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록은 당시 고광수 장흥군수, 문기문 경찰서장, 길전식 국회의원, 교육장 김규섭, 9개 읍면장, 토지개량조합, 조흥은행 지점장, 우체국장 등 기관장과 일반인 등 53인, 추진위원 위원장 김승식 등 위원 8인, 연곡서원 원장 김윤식과 장의(掌議) 15인 등 총 76명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소장된 일부 편액은 부분 훼손이 되어 내용을 식별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사진 촬영 내부 여건이 양호하지 않아 사진의 화질이 선명치 못하다.
여흥민씨 삼방파종중(三房派宗中) 파조는 21세 민시중, 민정중, 민유중 삼형제를 칭한다. 여흥민씨 내에서 걸출한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왔다. 특히 셋째 둔촌 민유중 계열 후손들이 번손하고 조선조 제19대 숙종의 비(妃) 인현왕후(1667~1701), 제26대 고종의 비(妃) 명성황후 (1851~1895), 제27대 순종의 비(妃) 순명황후(1872~1904) 등 국모(國母) 3명, 조선말기 문신 충정(忠正) 민영환(28세 삼방파 둔촌선생 8대손, 1861~1905) 선생, 근래 제5~6대(1968~1977) 대법원장 민복기(30세 삼방파 둔촌선생 10대손, 1913~2007) 등 큰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서원에는 둔촌 민유중 선생 후손들이 지은 편액 9점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조선조 개국 1392년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 518년 간 장흥부사는 321인이 역임하였다. 여흥민씨 후손은 1747년 민광우(閔光遇 23세 1708~1784)가 제208대 장흥부사 재임 등 5인은 연곡서원이 사액(賜額)된 이후에 부사를 지냈다.
이중에는 민치성(閔致誠), 민치서(閔致序), 민영직(閔永稷), 민치준(閔致駿) 등 4인은 둔촌 민유중 선생의 후손으로 3인이 고종 제위(1863~ 1907년) 기간에 장흥부사를 지냈다. 당대 여흥민씨 노봉, 둔촌선생 후예들의 전라도 서남해안의 벽촌 장흥부사 재임은 연곡서원이 위치하고 있어 큰 영광으로 받들고 부임하여 서원 시설 중수 및 창건과 장흥 유도진흥에 큰 족적을 남겼다.
장흥군 연곡서원에 휼륭하신 위문중 조상님들의 옛발자취와 우리 존재할아버지 글도 현판에 들어 있네요.
자세히 살펴 볼께요.
고맙고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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