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우리의 시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김영철, 배순덕, 전상순, 조선남, 박상화, 조성웅, 신경현, 이규동, 차헌호, 박영수 지음
|동인시 8|128×210×10 mm|184쪽|10,000원
|ISBN 979-11-308-1668-5 03810 | 2020.5.15
■ 도서 소개
노동자의 존엄과 단결을 노래하는 시집
전국 노동자 글쓰기 모임인 <해방글터>의 동인지 『우리의 시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가 <푸른사상 동인시8>로 출간되었다. 저자들은 목수나 농부는 물론 자동차 부품공장, 편의점, 공공운수, 아사히글라스 하청 등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 시라는 무기를 손에 쥐었다. 인간 가치가 시장 가치로 전도된 오늘날 해방글터는 노동자의 존엄과 단결을 치열하게 노래하며 노동자들과 함께한다. 이번 시집은 해방글터 결성 20년을 맞아 이 모임을 제안하고 조직했던 고(故) 김이수 시인의 삶과 문학을 기억하고도 있다.
■ 시인 소개
김이수(필명 김강산)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 대구 지역 공단에서 일하는 용접사였다.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면서 비합법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조직했다. 소모임 활동을 조직하고 ‘김강산’이라는 필명으로 시를 창작해 발표하기도 했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창작모임 <백두산> 회원으로 제1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추천작을 수상했다. 2000년 <해방글터>를 제안하고 조직했다. 해방글터 동인 제1시집 『땅 끝에서 부르는 해방노래』, 해방글터 동인 제2시집 『다시 중심으로』에 참여하면서 중고 자동차 판매원, 화재보험사 야간상담원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2008년 온몸으로 시대를 사랑했던 노동자 시인이 생을 마감했다.
김영철
1952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났다. 서울 근교에서 도시농부로 살고 있다. 시집 『길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
배순덕
1963년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났다. <해방글터> 동인으로 활동하며 부산정관공단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조선남
196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노동해방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희망수첩』 『눈물도 때로는 희망』이 있다. 대구 지역 마을목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상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흥열.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시집 『동태』가 있다.
조성웅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시집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물으면서 전진한다』 『식물성 투쟁의지』가 있다.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했다.
신경현
197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 『따뜻한 밥』 『당부』가 있다.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에서 조직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규동
1973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초등학교 학생들과 생활하고 있다.
박영수
1976년 문경에서 태어났다. 대구 해올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며 전교조 대구지부 중등참교육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상순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충북 영동에서 30년째 농사를 지으며 『작은책』에 달력 그림과 수필을 기고하고 있다.
차헌호
1973년 상주에서 태어났다.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아사히글라스 조합원들과 함께한 『들꽃 공단에 피다』, 구미 금강화섬 점거투쟁을 기록한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다』가 있다.
이금지
김이수 시인 아내
권형우
김이수 시인 옛 동지
■ 목차
■ 화보
■ 발간사
제1부 우리의 시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김이수
우리의 시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 해방역 ― 민주철노 공투본과 전국의 철도노동자들에게 바치는 글 / 십이월의 강가에서 / 우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동지가 되자 / 바다의 램프 ― 일출 / 김 반장 / 동료에게 / 한반도 / 노동 해방 선언 / 침묵의 바다 / 사북에서 / 연가 / 산하 / 자유로운 방 ― 음모의 장 / 자유로운 방 / 가을이 오기 전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 3
제2부 전노협의 꿈
김영철
저 하분에 꼿이 내 손지들이다 / 행정이 / 봄, 누더기 옷 한 벌 깁습니다 / 내가 참말로 바부 천치다
배순덕
휴식시간 / 전노협의 꿈 / 어머니 / 언니
조선남
꽃들아, 꽃들아 / 그녀를 보고 있으면 봄이라 느낀다 / 봄의 기억 /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박상화
고구마 / 완벽한 의지 / 꽃 ―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4주년에 부쳐 / 기도문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에 부쳐
조성웅
대설 / 지금 여성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 백만 촛불 마이너 ― 2017년 광화문 고공삭발단식 농성을 지지하며 / 젖은 몸
신경현
정경애 / 불편한 말 ―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 대구시청 앞 농성을 생각하며 / 집 / 나무 ― 마을 목수
이규동
상추잠 / 곁 / 손 / 교과서 볶음
박영수
하늘로 오르는 모순 / 섯알오름에서 밀감을 먹으며
제3부 노동자들의 눈빛이 달라질 때 가장 행복하다
전상순
거두는 계절 / 작신작신 / 각다귀 새끼들
차헌호
노동조합, 내 삶의 전부 / 가족에게 상처뿐인 노동조합 / 노동자들의 눈빛이 달라질 때 가장 행복하다
제4부 김이수의 시 세계
이금지 _ 그해 딸아이의 생일엔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권형우 _ 그는 그랬다 ― 이수를 생각하며
박상화 _ 김이수 시인의 시세계와 초혼(招魂)
조선남 _ 노동자 김이수 시인의 삶과 문학
■ 시인들 소개
■ 발간사 중에서
경자년은 전국노동자글쓰기모임, 해방글터가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해방글터 20년을 돌아본다는 건 쉽지 않았다. 바닥에서 바닥으로 기면서 외쳤던 목소리들이 들리고 승리보다 패배에 익숙했던 동지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나 아팠다. 해방글터의 시작은 어쩌면 시대착오였을지도 모른다.
“노동 해방 문학은 끝났다. 운동으로서 노동문학도 끝났다”고 선언되고 깃발도 내려졌다. 사랑을 잃고 혁명의 전망조차 잃고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아린 것이었다. 이데올로기는 순식간에 낡았으나 삶은 언제나 구체적이었다. 노동자계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단되고 여성과 남성으로 분단되고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로 분단되어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고통스럽게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해방글터 동인들은 노점상이었고 일용직 건설노동자였고 대공장 사내 하청 노동자였고 자동차 부품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해방글터는 이 땅의 ‘하층민’들로 구성된 바닥이었고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사람들이었다. 행동하는 몸이 깃발이었던 사람들, 현실과 시와 정치와 시대가 분리되지 않은 한 몸의 사람들이었다. 21세기 초입의 열사 투쟁과 비정규직 투쟁의 주체들이었다.
해방글터 동인들은 생을 걸어 질문해야 했다.
“우리의 시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 추천의 글
노동문학이란 노동 현실이나 노동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작품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창작 주체는 여전히 중요하다. 노동자가 창작한 작품은 노동 조건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보다 구체적이고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면은 아이엠에프(국제통화기금) 사태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점령하면서 노동문학은 끝났다라는 선언이 문단에 낙하하자 본격적으로 맞서 활동한 <해방글터>의 작품들에서 확인된다. 목수나 농부는 물론 자동차 부품공장, 편의점, 공공운수, 아사히글라스 하청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쓴 작품은 노동문학이 어떤 이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노동하는 건강한 일꾼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되는/참 세상을 이루”「(동료에게」)기 위해 부르는 노동자들의 노래는 인간 가치가 시장 가치로 전도된 우리 시대를 다시금 인식시킨다. 노동자의 존엄과 노동자의 단결과 노동자의 투쟁을 노래하는 <해방글터>의 시인들이여, 폭군처럼 지배하고 있는 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서 더욱 크게 불러라.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시집 속으로
우리의 시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 김이수
우리의 시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잊혀진 시들, 잊혀진 날들
그날을 함께했던 동지들의 다짐
한 맺힌 넋들의 울분은
그것이 전리품인 양 금의생환(錦衣生還)한
소수의 노리개로 바뀌었다.
과연 이것이었던가.
우리가 바라 마지않던 그날의 모습이
눈물을 흘리며 파업 현장을 지키던 우리의 바람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오던 분노의 함성
그 모든 것을 기억의 한쪽에 모셔두어야 하는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뭉툭하게 볼품없지만
우리의 가진 무기를 꺼내 든 것이다
찔러보고, 쑤셔보고
그래도 날이 닳아 저들에게 꽂히지 않는다면
뭐 거꾸로 들고 손잡이로 머리통이라도 날려봐야지
이게 우리의 깡다구 아닌가!
젖은 몸
- 조성웅
퇴근 무렵
말조차 꺼내기 힘든 저 지친 몸은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경계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 번도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싼 값에 쓰다 버리는
하루 종일 모욕당한 몸입니다
이 세상에 없는 몸입니다
허청허청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체념으로 딱딱해지지 않았습니다
쉰내 나는 언어가 일기장처럼 배어 있습니다
쓰러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새벽별이 수놓아져 있고
쓰러지지 않았다고 위로받는 보름달이 뜨고 있습니다
함께 이겨내자고
토닥토닥
뭇별처럼 모진 마음의 무늬도 새겼습니다
애썼어
이 한마디에도 반응하는
이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뛰어난 청각을 지녔습니다
공감의 소리가 노을처럼 번져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는 전혀 다른 세계 같습니다
그의 시는 10년 전, 20년 전에 쓰여졌으나, 2020년을 바라보는 현재에 옮겨도 아직 유효하다. 사람들은 1980년대를 휩쓸던 노동시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죽은 건 노동시가 아니라 노동시를 쓰던 시인들이고, 80년대를 휩쓸던 사상의 물결이 변했다고 말하지만, 변한 건 사상을 팔아먹고 살던 지식인들이 변한 것이지 노동의 현실이 변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어떻게 죽고 살았다고 하건, 변했다고 하건, 노동자의 꿈과 현실은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그대로이다.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세상에서 말하는 지식인이란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노동의 현실 변화를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전태일을 움직인 어린 여공이나 김이수가 아파하던 어린 여공 옥이의 시간은 아직도 그대로인 것이다.
김이수는 가난했던 시대를 관통해온 수많은 노동자와 변방시인의 초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난한 어린 시절, 배고픈 사회 초년 시절, 불합리한 세계의 변화를 꿈꾸고, 사상을 받아 안고, 그 안에서 제 한 몫을 다 해보려고 피가 마르게 몸부림치며 버둥거리던 그 세대는 투잡까지 하며 살아보려고 애쓰다 결국 고독하게 죽어갔고,죽어가는 세대다. 그는 그 세대의 표준 같고 모범생 같은 생을 살았고, 그 간난(艱難)처럼 다만 17편의 시를 남겼다. (중략)
끝까지 혼자 싸우다 죽은 그 어둠 속에서 참으로 오래 떨며 기다렸을 시인 김이수! 잘 웃고 차분하여 그의 별명은 꺼벙이였지만, 그는 늑대 같은 시를 남긴 시인이었다. 변방을 전전하며 시를 썼으나 결코 야성을 잃지 않았다. 이름 모를 어느 검은 숲에서 홀로 외롭게 죽어갔으나, 홀로 둔 제 무리를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견뎠고, 홀로 애썼고, 힘이 다했다. 더 살아 제 무리에게 이를 드러내는 넝마를 보이지 않았다. 사랑했던 그대로 멈추었다.죽음으로써, 더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추레함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야성의 존엄을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야생에 남아 야생이 된 시인을 아시는가. 무리를 이탈할 수밖에 없었던 한 늑대시인의 영혼을 이제 낮게 불러본다.
- 박상화(「김이수 시인의 시세계와 초혼(招魂)」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