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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왼손에 든 책은 세계기록유산.국보 제70호 훈민정음해례본이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아래 지하의 '세종대왕 이야기'
한글은 수많은 의혹과 오해속에서 언문(상스런말), 암클(여자의글), 아햇글 (아이들의 글)등
천한 글자 취급을 받아왔다,
지구상 수천개의 언어중에 백여개의 말만이 글자를 가지고 있으며, 만든 목적과 만든 사람
만든때를 알고있는 문자로 한글이 유일하다.
근대화를 통하여 상당한 정도의 물질적 성취를 이루고, 한글이 디지털시대를 맞아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 문자로 인증을 받는 시점이지만,
한글 창제 568돌을 맞아 이제 내가 누구인지? 한글은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볼 때이다.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이야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며 사람은 세모나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에 의해 1943년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
간송은 10만석 부호가의 상속권자로 그의 재산으로 그는 우리 문화재가
일본에 유출되는 것을 막았다.
그가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수장하던 1930∼40년대는
일제의 수탈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는데,
문화재 감식에 뛰어난 오세창과 함께 모은 것이
'청자상감운학매병'(국보 68호)·'혜원전신첩'(국보 135호)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 등 다수의 문화재였다.
그중 가장 눈여겨봐야할 것은 1943년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을
손에 넣던 이야기가 유명하다.
당시로선 존재 사실만 알려져 있던 훈민정음 해례본이 경북 안동에서 나왔는데
조선시대 이한걸 가문에 소장되어 있었다.
그의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이 하사했다고 한다.
표지 2장에 본체 3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로 20센티미터,세로 32.3센티미터 크기이고,
처음 두 장이 망실되었는데 연산군의 기훼제서율을 피하기 위한것이라 한다.
간송은 이한결이 선조가 하사받은 것을 훈민정음 해례본인줄 알면서도 ,
그 가치를 알지 못하여 생활고 때문에 1000원으로 내 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1000원은 서울의 기와집 한 채 값으로,
고서 가격치곤 비싸다는 주위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개한 이에게
사례로 1000원, 해례본 값으로 1만원을 쳐 주며,
"훈민정음" 같은 보물은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런 연유로 좋은 문화재가 나오면 상인들은 간송에게 제일 먼저 보였다 한다.
간송이 해례본을 세상에 내놓기 전까진 그 누구도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알지 못했다.
창제시 “고전(古篆, 옛글)을 모방했다.”는 말에 따라 여러 학설이 있었는데,
인도 구자라트 문자나 산스크리스트어, 몽골의 파스파문자, 갑골문자를 모방했다는 설부터
문고리나 창살모양을 본 땄다는 설까지 분분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이 천지인 삼재(三才)의 원리와 태극,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에겐 지켜야할 목표로서 6‧25 전쟁 당시에도
오직 이 책 한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도 베게삼아 잤다고 한다.
간송의 이런 행적과는 반대로 지난 2008년 7월 배모씨가 "집을 수리하던 중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복마전이 시작됐다.
상주본은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보존 상태가 좋아, 전문가들이 "가치가 1조원도 넘을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한글 사랑에 평생을 바쳐온 주시경 선생이
어느집 안방 벽에 도배로
붙여진 몇장의 해례본 내용을 찾아내어 한글의 문법을 최초로 정리하고,
1894년 갑오개혁 때 언문을 국문이라 개칭한것을,
1913년 국문을 한글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1928년 주시경이 세운 조선 어학회에서
“가갸날”을 한글날로 바꾸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謹作)하였다는 해례를 비로서 알게 되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는 『훈민정음(해례본)』은 국보 제71호로 지정되어 있는
『동국정운』권1, 6과 함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촌의 이한걸(李漢杰) 씨 댁에
전래되던 것이다. 1940년에 발견될 당시 원 표지와 첫 두 장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는데
그 후 보충하여 끼워 넣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제공 문화재청) |
세종 서문의 마지막 글자 ‘이(耳)’가 ‘의(矣)’로 잘못 씌어지고,
구두점과 권성이 잘못되었거나 빠진 것도 있다. 이 책에는 구점(句點; 右圈點)과,
두점(讀點; 中圈點) 및 파음자(破音字)의 성조를 표시하는 권성(圈聲)도 정확하게
표시한 책이다. 구두점과 권성을 다 표시한 것은 『성리대전(性理大全』(1415년)의
체재와도 일치한다. 최근에 이 책 외에 또, 다른 『훈민정음(해례본)』
한 책이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바 있다. 훈민정음은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보 제71호 동국정운<권1,6>
동국정운<권1,6>(東國正韻<卷一,六>)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조선 세종 때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의 명으로 편찬하여 세종 30년(1448)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6권 6책이며, 활자본이다.
중국의 운(韻)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이 책은 세종 29년(1447) 9월에 완성되자 간행하라는 임금의 명이 있었고,
이듬해인 세종 30년(1448) 11월에 성균관, 사부학당 등에 보급되어,
이 책이 간행되고 보급되었던 시기를 알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전 6권 가운데 1권과 6권만이 남아있다. 내용을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이고, 작은 글자와 서문의 큰 글자는 갑인자이다. 글자체는
큰 글자가 진양대군의 글씨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가 된다.
세종대왕 기념관
홈페이지에 액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한글실
힌글실 내부
한글 이전의 우리 글에 대한 설명
세종대왕기념관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추모하고 이를 길이 보존하기 위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1970년 11월 준공하고 1973년 10월 개관하였다. 갖가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세종대왕기념관에는
한글실, 과학실, 국악실, 일대기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외전시물에는 ‘세종대왕신도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2-1호)‘와‘수표(수위측정기)(보물 838호)‘
등이 있다.
홈페이지 http://www.sejongkorea.org
세종대왕기념관 가는 길
▲ 국립한글박물관 외관 (제공: 문화체육관광부)
박물관 관람은 무료이고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있고 용산가족공원과 연결돼 있으니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에 좋아요.
홈페이지: http://www.hangeul.go.kr/specialExh/specialExhList.do?target=3&curr_menu_cd=0102020300
[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
입력 2014-06-25 03:00:00 수정 2014-06-25 10:27:18 한글 창제동기-의미-사용법 적은 해설서6년전 발견됐다가 행방 묘연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왼쪽)과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또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에서 발견된 해례본은 현재 소장자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훼손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아일보DB·문화재청 제공 이 해례본은 현재 배 씨가 갖고 있습니다. 무죄 판결이 나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고 국가에 기증하겠다던 배 씨는 현재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 국보급 문화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과연 무사한 걸까요. ○ 또 하나의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2008년 7월, 문화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고서적상 배 씨가 올린 글이었습니다. “집에서 고서적 한 권이 나왔는데 국보 문화재로 지정 신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문화재청 전문가가 현장조사를 나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 훈민정음 해례본이었기 때문이지요. 조사 현장에서 만난 배 씨는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서문 네 장과 뒷부분 한 장이 없어졌지만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가치가 매우 높았습니다. ○ 법적 분쟁 속으로 그러나 배 씨는 이를 거부한 채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었습니다. 검찰과 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강제 집행과 압수수색을 했지만 해례본의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배 씨는 “내가 훔쳤다면 국보 지정 신청도 안 했을 것이다. 해외로 튀어도 벌써 튀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난감해졌습니다. 배 씨가 해례본을 내놓지 않자 문화재청은 배 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형사소송이 시작된 것이지요. 배 씨는 2012년 2월 형사소송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2012년 9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고 이번 최종 상고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난 겁니다. ○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그럼,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것은 과연 어떤 책일까요.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인 1446년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그 의미, 사용법 등을 소개한 해설서랍니다. 여기서 해례는 ‘예를 들어 해설을 한다’는 뜻이지요. 조선시대 당시엔 이 내용을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어냈습니다. 붓으로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서 만든 책이 아니라 목판으로 도장 찍듯 만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여러 권을 만들었을 테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종이가 삭아 사라졌을 수도 있고 불에 타 버렸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그동안 존재가 알려진 해례본은 간송미술관이 갖고 있는 한 권뿐이었습니다.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우,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 편의상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것과 구분하기 위한 의미도 있답니다. 상주본이 간송미술관 것과 동일한 판본이라고 하니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 상주본은 어디에 그런데 걱정입니다. 국보에 버금가는 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배 씨는 대법원 판결 이전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 나의 억울함이 밝혀지면 국가에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무죄로 판결한 대구고법과 대법원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고 “그것이 역사와 민족, 인류에 대한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무죄 판결이 나자 배 씨는 마음을 바꿔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한글, 훈민정음에 관해 가장 소중한 책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간송미술관본과 상주본 두 권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인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기대해봅니다. 출처: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140625/64628630/1 |
첫댓글 이렇게 훌륭한 문자를 창조하신 대왕님의 은덕을 후손들은 잊지 말아야 하며 세계 만방에 우수한 문자를 많이 알리는데 힘을 쏟아야 할것 같네요.감사합니다.
훌륭한 우리글 표준말로 길이빛내야......................
10월9일 한글날,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조하신 날을 기리기위해 국경일로 지정 하셨고
세계기록 유산,국보70호로 지정에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에 자부심을 갇고
더욱더 발전에 힘을 쏟아야 되겠지요,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10월9일 의한글날를 경축하며 한글에대한 상식을 많이알게되여 출처 : 동아일보 貴中 에 고맙게생각하면서
감사의 글드립니다 - -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