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렐루야
청주 상당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예배드리시는 모든 시간과 현장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성령님의 기름 부심의 역사가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 중 야곱은 태어나기 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모든 생애가 다 소개되는 아주 특별한 인물입니다.
철저하게 목적 지향적인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마지막에는 자녀 손자들에게까지 아낌없는 축복의 예언을 하지요.
움켜쥐는 모습으로 인생을 시작했던 그가 어떻게 축복하는 인생이 되었는지,
그리고 자녀들마다 주신 축복의 아름다운 내용들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창세기 49장 8절에서 21절의 말씀입니다.
아들들의 특성에 따른 야곱의 예언
어제 본문에 이어서 야곱은 그의 자녀들을 축복을 합니다.
축복을 할 때 그의 손에 대한 부분들을 한번 잠깐 생각해보면
그는 태어날 때 형, 쌍둥이 형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태어났죠.
그렇게 움켜주면서 인생을 시작했던 그의 인생,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지 그 목적을 반드시 이루고만 말았던 그의 인생을
그 움켜줬던 손을 하나님은 하나씩 하나씩 펴게 만드시죠.
그리고 다 모든 손을 펴게 하신 후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런 삶으로 변화시켜 나아가십니다.
그렇게 펼쳐진 그의 손이 이제는 인생 마지막 그 순간에 자녀들을 손주들을 축복하는 그런 손으로 바뀌고 있어요.
오늘 본문 네 번째 아들 유다를 축복 합니다.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사자 새끼에 비유를 합니다.
용감하고 담대함을 의미하고 있죠.
유다는요. 어느덧 그 형제들 가운데 대표 역할을 합니다.
르우벤은 서모 빌하를 통간했고, 또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의 겁탈 사건 때 아주 잔혹한 그런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유다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이제 어느덧 리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아버지 사이에 또 형제들 사이에 그가 대신 나가서 '반드시 제가 베냐민을 데리고 오겠습니다'라고 중재를 했죠.
그리고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 그 베냐민을 붙잡으려고 하자
유다는 정말 장문의 아름다운 그런 감동적인 연설을 합니다.
리더는 누구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침묵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뭔가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에요.
'베냐민을 돌려보내 주십시오. 제가 대신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유다는 정말 그 가정 안에 그 가게 안에 놀라운 리더 역할을 계속 계속 감당했고 요셉의 그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일 수가 있었던 것이죠.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규'라는 것은 막대입니다. 홀이지요. 왕이 쥐고 있는 그런 권력의 상징입니다.
이건 파워를 의미하죠. 통치자의 지팡이
마찬가지예요.
실로가 오시기까지 그의 지도자가 오기까지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이다.
리더십의 놀라운 은총과 그런 능력들을 상징하고 있어요.
이 유다의 그 가게를 통해서 그 가문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시죠.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나귀는요. 평화의 상징입니다.
포도나무는 풍요의 상징이죠.
평화와 풍요의 그런 아름다운 그런 상징
그 속에서 메시아 유다의 그런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의 예언에 대한 그런 부분들도 여기서 본문에서 언급을 하고 있어요.
이 놀라운 축복
유다가 결정적인 위기 상황 어려움 가운데 형제들을 대신해서 그 가게의 그 곤란함과 그 갈등 속에서 유다가 대신 나서서 그런 책임진 역할들을 감당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유다를 축복을 하시고, 그 유다의 가게를 통해서 그 가문을 통해서 결국에는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주시는 그런 놀라운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되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분깃들이 있어요.
각자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달란트가 있습니다.
때로는 핸디캡을 갖고 살아가고 부모님이 갖고 있는 가족력과 여러 가지 불리한 그런 조건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성실하게 날마다 하루하루를 채워가느냐?
거기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우리 인생은 바뀔 수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자녀들을 축복하는 이 장면을 통해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됩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와 그 하나님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주장하시고,
그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여러분 오늘 하루도 신뢰하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평강과 주님의 은혜가 충만한 그런 복된 한 날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족과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할 때 나는 어떤 축복을 하나요?
오늘 본문의 후반부에는 6명의 다른 자녀들을 축복하는 그런 내용이 나와요. 먼저 레아의 두 아들입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그런 축복이죠.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유다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그런 축복의 내용이에요.
더군다나 잇사갈의 경우는 아까 유다는 나귀가 평화의 상징이지만, 여기서의 나귀는 노동과 섬김의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분명히 좋은 좀 아름다운 그런 축복의 내용이기도 하지만 좀 불확실해요. 피상적입니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이 잇사갈 지파의 경우는 확실하게 그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강성해진 가나안 그 백성들에 의해서 다시 종살이를 하는 노예가 되는 바로 그런 내용들을 상징하고 의미하고 있는 바로 그런 부분이에요.
16절 이하는 여종 빌하와 실바의 그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단 지파의 아마 삼손을 의미하는 그런 내용 같죠?
굉장히 뭔가 벅차고 힘들고 거친 그런 인생을 살게 될 것임을 그렇게 암시하고 있어요.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긍정적인 의미지만 역시 짧습니다.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그나마 비교적 굉장히 좀 뭔가 기대할 만한 어떤 그런 내용의 그런 예언이죠.
마지막 21절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말씀드렸듯이 유다 지파에 비하면 정말 턱없이 짧은 너무나도 아쉬운 정말 그 축복의 내용을 직접 현장에서 들었을 그 자녀들이 어떻게 보면 정말 서운할 수도 있는 바로 그런 내용이 아닐까 싶어요.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가 있나요?
이것은 예언적인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운명이 그렇게 결정돼 버린 건가?
하나의 예정론과 같은 그냥 한때 그런 모습으로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볼 때는 이건 굉장히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부분을 한번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세요.
인생의 모든 생사복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어요.
여러분 달란트 비유아시죠?
누구에게는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인이 맡겨주셨죠.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유다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긴 것과 같고 다른 지파의 형제들에게는 한 달란트 또는 두 달란트를 맡긴 것과 같아요.
주신 분깃에 근거해서 그저 열심히 살아가면 됩니다.
어쨌든 불평하지 않고 거기에 감당할 수 있는 역량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되
그 모든 인생의 주인 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거예요.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루하루의 삶의 모습들, 남들과 비교하면서 낙담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주신 여러 가지 삶의 분기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한 달란트든 두 달란트든 거기에 대한 충분한 그런 결과들을
그 주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내어드리고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한 놀라운 영적인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하시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의 모든 삶 속에서 나는 몇 달란트 받은 자인가? 나는 어느 지파에 속해 있나?
그런 부분들 때문에 혹시 낙심하거나 비교하거나 과시하거나 우쭐될 것이 아니라.
그저 성실하고 겸손한 태도와 자세로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청주 상당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오늘 본문 야곱의 축복 중에 요셉을 향한 멋진 표현,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도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말을 하지요.
모든 고난의 장벽을 넘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였던 요셉의 인생을 압축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녀들을 축복한 야곱은 한 자루의 초가 꺼지듯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창세기 49장 22절에서 33절 말씀입니다.
야곱의 축복, 마지막 유언
어제에 이어서 야곱이 그 자녀들을 축복하는 내용 가운데 이제 라헬의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을 축복을 합니다.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을 무성한 가지로 비유를 하고 있어요.
담을 넘었다.
담은 장애물이죠.
여러 가지 고난과 환란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무성한 가지, 더군다나 샘 곁에 무성한 가지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감이 얼마나 높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을 너끈하게 넘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겠죠.
23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활 쏘는 자 요셉의 인생에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끼쳤던, 고난 가운데 그를 빠뜨렸던, 활 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방팔방에서 다양한 모습에 화를 겨누고 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
하지만 중요한 것은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요셉에게도 활이 있어요.
근데 그 활은 훨씬 더 굳셉니다.
왜냐하면 그 팔은 누구에 의해서?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 반석에 목자의 손을 힘입었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화를 시위를 당긴다는 것은
시간이 중요합니다.
힘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금방 힘이 빠지게 되죠.
그러나 전능자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에, 강력함과 꾸준함을 계속해서 갖고 있을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손으로 당기면 영원한 힘, 그리고 지속적인 그런 힘을 제공받을 수 있는
바로 그런 내용으로 야곱은 그 아들 요셉을 축복을 합니다.
자 25절 이 말씀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 이리로다
야곱이 그렇게 사랑했던 요셉 아닙니까?
그 요셉을 향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축복을 하는 바로 그런 내용이에요.
아버지의 영적 축복, 영적 제사장으로서의 그런 놀라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그런 축복의 그 은혜와 그 권세가 이 본문 안에 담겨 있죠.
영적 권위를 볼 수가 있고요.
하나님 통로, 복의 통로로서 그 아버지 야곱이 쓰임 받고 있더라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 안에 이런 놀라운 축복의 은혜가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통해서
영적 가장으로서의 그 놀라운 제사장으로서의 축복이 자녀들에게 흘러갈 때
하나님께서 그 통로를 통해서 무한한 엄청난 복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더라, 허락해 주시더라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27절에 보면 베냐민을 향한 축복이에요.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상대적으로 너무 짧죠.
너무 허망하죠.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래요.
베냐민의 어떤 성향을 볼 수가 있습니다.
대단히 호전적이고 지고는 못 사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늘 물어뜯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힘들게 어렵게 공격적으로 어떤 관계들을 참 힘들게 하는 그런 경우들이 있죠.
베냐민의 경우는 사실은 굉장히 부정적인 그런 뉘앙스도 있지만,
어찌 됐든 하나님의 예언적인 그런 선포 축복에 대한 그런 말씀입니다.
자 마지막 28절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아들들을 다 축복을 하는데요.
여기에 열두 지파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열두 아들이 아니라 이제는 지파로서의 어떤 그런 개념들을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그들 모두를 다 다 일일이 다 축복을 하고 그 분량대로 그 복을 다 맞히는 바로 그런 장면입니다.
야곱은 정말 마지막 인생, 자녀들을 위해서 아름답게 축복을 하는 그런 귀한 그런 모습들을 보입니다.
그 야곱이 축복을 다 마치고 이제 한 자루의 초가 사그라들듯이 이제 그 숨을 거두는 그다음 장면의 내용을 함께 또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의 복된 결망을 보면서 내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야곱은 아들들에게 다 축복을 다 맞힙니다.
여러분 이것도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중간에 기력이 달려서 아니면 건강에 갑작스럽게 문제가 생겨서 한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들 중에 사실 딱 끝이 나면 그것도 참 난감한 일일 텐데 마지막 베냐민까지의 축복을 다 마쳐요.
그러고 나서 이제 유언을 하죠.
29절 말씀입니다.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특이한 점 두 가지입니다.
지금 애굽의 총리의 아버지예요.
거기에서 세상을 떠나서 거기에서 만약에 장례식을 하고, 거기에서 만약에 매장을 만약에 한다면,
여러분 애국 이집트는 장례 문화 정말 전 세계적으로 최고 아닙니까?
가장 영예롭고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그렇게 매장지에 묻혀 있을 텐데, 야곱은 그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정말 너무나도 번거로울 수 있는 그런 유언을 남기는 거예요.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하라는 거예요.
자기의 그 유골을 그곳에다 묻어달라는 거예요.
그곳은 어디냐 하면, 30절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기력이 지금 다 꺼져가는 상황에도 야곱은 아주 정확하게 기억을 합니다.
그 밭이 그 불이 어떻게 매입이 되었고, 누구로부터 그것이 형성이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그 조상과 가문에 주셨던 바로 약속의 땅이다라는 거예요.
이집트에서 화려하게 정말 근사하게 멋지게 그렇게 장례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것을 마다합니다.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그곳에 묻히고 싶다는 거예요.
자기 조상들과 함께 그리고 자기 아내 레아와 함께 그곳에 묻히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유언을 남기고 마지막 순간 33절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저는 야곱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너무 정말 멋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정말 소명을 다 마친 한 자루의 초가 자연스럽게 사르르 꺼져가듯이 그의 인생이 그렇게 꺼져가는 거예요.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고
그렇게 정말 누군가의 흠을 잡고 어떻게든지 목적을 이루고 싶어 했던 그런 치열한 삶을 살았던 야곱이
마지막 순간에 자녀들을 다 축복을 하고 정말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그런 모습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이시죠.
시작케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지막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
그리고 웨어 라인 웨어 피니시
마지막 인생의 그 종결에 대한 많은 관심들을 갖고 있는 요즘 아닙니까?
이 야곱의 마지막 부분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 나도 이런 모습으로 아름답게 영화롭게 그렇게 생을 마감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인생의 매듭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아요.
날마다 날마다 쌓아가셔야 되고 만들어 가셔야 됩니다.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알파 오메가 되신 하나님, 시작과 마침이 되시는 그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나의 마지막 순간도 가장 영예롭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렇게 끝을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던 야곱과 같은 그런 인생의 멋진 모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오늘 하루 여러분 삶 속에 충만하게 나타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현재 삶이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의 일부임을 생각한다면,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을 시작케 하심도 하나님이시고 아름답게 맞히게 하심도 주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열심히 살아가게 하시되,
그 마지막이 가장 아름답고 거룩하고 영화롭게 마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움켜쥐는 인생에서 축복하는 인생으로 마무리를 하는 야곱처럼
주신 사명 끝까지 다 마치게 하사,
한 자루의 초가 꺼지듯 이 세상을 작별하며 천국에서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렇게 인생 여정을 영광과 감사로 마칠 때까지,
주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받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