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의 방
라파엘로의 방으로 가는 길목이 있는 지도의 방 벽면에 걸린 이탈리아 전역 의 지형도는 길이가 120m라 하며, 아 치 천장의 장식들은 체사레 네비아, 지 롤라모 무치아노 같은 자신들의 개성을 살린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화려하기 그 지 없지만 양쪽 벽에 걸려있는 지도도 세련되고 정밀하여 천정과 지도를 함께 보기에 바쁘다.
지도가 걸린 이 방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 때 그의 지배권에 속하는 40개의 성당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교황의 명을 받은 이냐치오 신부가 1580년부터 3년에 걸 친 현장 답사 끝에 만든 것으로 그의 지도의 방 복도 성이 엿보이는데 현대의 인공위성으 로 제작한 지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세밀하다.
일 년에 6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 방 문에서 생기는 진동으로 인해, 벽화가 벽면에서 이탈하면서 떨어질 위험이 있 어 2012년부터 바티칸 미술품 후원회 와 캘리포니아 챕터후원회의 기부로 4 년간의 복원작업으로 지도의 더러운 부 분을 닦아내어 코르시카와 몰타까지 보 이게 되었다 하니, 사람이든 단체든 기부가 가장 보람 있는 것임을 아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회화관(피나 코테카)
피나 코테카는 이탈리아어로 미술관, 화랑을 뜻한다. 현재의 회화관은 1932년 10월에 개장한 건물로 바티칸 미술관을 구성하는 건물 가운데서 가장 마지막에 지어졌다. 이 건물은 교황 비오 11세의 의뢰를 받은 루카 벨트라미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설계했으며, 내부에는 18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예술품을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이곳의 작품을 보면 그 시대 회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초기 소장품은 교황 비오 6세가 18세기 후반에 수집한 그림 118점밖에 없었으나 점점 숫자가 늘어나 현재는 그림이 460점에 달한다. 그 중에는 조토 디 본도네, 프라 안젤리코, 피에트로 페루지노,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티치아노 베첼리노, 파올로 베로네세,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이것이 카라바조의 이름이다), 등 이탈리아 예술사에서 대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이중 아래의 세 작품은 꼭 보아야 한다.
삼단화 - 조토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원근감을 사용하여 입체감이 나는 그림이 그리기 시작했고,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평면으로 그려 문자를 모르는 평민들에게 그림으로 신앙심을 부추겼던 전래의 방식에서 각 인물의 표정과 피부색 등이 다르게 표현되고 걸친 의상도 구분되는 묘사가 시작되었다. 이 사조를 이끈 주요 화가가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조토는 치마부에의 제자로, 회화의 흐름을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이끈 화가다.
그는 정면만을 그렸던 종전의 화법에서 벗어나 측면과 후면을 묘사하여 평면에 입체감을 표현했으며, 배경에 풍경과 건물들을 그려 넣으며 그림에서 배경이란 요소를 처음 도입한 화가로, 사실 기록을 위한 도구였던 회화를 작가의 감정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매체로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스승을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지오토는 생전에 대가(大家)로 추앙 받았다.
그리스도의 변용 – 라파엘로
라파엘로가 20대에 그린 폴리뇨의 마돈나, 30대에 그린 그리스도의 변용과 10대의 작품인 성모의 대관이 전시되어있다. 라파엘로가 37세의 나이로 죽기 전 2년간 그린 마지막 유작인 ‘그리스도의 변용’은 그가 완성시키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아 그의 제자 로마노가 완성하였다.
신약의 마태복음의 두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예수가 승천하 자 모세와 엘리야가 그 뒤를 따 르고 있는 모습이 상단에 밝은 색감으로 그려져 있고, 하단에 는 예수의 제자들이 귀신 들 린 어린 소년을 고쳐 주지 못해 소란스러운 모습이 어둡게 묘사 되어있다. 라파엘로의 그림 중 에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 가되어, 라파엘로의 장례식 때, 관 머리맡에 놓여 있다가 바티 칸으로 옮겨온 작품이다.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제작년도가 1480년에서 82년으로 추정되며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는 나폴레옹의 삼촌인 추기경 조셉 페쉬가 우연히 로마의 신발수리공이 작업 테이블판때기로 사용하고 있던 윗부분을 구입했고, 몇 년 후 의자 등받이로 사용 중이던 아래 부분마저 구입하여 아래 위를 맞춘 것이다.
18세기 초반 스위스 화가 안젤리카 코프만의 유언장에 의해 ‘성 에로니무스라’는 레오나르도의 작품이 있다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코프만이 죽은 이후 또 다시 그 추적이 불가능해 졌다는 이 그림은 추기경 사후, 경매를 통해 여러 번 주인이 바뀌다가 1856년 교황인 비우스 9세에 의해 피나 코테카에 오게 되었다.
비록 미완성 작품이지만 강렬한 선과 뚜렷한 명암 대비로 높은 완성도를 보 여주는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성 히에로니무스 는 라틴어 성서를 번역한 인물로, 광야 에서 22년 동안이나 작업을 했다고 하 며, 앞의 동물은 그의 발에 박힌 가시를 제롬이 뽑아주어 이후 항상 제롬의 곁 을 떠나지 않고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 는 사자다.
그리스도의 매장 – 카라바조
17세기에 카라바지스트라고 불렸던, 카라바조 추종자들은 그의 대담한 연극적인 명암 대조와 개성적인 인물묘사를 모방했으나 질투심 많은 카라바조의 자신을 모방한다며 추종자들을 비난하고 싸움을 걸어 괴롭혔지만, 르네상스와 고전주의를 탈피하는 새로운 바로크 화풍(정형적인 규칙이나 비례로부터 벗어난 화풍)은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의 바로크 거장들로 이어졌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화가인 그의 작품 중 대작에 속하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내려져 관에 매장되는 순간을 그린 그림이다. 카라바조는 성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영웅적인 모습보다 평범하거나 하찮은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배경을 어둡게 하고 한 줄기 빛을 이용해 더욱 극적인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의 얼굴에는 자신의 얼굴을, 마리아의 얼굴은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한다.
1377년 아비뇽 유수로부터 로마 로 귀환한 그레고리 1세부터 약 640년간 교황들의 주거지로 사용 되는 이 건축물은 1450년 니꼴로 5세 때 공사를 시작하여 16세기 율리오 2세 교황이 마무리한 것 이다. 팔각형으로 된 벨베데레 정원은 15세기 말의 대 건축가, 브라만테가 설계한 것으로 교황 인노첸소 8세 별장의 중심 부분 이다.
벨베데레의 안뜰을 둘러싸고 몇몇 조각 미술관들을 포함한 미술관들이 집합해 있다. 비오-클레멘스 미술관은 1771년에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세웠으며, 원래 이곳은 고대 그리스, 로마와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소장하는 곳이었다. 미술관과 전시실은 클레멘스 14세의 후임자인 교황 비오 6세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다.
기타 박물관
키아라몬티 미술관(Museo Chiaramonti)
이 미술관은 19세기 초 교황 비오 7세 제위 동안 만든 복도로, 이름은 교황에 선출되기 전 그의 성인 키아라몬티에서 유래하여 붙여진 것이다. 1807년에 안토니오 카노바의 계획으로 이 복도에 전시된 1000개가 넘는 조각물은 이탈리아 고대사와 복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아치형 긴 복도 양쪽에는 기원 후 1, 2세기부터의 등신대 조각상과 흉상들이 무수히 진열되어 있으며, 눈에 익은 아우구스투스 조각상이 섬세한 조각의 흉갑을 입고 진열되어 있다. 키아라몬티 미술관의 비석 전시실에는 3,000개가 넘는 비석과 비문이 있지만, 이곳은 연구를 위한 목적으로 특별히 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대개 관람이 불가하다.
키아라 몬티 미술관 복도
에트루리아(Etruria) 미술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세운 1837년 미술관으로, 발굴 작업을 통해 획득한 에트루리아인들이 만든 작품들을 소장한 여덟 곳의 전시관 집합체이다. 1828년 테베레 강 남단에 위치한 라티움에서 출토된 에트루리아 유물 발굴이 1870년 교황령 상실로 발굴이 불가능하게 되자 수차례에 걸친 구입과 기증을 통해 소장품의 숫자가 증가했다.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의 생활상을 짐작케 하는 항아리, 석관, 청동제 미술품 등을 비롯한 유물들이 22개의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 미술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세운 이 미술관은 파피루스와 그라시 전시관, 동물 미라 같은 고대 이집트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현대 종교 미술관(Collection of Modern Religious Art)
1973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개관된 현대 종교 미술 컬렉션은 세계 250여 명의 예술가들이 만든 800여 점의 작품이 6개 섹션으로 구분되어 55개의 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 이곳에는 로댕, 반 고흐, 폴 고갱, 오딜롱 르동, 루오, 칸딘스키, 샤갈,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등 현대 미술의 거장들이 남긴 종교적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선교 민족학 박물관(Missionary Ethenic Museum;)
1925년 희년을 맞아 교황 비오 11세의 명으로 1926년 11월 12일 개관했다. 개장 1년 후 1927년 12월 21일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옆의 라테라노 궁전으로 박물관을 옮겼고, 1963년 라테라노에서 바티칸으로 유물을 옮긴 후 1973년 교황 바오로 6세의 명으로 현 위치에 박물관을 새로이 개관했다. 초기 전시품은 전세계에서 수집한 유물 10만여 점에서 엄선한 4만여 점으로 컬렉션을 구성했다. 이후 수집과 기증이 반복되어 현재는 10만여 점이 넘는 컬렉션으로 전시품이 증가했다. 내부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네 전시실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