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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주일낮설교 / 청주,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골 3:12-15 /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8)!!
(♡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 오늘 말씀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옛 것을 벗어버리고 우리가 새롭게 입어야할 옷은 12~15절까지 9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긍휼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 사랑 등 일곱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여덟 번째로 평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8. 평강은 성경에 따라 평화, 화평, 화목, 평안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평강은 헬라어로 “에이레네”인데,
1) 평화, 화평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① 전쟁의 반대개념으로 평화입니다.
화평한 사이가 되기를 구한다 눅 14:32, 안전하다 눅 11:21, ..에게서 평화를 가져가버린다 계 6:4, 행 24:2, 화평을 구한다 행 12:20
② 그리고 분쟁의 반대개념으로 화합, 조화로 사용되었습니다. 번역은 화평입니다. 마 10:34, 눅 12:51
화평하게 한다 행 7:26, 화평의 묶음 엡 4:3, 화평의 왕 히 7:2 쉼을 얻는다 행 9:31, 화평의 길 롬 3:17, 눅 1:79 평화롭게 히 11:31, 화평을 이룬다 엡 2:15, 약 3:18, 딤후 2:22, 갈 5:22, 히 12:14, 롬 14:19, 벧전 3:11
설명 : 화평의 왕 히 7:2 - 아브라함이 전쟁에 포로로 끌려간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올 때 살렘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먹을 것을 주고 복을 빌어주었으며,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바칩니다.
이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화평의 왕인 멜기세덱은 화평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③ 그리고 무질서의 반대개념으로 질서로 사용되었습니다. 번역은 화평입니다.
(고전 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2) 히브리어 샬롬에 대등한 말(같은 말)입니다.
샬롬은 평안, 안녕, 건강, 강건....작별인사에도 사용되고, 평안히 간다 약 2:16 행 16:36 막 5:34, 눅 7:50, 8:48, ....를 평안히 떠나보낸다 고전 16:11, 안녕하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하고 보낸다 행 15:33, 인사의 형식 눅 24:36, 요 20:19,21,26, 이 집에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눅 10:5에 사용되었습니다.
원래 샬롬은 “완전함”, “견실함”, “행복”을 말합니다. 물질적인 번영(시 122:6이하)이나 육체적인 안전(시 4:8)을 뜻할 수도 있지만, 의와 진리와 연관된 영적 행복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시 85:10, 사 57:19이하).
평안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3) 평화는 구원과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구약 예언자들의 말에 의하면, 평화는 메시아 왕국의 본질적 특색의 하나이기에 기독교 사상에 있어서는 평화가 메시야의 구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평화를 선포하다”라는 뜻은 메시아의 구원을 선포한다는 뜻입니다. 행 10:36, 롬 10:15, 엡 2:17,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진다 롬 5:1, 평화를 남긴다 요 14:27,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화 골 3:15, 빌 4:7, 고후 13:11, 빌 4:9, 살전 5:23, 히 13:20, 살후 3:16, 엡 2:14.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에 있고,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말을 구원으로 바꾸면, “그리스도의 구원이 우리 마음에 있고, 구원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도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즉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는 사람들 중에 평화(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바로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 그 외 평안과 연관된 알려진 말씀들
(사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요 14:27) 평안(평화, 구원)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구원)이니라
→ 정리하면,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예수님은 오셔서 평화, 구원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고, 내적으로는 우리 마음속에 평안(구원)을 가져야 하며, 다른 이들과도 화평하며 살며, 교회 안에서 한 몸(지체)이 되어야 합니다.
(예)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뱀이 말한 대로 선악과를 먹으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었나요? 아닙니다.
결국 뱀이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큰 잘못을 깨달은 아담과 하와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으로 하나님이 두려워서 나무 뒤에 숨게 됩니다(창 3:10).
그런데 숨는다고 숨어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 때문에, 뱀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핑계를 댄다고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는 즉시 평안을 빼앗아가게 되었습니다.
함께 에덴동산을 거닐던 친밀하던 하나님이 갑자기 무섭고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영적 생명을 잃어버리면서 육신의 죽음도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삶)입니다.
이 모습 때문에 구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깨어진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잃어버린 평안과 영적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예) 노아의 방주
방주를 만들기까지 120년이 걸렸는데, 이 기간 동안 평안을 잃어버릴 정도의 힘든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도 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쳤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기에 모든 것을 이겨냈습니다.
노아의 마음과 그 자녀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평안이 확고했기에 흔들리지 않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방주에 탔습니다.
방주에 타고 약 1년여의 기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만 요동치는 물결 속에서도 (적어도 시속 1600km의 조류 추정) 하나님의 평안을 느끼면서 지냈을 것입니다.
→ 노아의 방주 만들기와 방주 생활은 우리가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과 평안을 가지고 잘 이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25년 만에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25년의 기간은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랑, 신실하심에 의문을 가질 만도 한 오랜 기간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지켜질까 하는 걱정 때문에 평안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아브라함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고, 자녀 이삭까지 바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 결국 하나님은 믿고 사랑하는 아브라함에게 은혜와 사랑, 신실하심, 평안을 주셨고, 아브라함은 계속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믿음의 약속, 하나님의 사랑, 신실하심... 의미를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어야 합니다.
(예) 이삭이 기근으로 블레셋 지역으로 갔다가 백배의 복을 받고, 그들의 시기 질투를 받고 우물들을 빼앗기다가 결국 르호봇이라는 우물을 얻고 쉬고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우물을 빼앗은 블레셋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기근도 어려운데 물이라는 생명의 문제로 어려운 고통을 겪게 되어야 하느냐, 이것이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강한 적의를 가진 사람들은 한판 붙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였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처럼 주변의 동맹 맺은 자들과 함께 블레셋을 친다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조용히 물러났고 평안을 택했습니다.
시간이 지났고,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직접 찾아와서 이삭에게 화친을 말하였습니다.
(창 26: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물론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의 아내를 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생명과 직결된 우물을 빼앗은 문제를 따지면 선한 일만 행하여 평안히 가게 한 것은 아닌 상황인데 여하튼 와서 먼저 이삭을 인정하고 화평을 청하였기에 이삭도 아비멜렉과 화평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아브라함 때는 아브라함이 우물 문제 때문에 그들을 꾸짖었지만 이삭은 그들을 꾸짖지도 않았습니다.
→ 믿음의 사람이 이웃과의 경쟁 때문에 때로는 어려운 일을 만나기도 하지만 양보하고 양보하며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하나님은 그들이 와서 이삭을 인정하게 하고 화평하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역사하실 것입니다.
화평하려 하면(참으면) 여기에도 하나님은 좋게 역사하십니다.
(예) 한나의 기도
엘가나의 집에 분란이 있었습니다.
브닌나와 한나라는 두 여인이 있었는데, 아이를 여럿 낳은 브닌나가 한나를 심히 화나게 하며 괴롭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한나의 방법은 맞서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공격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며 이 문제를 아뢰고 울었습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 1:17)
이 말을 들은 한나는 아멘 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때가 되니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와 눈물에 응답해주시고, 미래의 지도자인 사무엘을 낳게 하셨습니다.
→ 가정의 어려운 문제들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평안을 회복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있었고, 사무엘이 자라 큰 선지자가 된 것을 생각하면 믿음의 대박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집에서 평안을 잃어버릴 때 간절히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해보십시오.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에도 응답하실 것입니다.
(예) 우리나라의 식량의 기초는 쌀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식량 기초는 돼지입니다. (김필재TV 등 참조)
그런데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돼지들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양돈산업상하위 종사자가 1억 명이고, 그 가족까지 하면 수억 명인데 ...이들이 흔들리면 중국이 무너집니다.
예를 들어 13억 마리 되는 돼지 중에서 5억 마리가 죽었을 때 양돈산업의 피해가 1조위안(우리돈 168조5,100억원), GDP가 -1.1% 역성장을 합니다.
이것은 전방산업(돼지사료)와 후방산업(요식업)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입니다.
90%일 경우에는 피해가 6600억달러(약 700조원), GDP -5%성장을 하게 됩니다. 지금 이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데 돼지열병으로 돼지가 죽으면 대체식품으로 닭을 먹게 됩니다.
하지만 중국에 있었던 조류독감으로 닭이 많지 않고, 다시 조류독감이 일어나 난리를 치면 중국이 외국으로부터 모든 것을 수입해야 하는데 달러로 결재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돈이 마르는 것입니다.
중국은 돼지가 없어지면 정권이 바뀐다는 설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문제로 중국 공산당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종말로 갈수록 세계는 평안을 잃어버리게 되고, 평안을 줄 것처럼 사탄의 하수인들은 감시통제사회를 만들고, 식량위기를 조장하고, 환경파괴를 하며 사탄을 따르라고 합니다.
마블영화 “어벤져스” 등이 멋진 싸움을 하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타노스를 거부하고 사탄을 따르라는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무서운 시대입니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사탄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하나님과 화목하고, 내적으로 평안을 누리며 살고, 이웃과 평화하며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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