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1] 김기영 (金基榮) - 나의 삶을 돌아보며 13. 일화 사건 - 2
10 10년 동안 당사자들만 피고인이라는 신분으로 사회 활동의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
11 그때는 교구장급 이상의 모든 간부들이 세계 섭리로 미국과 세계 각국에 나가 활동하고 있을 때였지만 피고인인 관계로 여권을 낼 수 없었던 남편은 국내에 남아 있으면서 재단이나 기업체의 업무를 계속하였다. 12 그 시기에 예배를 보러 교회에 가면 목회자들은 일화 사건에 대한 것을 설교로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기가 괴로웠고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 식구들에게 자초지종을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13 어쩌다가 식구들을 마주치게 되면 불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보이기가 싫어서 교회에 가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경계 질환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14 외적으로는 한국에서도 사건이 마무리되어 식구들은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세계 섭리를 위해 식구들을 파송하셔야 하는 아버님은 축복가정 부인들에게 남편을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아이들 교육이나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을 누차 하셨다.
15 나도 아버님의 말씀에 부응하여 여러 가지로 정보를 얻어 새로나 백화점에 점포를 하나 마련하게 되었다. 3년간 나름대로 참아버님 말씀을 생각하며 점포 운영을 열심히 하였다.
16 그 후 다시 부인 식구 특별 동원령으로 경북 안동으로 임지 발령되어 점포를 정리하게 되었다.
17 점포를 운영하는 동안은 이미 우리 아이들이 다 성장하여 대학생이 된 때였고 아이들은 모두 대학원리연구회의 학사 활동에 동원되고 있었다.
18 한참 학비 및 학사 생활비 등 씀씀이가 많았지만 사업을 통해 살림에 보탬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