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538)... 대통령의 ‘혼밥’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나홀로族의 혼밥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朴槿惠, 1952년 대구에서 출생) 대통령은 공식 만찬행사가 없을 때는 청와대 대통령 관저(官邸)에서 혼자 TV를 시청하면서 저녁 식사를 했다고 한다. 만약 ‘혼밥’ 대신에 사회 각계각층의 원로들을 위시하여 여ㆍ야정치인들과 자주 만찬을 하면서 소통(疏通)을 했다면 오늘날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난 9월 말경 저녁식사 모임에서 金東吉 박사(前 연세대 부총장)는 전직 대통령들은 자신을 만찬에 초대를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한번도 없었다면서 말했다.
현대인은 하루에 세 끼 식사를 한다. 즉 아침 조찬(朝餐), 점심 오찬(午餐), 그리고 저녁 만찬(晩餐)으로 3식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 우리 선조들은 하루에 2끼 식사를 하였으며,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농번기(農繁期)에는 3끼 식사를 하였다고 한다. 한편 임금은 하루에 5-6식을 하였고, 비만으로 인해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 성인병으로 고생하다가 단명(短命)으로 세상을 떠난 왕들이 많았다.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따돌림 받는 사람이나 괴짜 취급받는 사람들은 혼자 밥을 먹었다. 이에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해 혼자 밥 먹는 걸 두려워하고 굴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놀(혼자 놀기) 등 홀로 생활양식이 하나의 사회 현상(social phenomenon)이 되고 있다.
예전에는 ‘궁상을 떤다’는 핀잔을 듣거나, ‘친구가 없다’며 사교성에 의문을 제가했던 ‘나홀로족’이 최근에는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 ‘경제적 부담’ 등의 이유로 나홀로 문화가 자연스럽게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다. 20-30대 젊은층은 그룹으로 몰려다니면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나홀로 문화의 확산은 개인주의 문화 확산과 더불어 SNS를 통한 소통을 주된 요인으로 꼽고 있다. 이에 집단 우선 사회가 각 개인의 특성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하는 과정에 접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5’에 따르면 15세 이상 응답자 56.8%가 여가시간을 혼자 보낸다고 응답하여 2007년 44.1%보다 12%포인트 이상 늘어났다. 반면 친구와 함께 여가를 즐긴다는 응답자는 2007년 34.5%에서 2015년 8.3%로 감소했다.
나홀로족(myself generation)은 혼자라고 외로운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많은 이점(利點)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혼자 뭔가를 할 경우 자신에게 더욱 집중하게 되어 창의력(創意力)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혼자 있으면 뇌가 긴장을 풀어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음식맛과 술맛을 더 음미하고, 영화도 더 몰입해 관람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홀로족은 혼자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통계청(統計廳) 인구통계에 따르면 1990-2005년 우리나라 가구의 주된 유형은 4인 가구였으나 2010년엔 2인 가구(24.6%)가 2015년엔 1인 가구(27.2%)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급속히 늘고 있는 1인 가구는 최근(2016년 9월)에 739만 가구를 돌파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소비 시장도 늘어 2030년 1인 가구의 소비 시장 규모가 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식품업계를 비롯해 건설, 금융, 유통 등 각 산업이 1인 가구를 겨냥한 맞춤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서점 진열대에도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등 ‘혼자’라는 타이틀을 단 책들이 많다. TV에도 ‘나 혼자 산다’ 등의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혼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를 소재 삼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한편 ‘나홀로족’이 증가하는 사회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저서 ‘어른 없는 사회’를 통해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흥미로운 이론을 펼쳤다. 예를 들면, 길에 버려져 있는 깡통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면 ‘어른’이고, 무심히 지나치면 ‘아이’라는 것이다.
즉, 깡통을 줍는 행위가 사회적 의무는 아니지만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모두의 일’이기에 그 모두의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해 깡통을 줍는 사람은 어른인 반면 그 모두의 일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줍지 않는 사람은 ‘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모두의 일을 자각하지 못하는 나이 든 아이가 많아진 사회, 어른 없는 사회는 결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이 결핍된 사회라고 말했다.
요즘 ‘혼자’ 하는 것들이 유행하고 있지만 사춘기(思春期) 청소년들은 입장이 다르다. 즉 ‘또래문화’가 중요한 청소년들은 자신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너 왜 혼자 밥을 먹냐, 너 왕따냐” 이런 식으로 안 좋게 보는 시선들이 많다.
10대 청소년들이 밥을 혼자 먹는 비율은 21%에 달하며, 주된 이유는 학교와 학원 때문에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어서란 것이 가장 많다. 이에 가족, 친구들과의 소통단절은 청소년들에게 우울감과 불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친구들과 교감하면서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일들이 생기는 데, 그런 경험이 없이 사회에 나가면 같은 상황이 이루어져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혼자족’을 직접 체험한 한 신문사 기자의 말은 체험기간 동안 편안함과 외로움을 동시에 경험했지만 그 무게는 외로움에 더 기울어져 있었다고 한다. 자발적 체험자도 이런 상황이므로 비자발적 혼자족들의 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1인 가구 증가세는 경제침체 현상과 연관성이 짙다. 즉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은 결혼과 출산까지 미루게 되는 ‘삼포세대’로 전락하게 된다. 혼자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암울한 시대 상황이며, 비자발적 1인가구 시대가 양산한 트랜드가 혼밥ㆍ혼술족이라고 볼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Ministry of Agriculture, Food and Rural Affairs, MAFRA)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Korea Agro-Fisheries & Food Trade Corporation, aT)가 ‘2016년 외식 소비 행태’를 소비자 30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721명(56.5%)이 ‘최근 한 달 사이 혼자 외식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요즘 ‘혼밥족’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로 혼자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혼자 외식(혼밥)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 달 평균 6.5회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혼밥족은 한 달 평균 7.8회에 달했다. 남성(7.3회)이 여성(5.5회)보다 잦았다. 한 달 평균 외식비는 31만원으로 조사되었다. 신한트렌드연구소에 따르면 요식업계 나홀로 소비 비중은 2011년 3.3%에서 2015년 7.3%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농식품부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17년 외식 트랜드 키워드로 ‘나 홀로 열풍’과 더불어 ‘패스트 프리미엄’과 ‘반외식의 다양화’가 선정됐다. 즉 식사형태는 간편하지만 고급스러운 음식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계속 증가할 것이며, 외식(外食)과 내식(內食)의 중간인 반(半)외식이 증가하면서 포장 음식과 배달서비스 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1인 가구의 외식 및 배달음식 지출 비중은 55.1%로 전체 식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외식업계도 이러한 트렌드를 맞추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면, 바쁜 현대인에게 최적화된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정크푸드(junk food) 이미지가 강했던 햄버거는 ‘수제(手製)’와 ‘웰빙(well-being)’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프리미엄으로 이미지를 변신하고 있다. 즉 패스트푸드(fast food) 햄버거에서 벗어나 한층 건강하고 고급스럽고 제품을 제공하는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외식과 내식의 중간 형태인 ‘반외식’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테이크아웃(Take-Out) 메뉴의 영역도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여겨지던 이태리 음식이나 스테이크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분식형 스파게티 전문점은 저렴한 가격의 피자와 파스타를 판매해 혼밥족에게 인기가 높다. 테이크아웃 스테이크 전문점은 육류 발효숙성 기술을 기반으로 뛰어난 품질의 스테이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혼밥이 외식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외식 시장 전문조사연구기관인 핫페퍼외식종합연구소에 따르면 ‘1인 외식 시장(저녁 식사 기준)’의 규모는 2010년 2670억엔에서 2014년에는 3114억엔(약 3조2340억원)으로 증가했다. 점심식사까지 포함하면 일본의 전체 ‘혼밥’ 시장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보다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1인 생활 기간이 길어져 ‘혼밥’ 시장도 매년 커지는 추세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일본 전체 세대 가운데 부부 혹은 1인 가구는 54%에 달한다. 일본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점심을 혼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다. 점심을 삼각김밥, 라멘 등으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것에서 벗어나 비싼 고급 점심을 먹는다.
이에 1인 식사의 평균 비용(2015년 저녁식사 기준)은 1211엔(약 1만3000원)으로 전년에 비해 12% 증가했다. 최근에는 영업 등 외근 직종에서 활약하는 여성이 늘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혼밥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외식 업계는 ‘혼자서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식당’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면, 식당 내 조명을 어둡게 하여 혼자서도 편안하게 머무르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좌석마다 칸막이를 세워 손님이 혼자 식사를 하더러도 어색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혼밥을 주제로 다룬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美食家)’는 중년 직장인 남성이 혼자서 도쿄 맛집을 탐방하는 스토리를 담은 내용으로 인기를 끌어 혼밥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원작 만화가 출간돼 100만부 이상이 판매되어 ‘고독한 미식’이라는 새로운 소비 패턴이 트렌드로 정착되고 있다. 일본의 식품산업분야 전문가들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남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혼밥 시장은 더욱 발전할 전망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은 건강을 위해 하루에 40종 이상의 영양소가 필요하며, 이들 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하여 매일 30종 이상의 식품을 먹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따라서 나홀로족은 혼밥을 대충 식사를 때우는 개념이 아니라 혼자 먹더라고 제대로 된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여러 가지 식품이 어울린 식사로 우리나라 전통 ‘비빔밥’을 들 수 있으며, 간편하면서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메뉴 중 하나가 ‘죽’이다.
‘혼밥’은 자칫 편식(偏食)이나 과식(過食)을 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즉, 혼자 밥을 먹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 하는 음식만 골라 먹어 편식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음식의 양을 조절하지 못하여 과식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혼자 식사를 할 때는 항상 ‘영양’과 ‘건강’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538). 2016.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