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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양단(首鼠兩端)
쥐가 머리를 내밀고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우물쭈물하기만 하면서 진퇴나 거취를 정하지 못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首 : 머리 수(首/0)
鼠 : 쥐 서(鼠/0)
兩 : 두 량(入/6)
端 : 끝 단(立/9)
(유의어)
좌고우면(左顧右眄)
수시양단(首施兩端)
좌첨우고(左瞻右顧)
좌면우고(左眄右顧)
좌고우시(左顧右視)
수서(首鼠)
우유부단(優柔不斷)
애매모호(曖昧模糊)
전첨후고(前瞻後顧)
(속담)
○ 이 장떡이 큰가? 저 장떡이 큰가?
○ 가난한 양반 씨나락 주무르듯 한다.
○ 방에 가면 더 먹을까, 부엌에 가면 더 먹을까.
출전 : 사기(史記)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
쥐구멍에서 방금 나온 쥐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은 겁에 질려서일 수도 있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판단이 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가난한 양반 씻나락 주무르듯’ 이란 속담과 상통한다.
가난한 양반이 종자로 뿌릴 볍씨를 털어먹자니 앞날이 걱정스럽고 그냥 두자니 당장 굶는 일이 걱정되어서 한없이 주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우물쭈물하기만 하면서 진퇴나 거취를 정하지 못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 위기무안후(魏其武安侯) 열전에 이 성어가 나온다.
전한(前漢, 기원전 206~기원후 24년) 6대 경제(景帝)의 외척인 두영(竇嬰)과 처족인 전분(田蚡)은 7대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더 권력을 강화하게 됐다. 하지만 연장자인 두영은 지는 권력, 승상이 된 전분은 뜨는 태양이라 더 실세였다. 두영과 함께 전란에서 큰 공을 세운 바 있는 관부(灌夫)란 장군은 이것이 불만이었다.
전분의 집에서 고관대작이 모인 주연이 벌어졌을 때 두영의 권유로 억지 참석한 관부가 주법을 가지고 시비를 벌여 주인까지 매도했다. 화가 난 전분이 관부를 잡아 옥에 가두고 처형하려 했으나 두영이 손을 써서 일이 조정회의에 부쳐지게 되었다. 무제도 난감하여 관리의 죄를 규명하는 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양쪽 다 주장하는 것이 옳으니 왕께서 알아서 재단하시라고 한다.
결정을 못하고 저녁이 되어 퇴궐할 때 전분은 한안국을 불러 쏘아 붙였다. "우리는 함께 힘을 합쳐 그 대머리 늙은이에게 맞서야 하는데 그대는 왜 좌우 힐끔거리는 쥐새끼 모양 갈팡질팡했는가(與長孺共一老禿翁 何爲首鼠兩端)?"
孺(유)는 어릴 유, 禿(독)은 대머리 독이다. 대머리 늙은이는 두영을 가리킨다. 후일담이지만 두영은 전분 일파가 헐뜯는 말에 넘어간 왕의 명령으로 참수되고 말았다. 유언비어(流言蜚語)의 출처가 된다.
수서양단(首鼠兩端)
쥐가 구멍 밖으로 머리만 내놓고 주위를 살피다. 곧 주저하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상태, 혹은 두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수서(首鼠)는 '쥐가 고개를 내미는 모양'이고, 양단(兩端)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양쪽 끝'이라는 말로, 쥐가 머리만 내밀고 나갈까 말까를 망설인다는 뜻이다. 즉,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쥐(鼠)의 성질은 의심이 많아 구멍에서 목을 내밀고 사방을 엿보며 나갈까 말까 결정을 짓지 못하는데, 이를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사기(史記) 위기 무안후열전(魏紀武安侯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B.C. 141∼87) 때의 일이다. 5대 문제(文帝)의 황후의 조카인 위기후(魏其侯) 두영(竇孀)과 6대 경제(景帝)의 황후의 동생인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은 같은 외척(外戚)이었지만 당시 연장자인 두영(竇孀)은 서산낙일(西山落日)하는 고참 대장군이었고, 전분(田蚡)은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신진 재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영(竇孀)의 친구인 관부장군(灌夫將軍)이 고관대작들이 모인 주연에서 전분(田蚡)에게 대드는 실수를 범했다. 사건의 발단은 관부(灌夫)가 두영(竇孀)을 무시한 한 고관을 힐책하는데 전분(田蚡)이 그를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부(灌夫)가 한사코 사죄를 거부하자 이 일은 결국 조의(朝議)에 오르게 되었다. 양쪽 주장을 다 들은 무제(武帝)는 중신들에게 물었다. "경(卿)들이 판단컨대 어느 쪽이 잘못이 있는 것 같소?"
처음에는 의견이 둘로 나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영(竇孀)의 추종자로 알려진 내사(內史: 도읍을 다스리는 벼슬) 정당시(鄭當時) 조차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어사대부(御史大夫: 감찰 기관의 으뜸 벼슬) 한안국(韓安國)도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폐하, 양쪽 다 일리가 있사와 흑백(黑白)을 가리기가 심히 어렵나이다."
중신들의 불분명한 태도에 실망한 무제(武帝)가 자리를 뜨자 조의(朝議)는 거기서 끝났다. 전분(田蚡)은 화가 나서 한안국(韓安國)을 책망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首鼠兩端]처럼 망설였소? 이 사건은 시비곡직(是非曲直)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인데, 그대와 더불어 대머리가 벗겨진 늙은이를 해치우려 했는데, 어찌하여 애매한 태도를 취했는가?"
이 말은 주견(主見)이 없이 왜 우물쭈물했는가 하는 전분(田蚡)의 책망이었다. 이래서 양다리를 걸친 채 정세를 살피고 있는 상태나 애매한 태도를 수서양단(首鼠兩端)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때 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말했다. "제게 묘안이 있습니다. 무안후(武安侯, 전분)께서 먼저 자리를 물러나는 것입니다. '불민(不敏)한 제가 재상 자리에 앉아서 이리 되었으니 페하께 사죄합니다' 하고 물러나십시오. 그리하시면 오히려 폐하의 신임(信任)이 더욱 두터워 질 것입니다."
이 말대로 무안후 전분이 물러나 버리니 위기후(두영) 편에서 계속 무안후 편을 헐뜯다가 도리어 미움을 받아 관부 장군이 처형되고 위기후 두영이 쫓겨나서 싸움이 이로써 끝나 버렸다.
어사대부의 말대로 무안후(武安侯)는 파면은커녕 오히려 나라를 생각하고, 겸손하다는 칭찬과 함께 더욱 부귀를 누렸다. 그후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오랫동안 잘 살았으나 늙고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비몽사몽간에 "위기후(魏其侯) 두영(竇孀), 관부장군(灌夫將軍) 나를 용서해 주시오. 제발, 제발 용서해 주시오. 내가 잘못했소"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용하다고 소문난 무당을 여러 번 불러다가 보였건만 헛소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원한을 가슴에 품고 죽은 위기후(魏其侯)와 관부장군(灌夫將軍)의 원혼이 나타나 위협하여 더욱 병이 심해지니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들 하였다. 무안후는 괴로움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다가 끝내 숨지고 말았다.
어떤 일을 판단 할 위치에 있으면서, 판단을 해야 함에도 이 편을 들까? 저 편을 들까? 어느 편을 들면 자기에게 유리할까? 계산을 하면서 고개를 내밀고 망설이는 자를 쥐구멍에서 쥐(鼠)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표정 같다 해서 수서양단(首鼠兩端)이라고 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아주 오랜 유명한 말이다.
누구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일생을 살아가는 데는 행운도 있고 불운도 있지만, 때로는 사람의 지식을 초월한 어떠한 힘이 작용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목전에 당한 어떤 일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여 그 연결을 과거의 결과로 삼아 자신을 존재시킨다.
예컨대 소속된 회사로부터, 자율적인 연수교육의 참가를 요구 받았을 경우,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즉 '가느냐, 아니냐'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갈림길에 서있는 처지라, 연수는 귀찮다. 그러나 회사가 바라는 일을 거절하면, 앞으로의 근무평가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번에는 빠질 수 있겠지만 다음 차례는 면하기 어렵겠지? 아니면 남들은 다 가는데, 나라고 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쩐지? 좀 귀찮더라도 참가하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을 거야 등 온갖 생각을 다하지만, 선택은 이쪽이냐? 저쪽이냐 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앞서, 회사를 원망하거나, 동료나 상사 아니면 배우자의 무능을 탓하면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함으로써 불운의 원인을 다른 것에서 찾아 한때의 짜증을 모면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남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는 한, 당면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마이너스 기류는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려는 각오가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불행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대목과 관련된 사자성어에 수서양단(首鼠兩端)이란 말이 있다. 이 글 뜻은 구멍에서 머리만 내민 쥐(鼠)가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갈 길을 찾는 모습을 말한 것인데, 줏대없는 인간의 처세술을 빗대어 자기 결단력이 없음을 뜻한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던 갈림길에 섰을 때, 과감한 결단력으로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인생만사 새옹지마를 생각하자. 재앙 뒤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을 것을 믿고, 신념찬 결단은 반드시 뜻밖의 열매가 맺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 만사가 성공할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의사 결정을 하고 살아간다. 직업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사업의 선택 등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결정에서 식사메뉴, 관람할 영화의 선택 등 사소한 것까지 다양하다.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것인가? 망설여 본적이 있을 것이다. 아침 출근 시간 시계를 보며 버스를 탈것인가? 택시를 탈것인가? 망설이다, 결국 택시를 타면서도 지각해 본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사 결정에 있어 결단, 선택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할지 갈팡질팡하며 자신이 내린 선택을 수시로 바꾸거나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전념하기 보다 자신이 내린 선택을 후회하며 몰입하지 못하고 중도에 멈추고 만다. 보통 이런 사람을 우유부단 하다고 말하거나 결단력이 없다고 말한다. 사자성어로는 수서양단(首鼠兩端) 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유부단한 유형에 속한다. 개개인의 의사 결정과 개성을 존중해 주는 서구와는 달리 한국의 문화는 유교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주로 윗 사람의 지시에 의해, 권위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했고 교육문화도 자신의 선택보다 부모나 주위의 영향이 더 많이 받아 자신의 일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결정하고 그 일에 책임지는 과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선택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늘 우유부단할 때 많은 삶의 에너지가 낭비된다. 자신의 선택한 결정에 전념할 시간에 늘 선택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번민하고 다른것을 선택하지 못한 후회로 정작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사람은 일생을 사소한 결정에서 큰 결정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때 우유부단한 성격, 결단력이 없는 성격은 개선하거나 변화를 시도해야할 대상이다.
결단력이 없거나 우유부단하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 숨은 배경을 파악하고 이제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쉽게 결정을 내리고 그일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지 못했거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비판, 실패의 두려움이 의식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비난이나 비판이 따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수용되지 못했을 때, 또는 성공하지 못했을 때 두려움, 그러한 과거의 경험이 사람을 우유부단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신중함, 물론 중요하지만 우유부단한 사람은 어떤 결정에 있어 신중하게 고려하고 시간을 끌고 미루면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옳치 않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사업을 결정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인력을 투자한다. 그러나 소수의 기업만이 성공한다. 이는 훌룡한 인재를 통해 시간을 오래 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신중하고 시간을 더 투자할 때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다. 정보화 시대의 범람속에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직관이다. 시간을 끌며 우호적인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거나 더 좋은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의 무의식적인 변명이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신중하고 차분히 생각하되 결단력을 가지고 자신이 내린 결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언제나 바른 결정만 할 수 없다. 잘못된 선택이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일시적인 실패일 뿐이다. 잘못된 결정속에 배움이 있고 이는 다른일을 하는데 좋은 경험이 된다.
우유부단하거나 결단력이 약한 중요한 이유에 하나는 선택한 일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을 선택하면 그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비난을 감수해야 할 수 도 있고 그일의 결과로 손실을 초래할 수 도 있다. 그러한 두려움이 선택 앞에서 늘 우유부단하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인생 뭐있나? 내가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책임진다는 배짱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마음의 연상작용(聯想作用)을 잘 나타낸 말이다. 과거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로 일어난 일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비난 당한 과거의 일이 늘 어떤 선택(選擇) 앞에서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통 야구에서 투수들이 15승 10패 정도이면 훌룡한 성적이라고 말한다. 이정도 성적이면 억대 연봉을 줄만하다. 패한 10 게임도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팀이 길고 긴 페넌트 레이스의 과정이다. 승리하는 날이 있으면 실패하는 날도 있다. 과거의 실패에만 집착해 있으면 앞으로 나갈 힘을 잃어 버린다.
결단력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연습과 실행, 성취를 통한 자신감, 실패를 통한 교훈의 반복이다. 방을 깨끗히 청소하겠다는 작은 결단과 빠른 실행, 미뤄 두었던 소소한 일들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생활속의 결단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작은 결단과 실행은 큰일을 훌룡하게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 인생의 큰 적(敵)인 우유부단,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결단력 있는 사람이 됩시다.
수서양단(首鼠兩端)
구멍에서 쥐가 목을 내밀까 말까 한다.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사기(史記)》 전한(前漢) 경제(景帝) 때, 두영(竇)과 전분(田) 두 신하가 서로 왕의 인정을 받으려다 사소한 일로 시비가 벌어졌다. 왕이 시비를 가리게 되었다.
경제가 어사대부 한안국에게 그 시비를 묻자 한안국이 대답을 주저했다. “전하, 이번 다툼은 시비를 가리기가 좀 곤란합니다.” 경제는 다시 궁내대신 정에게 시비를 물었지만 그 역시 대답을 피했다. 왕이 진노했다. “그래 가지고서 어찌 궁내대신을 감당하겠소. 일족(一族)을 멸(滅)하든지 해야지.” 전분은 왕의 심기를 건드린 게 송구해 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대답을 주저한 한안국을 불러 쏘아보며 말했다. “그대는 구멍에서 머리만 내민 쥐처럼 엿보기만 하고, 시비곡직(是非曲直)이 분명한 일을 어찌 얼버무리는가.”
사기(史記)에 전해지는 얘기로, 수서양단(首鼠兩端)은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수서양단은 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결정을 못하고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을 이른다. 어느 쪽으로도 붙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한다는 좌고우면(左顧右眄)도 뜻이 같다. 좌고우면은 위나라 조식이 오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좌우를 바라보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의미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뜻이 바뀌었다. 좌고우시(左顧右眄)로도 쓴다.
공자의 제자 계문자는 세 번을 생각한 뒤에야 실행했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두 번이면 가하다(再斯可矣).” 두 번 정도 검토하면 충분하니 실천을 차일피일 미루지 말라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외교에서 ‘양다리’를 경계하라고 했다. 두 나라가 싸워 한 나라가 이기면, 승전국은 ‘중립’을 이유로 양다리 걸친 나라를 침공한다는 얘기다. 그럴 바에는 한쪽에 붙여 힘을 모으는 게 낫다는 거다. 물론 갑론을박이 있는 한비의 생각이다.
중국 사람들은 쥐를 다산(多産)과 근면(勤勉)의 상징으로 여겨 생초(生肖·띠)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쥐는 의심이 많고 과단성이 없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굴을 출입할 때면 몇 번이고 들락거리면서 바깥의 동정을 살핀다. 이 같은 쥐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한 모습에서 나온 말이 수서양단(首鼠兩端)이다.
예로부터 동양철학에서는 자기를 밖으로 내놓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요즘은 자기 생각과 주장을 표현하는 추세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가치판단도 변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간신 같은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부당하거나 잘못된 일이 벌어지면 이를 시정하거나 잘못됐다고 분명히 말을 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아끼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권모술수(權謀術數)든 합종연횡이든 힘을 얻어 지배력을 높이려는 사람은 분명한 노선과 의리를 보여야 함이 상식이 아닌가.
몹쓸 놈의 쥐
출생 때 누구나 반드시 해, 달, 날, 시의 사주(四柱), 생년월일을 부여받는다. 여기에 또 하나가 첨가된다. 띠다. 태어난 해를 열두 지지(地支)를 상징하는 동물들의 이름으로 부르는 말이다. 자(子 쥐), 축(丑 소),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 해(亥 돼지) 등으로 십이지(十二支)라 한다. 십이지 순서는 고정이며 천간(天干 - 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과 맞물려 한 해씩 돌아가 5번(12년 5번)을 돌면 육십갑자(六十甲子), 환갑(還甲)이다.
12 동물 문화의 시작은 정확하지 않으나 기원전 2세기경 중국 진(秦) 나라 혹은 한(漢)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주로 한,중,일은 물론 베트남, 태국 심지어 인도 등에서도 12 동물 문화가 전승되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는 몇몇 동물이 우리와 다르다.
12 동물의 순서가 어떻게 정해졌을까? 정답은 없다. 가장 많이 회자하는 설은 천왕(天王)의 지시에 따라 동물들이 천상의 문에 도착한 순서라고 전해진다. 쥐가 먼저 도착해 1위가 되었다. 어찌 쥐가 1위를 차지했을까? 의문이다.
무수한 동물이 열심히 달렸다. 가장 작고 힘이 없는 쥐가 일등 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쥐가 머리를 돌렸다. 요령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달리는 소에 올라탔다. 결승선에 다다르는 순간 살짝 먼저 내려뛰었다. 애석하게도 소는 쥐가 뿔에 타고 있는 줄 몰랐다.
약아 빠진 쥐에 대해 소는 물론 사람도 분노가 치밀었다. 쥐에 대해 응당 보복하고 싶었다. 심지어 소는 정말 쥐를 밟아 죽이고 싶었다. 드디어 소가 쥐에게 통쾌한 보복을 하게 됐다. 인간들이 자신(소)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소 뒷걸음치다 쥐잡기'라는 속담을 만든 덕분이었다. 쥐가 소 뒷다리에 밟혀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실수로 그런 것이니까.
쥐에 대한 보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중,일은 툭하면 촌철살인의 사자성어를 만들어 삶의 경계나 비유 등으로 삼는다. 비열하거나 사기성 있고, 기회주의적 사람을 지칭할 때 쥐에 비유하기로 했다.
석서위려(碩鼠危旅), '석서'는 배움이 깊어 학식과 지식이 매우 높은 쥐, 큰 쥐를 말하지만,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는 위정자를 비유한다. 위려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김시습이 '시경 위경편'에 나오는 '석서'를 참고해 지은 한문시다.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마당 곡식 먹지 마라, 삼 년째 벌써 너를 알고 지냈는데, 나를 살려 주지 않으려면 장차 너의 땅을 버리고 즐거운 나라로 가리라(碩鼠復碩鼠 無食我場粟 三歲已慣汝 則莫我肯穀 逝將去汝土 適彼娛樂國)."
서목촌광(鼠目寸光), '쥐의 안목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여서 눈앞 곡식만 본다.' 멀리 보지 못한 채 눈앞에 있는 음식물만을 챙겨 먹다가 고양이에게 잡히는 꼴을 말한다.
성호사서(城狐社鼠), '성곽에 사는 여우와 토지묘(土地墓)에 사는 쥐'의 뜻으로, 임금 곁에 있는 간신들이나 몸을 안전한 곳에 두고 나쁜 짓을 일삼는 무리를 비유한다.
수서양단(首鼠兩端), '쥐가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나갈까 말까를 망설인다.' 얼른 결정을 못 하는 우유부단 또는 이모저모 살피는 기회주의자를 꼬집는 말이다.
관창노서(官倉老鼠), 관가의 창고에 늙은(학식 있는) 커다란 쥐가 살며 곡식을 독식한다는 뜻이다. 권력에 빌붙어 국가의 재정을 좀먹는 탐관오리를 비유한다.
이처럼 쥐와 관련한 사자성어나 속담들이 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비유한 것들이 별로 없다. 쥐는 태생적으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보복을 후손 쥐들이 불행하게 당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쥐는 사익만을 좇아 잔머리와 술수를 부리는 데 서슴지 않는 소인배로 일컬어진다.
쥐와 같은 군상이 있다. 바로 정치인. 하라는 정치는 하지 않거나 못하고 사리사욕만 챙겨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는 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림을 통한 권력과 권위 그리고 재력의 무단 포획에 목적이 있다. 올해는 총선의 해이다. 벌써 곳간을 몰래 축내려는 쥐새끼들이 구멍에서 대가리 내밀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대가리 내밀 때 몽둥이 후려쳐야 할 텐데. 몽둥이가 없으니 걱정이다.
인간 가치론(人間價値論): 정치인의 지조
아니 인간의 가치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자세’와 ‘정신’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자세 어떤 정신으로 살았고 또 살고 있느냐로 평가돼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형태의 방법과 수단이 있다. 방법에는 떳떳함과 비열함이 있고 수단에는 정당함과 부당함이 있다. 떳떳함과 정당함은 하늘을 봐도 두렵지 않고, 땅을 봐도 부끄럽지 않은 부앙무괴(俯仰無愧)요, 비열함과 부당함은 하늘에 대해, 세상에 대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참괴(慙愧) 행위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경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대통령도 장관도 재벌도 학자도 예술가도 정치인도 아닌 어떤 자세 어떤 정신으로 살았느냐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올곧은 자세와 결 곧은 정신으로 강직하게 살았느냐로 존경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인은 지조가 생명이다. 그래서 온갖 풍상에도 의연한 세한삼우(歲寒三友)처럼 고절(孤節)과 고절(苦節)과 고절(高節)을 지켜야 한다. 어제 같이 욕을 하던 그 당이 집권 여당이 돼 오늘은 주인보고 꼬리를 치는 강아지처럼 요미걸련(謠尾乞憐)한 채….
수서양단(首鼠兩端)과 장관복서(藏觀伏鼠)란 말이 있다. 돌 틈바구니의 쥐가 머리만 쏙 내민 채 자기를 해칠 자가 있나 없나 살피다가 세 불리하면 머리를 쏙 디밀고, 세 유리하면 머리를 쏙 내미는 것을 '수서양단'이라 한다. 이 말은 사기(史記)의 위기무안열전(魏其武安列傳)에 나오는 말로 무안후 전분이 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장관복서(藏觀伏鼠)라는 것도 있다. 약을 대로 약은 쥐가 담벼락이나 돌무더기 속에 납작 엎드려 사방을 관망하다 아무 일도 없으면 쪼르르 나오고, 무슨 일이 생기면 재빨리 숨어버리는 형국을 장관복서라고 한다.
요즘의 정치인들 하는 꼬락서니가 꼭 이 수서양단이나 장관복서와 같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러면 유리할까 저러면 유리할까 관망하다 불리하면 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돌아서고 유리하면 때는 이때라고 찰싹 달라붙는 기회주의적 찰나주의. 이 나라 정치인에게 기회주의적 찰나주의가 언제라고 없었을까만 그러나 요즘 들어 부쩍 더 심한 것 같다.
이는 민정, 민주, 공화 3당이 합쳐 이른바 민주자유당을 만들 때 야당 특히 민주당 일각에서 빚은 기회주의적 찰나주의다. 청와대에 가서는 3당 통합 축배까지 들던 중진의원이 청와대를 나오기 바쁘게 돌아서는가 하면, 이쪽에 가서는 이 말 하고 저쪽에 가서는 저 말 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두 얼굴의 가증스러운 야누스와, 이 당에 가서는 이 당에 들어갈 듯 말하고 저당에 가서는 저당에 남아 있을 듯 말하는 이중인격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치졸 무비한 짓거리.
심지어 어떤 의원은 신당에 가면 무슨 자리(각료)를 주겠느냐 흥정까지 하면서 뒷구멍으로는 잔류파에게 합류할 듯한 언질을 비치기도 하는 더러운 스노비즘의 의원들. 이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지테이션 아닌 데마고기로 게리맨더링마저 넉넉히 할 수 있는 무소신, 무철학, 무정견, 무지조의 망석중이 들이다. 그렇다. 이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당위성을 내세워 정당화시킬 사람들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정치인에게 있어 지조는 생명이다. 필부(匹夫)로 지조를 생명으로 알고 필부(匹婦)도 절개를 생명으로 알거늘 하물며 나랏일을 보고 나라 살림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지조를 객사한 사람 지팡이 버리듯 한다면 이는 시정잡배만도 못한 짓거리다.
저 중국 삼국시대 때 조조는 관우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흘이 멀다 잔치를 베풀고 온갖 환대로써 정성을 다 기울였다. 그럼에도 관우는 초지를 일관해 유비에게로 돌아갔다. 유비에 대한 철석같은 의리와 장부로서의 지조를 저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의연한 관우의 태도에 탄복하며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옛 동지를 잊지 않고(도원결의) 저토록 거취가 분명하니 과연 대장부다. 너희들도 모쪼록 관우를 본받아 지조 있는 장부가 돼라” 했다.
나폴레옹도 “지조 없는 비겁한 동지보다 지조 있는 용감한 적을 나는 더 사랑한다”라고 했다. 정치인은 지조가 있어야 한다. 정치인은 지조를 생명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갖은 풍상에도 의연한 세한삼우(歲寒三友)처럼 고절(高節)과 고절(孤節)과 고절(苦節)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이 따른다.
그런데 상황은 이와 반대로 세 불리하면 지조 버리기를 원두장이 쓴 외 버리듯 하니 낭패다. 정치인이 오죽 거짓말을 잘해 지조 버리기를 밥 먹듯 하면 유대인 속담에 ‘한가지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두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다. 그러나 세 가지 거짓말은 정치인 것이다’라고 했겠는가.
그리고 일찍이 희랍의 철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정치인을 가리켜 “오늘날 정치를 하는 것은 이미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이 아니다. 불학 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정치다"라고까지 극언을 했겠는가. 이는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지조를 생명으로 알고, 지조를 최고 가치로 알아야 할 정치인들이 그 생명 그 가치를 우습게 안 채 돈 보따리 보고 침 흘리는 창부처럼 행동한 데서 나온 말이다.
정치인은 지조를 생명으로 삼을 때만이 정치인 것이다. 지조!, 이는 정치인에 있어 절대가치다.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켜나가는 꿋꿋한 의지 또는 기개(氣槪)!, 경계(耿介)하고 조대(措大)한 높은 정신!, 갸륵하기 그지없는 깨끗한 정신!, 천의무봉(天衣無縫) 같은 세계 바로 그것!, 인간의 가치는 정녕 고귀한 지조에 있다.
사직단의 쥐(社鼠)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가 온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쥐에 관한 속담이나 이야기가 많은데 쥐가 들어간 성어만 몇 개 옮겨 본다. 수서양단(首鼠兩端)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잔 머리를 굴리는 것을 말한다. 호두서미(虎頭鼠尾)는 용두사미와 같은 뜻이다. 서간충비(鼠肝蟲臂)는 원래 만물의 무상한 변화를 뜻했으나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킨다.
서보(鼠步)는 쥐가 살금살금 걷듯이 두려워하며 조심하는 것을, 서목촌광(鼠目寸光)은 안목과 식견이 짧음을, 서기(鼠技)는 비열한 수단을 의미한다. 노서출동(老鼠出洞)은 우유부단 하거나 너무 조심하는 모습을 말한다. 십서동혈(十鼠同穴)은 악인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서 일망타진하기 쉬운 것을 뜻한다. 정확한 통계를 낸 적은 없지만,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쥐는 대개 이미지가 안 좋다.
춘추(春秋) 성공 7년(BC 584)에 이런 기록이 있다. “생쥐가 제사에 쓸 소의 뿔을 갉아먹었다. 점을 쳐서 소를 바꿨으나, 생쥐가 또 그 뿔을 갉아먹었다. 결국 소를 놓아주었다(鼷鼠食郊牛角 改卜牛 鼷鼠又食其角 乃免牛).” 정공 15년(BC 495)에는 “생쥐가 제사에 쓸 소를 물어뜯어 소가 죽었다. 점을 쳐서 소를 바꿨다(鼷鼠食郊牛 牛死 改卜牛).” 이듬해인 애공 원년(BC 494)에도 “생쥐가 제사에 쓸 소를 물어뜯었다. 다시 점을 쳐서 다른 소로 바꿨다(鼷鼠食郊牛 改卜牛)”는 기록이 있다.
혜서(鼷鼠)는 생쥐 중에 가장 작은 것으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놈들은 사람이나 소와 말의 외피를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갉아먹는데 피해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고 한다. 그놈들이 갉아 먹은 자리는 반드시 덧나는데 ‘춘추’는 나라의 제사에 쓸 귀중한 소를 망쳐 놓은 몹쓸 쥐들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혜서식우(鼷鼠食牛)’, ‘혜서교우(鼷鼠咬牛)’라는 말이 나왔다. 암중에 사람을 해치기 때문에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음을 비유한다.
쥐를 본격적으로 정치 현실에 비유한 문헌은 ‘한비자(韓非子)’같다. 제나라 환공이 관중에 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관중은 사직(社稷)터에 살고 있는 쥐라고 했다.
환공이 연유를 묻자 관중이 답했다. “임금께서는 사직을 만드는 일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무를 세워 아름다운 색으로 칠합니다. 그런데 쥐 한 마리가 나무를 뚫고 들어가 그 속에 집을 짓고 삽니다. 불을 질러 잡자니 나무가 탈 것 같고, 물을 부어 잡자니 나무의 색이 상할까 봐 어쩌지 못합니다. 사직에 사는 쥐를 잡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지금 임금의 좌우에 있는 환관들은 밖으로 거대한 세력을 만들어 백성의 재물을 착취하고, 안에서는 당파를 지어 임금을 이목을 가리고 기만합니다. 임금의 속내와 행동을 엿보고 외부에 알려주어 결탁하면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합니다. 관리들은 처벌하지 않자니 법을 어지럽히는 것이고, 처벌하자니 임금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어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니, 바로 나라에 해를 끼치는 사직의 쥐와 같은 존재입니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도 비슷한 애기가 나온다. 안자는 정치의 애로사항으로 사직단에 사는 쥐를 들면서, 쥐를 죽여 없애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사직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쥐를 잡다가 사직단이 허물어질까 봐 처치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궁에도 사직단의 쥐 같은 존재가 있는데 임금 좌우의 신하들이라고 한다. 죽여 없애려 해도 임금의 비호를 받으니 뱃속에 들어가 있는 셈이라 사직단의 쥐와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남의 권세에 의지해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가리키는 성어가 직봉사서(稷蜂社鼠)이다. 사직단에 사는 벌과 쥐는 공격당하거나 불에 고초를 겪지 않는다. 쥐나 벌을 신성한 존재로 여겨서가 아니라 그들을 처치하다가 사직단이 피해를 볼까 걱정해서이다. 그들은 영리하게 둥지를 튼 셈이다. 이 말은 권세에 빌붙어 사는 모리배들을 비유하는 것으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온다. 비슷한 성어로 성황묘의 여우와 사직단의 쥐를 뜻하는 성호사서(城狐社鼠)도 있다.
어디 권력에 붙어 사는 쥐들만 있겠는가. 우리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갑질도 알량한 힘에 기댄 쥐들의 소행이 아니겠는가.
쥐의 해를 맞이해 쥐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찾아보니 마음이 신산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경(庚)이 들어간 해도 녹록지 않았다. 1910년 경술년에는 나라를 뺏겼고 1950년 경인년에 6ㆍ25, 1960년 경자년에 4ㆍ19, 1980년 경신년에 5ㆍ18이 있었다. ‘경’에서는 서늘한 칼날이 느껴진다. ‘경’이 오행(五行)가운데 금(金)에 해당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경자(庚子)’를 풀어 보니, ‘경’이나 ‘자’나 모두 만만치 않다. 2020년 올 한해 나라 상황이 엄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 모두가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하겠다.
기회주의자들을 배척하라
삶을 살아감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에 적응하는 것이 성공하는 한 비결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일을 하던지 수서양단(首鼠兩端)식 망상임을 버리고, 자신을 가지고 과감히 실천에 옮길 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으로 뜻을 이룬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기회를 잡아 성공의 계기로 삼는 것과는 달리 기회주의자는 소신 없이 정세 상황에 따라 편의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말하는 바, 대·소 조직에서는 늘 이런 자들이 행세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판에서는 이런 기회주의자들로 넘쳐난다. 말할 것도 없이 가치관도 어떤 철학도 없이 그리고 정치적 비전도 없이, 미시적 찰나적 이해를 따져서 특정인에게 줄서는 철세 정치인들은 이 나라의 '정치문화'의 발전의 암적 존재이고, 서민의 삶을 더 어렵게 하는 방조자(?)들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대통령선거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지지자들이 있어야 당선되어 뜻을 펼 수 있음은 췌언을 요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선거 때 입후보한 자들은 자기 주변에 더 많은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기'를 희망하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성거린다.
올바른 국가관과 정치관을 가지고, 그의 당선을 도우려는 인사도 있으나, 선거운동을 기회로 입신양명을 노리는 기회주의자들이 들끓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40여년간을 강단에서 주로 '공법학'을 강의해 왔고, 젊었을 때에는 정치 참여를 생각하기도 했던 사람으로 50여간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알게 된 것도, 느끼고 있는 것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면의 제약 상 모두를 말할 수는 없으나, 대통령선거에서 가담했던 '기회주의자'들 때문에 많은 대통령이 얼마나 어려워하고, 심지어 고통을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무릇 어떤 선거에서든 선거운동 참여를 원하는 자 중, 누구는 허용하고, 누구는 배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입후보자와 그 주변의 리더적 책임자들은 이른바 선거캠프에 참가하는 자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여 책임을 맡겨야지, 주위에 서성이는 자가 모두 참다운 국가관을 가진 자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충성심에서 무리한 수단과 방법을 들고 나오는 자, 극우와 극좌의 사상을 가진 자, 지나친 지역주의자 등은 기피해야 할 인물이다. 선거가 과열되면 '부지땡이'도 선거 운동에 참여해 주기를 바라겠지만, 선거운동 조직을 지나치게 방대하게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 어느 대통령이 당선된 후 부탁이 많아서 대통령 못하겠다고 한 것이나, 청와대 들어온 자들을 비롯한 주변 성공 공신들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 외에 이상한 욕심에서의 행동으로, 또 지나친 충성심에서의 행동으로 대통령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현상은 근본적으로 그들을 선거운동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시켰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중책을 맡겼기 때문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올바른 가치관, 국가관과 형평적 사고를 가진 인물들이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어야 이 시대의 화두인 경제 민주화, 양극화의 해소가 가능하다. 양식 있는 인사들과 원로들이 나서라. 다시 말하거니와 선거 때마다 날 뛰는 기회주의자들을 견제하는 일은 양식 있는 인사들의 몫이다.
편향된 가치관에 기울어져 있는 언론계와 경제계에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회사 조직 등에서 기회주의적 범죄는 그 조직에서 배제하면 손해를 줄일 수 있으나, 국가조직에서 기회주의적 범법행위는 민주법치국가에 대한 공적으로 전 국민에게 정치 불신을 가중시킨다. 기회주의자들 일수록 비판을 봉쇄하여 특정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라는 착각 속에서 건전한 비판마저 금기시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 首(머리 수)는 ❶상형문자로 얼굴, 머리, 목 등 사람의 머리 앞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옛 자형(字形)은 머리털과 눈을 강조하였다. 머리는 몸의 맨 위에 있어 '우두머리, 처음'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首자는 ‘머리’나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首자는 사람의 머리를 뜻하는 글자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은 동물의 머리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首자를 보면 입이 길쭉한 동물의 머리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큰 눈과 뿔을 표현하고 있어서 마치 사슴의 머리를 그린 것과도 같았다. 이처럼 首자는 동물의 머리를 그린 것이지만 실제 쓰임에서는 사람의 ‘머리’나 ‘우두머리’를 뜻한다. 그래서 首(수)는 (1)시(時)나 노래를 세는 단위(單位) (2)동물(動物)의 개수(個數)를 세는 단위(單位) 등의 뜻으로 ①머리, 머리털 ②우두머리, 주장(主將) ③임금, 군주(君主) ④첫째, 으뜸 ⑤칼자루 ⑥요처(要處) ⑦끈, 줄 ⑧마리(짐승을 세는 단위) ⑨편(篇: 시문의 편수를 나타내는 말) ⑩시작하다, 비롯하다 ⑪근거하다, 근거(根據)를 두다 ⑫복종하다, 항복하다 ⑬자백하다, 자수하다 ⑭나타내다, 드러내다 ⑮향하다 ⑯절하다, (머리를)숙이다 ⑰곧다, 바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우두머리 추(酋), 머리 두(頭), 괴수 괴(魁)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꼬리 미(尾)이다. 용례로는 한 나라의 정부가 있는 도시를 수도(首都), 맨 윗자리를 수석(首席), 그러하다고 고개를 끄덕임을 수긍(首肯), 내각의 우두머리를 수상(首相), 등급이나 직위 등의 첫째나 우두머리 자리를 수위(首位), 반열 가운데의 수위로 행정부의 우두머리를 수반(首班), 위에 서서 집단이나 단체를 지배나 통솔하는 사람을 수장(首長), 한 단체나 기관 등 어떤 조직 가운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 또는 그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수뇌(首腦), 한 당파나 모임의 우두머리를 수령(首領), 사물의 머리와 꼬리를 수미(首尾), 해의 처음을 수세(首歲), 구멍에 머리만 내밀고 엿보는 쥐라는 뜻으로 진퇴나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의 비유한 말을 수서(首鼠), 목을 자름을 참수(斬首), 한 당의 우두머리를 당수(黨首), 국가의 최고 통치권을 가진 사람 곧 임금 또는 대통령을 원수(元首), 배의 머리를 선수(船首), 날이 썩 날카롭고 짧은 칼을 비수(匕首), 한자 자전에서 글자를 찾는 길잡이가 되는 글자의 한 부분을 부수(部首), 그러하다고 고개를 끄덕임을 긍수(肯首),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다는 처형을 효수(梟首), 사형수의 목을 옭아매어 죽이는 것을 교수(絞首), 학의 목으로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림을 비유하는 말을 학수(鶴首), 관을 쓰지 않은 검은 머리라는 뜻으로 일반 백성을 이르는 말을 검수(黔首), 여우는 죽을 때에 자기가 본디 살던 산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고향을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구수(丘首),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응한다는 뜻으로 뜻이 잘 맞아 일이 잘 되어감을 이르는 말을 수미상응(首尾相應),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을 수구초심(首丘初心), 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 또는 어느 쪽으로도 붙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서양단(首鼠兩端),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일을 해 나간다는 말을 수미일관(首尾一貫), 참형을 당하여 머리와 다리가 따로따로 됨을 이르는 말을 수족이처(首足異處), 비둘기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듯이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함 또는 그런 회의를 구수회의(鳩首會議),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학수고대(鶴首苦待), 여우는 죽을 때가 되면 제가 살던 굴 있는 언덕으로 머리를 돌린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고향을 그리워함을 이르는 말을 호사수구(狐死首丘) 등에 쓰인다.
▶️ 鼠(쥐 서)는 ❶상형문자로 쥐의 이와 몸을 본 뜬 모양이다. ❷상형문자로 鼠자는 ‘쥐’나 ‘좀도둑’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鼠자의 갑골문을 보면 쥐의 주둥이 주위에 흩어진 낱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곡식을 갉아먹고 있는 쥐를 표현한 것이다. 쥐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곡식을 훔쳐 먹고 살던 동물이다. 그러다 보니 鼠자에는 ‘좀도둑’이나 ‘간신배’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鼠자는 금문으로 넘어오면서 모양이 크게 변형되었는데, 쥐의 앞니는 臼(절구 구)자로 바뀌었고 꼬리와 발은 생략되었다. 鼠자는 쥐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鼢(두더지 분)자나 鼬(족제비 유)자처럼 설치류와 관련된 동물을 뜻하게 된다. 그래서 鼠(쥐)는 ①쥐(쥣과의 포유 동물) ②좀도둑 ③병(病)의 이름, 임파선(淋巴腺) 결핵(結核) ④간신(奸臣)의 비유 ⑤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걱정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쥐며느리를 서고(鼠姑), 족제비를 서랑(鼠狼), 쥐의 족속 또는 몹시 교활하고 잔일에 약게 구는 사람을 서족(鼠族), 좀도둑으로 자질구레한 물건을 훔치는 도둑을 서도(鼠盜), 목에 결핵성 림프선염이 생겨 곪아 뚫린 구멍에서 늘 고름이 나는 병을 서루(鼠瘻), 갈매나무를 서리(鼠李), 소인배들을 서배(鼠輩), 쥐의 털과 같은 빛깔 곧 짙은 잿빛을 서색(鼠色), 곡식을 쥐가 먹어서 나는 축을 서축(鼠縮), 쥐가 쏠아서 결딴냄을 서파(鼠破), 쥐의 가죽을 서피(鼠皮), 두 다리의 사이를 서혜(鼠蹊), 쥐의 쓸개라는 뜻으로 담력이 약한 것을 얕잡아 이르는 말을 서담(鼠膽), 들쥐를 야서(野鼠), 캥거루를 대서(袋鼠), 박쥐를 비서(飛鼠), 사향쥐를 사서(麝鼠), 토끼를 토서(兔鼠), 두더지를 토서(土鼠), 다람쥐를 산서(山鼠), 날다람쥐를 청서(靑鼠), 족제비를 낭서(狼鼠), 족제비를 황서(黃鼠), 흰쥐를 백서(白鼠), 땅강아지를 석서(石鼠), 두더짓과에 딸린 포유 동물을 분서(鼢鼠), 다람쥐과에 딸린 작은 동물을 석서(鼫鼠), 들쥐과에 딸린 포유 동물을 수서(水鼠), 쥐의 간과 벌레의 팔이라는 뜻으로 매우 쓸모없고 하찮은 것을 이르는 말을 서간충비(鼠肝蟲臂), 쥐나 개처럼 가만히 물건을 훔친다는 뜻으로 좀도둑을 이르는 말을 서절구투(鼠竊狗偸) 등에 쓰인다.
▶️ 兩(두 량/양, 냥 냥/양)은 ❶상형문자로 両(량)과 两(량)은 통자(通字), 两(량)은 간자(簡字), 刄(량)은 동자(同字)이다. 兩(량)은 저울추 두개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둘, 한쌍을 뜻한다. 兩(량)은 무게의 단위이며 나중에 돈의 단위에도 쓰고 또 둘, 쌍의 뜻으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兩자는 ‘둘’이나 ‘짝’, ‘무게의 단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동안 兩자는 저울추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해석했었다. 兩자가 ‘무게의 단위’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兩자의 금문을 보면 이것은 마차를 끌던 말의 등에 씌우던 ‘멍에’와 ‘고삐 고리’를 함께 그린 것이었다. 두 개의 멍에가 있다는 것은 말 두 필이 마차를 끌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兩자는 본래 ‘쌍’이나 ‘짝’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지만, 후에 저울을 닮았다 하여 무게의 단위로도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兩(두 량/양)은 ①두, 둘 ②짝, 쌍 ③두 쪽 ④동등(同等)한 것 ⑤기량(技倆), 기능(機能) ⑥수레를 세는 단위. 50승(乘) ⑦대(隊: 편제 단위. 25인) ⑧무게의 단위 ⑨필(길이의 단위) ⑩짝하다 ⑪장식하다, 꾸미다 ⑫아울러, 겸하여 그리고 ⓐ냥(화폐의 단위)(냥) ⓑ냥(무게의 단위)(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양쪽의 옆면을 양측(兩側), 조선시대 지체나 신분이 높은 상류 계급 사람 곧 사대부 계층을 이르던 말을 양반(兩班), 관련이 있는 두 쪽의 사물이나 사람을 양자(兩者), 사물의 양쪽의 면을 양면(兩面), 어떤 관계의 두 사람을 양인(兩人), 두 쪽이 다 큰 것을 양대(兩大), 어떤 사물의 두 가지를 성질을 양성(兩性), 서로 반대되는 양쪽 극단을 양극(兩極), 동물이 물 속이나 땅 위의 양쪽에서 다 삶을 양서(兩棲), 역량이 비슷한 같은 두 용자를 비유하는 말을 양호(兩虎), 두 집안을 양가(兩家),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움을 양난(兩難), 둘로 나눔을 양분(兩分), 아버지와 어머니를 양친(兩親), 두 과부가 슬픔을 서로 나눈다는 양과분비(兩寡分悲), 양손에 떡을 쥐었다는 뜻으로 가지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운 경우를 양수집병(兩手執餠), 둘 중에서 하나를 가림을 양자택일(兩者擇一), 용과 범이 서로 친다는 뜻으로 강자끼리 승부를 다툼을 양웅상쟁(兩雄相爭), 두 마리의 봉황이 나란히 날아간다는 뜻으로 형제가 함께 영달함을 양봉제비(兩鳳齊飛) 등에 쓰인다.
▶️ 端(끝 단, 헐떡일 천, 홀 전)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설 립(立; 똑바로 선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耑(단)으로 이루어졌다. 直立(직립)의 뜻이다. 또 음(音)이 斷(단)과 통하는 데서 빌어 자른 끝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端자는 ‘바르다’나 ‘단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端자는 立(설 립)자와 耑(시초 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端자의 갑골문을 보면 立자가 아닌 止(발 지)자와 耑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耑자는 잡초의 뿌리와 이파리를 표현한 것으로 ‘시초’라는 뜻이 있다. 여기에 발을 뜻하는 止자가 더해진 端자는 이파리가 앞으로 곧게 뻗어 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端자는 ‘바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耑자의 의미가 강하게 남아있어서인지 ‘시초’나 ‘끝’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端(단, 천, 전)은 성(姓)의 하나로 ①끝 ②가, 한계(限界) ③처음, 시초(始初) ④길이의 단위(單位) ⑤실마리, 일의 단서(端緖) ⑥까닭, 원인(原因) ⑦막료(幕僚) ⑧예복(禮服) ⑨조짐(兆朕) ⑩생각, 느낌 ⑪등차(等差), 등급(等級) ⑫가지, 갈래 ⑬문(門), 정문(正門) ⑭도대체(都大體), 대관절(大關節) ⑮때마침, 공교(工巧)롭게도 ⑯단정(端整)하다 ⑰바르게 하다 ⑱바르다 ⑲살피다, 그리고 ⓐ(숨을)헐떡이다(천) ⓑ홀(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칠 료(了), 뾰족할 첨(尖), 끝 말(末), 다할 극(極), 그칠 지(止), 마칠 종(終)이다. 용례로는 일의 처음이나 일의 실마리를 단서(端緖), 실마리 또는 일의 첫머리를 단초(端初), 어떤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상태에 있는 것을 단적(端的), 바르고 얌전함을 단정(端正),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음을 단정(端整), 바른 말을 함 또는 그 말을 단언(端言), 바르게 정돈된 모양을 단연(端然), 단정한 사람을 단인(端人), 단정하게 차림을 단장(端裝), 단정하게 앉음을 단좌(端坐), 올바르고 공평함을 단평(端平), 연극이나 영화의 대수롭지 아니한 말단의 역 또는 그 역을 맡은 사람을 단역(端役), 행실이 단정하고 겉모양이 아름다움을 단려(端麗), 바른 뜻을 단지(端志), 단정하고 아담함을 단아(端雅), 단정하고 선량함을 단량(端良), 단정하고 정중함을 단중(端重), 바르고 단정한 행동을 단행(端行), 단정하고 아름다움을 단화(端華), 물건의 뾰족한 끝 또는 시대의 사조나 유행 같은 것에 앞장서는 일을 첨단(尖端), 괴롭고 번거로운 일이나 귀찮고 해로운 일을 폐단(弊端), 일이 일어남 또는 그러한 실마리를 발단(發端),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나 옳지 아니한 도를 이단(異端), 한 끝이나 사물의 일부분을 일단(一端), 일이 흐트러져 가닥이 많음을 다단(多端), 사물의 맨 끝 또는 조직의 가장 아랫부분을 말단(末端), 맨 끝이나 맨 끄트머리로 몹시 궁하여 여지가 없음 또는 극도에 이르러 어찌할 수 없음을 극단(極端), 떠들썩하게 벌어진 일을 야단(惹端), 수 없이 많은 갈래나 토막을 만단(萬端), 온갖 일의 실마리 또는 여러 가지 방법을 백단(百端), 일의 실마리 또는 사건의 단서를 사단(事端), 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 또는 어느 쪽으로도 붙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서양단(首鼠兩端), 일이 얽히고 설키다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말을 복잡다단(複雜多端), 일이 많은 데다가 까닭도 많다는 말을 다사다단(多事多端), 일부러 말썽이 될 일을 일으킨다는 말을 고심사단(故尋事端),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다는 말을 필유사단(必有事端), 일일이 가려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의 갈피를 이르는 말을 천서만단(千緖萬端), 무릎을 거두고 옷자락을 바로 하여 단정히 앉음을 이르는 말을 염슬단좌(斂膝端坐), 만감이 착잡하게 일어난다는 말을 백단교집(百端交集), 만 가지로 깨닫게 가르치다는 뜻으로 친절하게 가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만단개유(萬端改諭), 몸 형상이 단정하고 깨끗하면 마음도 바르며 또 겉으로도 나타난다는 말을 형단표정(形端表正)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