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타고 오는 슬픈 소식을 어찌할까!
SNS라는 것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마치 우리 이웃에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일상생활 속에 넣어 주고 있다. 한국에 있으면서 인도에 있는 에이즈 고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는지를 시시각각으로 보고 받을 수 있다. 네팔 골짜기에 사는 아이들이 어떤 집에서 살며 아침마다 어느 산골짜기를 지나 학교에 가는지도 알 수 있다. 미얀마의 난민 캠프의 소식도 원하지 않더라도 순식간에 접할 수 있다. 피가 낭자한 전쟁과 테러의 소식도 몇 분 내로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다. 기후와 장맛비 소식, 농사의 풍작과 흉작 소식과 정치와 경제 상황에 대한 뉴스도 클릭만 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서 아시아 여러 도시 빈민가에서 일어나는 폭동과 사고와 사망의 소식도 바로 바로 듣게 된다.
때때로 SNS가 주는 다양한 소식과 함께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지고 감정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가슴이 터진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SNS는 희망과 위로, 생명과 평화의 기쁜 소식보다도 폭력과 전쟁과 죽음의 슬픈 소식을 더 많이 날라주며 마음 약한 사람의 시간과 눈물을 무시로 훔쳐간다. 몸은 하나인데 SNS를 타고 오는 소식은 너무 많다. 무례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SNS 소식을 정리하노라면 일같지도 않은 일로 하루가 가고 번아웃 된다.
SNS가 주는 가장 큰 문제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진위를 파악하였다 해도 몸이 하나이고 유한한 에너지와 자원, 시간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요구하는 일에 다 참여할 수 없으며 원하는 대로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슬픈 소식을 나누며 주변의 사람들을 동원하려고 해도 사람들이 동원이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온갖가지 세계 뉴스 홍수에 시달리며 전쟁과 대량 학살, 기아와 폭동 등 불행하고 불편한 폭력과 빈곤에 불감증이 된 나머지 나눔과 섬김의 의미와 가치를 회의하며 무관심하게 되었고. SNS를 통해서 받는 과장된 동영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위기감으로 선한 마음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네 보통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세상의 거대 담론에 일일이 공감하며 동행하기에 현실적으로너무 벅차다. 인류의 평화와 공생공존이 소중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버겁게 만드는 세계로의 초대는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면서 무력감과 거부감만 줄 수 있다.
SNS 가 빚는 인간의 심리와 사회생태 환경 속에서 나는 날마다 SNS를 타고오는 슬픈 소식에 고스란히 노출 된다.
오늘 마니푸르 폭동을 피해 강을 건너 아쌈으로 피난을 간 난민 지도자에게 부족의 청년이 살해당하였다는 슬픈 소식이 왔다.
그들은 1년 전 메이테이족의 폭동과 방화를 피해 밤에 강을 건너 아쌈주로 피난하였다. 처음 몇 개월 동안 그들은 그 주 정부의 지원으로 난민캠프에서 지내며 식량을 공급받았다. 우리 모임 또한 식량과 돼지고기와 겨울옷으로 긴급구호를 하였다. 그러나 폭동이 장기화 되고 난민들이 갈수록 늘어나자 그 지역의 정치인들이 난민들에게 제공하였던 가건물과 캠프를 헐어 버리고 사람들을 쫓아버렸다. 난민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져 일부는 친지를 찾아 미조람으로 떠났고 또 다른 일부는 아쌈 다른 지역으로 갔다. 오갈 데가 없어 남은 자들은 인근 여러 산골마을로 흩어졌다. 난민들이 강제로 흩어져서 우리의 긴급구호도 자동적으로 중단됨에 따라 우리는 모금의 중압감에서 벗어났고 지도자와 남은 자들에 대한 소식만 가끔씩 주고 받게 되었다.
작은 읍 일대에 남은 자들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족이 다르고 언어도 풍습도 다른 아쌈주에서 떠돌이로 살며 두려움에 떨었다. 가져온 돈은 다 떨어졌고 일자리도 없고 그렇다고 당장 돌아갈 희망의 조짐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매주 일요일에 한 자리에 모여 예배드리며 기도하며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들의 기대를 조롱하듯이 며칠 전에 폭도들이 그들이 떠나 온 빈 집에 들어가 약탈을 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 난민들은 강 너머에 있는 자기 집들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았고 무력감과 허탈감에 빠져 탄식하며 울었다.
돌아갈 집이 잿더미로 스러지는 것을 바라보는 난민들이 받았을 충격과 상처가 얼마나 컸을 것인가? 빈 집을 약탈하고도 모자라 집에 불을 지르는 폭도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며 방화범과 폭도들을 방치하는 경찰관들과 주정부의 입장과 자세는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분노하며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 있길 간구하였다. 마음을 추스르며 지난 방문 때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청년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어왔다.
청년이 불에 탄 집을 살피려고 마을로 잠입하다가 백주대낮에 폭도들의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사고 현장에 바로 출동하지 않고 늑장을 부렸다. 난민들은 무고한 청년의 죽음에 분개하여 시신을 요구하며 사인을 밝히라고 하였으나 경찰은 계속 조사 중이라고 대답하며 사건을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난민들은 담당 경찰서가 폭동지역에 있기 때문에 감히 들어가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시위를 벌이다 해산하였다고 하였다.
대낮에 소수부족민들의 집에 방화를 하여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방화를 하는 폭도들이 지탄도 처벌도 받지 않는 사회에 대하여 분노하며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메조리티가 아니라는 이유로 테러를 당하고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진상을 밝히지 못하는 약자의 설움과 원한, 무력감과 무능감이 가슴을 짓눌렸다.
메조리티들의 위세와 기득권 때문에 살인의 진상을 밝히지 못하는 경찰들과 살인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도 없고 죄의식도 없는 메조리티들의 세상이 무섭다.
그 땅이 아닌 이 땅에 사는 나는 이 땅에서 태어 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그 땅의 폭동이 속히 끝나길 빈다. 그 땅에 평화가 임하여 소수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의 존엄이 두 번 다시 무참하게 짓밟히지 않길 간구한다. 폭동으로 불탄 집과 교회에 관심을 가지며 함께 고난을 짊어지게 되길 소망한다.
이렇게 SNS로 꼭 들어야 할 소식을 주고받으며 함께 기도하며 상부상조하는 것,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존공생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은 참으로 좋다. 다 할 수는 없지만 은혜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감당하며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요즈음은 공적 소식보다 개개인의 소식들이 더 많이 들어온다. SNS가 없으면 결코 받지도 듣지도 않을 소식들이 마구잡이로 들어 오므로 마음이 힘겹다. SNS가 전해주는 개별소식을 처리하느라 많은 시간, 감정, 에너지를 쏟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사망 소식, 교통사고 소식, 입원 소식, 결혼 소식, 파산 소식, 기타 불행한 소식 등이 나를 흥분시키기도 하고 분노하게도 하며 슬픔에 빠져 울게도 만든다. 때로는 몸과 마음이 유리된 기분이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이 온통 저쪽의 일에 빠져서 현실감을 잃기 때문이다.
타국, 멀리에 있는 나에게 굳이 개별적인 슬픈 소식을 전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들은 소식을 전해주며 내가 마치 그곳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해 주길 바란다. SNS를 따라가노라면 나의 시간과 감정, 에너지가 안개처럼 해체되는 것을 느낀다. 마음이 여려서 소식을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냥 지나치면서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다양한 SNS를 타고 오는 슬픈 소식에 이대로 계속 나를 노출시키면 쓰러질 것이다.
하나님도 아닌 자가 세상 모든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함께 하려는 것이 피조물로서는 가당치도 않고 오히려 자신의 영적 피폐와 교만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인 나를 바라보게 하여 사람들을 우상에 빠지게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SNS를 타고 오는 슬픈 소식을 어찌할 것인가?
오는 대로 받아서 보듬자니 유한한 인간으로서 너무 힘들고, 외면하자니 하소연할 곳이 없어 멀리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는 그들의 마음이 너무 애처롭다.
성서는 고달파하며 부대끼는 나에게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된다" 고 하신다.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신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신다.
주님은 지금도 스스로 살 수 없는 자들을 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식탁으로 초청하신다.
SNS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들은 크로노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전쟁과 내전과 폭동, 자원 고갈, 난폭한 기후,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른 인간 소외와 계급화를 자기 구미대로 가감(加減) 편집하여 우리를 불안한 미래로 내동댕이 친다. 우리를 클릭하는 하나의 숫자로 취급하며 클릭의 숫자로 권력과 영향력을 발휘하며 우리를 뉴스 소비자로 만들어 소진시킨다. 이런 SNS 횡포에 휘둘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작은 자들의 음성,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 생명의 존엄을 인정받지 못하는 영혼들, 상처받은 양들의 신음을 분별하여 듣고자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SNS로 찾아오는 무례하고 불쾌하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나의 힘과 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영을 힘입어서 주어진 길을 가고자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과 관용, 분별과 통찰, 자유와 평화로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고통당하고 싶다.
아침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고통하며 신음하는 우리에게 나타나시길 빈다.
2024년 6월 1일 토요일 인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