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포기할 순 없지
- 2023.6.4 챌린지 군산새만금 국제철인3종대회 후기 (전편)
지난 가을부터 클럽 훈련부장인 마당쇠가 분위기를 띠웠다. 군산새만금 국제철인3종대회에 단체로 등록하면 얼리버드10%, 단체 할인 10%, 총 20% 등록비를 할인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클럽에서 16명이나 참여하게 되어 흥행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대회 등록을 하려니, 5년전(2018.5.12) 군산새만금 아시안챔피언쉽 대회 올림픽코스(표준거리)에 참가했을 때 수영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인도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한번 철인3종 운동을 하고싶어 신청한 대회였다. 자전거를 싣고 혼자 내려가는 내내 비가 내렸고 비 때문인지 몰라도 외롭고 쓸쓸했다. 예전 같으면 철인클럽 사람들과 대회기간 내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같이 준비하면서 먹고 뛰고 이동했었는데,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유쾌한 기분으로 대회를 마쳤었는데…. 다음 날 바닷물 온도가 14도 이하여서 대회 규정에 따라 수영거리가 1.5km에서 800m로 줄었건만 난 100m도 못가서 수영 대신 코스 안내용 밧줄에 매달려야 했다. 수온이 너무 차서 머리가 쭈삣하고 손발이 저린 것은 그렇다고 해도 호흡이 터지지 않아 숨쉬기가 어려웠다. 12년전에 구입했던 슈트가 경화된 데다 그동안 운동을 하지 못해 몸이 불어서 슈트가 너무 조였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안해 보지만 사실은 준비부족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궁하면 통한다고 수영 대신 안전 밧줄에 매달려 당기면서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예전에는 수영은 잘 못해도 오픈워터만큼은 자신감이 충만했었는데 이날 이후 나에게는 오픈워터 트라우마가 생겨났고 이후 그것을 극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군산새만금 컨벤션센터에서 대회 등록 후 엑스포 구경을 마치고 예비수영 장소로 이동했다. 본 대회 전에 슈트를 적시기 싫어 수영복만 입은 채로 물에 뛰어 들었다. 어~ 그런데 수온이 그렇게 차지 않다. 아니, 슈트를 입고 수영하기에는 딱이다. 5년전 대회에서의 악몽을 극복하기 위해 대회를 준비하면서 수온이 낮은 왕산 해수욕장과 한강에서 몇차례 힘들게 수영 적응훈련을 했었는데, 그 와중에 저체온이 와서 고생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고생한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보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밀려왔다.
예비수영을 간단히 마치고 우리는 다시 컨벤션센터로 돌아가 경기설명회와 저녁 만찬이 예정된 전야제에 참석하였다. 그 많은 선수들을 한 곳에 수용할 수 있는 컨벤션 홀의 규모가 놀라왔다. 국제대회라 그런지 다른 로컬대회의 경기설명회 장소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경기설명회는 듣는둥 마는둥 별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호텔뷔페식 저녁식사에는 모두가 진심이었다. 설명회가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뒤로한 채 용감하게 미리 뷔페 식사를 시작한 덕에 길게 줄서지 않고 편하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숙소는 우리 클럽 최고참 중 한명인 철맨 형님과 한방에 배정되었다. 올 해 환갑인 나보다 7살이나 많지만 아직도 청춘이시다. 체력관리를 잘해서 풀 코스 마라톤은 물론 철인3종 킹코스도 가볍게 완주하신다. 이번 대회에서도 60대 후반 에이지 그룹에서 4등을 하셨다. 특히 올 해는 가족들이 내려와 응원을 해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철인3종은 다른 경기와 달리 경기 시간이 길어 응원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 아내도 첫 킹 코스 대회 때 응원을 하려고 제주까지 따라왔었는데 그 이후 한 번도 킹 코스 응원가자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듣지 못했다.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리라. 경기 시간이 17시간이나 되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땡볕 아래서 기다리면서 잠깐잠깐 지나가는 가족을 위해 목이 터져라 응원해야 하니 응원하는 가족도 선수만큼 체력이 강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기나긴 고통의 여정을 지나 완주의 감동을 사랑하는 가족과 나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순간이다. 나는 2006년 첫번째 킹 코스 완주 후 아내와의 긴 포옹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클럽에서 대회에 참가한 회원 중에는 첫 킹코스에 도전하는 흰둥이와 첫 하프코스에 도전하는 둘리와 윤석, 아르망이 있다. 특히 오픈워터에 대한 두려움이 큰 흰둥이와 수영 초보 아르망이 걱정되었다. 파도와 조류, 너울이 있어서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에게도 바다 수영이 쉽지 않은데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 장거리 바다 수영은 완주를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버거운 벽인 것이다. 그리고 사나운 바다보다 더 무섭고 극복하기 힘든 것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공포감이다. 이런 두려움만 떨칠 수 있어도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둥이와 아르망은 수영 완주에 성공해서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흰둥이는 2시간 동안 계속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고 아르망은 수영과 밧줄 사이를 오가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수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대회 당일 아침은 늘 분주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해도 시간이 빠듯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도 빼먹지 않고 해결해야 할 숙제가 하나 있다. 밀어내기 한 판 - 아침 8시에 맞춰진 생체리듬이 갑자기 꼭두새벽으로 바뀔 리가 없겠지만 하루 종일 무거운 배를 움켜지고 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든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이번 대회는 2인실 방을 쓰니 다행이지만 여러 명이 사용하는 큰 방을 쓸 경우에는 화장실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는 밖으로 나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숙소 주변을 뛰었다. 신호가 오지 않으면 강제적으로라도 신호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철우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는 제주 대회에서 나와 같은 방을 썼는데, 일어나자 마자 화장실로 곧장 들어가더니 바로 일을 마치고 나오는 것이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수영은 연령대별로 롤링 스타트를 하였다. 덕분에 나는 거의 뒤에서 출발했다. 나쁘지 않다. 수영 속도가 빠르지 않기도 하지만 몸싸움을 싫어해서 사람들이 몰리는 밧줄에서 떨어져 늘 밖으로 돌아서 유유히 수영을 했었는데 뒤에서 출발하니 몸싸움 할 일도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수영 스타일은 아마도 첫 킹코스에서의 아픈 경험에 기인한 것이리라. 그 당시에는 제주 아이언맨대회가 국내에서 열리는 유일한 킹 대회여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었는데 그 날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수영출발 앞 쪽에 당당하게 서있었다. 롤링스타트가 아니라 동시 출발이기 때문에 출발 신호와 함께 다 같이 물 속에 뛰어들었는데 사람들은 내 머리와 몸통을 누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위를 지나갔고 난 호흡을 하기 위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지도 못한 채 물만 실컷 먹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들었고 단지 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다행히도 한 무더기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니 약간의 여유가 생겼고 나도 내 영역을 확보하면서 겨우 완주할 수 있었다. 군산 앞 바다에서의 수영은 약간의 너울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별 어려움은 없었다. 거기에다 한 바퀴(1 Lap) 돌고 나니 간만의 차이로 바닷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갯벌 위를 수십 미터 뛰어서 나가는 보너스까지 얻었다. (계속)
첫댓글 맞아요 ㅎㅎ
수영출발후 들어올땐 바닷물이 쭉 빠졌었죠
계속.. 기대됩니다.
어제 일도 생각이 안나는데 회장님은 1년전 일을 떠올리는게 가능하군요. 역쉬 클라스가 다릅니다~^^
드디어 연재.....
뒤늦은 후기 광팬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