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삼국지의 위연)
옛날 특히 추운 겨울 이맘 때 쯤이면 등잔불 아래서 이야기책 읽는 일이 많았었는데, 그러나
그땐 책도 귀해 아무 책이나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었지. 주로 남의 책을 빌려보는 게 고
작이었지만 그건 또 뭐 그리 쉬운 일이었었던가! 그래도 그때 무슨무슨 전 같은 소위 우리 고
전문학들을 흘낏 들여다볼 수 있었고 단편적이긴 해도 삼국지도 알게 되었고.
삼국지 하면 관우 장비니 여포니 조조니 하는 영웅 호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우선 떠
오르는 것이지만 그 이야기를 솔솔 따라가 보노라면 수많은 인격들을 만날 수 있고 결국 그
들이 펼쳐내는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사건들 속에 푹 빠져들게 되고마는 것이 아니었었던가.
보건데 위연은 삼국지 무대에 전혀 손색없이 잘 어울리는 맹장의 역활을 당당히 해낸 인물이
다. 다만 빼어난 주연급 영웅들의 그늘에 가려 그 진면목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수많은 공적을 올리며 높은 지위에 오르나 마지막에 가서 배반자로 처단되며 비운의 일
생을 마치게 되는데 이를 한번 짚어 보고자 한다.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유비는 형주를 차지하며 이어서 세력 확장을 위해 인근 장사성을 공격
한다. 성주 한현은 관우와의 전투에 석연찮게 패하고 돌아온 노장 황충을 의심하여 죽이고
자 할 때, 이에 분개한 위연이 나서서 한현의 목을 치고 황충을 구한다. 그리고 유비군에 성
문을 열어주니 상황 끝이라.
위연은 일찌기 형주의 유종(유표의 아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조조에게 투항하자 이에 반발하
다가 여기 장사성에 와서 마지못해 몸을 의탁하고 있었는데 성주 한현은 그를 크게 알아주지
않았었다.
사람이 의를 행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울손가. 언행일치의 극난함이 특히 그 속에 다 있으니.
그래서 위연의 의로운 모습이 독자들의 주목을 끌게 되는 것이리라. 물론 삼국지 속에는 그런
사례가 얼마든지 있긴 해도.
그러나 유비진의 논공행상에서 제갈량은 뜻밖에도 위연에게 참수형을 내린다. 위연은 반골이
있어 나중에 반드시 반할고로 아예 죽여 화근의 싹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유비의 만
류로 위연은 생명을 구하긴 했으나 그때 지옥문 바로 앞까지 다녀온 아찔한 기분이었으리라.
물론 이는 소설 작가가 깔아논 복선일 것이다. 나중에 이 문제가 결국 그에게 치명타를 가하고
마는 걸 봐서도 그렇다. 삼국지가 소설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작품이란 평을 듣는 것도 보
면 다 이런 근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골(叛骨)이란 용어는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고 하니, 그게 참 재미있고도 아이러닉한 여운을
주는데. 진수의 삼국지는 제갈량 사후 위연의 배반설을 부정하고 있으니. 또한 후세의 사가들도
그렇고..
삼국지에서 재미난 대목은 역시 적벽대전과 유비군의 서천 침공전일 것이다.
유비는 장송의 서천 지도를 따라 정벌에 나서는데 여기서부터 위연은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유
비의 신임을 얻는다. 그는 황충과 함께 서천 정벌의 일등공신이랄 수 있을 것이다. 군사적 요충
지 한중을 맡길 장수를 발탁할 때 오호대장을 다 제치고 위연이 전격 기용되는 것도 그에 연유
된다. 물론 유비는 먼저 제갈량의 의견을 들었을 것이다. 위연을 진짜 반골로 생각하였다면 그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 않았을까?
제갈량이 북벌에 나설 때 위연은 옛 한신의 선례를 따라 자오곡 지름길로 장안을 기습 공격하자
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제갈량은 위험한 작전이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연은 이를 두고두고
투덜거린다. 더우기 수차에 걸친 제갈량의 출정이 번번히 성과 없이 무위로 끝남에 있어서랴.
한신은 불시에 아무도 예상 못한 진창 험로를 넘어 초의 삼진을 일거에 평정하고 이어서 함양(장
안)을 장악함으로써 항우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었다. 해서 여기서도 위연의 주장을 따랐다면 과
연 어떠했을까 하는 게 삼국지를 읽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짓게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제갈량은 장안까지는 한번도 진출하지 못하였다. 제갈량은 그래서 더욱 그런 위연을 좀
부담스러워 했을 수도. 제갈량도 인간이었을 테니까.
어쨌든 위연은 계속되는 위와의 전투에서 제갈량을 수행하며 촉군의 선봉장 역을 다한다.
제갈량이 진중에서 병이 들어 칠일기도에 들어갔을 때 위연은 허둥대다가 그 실날 같은 생명의
등불을 밟아 꺼뜨린다.
ㅡ 위연이 황공복지하여 죄를 청한데 강유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칼을 뽑아 위연을 베려하자
제갈량이 말린다.
"사생이 명이 있나니 가히 빌어 얻지 못하리로다. 이는 내 명이 진할 때요 문장의 허물이 아니니라."
ㅡ (삼국지 본문에서)
제갈량은 철군 지시를 한다. 군 지휘권은 일단 양의와 강유에게 위임된다. 제갈량은 자기 사후 위
연이 반할 것에 대비하여 그들에게 밀계를 내린다.
평소 위연과 양의는 사이가 좋지 않아 제갈량은 고민한다. 각자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라 어느
한 쪽을 두둔할 수도, 자를 수도 없었다. 군 지휘권이 양의에게 간다면 위연은 `반골'과는 관계없이
당연히 반발할 것이었다. 이는 제갈량 아니라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시 서열로 보면
위연을 능가하는 장수는 없었다. 위연이 장성급이라면 양의는 영관급이라고나 할까. 천하의 위연
이 양의 따위의 지시를 받으며 그 애숭이들 앞에 굽신대야 한다는 게,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따
라서 이 마지막 상황에서 위연이 반하리라는 공명의 예상은 평범한 사실로 보이며 그 긴박한 철군
과정에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공명의 입장도 또한 이해되는 일이니, 이때 위연의 선택은 그럼
무엇이었을까?
이걸 보면 인간의 인성이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결국 위연은 양의의 군령을 무시하고 독자적 군사 행동에 나선다. 소위 반란이다. 목표는 양의 등
을 제거하고 군지휘권을 앗으려는데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의 거사는 실패로 끝나고 그의 삼족
이 멸하는 참화를 입는다. 그의 허망한 종말이다.
이게 다 제갈량의 각본에 의한 것이라 하겠는데, 그럼 제갈량은 왜 위계질서를 무시해가면서까지
위연을 버려야만 했을까?
소설 삼국지에서는 일찍이 `반골'을 들어 제갈량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은 아닐 것이다.
뭔가 기피증이랄까, 공인으로서 내놓고 말 못할 사적 감정 같은 거 아닐까?
가만 보면 작가가 삼국지 전편을 통해 가장 미화시키려한 인물은 역시 제갈량으로 보인다. 따라서
독자는 매사에 제갈량의 생각이라면 다 옳은 걸로 믿게 된다. 그러나 위연의 경우를 볼 때 제갈량의
처사가 반드시 공정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능력이나 경륜이나 공적면에서 위연을 따를 사
람이 당시 누가 또 있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을 뒤로하고 그야말로 새까만 후배들에게 지휘권을 넘
겨준 처사를 그래도 제갈량이 했으니까 그냥 옳다고 해야 되는 것인지?
그러나 대붕의 깊은 속내를 우리가 어찌 헤아려 볼 수가 있으리오. 또 역사의 기록이란 그리 크게
믿을 것도 없는 것이고, 어쩌면 사실과는 전혀 다를지도 모르는 것이지만, 어쨌든 그걸 읽는 사람
들 가슴엔 저마다의 감상이 있는 것이니 그거까지야 누구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랴.
밤은 길고 잠은 안 오고. 책 좀 보려하나 눈도 눈이지만 마땅한 읽을거리가 없다. 옛날엔 읽을 책을
구할 수가 없어서 못 읽었지만 반대로 지금은 그건 얼마든지 있다. 지금 읽을거리란 쉽고 재미있고
부담없는 것을 말함인데 그 마땅한 게 있어야지. 외국 문학은 그 끝없이 늘어놓는 자질구레한 얘기
들이 귀찮고 새로운 책을 사러 가 봐도 맘에 드는 게 별로 없다. (그만큼 내 자신이 시대에 낙후됐음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 만만한 게 또 삼국지라.
그러나 그것도 그 전말을 다 알고 있어 재미가 별로 나지 않는다. 다만 진수의 삼국지를 곁들여 보면
그래도 그 이야기들이 다 허구가 아니고 사실인 것도 많을 것 같아 흥미를 더하게 된다. 2천년 전 사람
들의 생생한 기록을 지금 본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이란 말인가. 그래서 역사의 기록이 또한 소
중한 것이 아니랴.
그런데 우리가 일상 쓰는 말에서 반골이란 그리 나쁜 뜻이 아니다. 아마 개중엔 스스로 반골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잘 맞질 않는 사람, 조직에서 바른말 잘 한다는 사람 그래
서 조직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조직을 썩지 않게 하는 사람--그들이 반골이다. 그러니까 Yes man
에 대응하는 말로 보면 적당할 것이다. 그들이 조직에서 인정 받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테지만.
인정 받기보다는 어쩌면 제거되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조선 시대의 고매한 선비들처럼.
위연의 경우도 그런거나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