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머무는 곳 (3) 귀향(歸鄕)

[동석]

며칠 전 입춘(立春)이 지났으나 아직도 북녘의 한파(寒波) 소식은 그칠 줄을 모릅니다. 사실 봄소식 보다 모든 이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코로나 백신을 언제쯤 이 땅에 들여와 코로나로부터 해방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난 추석에는 정부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하여 전 국민의 고향방문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자 일부 계층에서는 인간의 본능인 귀소본능(歸巢本能)마저 억누른다며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또다시 귀향을 막는 정부의 방침에 이제는 체념한 듯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선 귀성대신 설캉스(설날+바캉스), 호캉스(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니 하며 관광지로 몰려들어 이해관계가 없는 해당지역 주민들은“고향에 가지 말라고 하였더니 엉뚱하게 남의 고향에 몰려와 걱정을 끼치느냐?”며 볼멘소리들입니다. 유교문화권에 있는 나라들은 명절을 통하여 인간의 귀소본능을 충족시키고 조상을 섬기며 흩어진 가족친지가 모여 정(情)을 나누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지켜왔습니다.

지난 유년시절 방과 후에 산과 들로 쏘다니며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뛰놀다 저녁나절 집집마다 뿜어내는 굴뚝 연기가 골목길을 가득 메울 때면 부모님께서 찾지 않아도 스스로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였던 행동이 우리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귀소본능(歸巢本能)때문입니다. 출생지 강원도 남대천(南大川)을 떠나 북태평양 베링해에서 성장하여 산란기가 되면 다시 고향인 남대천을 되찾는 연어나 팔려간 진돗개가 수 백 킬로 떨어진 고향집 주인을 찾아 앙상한 모습으로 절뚝거리며 찾아가는 일이며 지난해 중양절(重陽節)에 강남으로 떠났던 제비가 삼월 삼짇날 돌아오는 것 또한 인간과 동물의 공통된 귀소본능입니다. 그래서 이웃나라 중국의 춘절과 우리의 명절날이면“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진풍경(珍風景)을 자아내며 빙판길도 마다하며 교통지옥 속에서 밤을 세워가며 안간힘을 다하여 고향을 찾았으며 60년대 한때는 비좁은 귀성열차를 먼저 타려고 한꺼번에 수많은 귀성객이 몰려 30여명이 압사하는 비극을 낳기도 하였는데 모두가 태생적 귀소본능 때문입니다.

고향은 인간과 동물들이 태어난 곳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고향은 어머님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 한다면 어머님의 뱃속입니다. 그렇다고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여 우리들의 고향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머님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이 고향이며 집이 없어지면 주변 산천 바닷가와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곳이 고향이기에 누구에게나 고향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항상 영혼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공 호수나 댐 주변을 지나다보면 호수나 댐 조성 시 수몰지역에서 생활하던 실향민들의 흔적을 지워버릴 수가 없어 기념관을 건립하여 수몰이전 흔적을 고스란히 보관해두고 있는데 이는 고향을 방문하는 수몰지역 주민들의 귀소본능을 달래기 위하여 해당기관에서 배려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에게 고향이 없다면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고향을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자신의 근본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여우도 죽을 때 자신이 태어난 굴(窟)이 있던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유한 말입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필자의 어머님도 생전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집에서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는 유언이 있어 주치의에게 만약 환자가 위독하여 죽음이 가까워지면 보호자에게 사전에 알려줄 것을 부탁하여 임종 하루 전 주치의가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통보에 따라 고향 집으로 황급히 구급차로 이송하여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았으며 지난해 돌아가신 필자의 맏형 또한 외국에 거주중인 조카들이 부음을 받고 달려와 화장 후 납골당에 유골을 모시려하는 것을 설득하여 어릴 적 함께 땔감 나무를 하러 다니던 고향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야산 언덕배기에 수목장(樹木葬)을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께서는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죽음을 맞으면 외롭고 쓸쓸한 죽음으로 여겼으며 심지어는 객지에서 맞이한 주검은 영혼도 잡귀의 일종인 객귀(客鬼)라고 하여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九泉)을 떠돌며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며 걸식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친들의 제사를 지낸 후 객귀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제사 음식을 길거리에 내어놓아 원혼인 객귀들을 위로하곤 하였습니다.

고향은 이렇게 죽어서라도 꼭 가고 싶은 곳입니다. 우리는 죽었다는 표현을“돌아가셨다”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 인생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셨다는 표현이기도합니다. 그 출발점이 곧 고향입니다. 영어로 무덤을 뜻하는 단어 튬(tomb)은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단어 움(womb)을 연상시키며 무덤은 여성의 자궁(배) 형상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심지어는 인디언의 장례풍습도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기 전 모습과 같이 동쪽으로 향하여 웅크린 채 매장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귀소본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고향은 그리운 부모님과 지난밤에 벽에 붙여놓은 껌을 때내어 나누어 씹던 그러한 형제와 가족과 같던 친지가 있고 시냇가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물장구치고 놀던 친구들이 있으며 인간 본연의 소중한 초심(初心)이 보관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제는 어떠한 연유인지 세월의 무게만큼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도 두터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유난히도 한(恨)이 많은 우리 한민족(限民族)은 수세기를 이어온 이념의 갈등이 빗어낸 동족 간 전쟁과 한때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를 상실한 대가로 식민(植民)으로 내몰려 수많은 실향민(失鄕民)이 뿔뿔이 흩어져 고향이 있어도 가고 오지도 못하는 유랑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광복을 맞고 휴전(休戰)으로 전쟁이 멈춘 지금도 또다시 자유를 찾아 그리운 고향을 등지고 부모 형제와 헤어져 자유와 맞바꾼 실향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탈북자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실향민들은 가고 오지도 못하는 고향을 꿈에서라도 간절히 보고 싶어 하지만 공허한 기대만 맴돌 뿐입니다. 고향소식은 듣기만 하여도 설레며 금세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지척에 고향을 둔 필자와 실향민이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할 진데 살아서 가겠다는 고향 길을 코로나가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번 설날은 시시때때로 나의 뇌리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고향산천을 드라이버 스루(Drive Through)를 통하여 차창 밖으로나마 마주하고 싶습니다.

[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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