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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각 의 혁 명
비바람을 이겨낸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
아무리 힘든 고난도 성공에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을 완성시키는 것은 독서가 아니라 노동이다. 즉 인간은 문학이 아니라 생활에 의해서 스스로를 향상시키며, 학문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서 인격을 다져 나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훌륭한 인격도 결국은 교육의 힘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과학이나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룩한 인물들은 대부분 특정한 신분이나 환경에 속해 있지 않았다. 그 중에는 부유한 집안 출신도 있었고 형편없이 가난한 집안 출신도 있었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겨우 초등학교와 중학교 정도를 마친 게 학력의 전부인 사람도 있었다.
그러므로 최고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특별한 환경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가 인격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훌륭한 인물이 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 해서 반드시 밑바닥 인생으로 살아가란 법은 없다. 오히려 극히 빈곤한 환경에서도 평생 타인의 귀감이 될 만한 삶을 살아간 위인들의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고난은 인간의 성장에 오히려 도움을 준다. 고난은 인내심과 일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때에 따라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힘을 샘솟게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인들 가운데서도 스스로 고난을 극복하고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례는 수없이 많다.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전까지 어떤 직업을 가졌었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천한 신분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아버지가 목축업과 도살업을 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어린 시절엔 양털 깎는 일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땐 학교 급사로 일하다가 어느 고리대금업자 사무실에서 서기 노릇을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작품 속에서 나오는 선원들의 용어가 너무도 정확하다는 이유로 그가 뱃사람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성경에 정통한 그의 글을 보고 놀란 성직자들은 그가 교회 일에 종사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가 한때 말(馬) 장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모두가 그의 작품에 녹아 있는 해박한 지식을 놓고 추론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셰익스피어는 명배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평탄하지 못한 삶을 통해서 수없이 많은 역할을 해왔던 배우이자 연출자였다. 그러한 삶의 이력이 훗날 그의 작품 속에 훌륭히 녹아들어가 극중 인물 하나하나를 살아 숨 쉬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직업에 종사했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비천한 직업에 종사할지라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듯 일에 대한 진지한 경험과 노력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도 놀랄 만큼의 박식함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닐까?
천문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람들 중에도 빈곤한 생활 속에서 성공한 예는 많다. 코페르니쿠스는 빵집 아들이었다. 천체 망원경을 발명한 케플러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선술집에서 종업원 노릇을 하며 과학자의 꿈을 키워 나갔다. 프랑스가 낳은 천재적인 물리학자이자 대수학자인 라그랑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태리 토리노의 관리로, 한때 부유하게 살았으나 투기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라그랑주의 어린 시절은 불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훗날 세계적인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그는 자신의 성공에 가장 큰 공헌자로 불행한 환경을 꼽으며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만약 내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위대한 수학자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이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내지 못할 것이 없다. 아무리 부유하고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노력 없이 명성을 얻을 수는 없다. 돈이나 재산은 물려받을 수 있어도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는 스스로 터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찰력 있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기회는 사소한 데서 찾아온다
‘전기분해의 법칙’으로 유명한 패러데이는 대장간집 아들이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와야 했고, 좀 더 자라서는 제본소에서 일했다. 그가 빈 병 하나만으로 전기의 원리를 깨우치려고 시도한 것도 바로 그 제본소에서 일할 때였다. 패러데이는 백과사전을 제본하던 중 우연히 ‘전기’라는 항목에 주목하게 되었다.
어느 날, 평소부터 과학에 흥미를 갖고 있던 그는 그 부분을 열심히 읽고 전기의 흐름에 관한 실험을 시도해보았다. 바로 그때 영국왕립과학연구원의 간부 한 사람이 그곳에 들렀다. 그는 젊은 제본공이 전기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기특하게 여긴 끝에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왕립과학연구원에서 무료로 강연을 듣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는 바로 당시 영국의 대표적 물리학자인 험프리 데이비였다.
그 후 페러데이는 연구원에서 그 어려운 물리학 강의를 들었는데, 데이비는 일개 제본소 직공에 불과한 그가 자신의 강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패러데이는 그의 조수로까지 채용되었고 마침내 ‘전기분해의 법칙’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새로운 학설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훗날 왕립학회 회원과 왕립과학연구원 원장이라는, 학자로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평생 제본소 직공이나 대장장이로 살아갈 뻔했던 패러데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행운이 찾아온 것은 실로 우연한 일이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마침내는 자신의 위치를 최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다. 물리학에 대한 본인의 재능과 정열, 그리고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그의 적극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낸 결과였다.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겨라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는 천연두 예방법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인정받지 못해 많은 고난을 겪었다. 당시 천연두는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한 번 이 병에 걸리면 다시는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글로스터셔 지방의 젖 짜는 소녀들 사이에 속설로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간에 떠도는 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더구나 의학계에선 근거 없는 속설로 치부해버리던 때였다. 우연히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제너는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낭설만은 아닐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즉시 이 문제에 대해 조사와 관찰을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 후 면밀한 조사와 관찰을 통해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가 결코 낭설이 아님을 확신한 그는 우두(牛痘)가 천연두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동료 의사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동료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하기만 했다. 그들은 제너의 주장을 귀담아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또 다시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내세워 동업자들을 곤경에 빠뜨린다면 의학계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고 그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제너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곧바로 런던으로 건너가서 명의(名醫) 존 헌터의 제자로 입문하게 되었다. 제너가 헌터를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제너는 그에게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자문을 구했다. 그랬더니 그 고명한 해부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시도해보게. 어쨌거나 참을성 있고 신중하게 하는 것을 잊지 말고….” 헌터의 이 한마디는 제너에게 학문연구의 참뜻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충고에 용기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 개업을 하고 20년 동안이나 천연두에 관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두 접종에 관한 그의 신념은 확고한 것이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세 번에 걸쳐서 백신 접종을 시도한 것도 그러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23명에 대한 예방접종을 시도한 결과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게 된 제너는 마침내 자신 있게 연구의 성과를 공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연구 결과는 1798년에 약 70쪽에 달하는 논문으로 발표됨으로써 20여 년 간에 걸친 그의 집념이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었다.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의지만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
어느 날 한 목수가 도지사의 의자를 수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목수의 일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꼼꼼하고 세밀해서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목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언젠가 내가 이 의자에 앉게 될 날을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만들어 놓으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훗날 그 목수가 도지사의 자리에까지 올라 바로 그 의자에 앉았다는 것이다.
논리학자들 사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 이론이 분분하지만, 어쨌거나 선악의 선택은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즉 인간이란 한낱 물 위에 떠가는 지푸라기처럼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 자신이 목적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자발적인 의지에 절대적인 구속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들 자신의 행동이 마법의 주문 따위에 휘둘려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선행도 우리들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고, 심지어 악행조차도 그것을 저지르려는 의지가 없다면 행동으로까지 발전되지는 않을 것이다.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 가정생활, 조직생활, 이 모든 것도 우리들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모든 행동은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다’는 확신을 전제로 선택되는 것이다. 만일 이런 확신이 부정된다면 법이나 제도가 무슨 소용이며 도덕이나 규범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지만이 인간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지배자인 것이다. 그 의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릇된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인가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여된 양심의 과제이다. 습관이나 유혹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습관이나 유혹을 지배하는 것이다.
자선사업가 벅스턴도 자신의 결의를 지켜나갈 의지만 확고하다면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너도 이젠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 왼쪽으로 갈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그러므로 이제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마음을 굳게 먹고, 그 강한 의지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너는 게으름에 사로잡혀 되는대로 살아가는 무능한 악습에 젖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런 생활에 빠져들면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대단히 어렵단다. 젊었을 땐 대부분 멋대로 하고 싶어 한다. 이 아버지도 그랬다……. 그렇지만 나는 네 나이 때 과감하게 생활태도를 바꿀 수 있었다. 현재의 내가 이렇게 만족스러운 생활을 누리게 된 것은 바로 그때의 변화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쪼록 너도 부지런히 노력하고 의지를 굳건히 해서 삶의 지향점을 찾기 바란다. 지금 당장 결의를 가지고 첫발을 내딛게 되면 언젠가는 오늘의 현명한 선택을 두고 평생토록 감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의지란 간혹 방향은 생각지 않고 맹목적으로 돌진하려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올바른 목표와 동기를 찾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합리적인 삶의 방향을 향해 의지의 노를 저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는 순식간에 악마의 본성을 드러내, 결국 자신을 수치스러운 관능의 노예로 전락시켜버릴 뿐이다. 반대로 선한 의지는 지혜로운 왕처럼 인간을 복되고 행복한 길로 이끌어준다.
현명한 사람은 실패로부터 배운다
땀과 눈물로 얻은 지식만큼 강한 것은 없다
“최선의 교육이란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교육이다.” 월터 스콧의 이 말은 학문이나 예술 분야에서 위업을 달성한 사람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학교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정신력을 단련시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데 있다. 그러므로 강요되는 교육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것보다 흡수력이 약한 것이다. 스스로 땀과 눈물을 흘려가면서 쟁취한 지식만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된다. 자진해서 익힌 지식은 그 내용이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지만 남으로부터 주어진 불충분한 정보는 뇌리에서 쉽게 지워질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건 참된 교육자들은 제일 먼저 스스로의 힘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학생들을 독려해왔다. ‘수업’보다도 ‘훈련’에 중점을 둔 것이다. 저명한 교육가인 토머스 아널드의 교육관도 지식의 단편만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수업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전인교육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는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노력으로 실력을 길러나가야 한다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심어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늘 이렇게 주장했다. “아이들을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보내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보다 교육적이다.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한다 해도 사치스런 생활에 젖어 자신에게 주어진 훌륭한 환경이나 조건을 최대한 살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학교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는 이 세상에는 정말로 경탄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선천적으로 머리가 나쁜 아이들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을 보면 자연히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다고 고백도 덧붙였다.
어느 날 아널드는 이해력이 둔한 소년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 아널드는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선생님, 왜 그렇게 화를 내시죠? 저는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요.” 몇 년이 지난 후 아널드는 당시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며 이렇게 고백했다. “평생 동안 그토록 가슴에 와 닿는 말을 없었다. 그때 그 소년의 눈동자와 간절한 말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실패 없는 성공은 기대하지 말라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안락이 아니라 노력이요, 편리함이 아니라 곤경이다. 삶이란 곤경을 극복하면서 성숙해가는 과정이다. 눈앞에 직면한 곤경을 극복하기 위해 대비하고 부딪치는 가운데 진정 지혜로운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실패가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교훈이 되는 것처럼 이런 곤경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 된다.
정치가인 찰스 제임스 폭스는 “순탄하고 화려한 인생을 보내는 인간보다도, 비록 실패는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희망을 걸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어떤 청년이 탁월한 말솜씨로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그런 사람보다 처음의 좌절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을 해나가는 젊은이에게 더 큰 기대를 걸고 싶다.”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더 많은 교훈을 얻는다. 결국 우리는 한 가지 실수를 범하고 나서야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세상에 실수 한 번 안 하고 살 수 있는 인간도 없겠지만, 한번쯤 실패의 쓴잔을 마셔보지 않고 성공했다는 사람 또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은 진리에 가깝다.
과거에는 수면 10미터 이상의 높이로 펌프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기압의 법칙’이 발견되었고 그로 인해 갈릴레이나 토리첼리, 보일과 같은 과학자의 연구에도 서광이 비치게 된 것이다. 또한 명의 존 헌터는, 의사가 자신의 성공사례만을 내세우고 실패 사례를 공개하지 못하면 의학은 진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발명가 와트의 생각도 헌터와 같다. 그는 기계기술의 발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좌절의 역사’라고 역설하며 ‘우리에게는 오점을 기록한 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가 어느 날 친구의 연구실에 갔다가 실험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나는 차라리 자신의 재주 없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제껏 내 연구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모조리 실패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고명한 물리학자의 기록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연구를 하는 도중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그것은 대체로 결론이 가까워졌다는 조짐이다.” 위대한 사상이나 발견, 또는 발명은 대개가 고통 속에서 잉태되며, 비애 가운데서 충분히 무르익고 난 다음에야 겨우 성취되는 것이다.
베토벤이 로시니를 평한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재질은 있으나, 어린 시절을 너무 풍족하게 보냈기 때문에 선천적인 재능이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필요 이상의 칭찬이나 지나치게 호의적인 평가는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을 자만하게 만들어 퇴보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반대로 혹독하고 신랄한 평가는 오히려 당사자를 더욱 분발하게 만드는 훌륭한 자극제가 된다.
인격은 정신의 가장 풍요로운 자산이다
처신은 겸손하게, 이상은 드높게
인격이라는 것은 지식보다 넓고 깊은 뜻을 갖고 있다. 감정 없는 지성, 행동 없는 지혜, 겸손을 상실한 자질, 이런 것들은 나름대로 힘을 갖지만 잘못하면 사람들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이 되기 쉽다. 그것들은 마치 소매치기의 날렵한 손재주나 사기꾼의 기막힌 술수처럼 공허한 가치일 뿐이다. 즉 인격을 갖추지 못한 그 어떤 능력도 존경받을 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실과 정직, 선량이라고 하는 자질은 인격의 근본요소이다. 여기에 강한 의지가 첨가된다면 그야말로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강점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런 무기도 없이 길을 걷다가 비열한 암살자의 손에 걸려들었다. 암살자는 그를 비웃듯이 큰소리를 쳤다. “이제 너를 지켜줄 무기도 갖고 있지 않으니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그러자 사내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했다. “나를 지켜줄 무기는 바로 이 안에 있다.” 이와 같이 고결한 인간의 인격은 어떤 불행이 닥치더라도 눈부신 광채를 발한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신음할 때에도 그는 정직과 용기를 무기로 끝내 싸워 이길 것이다.
법률가 어스킨은 자립심이 강하고 꿋꿋하게 진리를 탐구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이 된 부모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 나의 부모님은 항상 양심이 명령하는 의무를 다할 것이며 결과는 다만 하늘에 맡기라고 가르치셨다. 나는 지금껏 그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 가르침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희생도 치렀다. 그러나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같은 삶이야말로 결국 번영과 행복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도 나와 똑같은 길을 걷도록 가르칠 생각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누구든 훌륭한 인격을 소유하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올바른 수단으로 인격을 얻고자 노력한다면 더욱 분발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흔들림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설사 성공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높은 목표를 갖는다는 것은 조금도 헛된 일이 아니다. 정치가인 디즈레일리는 이런 말을 했다. “얼굴을 높이 쳐들려고 하지 않는 젊은이는 항상 발밑을 내려다보며 살게 될 것이고 높이 날려고 하지 않는 정신은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조지 허버트의 시에도 비슷한 교훈이 담겨 있다.
처신은 겸손하게, 이상은 드높게 가져라.
그리하면 겸손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리니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늘을 겨냥하라.
그대는 나무를 겨냥한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이 오를 터이니
생활과 사고에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살아가는 인간은 확실히 발전과 향상을 성취하게 된다. 최고의 성과를 얻고자 노력하면 누구든 출발점보다 훨씬 앞서 나갈 수 있다. 부득이 궁극의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도 향상을 위한 노력은 반드시 이로운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옷 속에 감춰진 인격을 꿰뚫어보라
훌륭한 매너는 삶에 윤기를 더해준다. 훌륭한 매너란 훌륭한 행동의 다른 표현으로 예의바르고 친절한 마음이 바탕이 된다. 사람과 사람이 의미 있는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예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예의를 몸에 지니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예의를 다함으로써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이 말은 몬터규 부인의 유명한 명언이다. 확실히 예절을 지키는 데는 돈이 들지 않고, 수고도 필요 없으며, 자신을 희생시킬 필요도 없다.
굳이 가식이나 술수를 쓰지 않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만으로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을 수 있다. 조그마한 친절 하나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절한 마음이 본질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친절이라도 그것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그 친절이 상대편의 마음속에 축적되어 마침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큰 효과를 낳는 것이다.
예의란 행동을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와 같은 것이다. 자신의 따뜻한 마음가짐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예의인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예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진정 예의를 아는 인간은 남의 의견에도 곧잘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옛말에도 있듯이 무례함이 지나치게 되면 독선에 빠지기 쉽다. 독선은 최악의 고집과 교만이다.
우리는 먼저 사람에 따라서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방과 의견 충돌이 있으면 인내에 인내를 더해서 끈질기게 대화로 풀어가는 슬기가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나 의견을 관철하고 싶다면 부드럽게 상대편을 이해시켜라. 자극적인 말로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일이다.
풍요로운 마음가짐은 빈부귀천이나 생활조건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어느 시대건 진정한 인격자는 풍요로운 심성을 소유한 사람이다. 귀족의 화려한 옷 속뿐만 아니라 농부의 헤어진 옷 속에도 이런 훌륭한 마음은 깃들여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는 어느 날 애든버러 출신의 젊은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때마침 한 사람의 정직한 농부가 그들의 옆을 지나치게 되었다. 번스는 길 앞으로 나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젊은이가 번스에게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이는 무엇 때문에 이 위대한 시인이 하찮은 농부한테까지 허리를 굽혀가며 예의를 갖추는지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번스는 지체없이 큰 소리로 젊은이를 꾸짖었다. “자네는 왜 그리도 어리석은가? 나는 외투나 둥근 모자에 말을 건 것이 아닐세. 나는 그 속에 깃들여 있는 한 사람의 인간에게 예의를 갖춘 것뿐이야. 자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 농부는 자네나 나보다도 더 값진 인간일 수도 있다네.”
유혹은 인내력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온다
한가할 때 찾아드는 악마의 유혹을 경계하라
시인 월터 스콧에게 취직을 앞둔 어떤 청년이 찾아와서 조언을 청했다. 며칠 후 스콧은 이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버릇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버릇 말입니다. 제발 이런 나쁜 버릇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근면과 노력을 생활신조로 삼아 보십시오. 해야 할 일은 즉각 실천에 옮기십시오. 기분 전환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일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 갖도록 하십시오. 일거리를 제쳐놓고 놀아서도 안 됩니다. 군대가 행군을 할 때, 앞에 가는 부대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여주지 않으면 뒤따라오는 부대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처음 일에 신중을 기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일에 차질이 생기고 맙니다. 결국 한 번 일을 그르치게 되면 다른 일들도 연쇄적으로 꼬이게 되어 일은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마침내 수습하지 못할 사태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어느 철학자는 “시간은 곧 재산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시간이라는 재산을 잘 쓰면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생 자체를 빈털터리로 만들 수 있다. 정신의 토지를 비옥하게 가꿀 때만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덧없는 시간낭비는 마음 밭에 해로운 잡초만 무성하게 키울 뿐이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는 두뇌는 악마의 보금자리가 된다. 악마가 머릿속에서 잠을 자면 곧 게으름뱅이가 되는 것이다.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집을 확실하게 지키는 것과 같으며,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집을 텅 비워놓은 것과 같다. 주인 없는 빈집에 도둑이 찾아들 듯,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뇌리에는 악마의 유혹이 소리 없이 기어들어 온다. 이때부터 우리의 정신은 떼지어 몰려드는 사악한 망상으로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는 것이다.
망망대해를 오가며 고기잡이하는 선원들도 오랫동안 할 일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불평불만을 키우게 된다. 간혹 선상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를 보더라도 대개는 한가할 때 선원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선장은 일이 없더라도 선원들을 갑판으로 불러 모아 닻이라도 윤이 나게 닦으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유혹이 닥쳐왔을 대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찰스 네이피어 장군이 인도군 총사령관직에서 물러날 때의 일이다. 이때 그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고, 불명예스러운 빚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젊은 장교들을 따끔하게 비판한 훈시를 남겼다. 그 유명한 ‘인도군 장교에 대한 일반 명령’이란 문서에서 네이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성실함은 교양 있는 신사의 품성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외상으로 샴페인이나 맥주를 마시고, 거기에다 외상으로 마차를 타는 일은 신사와는 거리가 먼 사기꾼들이나 하는 짓이다. 요즘 장교들 중에는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생활로 빚을 짊어지고 마침내는 자기 부하에게 고발까지 당하는 부끄러운 일도 있다. 이런 자들은 비록 신분은 장교라 해도 결코 신사라고 할 수 없다. 전장에서 싸우는 것만이 장교의 직책이 아니다. 싸우는 일이라면 차라리 사냥개를 시킬 수도 있다.
제군들은 약속을 지키고 있는가? 빌린 돈을 정확하게 갚고 있는가? 이것은 명예에 관한 문제이다. 물론 나는 제군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나는 제군들이 뒤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인간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총탄이 비 오듯이 퍼붓는 전쟁터에서 용감히 돌진하여 위대한 무공을 세운 제군들이 욕정을 충동질하는 하찮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고결함을 갖추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듯 용감한 젊은이들이 어째서 쾌락과 육욕의 마수에서 단호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갈 때, 그 앞에는 수많은 유혹들이 기다리고 있다. 쾌락과 향락, 그리고 방종의 유혹들……. 이들은 그런 사악한 유혹 앞에서 ‘NO’라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그 뛰어난 용맹성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유혹에 패배한 인생은 반드시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아무리 재능으로 충만한 청춘의 불같은 열정도 일단 유혹에 빠지게 되면 어이없게 소멸되어버리고 만다. 유혹을 뿌리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단호하게 ‘NO’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저것을 저울질하며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망설여서는 안 된다. 생각에 너무 치우치게 되면 결국 혼란만 커질 뿐이다. 실제로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결단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유혹이란 항상 인내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찾아오는 것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유혹에 굴복하게 되면 차츰차츰 의지가 약화되어 결국 중요한 미덕 한 가지가 떨어져 나간다. 그러므로 유혹은 단호하게 거절하라. 결단의 제일보를 내딛게 되면 인생을 헤쳐 나가는 커다란 힘을 얻게 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결단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동안 젊음은 보다 더 성숙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한다.
젊은 시절에 몸에 밴 습관은 악에 대해 방파제 역할을 해준다. 인간의 품행은 곧 습관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윤리나 도덕이 지켜지는 것 또한 습관의 힘이다. 좋은 습관이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으로 파고들 때 그 사람의 인격도 두루두루 미덕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새뮤얼 스마일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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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한국사 시험으로 긴 시험일정을 마치고, 여유롭게 글을 읽었습니다^^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저로서는 느낄 점이 많네요ㅎㅎ좋은 글 감사합니ㄷㅏ~
이지은님 수고가 많으시지요 힘내세요 꿈은 이루어 집니다 간절히 바라고 열심히 할때에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하세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