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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양단(首鼠兩端)
쥐가 머리를 내밀고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
首 : 머리 수(首/0)
鼠 : 쥐 서(鼠/0)
兩 : 두 량(入/6)
端 : 끝 단(立/9)
쥐구멍에서 방금 나온 쥐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은 겁에 질려서일 수도 있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판단이 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가난한 양반 씻나락 주무르듯’ 이란 속담과 상통한다.
가난한 양반이 종자로 뿌릴 볍씨를 털어먹자니 앞날이 걱정스럽고 그냥 두자니 당장 굶는 일이 걱정되어서 한없이 주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우물쭈물하기만 하면서 진퇴나 거취를 정하지 못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史記(사기)’ 魏其武安侯(위기무안후) 열전에 이 성어가 나온다.
前漢(전한, 기원전 206~기원후 24년) 6대 景帝(경제)의 외척인 竇嬰(두영, 竇는 구멍 두, 嬰은 어릴 영)과 처족인 田蚡(전분, 蚡은 두더지 분)은 7대 武帝(무제)가 즉위하자 더 권력을 강화하게 됐다.
하지만 연장자인 두영은 지는 권력, 승상이 된 전분은 뜨는 태양이라 더 실세였다.
두영과 함께 전란에서 큰 공을 세운 바 있는 灌夫(관부)란 장군은 이것이 불만이었다.
전분의 집에서 고관대작이 모인 주연이 벌어졌을 때 두영의 권유로 억지 참석한 관부가 주법을 가지고 시비를 벌여 주인까지 매도했다.
화가 난 전분이 관부를 잡아 옥에 가두고 처형하려 했으나 두영이 손을 써서 일이 조정회의에 부쳐지게 되었다.
무제도 난감하여 관리의 죄를 규명하는 어사대부 韓安國(한안국)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양쪽 다 주장하는 것이 옳으니 왕께서 알아서 재단하시라고 한다.
결정을 못하고 저녁이 되어 퇴궐할 때 전분은 한안국을 불러 쏘아 붙였다.
‘우리는 함께 힘을 합쳐 그 대머리 늙은이에게 맞서야 하는데 그대는 왜 좌우 힐끔거리는 쥐새끼 모양 갈팡질팡했는가(與長孺共一老禿翁 何爲首鼠兩端/ 여장유공일노독옹 하위수서양단)?’
孺(유)는 어릴 유,
禿(독)은 대머리 독이다.
대머리 늙은이는 두영을 가리킨다.
후일담이지만 두영은 전분 일파가 헐뜯는 말에 넘어간 왕의 명령으로 참수되고 말았다.
流言蜚語(유언비어)의 출처가 된다.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수서양단(首鼠兩端)
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
首 : 머리 수
鼠 : 쥐 서
兩 : 두 양
端 : 단정할 단
[동의]
좌고우면(左顧右眄)
수시양단(首施兩端)
좌첨우고(左瞻右顧)
좌면우고(左眄右顧)
좌고우시(左顧右視)
수서(首鼠)
[유사]
우유부단(優柔不斷)
애매모호(曖昧模糊)
전첨후고(前瞻後顧)
[속담]
○ 이 장떡이 큰가? 저 장떡이 큰가?
○ 가난한 양반 씨나락 주무르듯 한다.
○ 방에 가면 더 먹을까, 부엌에 가면 더 먹을까.
이 성어는 쥐가 구멍 밖으로 머리만 내놓고 주위를 살피다. 곧 주저하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상태, 혹은 두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태를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수서(首鼠)는 ‘쥐가 고개를 내미는 모양’이고, 양단(兩端)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양쪽 끝’이라는 말로, 쥐가 머리만 내밀고 나갈까 말까를 망설인다는 뜻이다.
즉,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쥐(鼠)의 성질(性質)은 의심(疑心)이 많아 구멍에서 목을 내밀고 사방(四方)을 엿보며 나갈까 말까 결정(決定)을 짓지 못하는데, 이를 비유(比喩)하여 나타낸 말이다.
사기(史記) 위기 무안후열전(魏紀武安侯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전한(前漢) 7대(代) 황제(皇帝)인 무제(武帝:B.C. 141∼87) 때의 일이다. 5대(代) 문제(文帝)의 황후(皇后)의 조카인 위기후(魏其侯) 두영(竇孀)과 6대(代) 경제(景帝)의 황후(皇后)의 동생인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은 같은 외척(外戚)이었지만 당시 연장자(年長者)인 두영(竇孀)은 서산낙일(西山落日)하는 고참(古參) 대장군(大將軍)이었고, 전분(田蚡)은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신진(新進) 재상(宰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영(竇孀)의 친구(親舊)인 관부장군(灌夫將軍)이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모인 주연(酒宴)에서 전분(田蚡)에게 대드는 실수를 범했다. 사건(事件)의 발단(發端)은 관부(灌夫)가 두영(竇孀)을 무시(無視)한 한 고관(高官)을 힐책(詰責)하는데 전분(田蚡)이 그를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부(灌夫)가 한사코 사죄(謝罪)를 거부(拒否)하자 이 일은 결국 조의(朝議)에 오르게 되었다. 양쪽 주장(主張)을 다 들은 무제(武帝)는 중신(重臣)들에게 물었다.
“경(卿)들이 판단컨대 어느 쪽이 잘못이 있는 것 같소?”
처음에는 의견(意見)이 둘로 나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영(竇孀)의 추종자(追從者)로 알려진 내사(內史:도읍을 다스리는 벼슬) 정당시(鄭當時)조차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애매(曖昧)한 태도(態度)를 취했다. 그러자 어사대부(御史大夫:감찰 기관의 으뜸 벼슬) 한안국(韓安國)도 명확(明確)한 대답(對答)을 피했다.
“폐하, 양쪽 다 일리가 있사와 흑백(黑白)을 가리기가 심히 어렵나이다.”
중신(重臣)들의 불분명(不分明)한 태도(態度)에 실망(失望)한 무제(武帝)가 자리를 뜨자 조의(朝議)는 거기서 끝났다. 전분(田蚡)은 화가 나서 한안국(韓安國)을 책망(責望)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首鼠兩端]처럼 망설였소? 이 사건(事件)은 시비곡직(是非曲直)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인데, 그대와 더불어 대머리가 벗겨진 늙은이를 해치우려 했는데, 어찌하여 애매(曖昧)한 태도(態度)를 취했는가?”
이 말은 주견(主見)이 없이 왜 우물쭈물했는가 하는 전분(田蚡)의 책망(責望)이었다. 이래서 양다리를 걸친 채 정세(情勢)를 살피고 있는 상태(狀態)나 애매(曖昧)한 태도(態度)를 수서양단(首鼠兩端)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 때 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말했다.
“제게 묘안(妙案)이 있습니다. 무안후(武安侯, 전분)께서 먼저 자리를 물러나는 것입니다. 불민(不敏)한 제가 재상(宰相) 자리에 앉아서 이리 되었으니 페하께 사죄(謝罪)합니다. 하고 물러나십시오. 그리 하시면 오히려 폐하의 신임(信任)이 더욱 두터워 질 것입니다.”
이 말대로 무안후 전분이 물러나 버리니 위기후(두영)편에서 계속 무안후편을 헐뜯다가 도리어 미움을 받아 관부 장군이 처형되고 위기후 두영이 쫓겨나서 싸움이 이로써 끝나 버렸다.
어사대부(御史大夫)의 말대로 무안후(武安侯)는 파면(罷免)은커녕 오히려 나라를 생각하고, 겸손(謙遜)하다는 칭찬과 함께 더욱 부귀(富貴)를 누렸다. 그 후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은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고 오랫동안 잘 살았으나 늙고 병(病)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위기후(魏其侯) 두영(竇孀), 관부장군(灌夫將軍) 나를 용서(容恕)해 주시오. 제발, 제발 용서(容恕)해 주시오. 내가 잘못했소”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용하다고 소문난 무당(巫堂)을 여러 번 불러다가 보였건만 헛소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원한(怨恨)을 가슴에 품고 죽은 위기후(魏其侯)와 관부장군(灌夫將軍)의 원혼(冤魂)이 나타나 위협(威脅)하여 더욱 병(病)이 심해지니 치료(治療)할 방법이 없다고들 하였다.
무안후(武安侯)는 괴로움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다가 끝내 숨지고 말았다.
어떤 일을 판단(判斷) 할 위치(位置)에 있으면서, 판단(判斷)을 해야 함에도 이 편(偏)을 들까? 저 편(偏)을 들까? 어느 편(偏)을 들면 자기에게 유리(有利)할까? 계산(計算)을 하면서 고개를 내밀고 망설이는 자(者)를 쥐구멍에서 쥐(鼠)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표정 같다 해서 수서양단(首鼠兩端)이라고 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아주 오랜 유명한 말이다.
누구나 인생(人生)은 선택(選擇)의 연속(連續)이다.
일생(一生)을 살아가는 데는 행운(幸運)도 있고 불운(不運)도 있지만, 때로는 사람의 지식(知識)을 초월(超越)한 어떠한 힘이 작용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일상생활(日常生活)에서 목전(目前)에 당한 어떤 일을, 자신의 의지(意志)로 선택(選擇)하여 그 연결(連結)을 과거(過去)의 결과로 삼아 자신을 존재(存在)시킨다.
예컨대 소속(所屬)된 회사(會社)로부터, 자율적(自律的)인 연수교육(硏修敎育)의 참가(參加)를 요구(要求) 받았을 경우, 선택지(選擇肢)는 두 가지이다. 즉‘가느냐, 아니냐’중의 하나를 선택(選擇)해야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갈림길(岐路)에 서있는 처지(處地)라, 연수(硏修)는 귀찮다. 그러나 회사(會社)가 바라는 일을 거절(拒絶)하면, 앞으로의 근무평가(勤務評價)에 지장(支障)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번에는 빠질 수 있겠지만 다음 차례는 면하기 어렵겠지? 아니면 남들은 다 가는데, 나라고 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쩐지? 좀 귀찮더라도 참가하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을 거야 등 온갖 생각을 다하지만, 선택(選擇)은 이쪽이냐? 저쪽이냐 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신의 선택(選擇)에 앞서, 회사(會社)를 원망(怨望)하거나, 동료(同僚)나 상사(上使) 아니면 배우자(配偶者)의 무능(無能)을 탓하면서, 책임(責任)을 남에게 전가(轉嫁)함으로써 불운(不運)의 원인(原因)을 다른 것에서 찾아 한때의 짜증을 모면(謀免)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選擇)한 결과(結果)를 남에게 책임(責任)을 돌리고 있는 한, 당면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마이너스 기류(氣流)는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人生)에 책임(責任)을 지려는 각오(覺悟)가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不安)하고 불행(不幸)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대목과 관련된 사자성어(四字成語)에 수서양단(首鼠兩端)이란 말이 있다. 이 글 뜻은 구멍에서 머리만 내민 쥐(鼠)가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갈 길을 찾는 모습을 말한 것인데, 줏대없는 인간(人間)의 처세술(處世術)을 빗대어 자기(自己) 결단력(決斷力)이 없음을 뜻한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던 갈림길에 섰을 때, 과감(過感)한 결단력(決斷力)으로 한쪽을 선택(選擇)해야 한다. 이런 경우(境遇)에는 인생만사새옹지마(人生萬事塞翁之馬)를 생각하자. 재앙(災殃) 뒤에는 반드시 경사(慶事)가 있을 것을 믿고, 신념(信念) 찬 결단(決斷)은 반드시 뜻밖의 열매가 맺을 것이라는 확신(確信)을 가지면 만사(萬事)가 성공(成功)할 것이다.
사람은 일생(一生)을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의사결정(意思決定)을 하고 살아간다. 직업(職業)의 선택(選擇), 배우자(配偶者)의 선택(選擇), 사업(事業)의 선택(選擇) 등 삶의 방향(方向)을 결정(決定)짓는 중요한 결정(決定)에서 식사메뉴, 관람(觀覽)할 영화(映畵)의 선택(選擇)등 사소한 것까지 다양(多樣)하다.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것인가? 망설여 본적이 있을 것이다. 아침 출근(出勤)시간 시계를 보며 버스를 탈것인가? 택시를 탈것인가? 망설이다, 결국 택시를 타면서도 지각(遲刻)해 본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사결정(意思決定)에 있어 결단(決斷), 선택(選擇)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선택(選擇)을 할지 갈팡질팡하며 자신이 내린 선택(選擇)을 수시(隨時)로 바꾸거나 자신이 내린 선택(選擇)에 대해 전념(專念)하기 보다 자신이 내린 선택(選擇)을 후회(後悔)하며 몰입(沒入)하지 못하고 중도(中途)에 멈추고 만다. 보통 이런 사람을 우유부단(優柔不斷)하다고 말하거나 결단력(決斷力)이 없다고 말한다. 사자성어(四字成語)로는 수서양단(首鼠兩端)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유형(類型)에 속한다. 개개인(個個人)의 의사결정(意思決定)과 개성(個性)을 존중(尊重)해 주는 서구(西歐)와는 달리 한국(韓國)의 문화(文化)는 유교적(儒敎的)인 성향(性向)이 강하기 때문에 주로 윗 사람의 지시(指示)에 의해, 권위(權威)에 의해 수동적(受動的)으로 움직여야 했고 교육문화(敎育文化)도 자신의 선택(選擇)보다 부모(父母)나 주위(周圍)의 영향(影響)이 더 많이 받아 자신의 일을 자유롭게 선택(選擇)하여 결정(決定)하고 그 일에 책임(責任)지는 과정(過程)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선택(選擇)에 대한 결정(決定)을 하지 못하고 늘 우유부단(優柔不斷) 할때 많은 삶의 에너지가 낭비(浪費)된다. 자신의 선택한 결정에 전념(專念)할 시간(時間)에 늘 선택(選擇)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번민(煩悶)하고 다른것을 선택하지 못한 후회(後悔)로 정작 자신의 일에 최선(最善)을 다하지 못한다. 사람은 일생을 사소한 결정에서 큰 결정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때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성격(性格), 결단력(決斷力)이 없는 성격(性格)은 개선(改善)하거나 변화(變化)를 시도해야할 대상(對象)이다.
결단력(決斷力)이 없거나 우유부단(優柔不斷)하다고 자책(自責)할 필요는 없다. 그 숨은 배경(背景)을 파악(把握)하고 이제부터 개선(改善)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쉽게 결정(決定)을 내리고 그일에 전념(專念)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훈련(訓練)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 자신의 의견(意見)을 존중(尊重)받지 못했거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비판(批判), 실패(失敗)의 두려움이 의식(意識)의 근저(根底)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選擇)에는 책임(責任)이 따르고 비난(非難)이나 비판(批判)이 따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수용(受容)되지 못했을 때, 또는 성공(成功)하지 못했을 때 두려움, 그러한 과거(過去)의 경험(經驗)이 사람을 우유부단(優柔不斷)하게 만드는 한 요인(要因)이다.
신중(愼重)함, 물론 중요(重要)하지만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사람은 어떤 결정(決定)에 있어 신중(愼重)하게 고려(考慮)하고 시간(時間)을 끌고 미루면 더 좋은 기회(機會)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옳치 않다. 세계적(世界的)인 기업(企業)들은 회사(會社)의 사활(死活)이 걸린 사업(事業)을 결정(決定)하는데 상당한 시간(時間)과 인력(人力)을 투자(投資)한다. 그러나 소수(小數)의 기업(企業)만이 성공(成功)한다. 이는 훌룡한 인재(人才)를 통해 시간을 오래 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成功)을 보장(保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신중(愼重)하고 시간(時間)을 더 투자(投資)할 때 좋은 선택(選擇)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착각(錯覺)이다. 정보화시대(情報化時代)의 범람(氾濫)속에 더 중요하게 부각(浮刻)되는 것은 직관(直觀)이다. 시간(時間)을 끌며 우호적(友好的)인 상황(狀況)이 오기를 기다리거나 더 좋은것을 기대(期待)한다는 것은 실패(失敗)에 대한 두려움의 무의식적(無意識的)인 변명(辨明)이며 상황(狀況)을 더욱 악화(惡化)시키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신중(愼重)하고 차분히 생각하되 결단력(決斷力)을 가지고 자신이 내린 결정(決定)에 최선(最善)을 다하는 것이다. 언제나 바른 결정(決定)만 할 수 없다. 잘못된 선택(選擇)이 실패(失敗)를 의미(意味)하지 않는다. 다만 일시적(一時的)인 실패(失敗)일 뿐이다. 잘못된 결정속에 배움이 있고 이는 다른일을 하는데 좋은 경험(經驗)이 된다.
우유부단(優柔不斷)하거나 결단력(決斷力)이 약한 중요한 이유에 하나는 선택(選擇)한 일의 과정(過程)이나 결과(結果)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을 선택(選擇)하면 그에 따르는 대가(代價)를 지불(支拂)해야 한다. 비난(非難)을 감수(感受)해야 할 수 도 있고 그일의 결과(結果)로 손실(損失)을 초래(招來)할 수 도 있다. 그러한 두려움이 선택(選擇) 앞에서 늘 우유부단(優柔不斷)하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는 상황(狀況)을 더욱 악화(惡化)시킨다는 것이다. 인생 뭐있나? 내가 선택(選擇)한 일에 최선(最善)을 다하고 그 결과(結果)는 책임(責任)진다는 배짱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 속담(俗談)에‘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마음의 연상작용(聯想作用)을 잘 나타낸 말이다. 과거(過去) 자신의 선택(選擇)에 대한 결과(結果)로 일어난 일에 과도(過度)하게 집착(執着)하거나 비난(非難) 당한 과거(過去)의 일이 늘 어떤 선택(選擇) 앞에서 무의식적(無意識的)인 두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통 야구(野球)에서 투수(投手)들이 15승 10패 정도이면 훌룡한 성적(成績)이라고 말한다. 이정도 성적(成績)이면 억대(億臺) 연봉(年俸)을 줄만하다. 패(敗)한 10 게임도 단순(單純)한 패배(敗北)가 아니라 팀이 길고 긴 페넌트 레이스의 과정(過程)이다. 승리(勝利)하는 날이 있으면 실패(失敗)하는 날도 있다. 과거(過去)의 실패(失敗)에만 집착(執着)해 있으면 앞으로 나갈 힘을 잃어 버린다.
결단력(決斷力)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연습(練習)과 실행(實行), 성취(成就)를 통한 자신감(自信感), 실패(失敗)를 통한 교훈(敎訓)의 반복(反復)이다. 방을 깨끗히 청소(淸掃)하겠다는 작은 결단(決斷)과 빠른 실행(實行), 미뤄 두었던 소소한 일들을 하겠다고 결심(決心)하고 실행(實行)에 옮기는 생활속의 결단(決斷)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작은 결단(決斷)과 실행(實行)은 큰일을 훌룡하게 선택(選擇)하고 자신의 선택(選擇)에 최선(最善)을 다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 인생(人生)의 큰 적(敵)인 우유부단(優柔不斷),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결단력(決斷力) 있는 사람이 됩시다.
▶️ 首(머리 수)는 ❶상형문자로 얼굴, 머리, 목 등 사람의 머리 앞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옛 자형(字形)은 머리털과 눈을 강조하였다. 머리는 몸의 맨 위에 있어 '우두머리, 처음'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首자는 ‘머리’나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首자는 사람의 머리를 뜻하는 글자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은 동물의 머리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首자를 보면 입이 길쭉한 동물의 머리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큰 눈과 뿔을 표현하고 있어서 마치 사슴의 머리를 그린 것과도 같았다. 이처럼 首자는 동물의 머리를 그린 것이지만 실제 쓰임에서는 사람의 ‘머리’나 ‘우두머리’를 뜻한다. 그래서 首(수)는 (1)시(時)나 노래를 세는 단위(單位) (2)동물(動物)의 개수(個數)를 세는 단위(單位) 등의 뜻으로 ①머리, 머리털 ②우두머리, 주장(主將) ③임금, 군주(君主) ④첫째, 으뜸 ⑤칼자루 ⑥요처(要處) ⑦끈, 줄 ⑧마리(짐승을 세는 단위) ⑨편(篇: 시문의 편수를 나타내는 말) ⑩시작하다, 비롯하다 ⑪근거하다, 근거(根據)를 두다 ⑫복종하다, 항복하다 ⑬자백하다, 자수하다 ⑭나타내다, 드러내다 ⑮향하다 ⑯절하다, (머리를)숙이다 ⑰곧다, 바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우두머리 추(酋), 머리 두(頭), 괴수 괴(魁)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꼬리 미(尾)이다. 용례로는 한 나라의 정부가 있는 도시를 수도(首都), 맨 윗자리를 수석(首席), 그러하다고 고개를 끄덕임을 수긍(首肯), 내각의 우두머리를 수상(首相), 등급이나 직위 등의 첫째나 우두머리 자리를 수위(首位), 반열 가운데의 수위로 행정부의 우두머리를 수반(首班), 위에 서서 집단이나 단체를 지배나 통솔하는 사람을 수장(首長), 한 단체나 기관 등 어떤 조직 가운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 또는 그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수뇌(首腦), 한 당파나 모임의 우두머리를 수령(首領), 사물의 머리와 꼬리를 수미(首尾), 해의 처음을 수세(首歲), 구멍에 머리만 내밀고 엿보는 쥐라는 뜻으로 진퇴나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의 비유한 말을 수서(首鼠), 목을 자름을 참수(斬首), 한 당의 우두머리를 당수(黨首), 국가의 최고 통치권을 가진 사람 곧 임금 또는 대통령을 원수(元首), 배의 머리를 선수(船首), 날이 썩 날카롭고 짧은 칼을 비수(匕首), 한자 자전에서 글자를 찾는 길잡이가 되는 글자의 한 부분을 부수(部首), 그러하다고 고개를 끄덕임을 긍수(肯首),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다는 처형을 효수(梟首), 사형수의 목을 옭아매어 죽이는 것을 교수(絞首), 학의 목으로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림을 비유하는 말을 학수(鶴首), 관을 쓰지 않은 검은 머리라는 뜻으로 일반 백성을 이르는 말을 검수(黔首), 여우는 죽을 때에 자기가 본디 살던 산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고향을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구수(丘首),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응한다는 뜻으로 뜻이 잘 맞아 일이 잘 되어감을 이르는 말을 수미상응(首尾相應),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을 수구초심(首丘初心), 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 또는 어느 쪽으로도 붙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서양단(首鼠兩端),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일을 해 나간다는 말을 수미일관(首尾一貫), 참형을 당하여 머리와 다리가 따로따로 됨을 이르는 말을 수족이처(首足異處), 비둘기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듯이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함 또는 그런 회의를 구수회의(鳩首會議),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학수고대(鶴首苦待), 여우는 죽을 때가 되면 제가 살던 굴 있는 언덕으로 머리를 돌린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고향을 그리워함을 이르는 말을 호사수구(狐死首丘) 등에 쓰인다.
▶️ 鼠(쥐 서)는 ❶상형문자로 쥐의 이와 몸을 본 뜬 모양이다. ❷상형문자로 鼠자는 ‘쥐’나 ‘좀도둑’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鼠자의 갑골문을 보면 쥐의 주둥이 주위에 흩어진 낱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곡식을 갉아먹고 있는 쥐를 표현한 것이다. 쥐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곡식을 훔쳐 먹고 살던 동물이다. 그러다 보니 鼠자에는 ‘좀도둑’이나 ‘간신배’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鼠자는 금문으로 넘어오면서 모양이 크게 변형되었는데, 쥐의 앞니는 臼(절구 구)자로 바뀌었고 꼬리와 발은 생략되었다. 鼠자는 쥐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鼢(두더지 분)자나 鼬(족제비 유)자처럼 설치류와 관련된 동물을 뜻하게 된다. 그래서 鼠(쥐)는 ①쥐(쥣과의 포유 동물) ②좀도둑 ③병(病)의 이름, 임파선(淋巴腺) 결핵(結核) ④간신(奸臣)의 비유 ⑤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걱정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쥐며느리를 서고(鼠姑), 족제비를 서랑(鼠狼), 쥐의 족속 또는 몹시 교활하고 잔일에 약게 구는 사람을 서족(鼠族), 좀도둑으로 자질구레한 물건을 훔치는 도둑을 서도(鼠盜), 목에 결핵성 림프선염이 생겨 곪아 뚫린 구멍에서 늘 고름이 나는 병을 서루(鼠瘻), 갈매나무를 서리(鼠李), 소인배들을 서배(鼠輩), 쥐의 털과 같은 빛깔 곧 짙은 잿빛을 서색(鼠色), 곡식을 쥐가 먹어서 나는 축을 서축(鼠縮), 쥐가 쏠아서 결딴냄을 서파(鼠破), 쥐의 가죽을 서피(鼠皮), 두 다리의 사이를 서혜(鼠蹊), 쥐의 쓸개라는 뜻으로 담력이 약한 것을 얕잡아 이르는 말을 서담(鼠膽), 들쥐를 야서(野鼠), 캥거루를 대서(袋鼠), 박쥐를 비서(飛鼠), 사향쥐를 사서(麝鼠), 토끼를 토서(兔鼠), 두더지를 토서(土鼠), 다람쥐를 산서(山鼠), 날다람쥐를 청서(靑鼠), 족제비를 낭서(狼鼠), 족제비를 황서(黃鼠), 흰쥐를 백서(白鼠), 땅강아지를 석서(石鼠), 두더짓과에 딸린 포유 동물을 분서(鼢鼠), 다람쥐과에 딸린 작은 동물을 석서(鼫鼠), 들쥐과에 딸린 포유 동물을 수서(水鼠), 쥐의 간과 벌레의 팔이라는 뜻으로 매우 쓸모없고 하찮은 것을 이르는 말을 서간충비(鼠肝蟲臂), 쥐나 개처럼 가만히 물건을 훔친다는 뜻으로 좀도둑을 이르는 말을 서절구투(鼠竊狗偸) 등에 쓰인다.
▶️ 兩(두 량/양, 냥 냥/양)은 ❶상형문자로 両(량)과 两(량)은 통자(通字), 两(량)은 간자(簡字), 刄(량)은 동자(同字)이다. 兩(량)은 저울추 두개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둘, 한쌍을 뜻한다. 兩(량)은 무게의 단위이며 나중에 돈의 단위에도 쓰고 또 둘, 쌍의 뜻으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兩자는 ‘둘’이나 ‘짝’, ‘무게의 단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동안 兩자는 저울추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해석했었다. 兩자가 ‘무게의 단위’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兩자의 금문을 보면 이것은 마차를 끌던 말의 등에 씌우던 ‘멍에’와 ‘고삐 고리’를 함께 그린 것이었다. 두 개의 멍에가 있다는 것은 말 두 필이 마차를 끌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兩자는 본래 ‘쌍’이나 ‘짝’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지만, 후에 저울을 닮았다 하여 무게의 단위로도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兩(두 량/양)은 ①두, 둘 ②짝, 쌍 ③두 쪽 ④동등(同等)한 것 ⑤기량(技倆), 기능(機能) ⑥수레를 세는 단위. 50승(乘) ⑦대(隊: 편제 단위. 25인) ⑧무게의 단위 ⑨필(길이의 단위) ⑩짝하다 ⑪장식하다, 꾸미다 ⑫아울러, 겸하여 그리고 ⓐ냥(화폐의 단위)(냥) ⓑ냥(무게의 단위)(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양쪽의 옆면을 양측(兩側), 조선시대 지체나 신분이 높은 상류 계급 사람 곧 사대부 계층을 이르던 말을 양반(兩班), 관련이 있는 두 쪽의 사물이나 사람을 양자(兩者), 사물의 양쪽의 면을 양면(兩面), 어떤 관계의 두 사람을 양인(兩人), 두 쪽이 다 큰 것을 양대(兩大), 어떤 사물의 두 가지를 성질을 양성(兩性), 서로 반대되는 양쪽 극단을 양극(兩極), 동물이 물 속이나 땅 위의 양쪽에서 다 삶을 양서(兩棲), 역량이 비슷한 같은 두 용자를 비유하는 말을 양호(兩虎), 두 집안을 양가(兩家),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움을 양난(兩難), 둘로 나눔을 양분(兩分), 아버지와 어머니를 양친(兩親), 두 과부가 슬픔을 서로 나눈다는 양과분비(兩寡分悲), 양손에 떡을 쥐었다는 뜻으로 가지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운 경우를 양수집병(兩手執餠), 둘 중에서 하나를 가림을 양자택일(兩者擇一), 용과 범이 서로 친다는 뜻으로 강자끼리 승부를 다툼을 양웅상쟁(兩雄相爭), 두 마리의 봉황이 나란히 날아간다는 뜻으로 형제가 함께 영달함을 양봉제비(兩鳳齊飛) 등에 쓰인다.
▶️ 端(끝 단, 헐떡일 천, 홀 전)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설 립(立; 똑바로 선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耑(단)으로 이루어졌다. 直立(직립)의 뜻이다. 또 음(音)이 斷(단)과 통하는 데서 빌어 자른 끝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端자는 ‘바르다’나 ‘단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端자는 立(설 립)자와 耑(시초 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端자의 갑골문을 보면 立자가 아닌 止(발 지)자와 耑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耑자는 잡초의 뿌리와 이파리를 표현한 것으로 ‘시초’라는 뜻이 있다. 여기에 발을 뜻하는 止자가 더해진 端자는 이파리가 앞으로 곧게 뻗어 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端자는 ‘바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耑자의 의미가 강하게 남아있어서인지 ‘시초’나 ‘끝’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端(단, 천, 전)은 성(姓)의 하나로 ①끝 ②가, 한계(限界) ③처음, 시초(始初) ④길이의 단위(單位) ⑤실마리, 일의 단서(端緖) ⑥까닭, 원인(原因) ⑦막료(幕僚) ⑧예복(禮服) ⑨조짐(兆朕) ⑩생각, 느낌 ⑪등차(等差), 등급(等級) ⑫가지, 갈래 ⑬문(門), 정문(正門) ⑭도대체(都大體), 대관절(大關節) ⑮때마침, 공교(工巧)롭게도 ⑯단정(端整)하다 ⑰바르게 하다 ⑱바르다 ⑲살피다, 그리고 ⓐ(숨을)헐떡이다(천) ⓑ홀(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칠 료(了), 뾰족할 첨(尖), 끝 말(末), 다할 극(極), 그칠 지(止), 마칠 종(終)이다. 용례로는 일의 처음이나 일의 실마리를 단서(端緖), 실마리 또는 일의 첫머리를 단초(端初), 어떤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상태에 있는 것을 단적(端的), 바르고 얌전함을 단정(端正),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음을 단정(端整), 바른 말을 함 또는 그 말을 단언(端言), 바르게 정돈된 모양을 단연(端然), 단정한 사람을 단인(端人), 단정하게 차림을 단장(端裝), 단정하게 앉음을 단좌(端坐), 올바르고 공평함을 단평(端平), 연극이나 영화의 대수롭지 아니한 말단의 역 또는 그 역을 맡은 사람을 단역(端役), 행실이 단정하고 겉모양이 아름다움을 단려(端麗), 바른 뜻을 단지(端志), 단정하고 아담함을 단아(端雅), 단정하고 선량함을 단량(端良), 단정하고 정중함을 단중(端重), 바르고 단정한 행동을 단행(端行), 단정하고 아름다움을 단화(端華), 물건의 뾰족한 끝 또는 시대의 사조나 유행 같은 것에 앞장서는 일을 첨단(尖端), 괴롭고 번거로운 일이나 귀찮고 해로운 일을 폐단(弊端), 일이 일어남 또는 그러한 실마리를 발단(發端),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나 옳지 아니한 도를 이단(異端), 한 끝이나 사물의 일부분을 일단(一端), 일이 흐트러져 가닥이 많음을 다단(多端), 사물의 맨 끝 또는 조직의 가장 아랫부분을 말단(末端), 맨 끝이나 맨 끄트머리로 몹시 궁하여 여지가 없음 또는 극도에 이르러 어찌할 수 없음을 극단(極端), 떠들썩하게 벌어진 일을 야단(惹端), 수 없이 많은 갈래나 토막을 만단(萬端), 온갖 일의 실마리 또는 여러 가지 방법을 백단(百端), 일의 실마리 또는 사건의 단서를 사단(事端), 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 또는 어느 쪽으로도 붙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서양단(首鼠兩端), 일이 얽히고 설키다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말을 복잡다단(複雜多端), 일이 많은 데다가 까닭도 많다는 말을 다사다단(多事多端), 일부러 말썽이 될 일을 일으킨다는 말을 고심사단(故尋事端),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다는 말을 필유사단(必有事端), 일일이 가려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의 갈피를 이르는 말을 천서만단(千緖萬端), 무릎을 거두고 옷자락을 바로 하여 단정히 앉음을 이르는 말을 염슬단좌(斂膝端坐), 만감이 착잡하게 일어난다는 말을 백단교집(百端交集), 만 가지로 깨닫게 가르치다는 뜻으로 친절하게 가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만단개유(萬端改諭), 몸 형상이 단정하고 깨끗하면 마음도 바르며 또 겉으로도 나타난다는 말을 형단표정(形端表正)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