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22년) 4월 19일 현재 화야산방에도 봄꽃들이 만개하고 있다. 벚꽃과 진달래 개나리들은 다 졌고 이제 과수꽃들이 활짝 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다. 올해는 예년보다 조금 개화가 늦는 것 같다. 지난 겨울이 조금 더 추웠고 이곳 화야산방은 서울보다 5도정도 더 낮기 때문에 아마도 꽃들의 개화가 상대적으로 늦은 것 아닌가 생각이 된다.
우물가 옆에 앵두나무이다. 지난해 대대적인 보수작업으로 위치가 바뀌었다. 새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겨우내내 힘든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버티어 올해 개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앵두꽃은 참으로 예쁘다. 앵두 열매만큼이나 앙증맞고 귀엽다. 앵두 그리고 앵두꽃 같은 입술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산복숭아도 만개했다. 산복숭아를 개복숭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꽃 가운데 꽃이다. 예전 조선시대에는 부모님을 위해 이 산복숭아 꽃을 드렸다고 한다. 지금의 카네이션 같은 성격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 가장 예쁜 꽃이 아니였을까 생각이 된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자두나무이다. 앵두나무나 산복숭아나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꽃색깔이 정말 은은하다. 그다지 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수수하지도 않다. 싱그러우면서도 애띤 고운 자태를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런 꽃들이 만개했지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이 지구의 현실이다. 최재천 교수의 유튜버 방송을 보니 튜립이 벌써 피었다 진 곳도 있다고 한다. 5월에 피는 튤립이 벌써 피었다 지다니...최교수는 이제 이 지구상의 존재하는 꽃나무는 자신이 피어야 할 시점을 잊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는 의미의 말을 한다. 직접 꽃들을 살피니 그 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꽃나무들은 겨우내 힘든 시절을 보내고 이제 봄이 되어 꽃을 피우려고 하다보니 바깥 기후가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4월초에 벌써 초여름 같은 기온을 보이기도 하고 또 며칠 있으면 늦겨울같은 기온을 보이기도 한다. 예전에는 꽃샘도 비슷한 규칙이 있었지만 이제는 중구난방이고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인간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한 지구온난화의 탓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러니 꽃들의 개화시기 순서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4월이 되면 무조건 피고 보자 하는 식이다. 인간이 막가니 꽃나무들도 닮아가는 것인가. 꽃나무들의 운영시스템이 엉망이 되버린 것같아 가슴이 정말 편치않다.
봄철 꽃나무들을 상대로 생업을 이어가는 벌나비들의 시스템도 엉망이 되긴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의 시스템으로 판단해 봄철 영업을 시작할 때에 이미 꽃들은 개화하고 저버렸다. 벌 나비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마땅이 외부에 나가 활동을 하면 봐왔던 그런 꽃들이 이미 시들고 없는 것이다. 꽃들도 벌나비가 없으니 수정이 안된 상태에서 꽃이 시들어 한해 농사 망쳤고 벌나비는 먹이를 얻지 못해 일년 꾸려나가기가 힘들게 생겼다. 나처럼 과수를 생계로 삼지 않는 상황이니 덜하지 과수농가들은 지금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과수농가들은 손수 꽃을 수정을 해줘야 하니 그 수고가 오죽 심하겠는가. 모두 지구온난화 다시 말해 인간이 저지른 자연 파괴 범죄의 죄값을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죄값은 치르고 나면 다시 일상 생활을 할 수는 있지만 자연파괴행위는 죄값을 치뤄도 회복이 안되니 정말 큰 일이다. 지구온난화의 위태로움은 임계점을 넘은지 이미 오래됐고 전문가들은 인류의 멸종 시간도 그다지 멀지 않다고 연일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이제 인간들은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포자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그래도 괜찮다고 하지만 지금 청년들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나는 지구의 아기들은 어떻게 하라고. 어른들의 패악질에 그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들의 생이 얼마나 황폐하고 위태로울까 생각하니 참으로 우려스럽고 안타깝다. 봄날 그리고 이제 코로나에서 막 벗어나려는 이 시점에 피는 저 예쁘고 귀여운 봄꽃들이 애처로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2년 4월 2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