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향욱 기획관의 ‘신분제 공고화 필요하다’ 발언 관련 우리의 입장(2016. 7. 12.)
나향욱
기획관의 ‘신분제 공고화’ 기대는 망상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신분제 공고화 필요하다는 그의 발언은 조선시대 반상제도로의 회귀가 아니어도 한국사회에서 이미 시작된 특권 학교 -
입시/채용 트랙을 통한 신분제 구축 과정으로 이미 현실화되고 있음. ▲ 현재 ‘영어 유치원 → 사립초 → 국제중 → 특목고/영재고/자사고
→ SKY 대학’이라는 특권 학교 경로를 거쳐 ‘30대 대기업, 금융권, 공기업, 공무원’으로 진출이라는 특권층 경로 라인이 이미 형성되어
있음. ▲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특권 학교 트랙과 채용 트랙에 진입하기 위해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 소득 계층별 지출 격차가 심각한
정도(소득 1분위 vs 10분위 격차 → 16.6배) 벌어져 신분제 고착화 되고 있음. ▲ 신분제 고착화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기업과
로스쿨 등에서 출신 학교로 지원생을 차별하는 불법적 운영 증거 포착. ▲ 나향욱 기획관의 발언에 분노하고 파면 등 개인적 징계를 넘어,
이미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신분제 공고화를 막는 제도 개혁에 나서는 기회로 삼아야. ▲ 조속히 ‘입시와 채용 단계에서 출신학교
차별을 금지하고, 소외된 지역과 계층을 위한 특단의 입시 및 채용 혁신을 하는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에 나서야 할 것임.
2016년
7월 9일,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경향신문 기자들과의 저녁 상견례 만남 중 “민중은 개돼지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라고 발언한
내용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는 기자들에게, “신분제를 공고화해야한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한다.”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신분제를 두둔하는 충격적 발언이라고 국민들은 매우 놀랍니다. 그의 발언에 격분해서 정치권은 교육부를
향해 나향욱 기획관에 대한 파면 등 강력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충분한 해법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은 나 기획관이 발언한 신분제가
우리 사회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한 모습이고, 소위 사회 지도층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에 절망과 충격을 느끼는 것입니다.
‘신분제 공고화’와 관련된 나향욱
기획관의 발언을 오해하면, 조선시대와 같이 반상(班常) 제도를 도입하자는 반시대적 발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자신도
경험하지 못한 반상제도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발언은 아닐 것입니다. 신분제를 ‘공고하게’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이미 신분제적 특성이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데 그 질서를 더욱 굳히자’는 발언입니다. 즉, 부와 권력을 누리는 기회가 이미 특권 계층에게 유리한 구조인데, 그
추세를 확실하게 굳혀야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부와 권력을 얻는 기회를 부모의 재산과 지위, 출신지역, 출신학교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공정하게 배분한다는 기회 균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는 결정적으로 훼손되는 셈입니다.
사실 이런 헌법적 가치는 이미 심각한
정도 훼손 상태입니다. 우리 국민들 상당수는 부와 권력을 얻는 기회에 차별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15년 8월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 81%는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의 가능성은 낮다”고 응답했습니다. 계층 상승의 가장 유력한 통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입시 트랙’이며 그 입시 트랙이 직업 진입 트랙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입시 트랙 속에 이미 특권 학교 트랙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그 트랙을 통과한 이들이 특권 직업 진입에도 유리하다는 것이 판명 난 것입니다. 즉, ‘영어 유치원 → 사립초 → 국제중 →
특목고/영재고/자사고 → SKY 대학’라는 특권 학교 입시 경로를 거쳐 ‘30대 대기업, 금융권, 공기업, 공무원’으로 진출하는 통로가 갈수록
공고해 지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학교들에 진입하는 기회가 모두에게 균등하게 열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재력과 사교육비 투자 능력에
의해 제한되어 있습니다.
※2016년 1/4분기 기준, 소득 1분위(저소득층)와 소득 10분위(고소득층)의 사교육비가 각각
2.6만원, 34.9만원으로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 13.2배의 차이가 났음. (통계청 조사 결과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가공)
이
특권 경로는 특권을 얻기 위한 튼튼한 통로로 고착화되어 조만간 신분제에 준하는 질서로 완전히 굳혀질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도입한 고교
평준화제도는 1994년 노태우 대통령이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특목고 제도’를 도입함으로 균열이 시작되다가 MB 정부 때 자사고의 도입으로
그 결정적인 해체의 과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고교 체제 속 특권 고교만으로도 부족하여 초중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 특권 초등학교(영어 몰입교육에
치중하는 사립초들)와 중학교(국제중학교)가 자리를 잡았고, 이들 학교에 진입하기 위한 유아 영어학원(소위 ‘영어유치원)이 우후죽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대학 입시에서 이들 특권 학교 경로를 거친 학생들의 내신 성적을 상위권 대학들이 차별적으로 우대한다는 의구심이 국민들 속에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고, 한양대 로스쿨에서는 입시과정에서 아예 출신 학교로 차별하는 등급표까지 운영했음이 드러났습니다.
현재 어느
누구도 이 트랙의 위상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해당 학교의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교육과정 운영으로 서울시 교육청이 2015년 재지정을 철회하기로
한 자사고 1-2 학교, 외고 1-2 학교조차 결국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심각한 비리 파문에 휩싸였던 영훈 국제중도 2015년 재지정을
승인해주었습니다. 외고, 자사고라는 학교 체제 자체를 없애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체제 속의 소수의 부실 학교를 정리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경향신문 기자들과 상견례 저녁 식사 때 밝힌 나향욱 기획관의 ‘신분제 공고화’ 기대는 망상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나향욱 기획관이 고시 출신으로 고위직 공무원이 되었습니다만, SKY 대학을 중심으로 한 상위권 대학들의 공직
점유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나향욱
기획관의 기대대로 신분제를 공고하게 만드는 현재의 특권층 학교 체제 및 채용 구조는 계속 강화될 것입니다. 그 결과로 국민 99%가 개돼지처럼
살고 1%는 신분을 손쉽게 세습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99%에게 고통이겠지만 1%들에게도 비극이 될 것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계층 상승의 통로가 막혀 사회의 활력이 꺼져버린 탓으로 보았습니다. 즉, 로마 제국이 비록
계층의 위계화는 있었지만(노예→해방노예→속주민/시민→기사→원로원→황제), 카라칼라 황제 전까지는 모든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위의 계급으로
이동할 기회가 보장되었고 이것이 사회에 활력을 주어 다민족 사회인 로마 제국을 통합했고 국가를 강건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카라칼라 황제 이후
정책을 잘못 집행해서 계층 이동의 통로가 막혀버렸고 이것이 제국이 멸망의 길로 급속도로 빠져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출신학교 차별을 통해 일부 계층에게 특권직업으로 이동할 기회를 제한하는 체제가 급속도로 고착되고 있습니다. 이
기로에서 우리는 나향욱 기획관의 발언을 특정 개인의 돌출 발언으로 축소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차별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쇄신하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사회 어느 영역에서도 신분 사회 고착화의 징후가 보이질 않는다면, 국민들이 이번 사태에 이렇게 분노할 리가 없습니다.
국민들은 개인의 삶에서 직감해온 차별의 실체가 그의 발언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 보고 이 시스템의 전면적 개편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은 이런 신분제 공고화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우리의 주장은, 입시와 기업체 채용에서 특권 학교를
우대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 및 기업체 채용에서 지방대 출신자들과 고졸 출신을 일정한 정도
배려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신분제 공고화의 길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없으면, 우리 사회는 1% 특권층의
기반조차 허무는 심각한 공멸의 길을 가고자 말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신분제가 공고화되는 차별적 입시제도와 채용제도를 전면 쇄신하는
일에 온 정치권과 국민들이 나서야할 것입니다.
■
우리의 요구
1.나향욱 기획관은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발언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의 기본 질서를 허무는 발언을 한 것으로
즉시 파면 조치를 취해야합니다.
2.우리 사회에서 현재 ‘영어 유치원 → 사립초 → 국제중 → 특목고/영재고/자사고 → SKY 대학
등 상위권 대학 → 30대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트랙을 혁신하여, 입시와 채용 과정에서 출신학교로 차별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을 철저히
금지해야합니다.
3.국회는 정당을 초월하여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에 온 힘을 합쳐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조속한 시일 내에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취할 것입니다.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주요 내용
1.
상급학교 입시와 취업상황(이력서, 자소서, 면접 등) 등에서 출신학교에 관한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어길 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합니다. 2. 특정 대학 출신이 채용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지 않도록 제한하는 규정을 포함합니다. 3. 고졸 학력자와 지방대
졸업생들이 채용 과정에서 일정 비율 이상 채용되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합니다. 4. 입시 실적 및 채용 실적으로 학교 서열을 조장하는
보도를 금지합니다. 5. 기업과 대학의 출신학교 차별 실태 확인을 위한 정보 공개 요청권을 확보합니다.
2016.
7. 12.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송인수, 윤지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