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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원문보기 글쓴이: 원경 윤병구
범종(梵鐘)에 관한 고찰
사찰문화해설포교팀 제6회 공동학습 자료
편집 : 원경 윤 병 구
불이문을 통과하면 범종각 또는 범종루가 있다. 범종각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불전사물이 있다. 불전사물은 각기 소리를 내어 먼 길을 떠나온 수행자를 맞이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해 사방중생을 구제하는 법구를 가리킨다. 범종각은 수행자가 부처님의 나라에 들어선 것에 대해 축하공연을 하는 곳이다. 즉 법고는“법을 전하는 북으로 네발 달린 짐승을 비롯한 각종 육지중생을, 운판은 달아나는 중생이나 허공을 떠도는 중생을, 목어는 수중 중생을, 범종은 천상과 지옥 중생을 위하여 공연하는 것이라고 한다.
먼저 타종 28번의 횟수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가 살펴본다.
그 다음 28과 관련해서 치는 때를 새벽으로 보느냐 저녁으로 보느냐이다.
따라서 범종(梵鐘)은 소리로서 장엄하고 시간을 알려주며 귀신을 쫓고, 지상과 하늘과 지옥의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사찰의 불교의식의 법구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하겠다.
범종의 기원에 대하여는 아직 정설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두 가지 설이 있다.
② 또 하나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서 성행한 종의 모양을 근거로 하여 중국 주나라의 고동기(古銅器)라는 악기에서 유래되어 중국적인 종으로 발명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옹관묘와 같은 항아리 양식을 수용하여 학명이 한국종이 되는 특수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동·서양의 종(鐘)은 각기 독특한 형식을 지니며 발전해왔는데, 아래와 같이 몇 가지를 들어 개괄적으로 구분해 본다.
서양 종(鐘)의 타종방식은 종신 내부에 방울을 매달아 종 전체를 움직여 소리를 내게 하는 내타식(內打式)으로 일종의 탁(鐸)과 같다.
그러나 동양 종(鐘)의 타종방식은 종신 표면에 당좌(撞座)를 형성한 후 당목(撞木)으로 쳐서 소리를 내는 외타식(外打式)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종은 “한국종” 또는 “조선종”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아름다운 형태나 유창한 소리에서는 세계최고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개구부가 몸통에 비해서 역으로 좁아진다는 점과 지면과 가까운 낮은 지점에 종을 건다는 것은 상식을 뒤트는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종의 재료는 금, 금동, 구리, 쇠, 돌, 흙 등 다양하지만, 동종과 철종이 가장 많고 이 가운데 동종이 단연 압도적이다.
우리나라의 종은 사찰에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위한 종교적 의기로서 뿐만 아니라 시각을 알려주는 실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좋은 금속공예품 가운데 극치를 이루고 있다.
한편, 일본에 건너간 통일신라시대의 범종도 6구가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833년명의 조구진자(常宮神社)소장의 종, 904년명의 우사진구(宇佐神宮)소장의 종 등을 볼 수 있다.
⑧ 이 당좌와 당좌 사이의 빈 공간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이나 비천상을 조각하는 것도, 통일신라시대 범종에서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① 비천상 숫자가 다르다. 상원사종은 쌍 비천으로 두 신이 나오는데, 성덕대왕신종은 외 비천이다.
비천이란 날아 내려오는 신을 의미한다. 불교는 인본주의적이기 때문에 신을 향해 서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위해 내려오는 모습으로 주조된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도 신라시대와 같이 호국불교로서 왕실은 물론 일반국민에게까지 널리 확산되어 범종을 조성하는 것이 성행하였다.
① 신라 종보다 종입(鐘口)이 더 벌어지고 종신(鐘身)이 작아져서, 전체적으로는 신라 종처럼 늘씬하지 않고 안정감 있는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② 종신의 상부인 어깨부분에 신라 종에 없던 장식이 새로 첨가되는데, 이것을 연꽃잎이 세워져있다 하여 입연대(立蓮帶)라 한다.
③ 종의 몸체에는 비천 대신, 불 보살상이 단독 또는 삼존 형태로 새겨지거나 신장상 들이 새겨지기도 한다.
④ 신라시대에는 당초문 일색이던 상·하대의 무늬가, 고려시대는 번개무늬나 국화무늬 같은 다양한 무늬들이 새겨지고 있다.
⑤ 용뉴의 용의 입이 종 상부에 붙던 신라방식 과는 달리, 용의 머리가 떨어져있고 입에 물던 여의주는 발이나 음통위에 올려 지기도 한다.
⑥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는 신라시대의 2개이던 것이 4개로 많아지고, 크기도 작아져 장식화가 두렷하게 나타난다.
또한 입연대가 출현하여 상대위의 어깨로 구름무늬처럼 보이는 얕은 화문대가 들러져 있는데, 연꽃처럼 보이는 초기 연입대의 형태로 생각된다.
비천이나 앞 시기의 공양자 대신, 구름 위에 앉아 보살상 4구가 엇갈려 새겨져 있다. 당좌도 4구가 새겨지는 등 보다 다양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후반기(1170~1392)에 들어와서는 전보다 더욱 화려해지는 특징이 크게 나타난다.
이 장식은 고려 전반기 종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식적 특징으로, 점차 상대보다 더욱 화려하게 표현되어 별도의 독립 문양 띠로 자리 잡게 된다.
③ 불 보살상과 당좌는 4구가 보편화되었으며, 용의 여의주는 발 위나 음통 위에 오르는 등 더욱 더 장식화 된 특징을 나타낸다.
④ 상대와 하대에도 당초무늬나 보상화무늬 외에 번개무늬, 국화무늬 등의 다채로운 문양이 장식되며, 몸체에는 비천이나 주악상 대신, 불·보살상을 표현하는 예가 많아진다.
아울러 원형으로 된 연곽을 표현하거나, 몸체에 연곽과 당좌의 표현이 전혀 없이, 영락(瓔珞)만을 장식한 독특한 양식의 범종도 만들어진다.
⑤ 고려 후기에 들어와 높이 40㎝ 내외의 작은 종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건물 안에서 거행되는 소규모의 의식에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⑥ 고려 말에 와서는 연복사(演福寺)종(1346년)을 시작으로, 두 마리의 용으로 구성된 용뉴와 음통, 당좌가 없어지는 대신, 몸체에 여러 줄의 띠를 두르고 팔괘무늬와 범자무늬 등이 장식되는 중국종 양식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불교미술은 그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여세와 태조·세조 등 군주의 불교 귀의 또는 보호에 따라,약간의 작품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는 임진왜란(1592)을 중심으로 하여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조선 전기의 범종들은 대체적으로 그 규모가 거대한데, 이는 당시 불교를 보호한 왕실과의 관계에서 주성(鑄成)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 4구의 범종 가운데 해인사동종을 제외한 3구는 모두 왕실과 관련된 주성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역시 높이가 1.5m에서 2.8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다.
조선 초기의 종은 이러한 고려 말의 범종 양식을 이어받아 종은 음통이 없어지고, 한 마리의 용뉴는 쌍룡으로 바뀐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종은 대부분 입상화문대가 없으며, 전통 형 종을 따른 범종의 경우 일부 사용된다.
한편 조선 전반기(1392~1635) 범종은 대체로 두 가지 형식으로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① 하나는 기본적으로 신라 종이나 고려 종의 형식을 따르면서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것이며,
② 또 하나는 고려 말에 수용된 중국 범종의 영향을 받은 외래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혼합된 새로운 모습의 범종으로 바뀌게 된다.
임진왜란 이후인 후기에는 고려의 여운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도리어 전란 때문에 오랜 전통이 단절되어 조형미술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되었다.
조선 후기의 범종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조형과 문양을 보이고 있다.
종(鐘)은 동서양이 각기 독특한 형식을 지니며 발전해왔다.
동종의 크기는 실내용의 1척 미만의 소종도 많지만,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과 같은 높이 3.75m에 이르는 거종(巨鐘)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흥천사동종(1469)을 비롯하여 낙산사동종(1469), 봉선사동종(1469), 갑사동종(1584) 등 많은 종들이 전해지고 있다.
사찰의 상징세계 상·하(자현스님, 불광출판사, 2012)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목경찬, 조계종출판사, 2010)
사찰 100미 100선 상·하(허균, 불교신문사, 2007)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세계(허균, 돌베게, 20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탑」(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신라.고려범종의 신례」(황수영, 『고고미술』 113.114, 1972)
신라범종의 각부문양소고」(이호관, 『문화재』 10, 1976)
재일신라범종에 관한 연구」(염영하, 『범종』 5, 1982)
신라범종과 만파식적설화」(황수영, 『범종』 5,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