는 늘 모자랍니다. 그런데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쓰려면 300만원만 있어도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언제 끝이 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겨울이 오면 우리 손님들은 차가운 도시락을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벌벌 떨면서 먹어야 합니다. 겨울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손님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꽁꽁 언 도시락이라도 배고픈 것보다는 낫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어떻게 노숙하는지 물어봤습니다. 바람만 피하면 견딜 수 있답니다. 어떤 손님은 여인숙에 방 하나 얻어서 산답니다. 난방은 안 되지만 전기장판이 있어서 따뜻하답니다. 방에 온기 하나 없는데도 전기장판이 있어서 따뜻하다고 합니다. 조그만 단칸방에 사는 진호 씨는 난방을 할 꿈도 못 꾼다고 합니다. 그저 전에 얻은 전기장판 하나로 버틴답니다. 방 안보다 바깥이 더 따뜻하다고 합니다. 영종도 운서동에 있는 어느 야산에 땅굴을 파고 지낸다고 합니다. 아파트 계단 밑에 숨어서 자기도 합니다. 버려진 장롱 속에서도 잡니다. 76년생 남자 어른은 빈집에 숨어서 밤새 벌벌 떨면서 잤습니다. 불을 피울 수 없답니다. 연기가 나면 쫓겨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갑을 가지고 있습니다. 속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내용물을 봤더니 주민등록증 뿐 천 원짜리 한 장도 없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아무 것도 필요한 것이 없답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사흘을 굶어도 남의 집 담 넘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나눌 것이 조금 있으면 다음 사람도 먹어야 한다면서 자기 몫을 양보합니다. 고민 고민하다가 민들레 포장마차를 열었습니다. 어묵을 손님들에게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밤새 떨면서 지내던 손님들이 도시락꾸러미를 받으러 왔다가 뜨거운 어묵국물에 행복해 합니다. 맘껏 어묵을 먹어도 된다고 해도 두세 개를 먹고는 그만 먹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도 먹어야 한다고 남 걱정을 합니다. 남 걱정을 하다가 제 몫도 못 챙기고 노숙을 하면서도 또 다른 사람도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건물 안에서는 손님을 대접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밖으로 나와서 손님을 대접하면 되는데 그 생각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제일 쉬운 방법은 가난하게 돕는 것입니다. 전기 어묵조리기를 23만원에 구입했습니다. 어묵은 반찬용과 국탕용이 있습니다. 부산어묵으로 오래 뜨거운 국물에 넣어두어도 불어터지지 않고 쫄깃쫄깃한 어묵을 구입했습니다. 세 겹으로 접혀서 꼬치에 끼어 있는 사각 어묵 제품과 길쭉한 봉 어묵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육수를 좀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 어묵용 다시도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드실 어묵을 몇 개까지만 드실 수 있다고 제한하려다가 무제한으로 맘껏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열 개 또는 열다섯 개 정도 드시는 분은 몇 분이 안 됩니다. 대다수는 서너 개을 드시고는 다른 사람도 먹어야 한다면서 국물만 더 마시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수를 정해 놓으면 오히려 힘만 듭니다. 혹시나 하나 더 먹으면 큰 일이 날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손님들이 밖에서 커피도 자유롭게 드실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자동 전기 물끓이기를 구입하고 종이컵과 커피믹스를 마련해 놓으면 훌륭한 노상 카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꾸는 꿈은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가난하게 함께 사는 것. 그저 옆에 있으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